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21화 (221/425)

221. 포이베의 신력 (1)

샹크리스 왕국의 수도, 하르티칸엔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토너먼트가 종료됐는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도로 모여드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숙박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바쁜 와중에도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거리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축제가 벌어졌다.

사제들은 교회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아낌없이 축복을 내려 주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특별한 초대를 받은 몇몇 사람들이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을 찾았다.

네모진 홀 안엔 백금빛 갑주의 성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키릴 크레센시아 경. 그대를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의 새로운 단장으로 임명한다.”

샹크리스 국왕과 하르티칸 대사제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경청하던 키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기사단장인 다리우스 크레센시아가 다가왔다.

기사단장의 상징인 백금빛 독수리가 양각된 아밍 소드가 키릴에게 건네졌다.

“감사합니다. 다리우스 단장.”

“이제 단장은 내가 아니라 자네일세. 키릴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장.”

키릴이 엷게 미소했다.

그러고는 뒤돌아 성기사들을 바라봤다.

척. 척. 척.

성기사들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아밍 소드를 들었다.

그러고는 역수로 쥔 검 손잡이를 왼쪽 가슴으로 당겨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의 예를 표했다.

키릴도 아밍 소드를 역수로 들고 예를 표했다.

* * *

샹크리스 왕국은 빛의 신 포이베를 섬기는 종교 국가.

다시 말해, 이곳에서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장의 취임식은 왕국 전체의 경사다.

“키릴 님이 단장이 되셨어!”

“앞으로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은 더욱 강해지겠군!”

“그것을 기원하며 축배를 들자고! 하하하하하!”

취임식이 끝난 후, 하르티칸은 마지막 축제의 장을 열었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건물 안팎을 가리지 않고 술판이 벌어졌다.

그 사이를 아이들이 행복한 얼굴로 뛰어다녔다.

“전임자인 다리우스 경도 훌륭한 단장이셨지.”

“암암. 그분이 계셨기에 키릴 님이 더욱 강해질 수 있었던 거야.”

“어린 날의 키릴 님을 악마의 손아귀에서 구해낸 것도 다리우스 경이라지?”

사람들의 입엔 다리우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다리우스는 검술 실력 못지않은 훌륭한 인품으로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다리우스 님이 명예 단장직을 받아들이신 게 정말 천만다행이지.”

“극구 거부하시더니, 키릴 님의 간청엔 그분도 어쩔 수 없으셨던 모양이야. 하하하하.”

“키릴 님은 그분의 친딸과 마찬가지인데, 아니 그렇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딸의 부탁을 거절할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으하하하하하!”

“아무튼 저렇게 젊은 나이에 단장이라니. 과연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 역사상 최강의 성기사라 불릴 만하군. 안 그런가?”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릴 하는 거야! 키릴 님은 샹크리스 왕국, 아니 대륙 최강의 기사라고!”

“옳소! 하하하하하!”

그러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통을 깨서 미안하지만, 전 대륙 최강의 기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봤다.

경무장 차림을 한 키릴이 미소하고 있었다.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저마다 소리쳤다.

“키릴 님이다!”

“키릴 님이 오셨어!”

“어디어디!”

“나도 볼래!”

너도나도 키릴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키릴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뒷전으로 미루고 이곳을 찾았다는 것을.

그러나 취임식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뿐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취임식이 끝난 후, 직접 이곳을 찾았다.

“아니 그런데 키릴 님이 대륙 최강의 기사가 아니면 누구란 말입니까!”

“맞습니다! 얼마 전 다리우스 명예 단장께서도 키릴 님의 실력이 성기사단 최강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은 대륙 최강의 기사단! 그런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의 으뜸인 키릴 님이 대륙 최강의 기사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요!”

“옳소!”

술에 취한 이들이 와하하 웃으며 제 주장을 펼쳤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키릴은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건 아닌 거였다.

“제가 알기로, 대륙 최강의 기사는 아틸라 경입니다.”

아틸라.

키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일순 소란이 잦아들었다.

사람들이 나직이 웅성댔다.

“아틸라라면, 지난 토너먼트 우승자 말인가?”

“맞아. 분명 우승자의 이름이 아틸라였지. 검은늑대의 아틸라.”

사내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륙 최강의 기사는 당연히 키릴 크레센시아라 믿고 있었고, 또 믿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온 것이다.

그들은 얼마 전 치러졌던 토너먼트를 떠올렸다.

당시 단장이었던 다리우스 크레센시아.

부단장 요한.

그리고 키릴.

세 기사가 힘을 합쳐 검은늑대의 아틸라를 공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기사들로 구성된 1팀, 2팀, 3팀.

도합 36인의 성기사가, 사실상 아틸라 한 명을 공격했다.

그러나 쓰러뜨리지 못했다.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요한, 다리우스, 키릴을 포함한 많은 성기사를 낙마시키고 우승을 차지했다.

‘저, 저런 말도 안 되는!’

‘저것이 정녕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실력이란 말인가!’

관중은 경악했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 어려운 결과.

그러나 그 시합은 사실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관람했다.

게다가 아틸라는 바라키엘 신전에 출몰한 악마를 물리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해 샹크리스 국왕과 대교회는 검은늑대의 아틸라와 그의 동료들을 왕국의 영원한 국빈으로 대우하겠다 공표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들리는 뒷소문으로는 아틸라의 동료 중에 샹크리스의 전설적인 궁정 마법사의 후손이 있고, 신분을 감춘 이웃 나라의 왕도 있다고 했다.

‘드래곤이 그들을 가호한다는 소문도 있던데.’

‘나도 들었네. 그 이웃 나라 국왕의 수호룡이라는 이야기.’

‘자네도 들었나? 나도.’

물론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동료들은 몰라도, 아틸라가 이룬 업적은 왕가와 대교회가 인정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키릴의 말에 선뜻 반박하지 못했다.

입술을 씰룩이며 할 말을 찾는 이들을 보며 키릴은 미소했다.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들.

키릴은 그들을 보며 행복감을 느꼈다.

어린 날의 악몽이 깨끗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키릴의 눈에 후드를 눌러쓴 여자가 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키릴은 그 여자를 한눈에 알아봤다.

사실 그 여자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긴 망토 탓에 몸매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키릴은 자신의 눈을 확신했다.

여자도 키릴이 자신을 발견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여자는 키릴을 향해 따라오라는 듯 턱짓했고, 가히 인간 같지도 않은 몸놀림으로 인파의 벽을 헤쳐 갔다.

키릴은 서둘러 여자의 뒤를 쫓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어 왔지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키릴은 급한 일이 생겼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적으로 외치며 여자의 그림자를 쫓았다.

이윽고 그 많던 인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키릴은 낯선 골목에 들어와 있었다.

저만치 벽에 기댄 채 고개 숙인 여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여자가 후드를 벗었고, 키릴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카스피.”

카스피의 얼굴 표정은 차가웠다.

“네 도움이 필요해. 키릴.”

* * *

깊은 밤.

카스피와 키릴은 어디론가 말을 달리고 있었다.

키릴이 소리쳤다.

“아틸라가 생명이 위험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키릴의 눈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답 없는 카스피에게 키릴이 다시 외쳤다.

“카스피!”

“바라키엘 신전에서처럼, 아틸라가 버서커의 힘을 발현했어.”

키릴은 그때를 기억했다.

그날, 아틸라가 발현한 버서커의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했던 건 키릴이었다.

사방으로 피를 흩뿌리는 육체.

혈관이 불거진 두 눈.

맹수를 연상케하는 공격성.

당시의 아틸라를 떠올리던 키릴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날의 아틸라는 분명 이성을 잃었었지만, 하르티칸에서 재회한 그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분명…….’

키릴이 기억하기로.

바토리의 마력이 아틸라의 정신에 개입했고, 그 덕에 아틸라는 버서커의 광기에서 벗어났다.

이후의 아틸라는 다소 체력이 소진된 모습이긴 했지만,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바토리는! 지난번처럼 바토리가 아틸라를 구하지 못한 건가요?”

“바토리의 마력이 바닥난 상태였어. 게다가 상대가 상대였고.”

그 말에 키릴은 깨달았다.

아틸라는 둥지를 튼 상급 악마, 탁샤카마저 쓰러뜨린 사내.

게다가 그때의 탁샤카는 마계와 중간계 사이에 위치하며 더욱 강력한 힘을 드러냈었다.

그런 아틸라를 고전하게 하고, 심지어 생명마저 위협하는 상대라니.

대답은 카스피의 입에서 나왔다.

“버서커 카르타고.”

그 말에 키릴은 심장이 조여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버서커 카르타고.

크리엘도라 대륙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사라 불리는 사내.

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버서커 카르타고는 먼 과거의 전사.

“버서커 카르타고는 데스나이트가 되어 부활했어. 사실 우린 이전에도 버서커 카르타고를 만난 적이 있지. 아틸라는 그날 처음으로 버서커의 힘을 발현했었어.”

키릴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아틸라가 키릴에게 세계선의 붕괴에 대해 설명했을 때, 버서커 카르타고와 사도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무슨……!”

“그땐 버서커 카르타고가 아틸라를 원래대로 되돌린 덕에 별문제가 없었어. 그리고 바라키엘 신전에선 바토리가 그 역할을 대신했지.”

“버서커 카르타고가 아틸라를 되돌렸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자세한 사정은 나도 몰라! 아무튼 카르타고와 싸우다 아틸라는 버서커의 힘을 발현했어! 바토리도, 영주 나리도, 나도 없을 때! 아틸라는 혼자서 카르타고와 그 빌어먹을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를 상대했다고! 그러니 멀쩡할 리 있겠어? 멀쩡할 리 있겠냐고!”

바락바락 소리치는 카스피를 보며 키릴은 아연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카스피가, 그리고 다른 일행이 아틸라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키릴은 흥분한 정신을 가라앉혔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

“아틸라는 어디에 있죠?”

“우린 수오미 왕국의 대호수 근처에 있었어. 아틸라와 나머지 일행은 거기서 이쪽으로 똑바로 내려오는 중이야. 상황이 급박한 탓에 내가 먼저 달려온 거고.”

그렇게 말하며 카스피가 인상을 찌푸렸다.

키릴은 카스피가 발목을 다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스피. 잠깐.”

키릴은 카스피의 말을 억지로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말에서 내려 카스피의 발목을 살폈다.

“뭐 하는 거야! 이럴 시간 없다는 건 너도……!”

“잠시만요.”

키릴이 무언갈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어 그녀의 손에 새하얀 광채가 피어올랐고, 카스피의 발목을 덮었다.

카스피는 발목의 통증이 급속도로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카스피는 아틸라가 키릴을 찾은 이유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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