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12화 (212/425)

212. 물의 정령왕 (2)

“오. 이게 물정령의 반지구나.”

카스피가 반지를 조물거리며 말했다.

“아틸라. 이 반지가 있으면 뭐가 좋은데?”

“물속에서 적과 싸울 수 있다.”

“응?”

아틸라는 피식 웃으며 카스피의 손에서 물정령의 반지를 낚아챘다.

상태창을 살폈다.

[ 물정령의 반지 ]

[ 수(水)속성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

물 속성에 마법에 대한 저항력 20퍼센트 상승.

여기에 도롱뇽의 저항 오러와.

[ 물 저항의 오러 ]

[ 물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

방어 태세로 증가하는 마법 저항을 합치면.

[ 모든 마법과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10% 증가합니다. ]

무려 50퍼센트에 달하는 물 마법 저항력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아드는 상당한 마법 관통력을 지니고 있지.’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이아드와 싸우지 않고 ‘나이아드의 눈물’을 받아 내는 거다.

나이아드의 성격은 이프리트와 달리 온화한 편.

운이 좋다면 평화로운 방법으로 ‘나이아드의 눈물’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한 대비는 해 둬야겠지.’

그래서 아틸라는 쿨리에게 물정령의 반지를 요구했고, 받아 내는 것에 성공했다.

게다가 물정령의 반지의 착용 효과는 저항력이 전부가 아니다.

[ 사용 시, 일정 시간 착용자가 받는 수(水)저항이 크게 감소합니다. ]

수(水)저항.

수속성, 혹은 물 속성 마법 저항력과는 다른 의미다.

쉽게 말하자면.

깊은 수영장이나 바다 속에 들어가 몸을 움직이려 하면, 물 밖에서보다 수월하지 않다.

이것은 물이 지닌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는 힘’ 때문인데.

물정령의 반지는 저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는 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에게서 얻어 냈던 ‘이프리트의 숫돌’에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 이프리트의 숫돌 ]

[ 날붙이에 사용하면 일정 시간 절삭력이 상승합니다. ]

[ 공기 저항이 감소합니다. ]

아틸라는 저 공기 저항 감소로 많은 이득을 봤다.

공기에도 저항하는 힘은 존재하고, 그것을 줄인 결과 놀라울 정도의 공격 속도 상승을 체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수저항력은 공기 저항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물 밀도가 공기 밀도보다 크게 높기 때문이지.’

물 밀도는 공기 밀도의 800배.

공기 저항은 수저항의 2퍼센트 내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틸라처럼 몸을 움직여 적을 타격하는 전사의 경우, 물속에서는 제대로 된 타격을 가할 수 없다.

물론 스킬의 경우는 다르다.

아틸라는 오래전 크라켄과 싸울 때, 돌진 스킬이 수저항을 무시한다는 걸 발견했었다.

‘하지만 다른 스킬들도 모두 수저항을 무시한다는 보장은 없지.’

어찌 됐든 아틸라는 물정령의 반지를 손에 넣었다.

이 반지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생각이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틸라?”

대답 없는 아틸라를 보며 카스피는 고개를 갸웃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라일이었다.

아틸라가 씩 입가를 올렸다.

“올 줄 알았다. 라일.”

“알고 있을 줄 알았다. 아틸라.”

그렇게 말하며 라일이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거 같아 챙겨왔지. 전 적마탑주께서는 술 수집이 취미셨던 것 같더군.”

“클레르 플라마는 어떻게 됐지?”

“얼마 전 임종하셨다.”

클레르 플라마는 리샤르 세바스찬과의 싸움에서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해 마력 역류를 겪었다.

그녀의 사망은 정해진 운명이었다.

“그랬군. 조의를 표하지.”

“고맙군. 아틸라.”

일행에게 한 바퀴 술잔이 돌아간 뒤, 라일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앙 마탑이 4대 마탑주를 소환한 이유는 검은 기사들 때문이다.”

“검은 기사?”

“그래. 검은 기사 무리가 센트럴 왕국에 나타났다는 것 같더군.”

센트럴 왕국은 중앙 마탑이 세워진 왕국이다.

“검붉은 갑주에 붉은 머리칼을 지닌 자도 목격됐다고 한다.”

아틸라의 눈빛이 변했다.

“버서커 카르타고.”

“그럴 가능성이 있지.”

라일이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만약 그자가 정말로 버서커 카르타고라면, 대륙은 다시없을 거대한 위험을 마주하게 될 거다. 카르타고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생각한다면 중간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군.”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이라면.”

“카르타고는 군대를 모으고 있다.”

방안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바토리가 입을 열었다.

“카르타고는 무리를 구성하는 것에 익숙한 사내다. 그가 마음먹고 군대를 모은다면 그 힘은 실로 대단할 테지.”

“그 말대로.”

라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다. 자세한 건 중앙 마탑에 입장한 뒤에나 알 수 있겠지.”

“내게 이걸 알려 준 이유는?”

아틸라의 물음에 라일이 피식 입가를 올렸다.

“옛 동료에 대한 예우라 생각하면 어떻겠나.”

“말도 안 되는 소린 집어치워.”

라일이 웃었다.

그러고는 표정을 바꿨다.

“만일 녀석이 정말로 카르타고라면 아틸라,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글쎄.”

아틸라는 허리춤에서 드라칼리온을 뽑았다.

“하지만 놈이 내 앞을 가로막으려 든다면.”

콰앙!

드라칼리온의 날이 탁자에 박혔다.

“쓰러뜨려 줘야지.”

아틸라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며 라일이 술잔을 비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원하던 대답이었다. 아틸라.”

라일은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갔다.

* * *

날이 밝자마자 아틸라는 대호수로 출발했다.

이전에 벌어졌던 일 때문인지 라쿠나는 한껏 진중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진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호수면이 갈라졌다.

일행은 청색 벽돌의 다리를 건넜다.

“앗! 저건!”

그 와중에 오토는 좌우를 드리운 호수의 벽 안에서 맛있는 물고기를 발견했다며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러다간 호수의 벽이 무너져 익사의 우려가 있다는 라쿠나의 말(거짓말)에 혼비백산해 그만두었다.

“쯔쯔. 저래갖고 왕이라고.”

아틸라가 혀를 찼다.

라쿠나는 그런 아틸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검은 늑대의 아틸라.’

라쿠나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아틸라를 조금 더 어려워했다.

그녀는 적마탑주 라일에게 아틸라에 관한 것을 들었다.

그리고 라일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아틸라의 무용담은 가히 신화적인 것이었다.

‘남부의 패왕 샤를 아인하르트를 두 번이나 물리치고, 수해의 트롤과 칼날 산맥의 괴수들을 잡고, 상급 마귀 크라켄, 게다가 만티코어까지 쓰러뜨렸다고?’

보통의 전사라면 평생 동안 저 중 한 가지 업적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아틸라는 저 대단한 업적을 모두 이뤘다.

그뿐만이 아니다.

적마탑주 라일은 이렇게도 말했다.

이 자리에서 모두 밝히진 못하지만, 아틸라에겐 저것을 뛰어넘는 위대한 업적들이 더 있다고.

‘정녕 인간인가.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라쿠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처음으로 그녀는 마법사가 아닌 인간에게 동경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틸라를 보던 라쿠나의 시선이 바토리에게 돌아갔다.

라쿠나는 라일에게 바토리에 대한 것을 물었었다.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마법사.’

비록 그 드래곤이 온전한 힘을 지닌 상태가 아니었고.

또 아틸라가 바토리의 방패 역할을 했다 해도.

라쿠나는 그런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바토리에 대한 것을 알고 싶다고?’

라쿠나의 물음에 대한 라일의 답은 놀라웠다.

라일은 적마탑주인 자신보다, 바토리가 더욱 뛰어난 마법사라고 말했다.

‘바토리는 규격 외의 존재. 내가 아무리 적마탑주라 해도 바토리를 이길 순 없다.’

라쿠나는 그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4대 마탑주.

그들은 마법사의 정점에 다다른 무시무시한 강자들이다.

라일은 이렇게 덧붙였다.

‘바토리는 크리엘도라 대륙에 현존하는 그 어떤 마법사보다 강하다. 아니, 반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조차 바토리를 꺾을 수 있다 자신하지 못할 테지.’

충격적인 말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보통의 마법사는 아니라 생각했지만.

‘반신과 대등한 실력자라니.’

그렇다고 적마탑주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보기도 어려웠다.

‘적마탑주 라일 플라마는 전임자인 클레르 플라마를 뛰어넘는 실력자라 들었다. 그런 그가 굳이 허언을 할 리 없지.’

그래서.

라쿠나는 마을 여관에 들렀을 때 바토리의 방을 찾았다.

“찾아올 줄 알았느니라.”

바토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방 안엔 바토리 혼자였다.

아틸라, 오토, 카스피는 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울 기세였으니까.

“그래서 먼저 방에 올라와 있던 겁니까.”

“그렇단다.”

바토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의 별하늘을 보고 있었다.

바토리가 라쿠나를 돌아봤다.

“얼굴에 근심이 묻어 있구나.”

“적마탑주께 들었습니다. 당신은 적마탑주를 능가하는, 반신의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라고.”

“흐응. 라일이 그런 소릴 했더냐.”

바토리는 웃었다.

“반신의 경지라. 그래.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지.”

“지금은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렇단다. 난 이제 예전만큼의 힘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라쿠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힘을 잃은 마법사.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같은 마법사인 라쿠나는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표정 하지 말거라. 난 조금도 슬프지 않으니.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행복하단다.”

라쿠나의 표정이 다시 바뀌었다.

마법은 연구하는 자로서, 힘을 잃었음에도 행복감을 느낀다니.

라쿠나는 바토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라쿠나를 보며 바토리가 웃었다.

“생각보다 표정이 많은 아이로구나.”

“……아이라니. 나이는 내 쪽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만.”

“올해 몇 살이더냐.”

“스물일곱.”

“그래. 계산법을 달리하면, 나보다 연장자라 할 수도 있겠구나.”

라쿠나의 표정은 이제 약간 인상을 찌푸리는 것으로 변했다.

바토리의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해지고 싶은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넌 이미 충분히 강한 마법사가 아니더냐.”

라쿠나는 청마탑 서열 4위의 마법사.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성취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더욱 강해지길 원합니다.”

라쿠나는 며칠 전, 대호수에서 죽을 뻔했다.

상대가 드래곤이긴 했지만, 라쿠나는 마법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청마탑으로 돌아와 들은 소식은.

중앙 마탑이 4대 마탑주들을 소환해야 할 정도로 대륙에 불길한 기운이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

라쿠나는 이 세계를 사랑했다.

이 세계의 자연과, 지성 종족들과, 마법을 사랑했다.

그래서 강해지고 싶었다.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바토리는 라쿠나의 표정에서 그것을 읽었다.

“좋다. 너의 마법 세계를 한번 들여다보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라쿠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이틀 후, 일행은 대호수에 근접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라쿠나가 바토리를 찾아갔다가 영문 모를 잠에 빠져든 이후, 심장에서 작은 이물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말고는.

그러나 대호수에 도착하자마자 라쿠나는 아주 큰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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