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15화 (215/425)

215. 탈출 (1)

‘뭐라고?’

아틸라는 조금 놀랐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를 만났을 때 생성됐던 ‘정령왕 시나리오’.

그것이 이어진 것이다.

게다가 임무 내용은.

[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를 제압하고, 사악한 마물로 가득한 대호수에서 탈출하십시오. ]

나이아드를 제압하라니.

이상했다.

그때의 이프리트와 달리, 나이아드는 아무런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아틸라는 소리쳤다.

“모두 전투 준비해!”

아틸라는 시스템을 믿었다.

시스템은 다소 불친절하긴 해도, 지금까지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의문의 눈을 뜨면서도 오토와 카스피는 무기를 들었다.

바토리의 눈빛도 변했다.

라쿠나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일행을 돌아볼 뿐이었다.

“파동의 마력을 준비하거라. 라쿠나.”

라쿠나에겐 아틸라보다 바토리의 말이 더욱 무게감이 있었다.

바토리는 라쿠나의 마법 세계를 열어 준, 어떻게 보면 스승과도 같은 존재.

게다가 나이아드와 바토리의 대화를 들으며, 라쿠나는 바토리가 겉모습과 달리 상당한 세월을 살아온 특별한 존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라쿠나는 즉시 파동의 마력을 준비했다.

그러는 동안 아틸라는 나이아드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역시, 시스템은 틀리지 않았다.’

나이아드의 몸이 변색되기 시작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녀의 몸 곳곳에 멍 자국 같은 것이 생겨났다.

마치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 대호수 수면에 검은 얼룩이 묻어 있던 것처럼.

‘그래. 그랬던 건가.’

수오미 왕국의 대호수는 평범한 물이 아니다.

그것엔 오랜 시간 나이아드의 몸에서 뿜어진 체액이 섞여 있다.

물론 대호수는 중간계에 있고, 나이아드의 몸은 정령계에 속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호수와 나이아드가 완전히 단절돼 있는 것은 아니다.

대호수의 오염은 나이아드의 몸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 아아아아아아아아!

나이아드의 입에서 비명이 토해졌다.

지금까지의 온화한 목소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악마처럼 소름 끼치는 목소리.

콰콰콰콰콰콰!

출입문이 열리며 호숫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 라쿠나의 파동 안으로 들어가!”

아틸라가 소리쳤고, 일행은 그 말을 따랐다.

밀려들던 물이 파동의 벽에 부닥치며 갈라졌다.

오토의 눈이 커졌다.

“아, 아틸라 님은!”

“아틸라! 아틸라가 아직 밖에 있다고! 아틸라아아아!”

카스피는 파동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사이 단단하게 경화한 벽에 부닥치곤 뒤로 고꾸라졌다.

“이, 이거 풀어 봐! 빨리! 라쿠나!”

“그럴 수 없습니다. 바깥을 보세요.”

어느새 벽 바깥은 오염된 물고기와 정령들로 가득했다.

“지금 경화를 풀면 저들이 벽 안으로 진입할 겁니다.”

“상관없어! 저까짓 놈들 모두 베어 버리면 그만이야!”

“우린 물속에서 제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수저항은 물론이고, 그사이 끊긴 호흡은 우리 정신력을 순식간에 앗아갈 겁니다. 파동의 벽을 다시 세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요!”

그 말에 오토가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그, 그럼 아틸라 님은 물속에서도 제대로 싸울 수 있고, 호흡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요!”

파아앙!

아틸라의 무휼이 나이아드의 몸을 베었다.

나이아드의 몸은 이프리트와 다를 게 없다.

아니, 모든 정령왕들의 몸이 마찬가지다.

그들의 몸은 정해진 형태를 갖고 있지 않고, 베어낸다 해서 인간처럼 불구가 되는 일은 없다.

아틸라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 물정령의 반지 ]

[ 수(水)속성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

도롱뇽의 저항 오러도 켰다.

[ 물 저항의 오러 ]

[ 물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

마지막으로 방어 태세.

[ 모든 마법과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10% 증가합니다. ]

이로써 달성한 물 마법 저항력은 50퍼센트.

‘물론 나이아드의 관통력이 상당 부분을 상쇄하겠지만.’

그리고 방어 태세의 또 다른 효과인.

[ 보조무기 숙련도가 20% 증가합니다. ]

아틸라는 왼손에 쥔 무휼을 주무기처럼 썼다.

[ 대마법병기 ]

무휼의 힘, 대마법병기는 나이아드에게 통했다.

‘최대한 빨리 타격하고, 축성의 인장을 활용해야 한다.’

[ 성검, 무휼의 공격이 적중했습니다. ]

[ 축성의 인장이 발동합니다. ]

아틸라가 무휼을 휘두를 때마다, 나이아드의 몸을 잠식하던 어둠의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아틸라는 뒤를 돌아봤다.

신전 안으로 진입한 오염된 물정령과 물고기들.

놈들은 감히 나이아드 근처로는 다가오지 못한 채 라쿠나가 시전한 파동의 벽을 타격하고 있었다.

게다가 괴물들은 오는 길에 만났던 녀석들보다 더욱 강했다.

‘놈들이 이쪽으로 오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이대로라면 동료들이 위험해진다.

“바토리!”

아틸라가 크게 외쳤다.

그 순간 신전으로 밀려들던 호숫물이 아틸라를 덮쳤다.

아틸라는 더 이상 육성으로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아틸라는 바토리를 바라봤다.

바토리도 아틸라를 바라봤다.

잠시 후 바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들에게 말했다.

“호수 위로 올라가자꾸나.”

그 말에 오토와 카스피가 버럭 화를 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맞아 바토리! 아틸라만 두고 갈 수는 없어!”

“아틸라의 명령을 어길 셈이더냐.”

바토리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아틸라는 우리가 먼저 호수 밖으로 나가길 원하고 있다. 그래야 아틸라도 마음 편히 나이아드를 뿌리치고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 하지만!”

“걱정 말거라. 아틸라는 반드시 돌아올 거다.”

바토리가 입가를 올렸다.

“내가 그리 되도록 할 테니까.”

“그게 무슨……!”

바토리의 눈이 라쿠나를 바라봤다.

이어 바토리의 왼팔에서 강대한 마력이 솟았다.

“빠르게 봉합하거라. 라쿠나.”

파카아앙!

바토리의 손에서 뿜어진 마법이 파동의 벽을 뚫었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근처에 있던 괴물들이 박살이 나며 흩어졌다.

그 사이로 바토리가 뛰쳐나갔다.

도롱뇽의 덜미를 움켜쥔 채로.

“나, 나는 왜 또!”

바토리와 도롱뇽이 나가자마자 라쿠나는 파동의 벽을 봉합했다.

호숫물은 한 방울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바토리가 발현한 관통의 마법이 근처의 물마저 사방으로 흩트렸기 때문이었다.

“바, 바토리! 도롱뇽! 아틸라아아아!”

카스피가 벽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오토가 그런 카스피를 만류했다.

“우, 우리가 가 봐야 방해만 될 거요! 바토리 아가씨와 저 요망한 도마뱀이 갔으니 반드시 돌아올 거요! 내, 내가 약속하겠소!”

“영주 나리가 뭔데 약속을 하고 말고야!”

그러나 카스피도 오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괴물 같은 능력을 지닌 아틸라.

반신의 경지에 다다랐던 마법사 바토리.

지금은 힘을 잃었지만 최강의 드래곤이라 불렸던 도롱뇽.

저들은 이 깊은 대호수의 밑바닥에서도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들은 달라.’

자신과 오토, 라쿠나, 그리고 펀치는 저들처럼 규격 외의 힘을 지닌 존재가 아니다.

인간과 짐승은 숨을 쉬어야 하고.

숨 쉬지 못하면 불과 몇 분 만에 신체 기능은 정지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나선다면, 아틸라와 바토리에겐 방해만 될 것이다.

“올라가자. 라쿠나.”

라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갔다.

* * *

한편 아틸라는.

‘저런 미친 할망구가!’

바토리를 보며 크게 당황해 있었다.

‘내가 다 같이 올라가라니까!’

물론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그저 눈빛으로 말했고, 바토리가 그것을 읽어 주길 바랐을 뿐.

그런데 바토리는 파동의 벽을 부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나머지 동료들은 탈출을 시작했다는 것인데.

‘안 돼. 바토리는 이전의 반신이 아니다. 물속에서 오래는 버틸 수 없어.’

바토리는 왼팔의 마력을 드러낸 상태였다.

마멸의 칼날이 파동의 벽을 습격하는 괴물들을 베었다.

그 와중에 아틸라는 자신의 몸에 보호막이 둘러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바토리의 몸엔 보호막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은 아끼지 않고, 아틸라에 이어 파동의 구형(球形) 위에 보호막을 씌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미친 할망구.

‘서둘러야 한다.’

아틸라는 상태창을 봤다.

나가라자 탁샤카를 쓰러뜨리고 받은 보상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 무호흡 ]

[ 호흡을 하지 않고 최대 15분 동안 생존할 수 있습니다. ]

[ 무호흡의 지속 시간은 시전자의 활동량, 심박수, 정신력 등의 조건에 따라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

아틸라가 나이아드에게 무턱대고 질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나이아드는 대호수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고, 고작 15분 정도의 무호흡으로는 아틸라 역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고, 아틸라는 그렇게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발생했다.

바토리였다.

아틸라는 물정령의 반지를 사용했다.

[ 사용 시, 일정 시간 착용자가 받는 수(水)저항이 크게 감소합니다. ]

효과는 놀라웠다.

아틸라는 공기 중에서 움직일 때와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무기를 휘두를 수 있었다.

‘일단은 빠르게 성력을 모은다.’

하지만 나이아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강력한 관통력을 바탕으로 아틸라에게 공격 세례를 퍼부었고, 때때로 아틸라를 크게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때마다 바토리가 나이아드를 견제했다.

아틸라는 바토리의 지원 사격을 믿고 무휼의 성력을 모으는 것에 더욱 집중했다.

효과는 있었다.

[ 축성의 인장 발동 효과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좋아!’

파지지짓……!

무휼의 검신이 길게 변화했다.

아틸라는 빠르게 물속을 헤엄치며 나이아드의 오염 부위를 도려냈다.

바토리가 그것을 도왔다.

- 아아아아아아아아!

오염 부위가 모두 제거된 나이아드가 비명을 질렀다.

[ 나이아드 제압에 성공했습니다. ]

[ 대호수에서 탈출하십시오. ]

나이아드는 혼절한 것처럼 바닥에 가라앉았다.

몸의 절반 이상이 절단된 상태지만 순식간에 복구할 것이다.

아틸라는 뒤를 돌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바토리가 보였다.

미소하는 그녀의 입술 사이로 기포가 솟아올랐다.

‘아틸라.’

그녀의 눈은 그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틸라는 서둘러 바토리에게 헤엄쳤다.

물정령의 반지 덕분에 아틸라의 유영 속도는 물고기처럼 빨랐다.

‘빌어먹을.’

바토리에겐 여전히 보호막이 씌워져 있지 않았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몸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나 있었다.

주변은 괴물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호수 밑바닥에서, 바토리는 몸을 아끼지 않고 동료들을 도왔다.

아틸라가 바토리의 몸을 안아들었다.

신전의 출입문을 나섰다.

그때였다.

부르르륵……!

바토리의 입에서 위험할 정도로 많은 기포가 솟아올랐다.

바토리의 눈이 부옇게 흐려졌다.

이어 죽은 화초처럼 늘어졌다.

아틸라는 바토리의 호흡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틸라의 입술이 바토리의 입술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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