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밤의 숲 (3)
카르타고는 크게 당황한 상태였다.
버서커 아틸라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실력차가 있다는 것 또한 명백했기에, 카르타고는 굳이 아틸라의 꿍꿍이를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오판이었다.
아틸라는 카르타고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과,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려운 신묘한 기술을 사용해 아에스투스를 하늘로 끌고 올라갔다.
카르타고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버서커 아틸라.
그는 단순히 자신의 과거를 반추할 뿐인 사내가 아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대적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카르타고는 기대했다.
카르타고는 샤를 아인하르트가 지닌 힘을 알고 있었다.
군신 아레스의 신력.
어미에게서 물려받은 요정의 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카르타고는 자신의 검에 둘러진 검은 오러를 바라봤다.
샤를 아인하르트가 사용하는 힘은 이것과 동류.
‘샤를 아인하르트는 검은 오러를 더욱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 그가 지닌 요정의 피가 옅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 샤를 아인하르트. 그리고 버서커 아틸라.
카르타고는 아에스투스를 끌고 하늘로 치솟는 아틸라를 봤다.
아에스투스는 지면으로 하강하라는 카르타고의 의지를 거스르고 있었다.
아니, 아틸라의 몸에서 발하는 기운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다.
- 내 의지를 거스를 수 있을 정도의 힘이라.
재미있었다.
또한 놀라웠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힘이라 해도 언제까지 상승을 계속할 수는 없다.
대지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인력을 지니고 있고, 그렇다면 버서커 아틸라의 힘이 다하는 순간 아에스투스는 지상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아틸라의 하강은 카르타고의 예상보다 빨랐다.
아니, 너무나도 빨랐다.
파아아아앙!
카르타고는 아에스투스의 턱이 무언가의 힘에 짓눌리는 것처럼 추락하는 모습을 봤다.
이어 아에스투스의 턱이 파열되며 아틸라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봤다.
카르타고는 머리를 울리는 강한 충격을 느꼈다.
그것 이상의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그의 몸을 습격했다.
그 와중에도 카르타고는 본능적으로 몸을 뺐다.
그래서 아틸라의 공격은 카르타고를 정확히 타격하지 못했다.
아틸라도 그것을 알았다.
아틸라는 도약의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가는 카르타고를 봤다.
그러나 저 정도로 카르타고는 쓰러지지 않는다.
콰아앙!
한발 늦게 아에스투스의 머리가 지면에 박혔다.
아에스투스의 턱밑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벌어진 아가리에서는 꿀렁꿀렁 피가 흘렀다.
아틸라는 생각했다.
자신의 환수가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 카르타고는 달가운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틸라는 자신의 몸을 지킬 최선의 선택을 했다.
어차피 이곳엔 동료들이 없다.
눈앞에 존재하는 카르타고와 아에스투스는 언제고 쓰러뜨려야 할 적.
아틸라는 품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그 안엔 싯누런 액체가 담겨 있었다.
[ 이무기의 독액 ]
대호수에 등장했던 이무기를 쓰러뜨리고, 녀석의 입에서 채취한 독액.
이무기의 독액은 나가라자 탁샤카의 독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
아틸라는 주저 없이 독액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 신경독이 체내에 침투했습니다. ]
[ 신경독에 저항을 시작합니다. ]
[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
[ 신경독(정신 마비)에 감염되었습니다. ]
[ 정신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
[ 이 효과는 5회까지 중첩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상당량의 독을 마셨기 때문인지 아틸라의 몸엔 금세 중첩이 쌓였다.
[ 이 효과가 5회 중첩되었습니다. ]
그것만이 아니었다.
[ 출혈독(파괴)에 감염되었습니다. ]
[ 5초마다 일정량의 체력이 감소합니다. ]
[ 이 효과는 4회까지 중첩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이무기의 독액은 출혈독도 포함했다.
[ 이 효과가 4회 중첩되었습니다. ]
아틸라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사실 이무기의 독액을 마시기 전부터 아틸라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대호수에서의 사건, 그리고 카르타고와의 전투는 아틸라의 체력을 앗아 갔다.
그것에 더해 출혈독(파괴)은 아틸라의 체력을 추가로 깎아 냈고.
신경독(정신 마비)은 판단력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한다고 광폭의 권능이 발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틸라는 얼마 전 광폭의 권능에 대해 분석한 적이 있었다.
그가 결론 내린 광폭의 발현 조건은.
‘첫째, 불리한 전투 상황에서.’
‘둘째, 체력과 정신력에 큰 데미지를 입은 채로.’
‘셋째, 강하게 승리를 염원해야 한다.’
그렇게 의식의 경계를 벗어나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해야 한다.
‘광폭의 권능은 위험하다.’
아틸라는 지금껏 두 번의 광폭을 경험했지만, 자신의 의지로 벗어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손에 넣었다.
[ 나이아드의 눈물 ]
[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의 마력으로 빚어낸 영롱한 보석입니다. ]
[ 착용자의 정신력을 강화시킵니다. ]
그러나 정신력을 강화해도 체력 소모를 저지할 길은 없다.
아틸라의 체력이 급속도로 줄었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카르타고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 버서커 아틸라.
카르타고의 안광이 뜨겁게 타올랐다.
- 너는 버서커의 힘을 발현해 내게 대항할 셈인가.
아틸라는 감지했다.
이전에도 두 차례 느꼈던 감각이 자신의 몸을 휩쓸고 있었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그의 정신이 의식의 세계를 벗어나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했다.
[ 시스템 경고 ]
[ 충격에 주의하십시오. ]
그의 안구에서 검은자위가 사라졌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투툭, 혈관이 불거진 두 눈이 상대의 모습을 좇았다.
[ 세 번째 권능이 발현합니다. ]
그는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하는 자신을 느꼈다.
결코 깨어나지 못할 지독한 술에 취하는 기분.
그의 입이 기다랗게 찢겼다.
[ 광폭(狂暴) ]
악다문 어금니 사이로 야수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털을 곤두세워 위압감을 드러내려는 짐승처럼 그의 몸이 부풀었다.
그의 등허리가 활처럼 당겨졌다.
반동을 이용한 강인한 육체가 타깃에게 쏘아졌다.
- 오너라. 대적자여.
카르타고의 검에서 더욱 강한 흑빛 오러가 뿜어졌다.
그것을 향해 무휼이 날아들었다.
콰쾅!
검이 부딪는 소음은 직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대지가 울리고 공기가 울부짖었다.
아틸라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무휼을 휘둘렀다.
드라칼리온을 뻗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그 위협적인 공격을 모두 막았다.
심지어 반격을 가해 아틸라의 몸에 지속적인 타격을 입혔다.
퓨슉! 퓨슈슈슉!
아틸라의 몸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체력이 빠르게 고갈됐다.
그러나 그는 그 상황에서 쾌락을 느꼈다.
상대의 검에 베일 때마다, 그리고 분수처럼 핏물이 솟을 때마다 그는 참기 힘든 쾌감을 느꼈다.
그럴수록 그의 몸놀림은 날렵해졌다.
근육의 힘이 강해졌다.
더욱 난폭해졌다.
- 재미있군. 너는 스스로의 의지로 버서커의 힘을 발현할 방법을 안배한 것인가.
카르타고는 다시금 감탄했다.
역시 버서커 아틸라는 놀라운 사내였다.
그리고 카르타고는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 버서커의 힘은 양날의 검.
결코 혼자의 힘으론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시전자는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카르타고는 아틸라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또한 아틸라와 대화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 더 이상의 대화는 어려울 것 같군. 버서커 아틸라.
카르타고는 강한 일격을 질러 아틸라를 밀어냈다.
아에스투스에게 의지를 전했다.
아에스투스는 주인의 명을 따랐다.
펄럭.
아에스투스가 날개를 폈다.
그의 몸은 이곳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작아졌다.
그러나 날개는 더욱 길고 단단해졌고, 전신에서 발하는 마기 또한 짙어졌다.
이유는 있었다.
아에스투스의 입안에서 그의 타락을 지연시키던 나이아드의 눈물.
그것을 아틸라가 가로챘다.
즉, 타락을 지연시키던 유일한 요인이 사라진 것이다.
크르르르르르…….
망가진 아에스투스의 턱이 원래 위치를 찾았다.
구멍 났던 근육과 피부도 수복을 시작했다.
부드득, 턱뼈를 맞춘 아에스투스가 아가리를 벌렸다.
목구멍 안에서 광기의 검은 마력이 집약됐다.
그것이 브레스라는 형태로 뿜어졌다.
아틸라를 습격했다.
퍼퍼퍼펑!
그러나 아틸라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광폭의 권능 때문이 아니다.
그의 눈앞에 강력한 마력 장막이 생성됐기 때문이다.
- 저것은.
카르타고의 안광이 꿈틀댔다.
그는 저 가공할 마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카르타고의 눈이 아틸라의 뒤편을 바라봤다.
다급히 달려오는 네 마리의 말.
그중 백마 위에 올라탄 살기 어린 얼굴을 확인한 순간, 카르타고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 바토리 에르제베트.
카르타고는 바토리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했다.
그녀의 외모는 그날과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저 죽일 듯이 자신을 노려보는 사나운 표정만 제외한다면.
츠캉!
바토리의 왼팔에서 마멸의 칼날이 쏘아졌다.
목표는 아에스투스였다.
카르타고의 오러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 오랜만이군. 바토리 에르제베트.
“카르타고.”
카르타고는 조금 더 가까워진 바토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바토리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버서커 아틸라를 만나 인간이 되었다.
즉.
- 너는 이전만큼 강력한 마법사가 아니다.
카르타고의 오러가 더욱 짙은 마기를 뿜었다.
그것이 마멸의 칼날을 공격했다.
바토리는 또 하나의 칼날을 추가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녀는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아틸라를 보호하고, 카르타고에게 마멸의 칼날을 쏘아 내느라 마력 대부분을 소진했다.
- 막아 보거라. 바토리 에르제베트.
카르타고가 오러를 방출해 바토리를 공격했다.
바토리에겐 그것을 막아낼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그 순간 바토리의 등 뒤에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성체로 변한 도롱뇽이 고개를 내밀었다.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키랴랴랴랴랴랴!
흑염의 브레스가 카르타고의 오러를 부쉈다.
카르타고가 외쳤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도롱뇽은 이전보다 커다란 몸을 하고 있었다.
브레스도 강력해졌다.
그것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 해방의 권능이 ‘2레벨’로 진화합니다. ]
[ 환수, 도롱뇽의 봉인된 힘이 ‘2레벨’만큼 해방됩니다. ]
이무기를 죽이며 도롱뇽은 레벨업을 했고, 해방 스킬도 업그레이드 됐다.
그래서 도롱뇽의 몸체는 더욱 커졌고, 브레스 또한 강해졌다.
카르타고는 지금이야말로 진정 물러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죽이려면 죽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자신 역시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카르타고의 목적은 저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 반가운 재회였다 버서커 아틸라. 그리고 바토리 에르제베트.
아에스투스가 카르타고를 등에 태웠다.
그러고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카르타고는 멀어지는 지면을 보며 생각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마력은 고갈됐다.
청마탑의 마법사도 마찬가지고, 오토마이어 왕과 귀살자 카스피의 능력으로는 이곳에 닿을 수 없다.
심지어 아틸라는 버서커의 광기에 빠져들었다.
이제 타깃을 잃은 그의 광기는 동료들을 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토마이어 왕과 카스피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카르타고는 아틸라의 모습을 찾았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스컹!
드라칼리온이 카르타고의 오른팔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