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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09화 (209/425)

209. 청색 마탑의 마법사 (2)

라쿠나는 눈을 부릅떴다.

검고 끈적끈적한 액체.

그것이 한 남자를 보자기처럼 휘어 감고 있었다.

“끄어어어어…….”

남자의 입에서 피거품이 흘렀다.

액체 속에서 괴물의 머리가 튀어나와 남자를 삼키려 했다.

그 순간 라쿠나의 손에서 마법이 쏘아졌다.

파릇한 예기를 발하는 물의 창날.

그것이 괴물의 머리를 꿰뚫었다.

“끄어어! 끄어! 끄어어억……!”

바닥에 떨어진 남자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이미 온몸의 뼈가 가루가 된 것처럼 흐물흐물했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

“저런 괴물이 어디서……!”

검은 액체의 괴물이 타깃을 바꿔 라쿠나에게 달려왔다.

아니, 달린다는 말엔 어폐가 있었다.

괴물은 정해진 형태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철퍼덕! 철퍽! 철퍼더더덕!

제 몸을 마구 지면에 부딪으며 괴물이 다가왔다.

라쿠나는 다시금 마법을 영창했다.

퍼퍼퍼펑!

라쿠나가 쏘아 낸 물의 구슬들이 괴물의 몸을 벌집처럼 관통했다.

괴물이 몸을 비틀며 뒤로 물러났다.

라쿠나는 상대가 도주할 틈을 주지 않았다.

콰르르르륵!

라쿠나의 양손에서 물의 장막이 펼쳐졌다.

그것이 괴물을 둘둘 감쌌다.

검은 액체의 괴물은 온몸을 뒤틀며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구르륵. 구륵…….

라쿠나의 마법에 완전히 포획당한 괴물이 지면에 떨어졌다.

괴물의 머리가 튀어나오고, 입이 열리며 무언갈 토해 냈다.

구웩. 구웨에엑.

토사물을 확인한 라쿠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인간의 시체.

그것도 온몸의 뼈가 부서져 연체동물처럼 변한 사체들이었다.

‘저 남자가 첫 번째 먹잇감이 아니었군.’

라쿠나는 괴물과 시체들을 분리했다.

그러고는 더욱 마력을 집중해 괴물을 압박했다.

괴물의 덩치가 점점 왜소해졌다.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이윽고 괴물의 검은 기운이 흩어지며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린아이를 닮은 얼굴.

벌거벗은 상체와 물고기를 닮은 하체.

“운디네?”

운디네(Undine).

수오미 왕국의 강과 호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급 정령.

물론 일반인의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고도로 훈련된 마법사나, 혹은 빼어난 감각을 지닌 특별한 자만이 정령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눈앞의 운디네는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형태를 드러낸 상태였다.

키에에엑!

운디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라쿠나를 위협했다.

라쿠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운디네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럽긴 해도, 포악한 정령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라쿠나는 운디네와 대화를 시도했다.

라쿠나 정도의 물 속성 마법사는 정령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되지 않았다.

운디네는 사냥꾼에게 사로잡힌 야생 짐승처럼 위협만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라쿠나의 입술이 강력한 물 속성 주문을 읊었다.

그러자 운디네를 포획했던 물의 장막이 축소를 거듭했다.

자그만 공 크기로 줄었다.

키에엑! 키엑!

그 안에서 운디네가 비명을 질렀다.

라쿠나는 처음의 남자와, 운디네가 뱉어 낸 시체들을 다시 한번 살폈다.

‘살아 있는 자는 없다.’

라쿠나는 포획한 운디네를 가방에 넣은 뒤 황급히 말에 올랐다.

‘탑주님이라면 운디네의 이상 상태를 정확히 감지하실 수 있을 터.’

라쿠나는 말을 달렸다.

서둘러야 한다.

운디네는 수오미 왕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정령.

‘괴물로 변한 개체가 이것 하나뿐일 리 없다.’

들풀이 사각대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말이 짓밟으며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불길한 기운을 느낀 라쿠나가 뒤를 돌아봤다.

퍼걱!

시커먼 무언가가 말을 타격했다.

충격은 엄청났다.

라쿠나의 몸이 공중으로 솟았다.

그러면서 라쿠나는 말의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것을 봤다.

맹금류를 닮은 발톱.

라쿠나의 입에서 주문이 영창됐다.

그러나 그것을 기다리지 않고 상대가 돌진해 왔다.

아니, 날아왔다.

파캉!

라쿠나가 강력한 공격 마법을 펼쳐 낸 것과, 맹금류의 발톱이 그것을 가로막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라쿠나의 몸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등에서 강력한 충격을 느끼며 핏물을 토했다.

“커헉……! 컥……! 크흑……!”

라쿠나는 하늘을 가르며 펼쳐지는 광활한 두 날개를 봤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라쿠나는 그것이 드래곤의 날개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드래곤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푸른 눈이 라쿠나를 노려봤다.

라쿠나는 주문을 읊으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법사는 육체 능력이 부족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펄럭!

드래곤의 날개가 기울어졌다.

라쿠나를 향해 수직 낙하했다.

드래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죽음을 직감한 라쿠나의 눈이 드래곤의 아가리 속에서 무언갈 발견했다.

‘저것은!’

콰드드드득!

그 순간 측면에서 쇄도한 시커먼 그림자가 드래곤의 얼굴에 검을 꽂았다.

부서진 검은 갑옷을 입은 전사.

그의 칼질에 드래곤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틀었다.

드래곤의 입에서 브레스가 쏘아졌다.

키랴랴랴랴랴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전사의 몸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라쿠나는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전사가 지면에 강한 충격을 일으키며 뛰어오르는 광경을 봤다.

드래곤도 전사를 쫓아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바토리!”

전사가 소리쳤다.

이어 들풀 너머 어딘가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라쿠나는 그것이 주문을 영창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퍼어어엉!

전사가 드래곤의 척추에 무자비하게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충격파가 일었지만 라쿠나 앞에 생성된 강력한 마력장이 그것을 막았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이 충격파를 가로막아 준 것이다.

그그그그그그……!

드래곤이 추락했다.

이대로라면 드래곤은 라쿠나를 벌레처럼 짓이길 것이다.

그러나 라쿠나는 오늘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붉은 기운을 방출하는 가죽옷의 여자가 놀라운 속도로 달려와 라쿠나를 낚아챘다.

“휴. 아슬아슬했네.”

직전까지 라쿠나가 누워 있던 자리에 드래곤이 처박혔다.

검은 갑옷의 전사가 드래곤의 목에 검을 꽂았다.

키랴랴랴랴랴!

드래곤이 전사를 향해 다시 한번 브레스를 뿜었다.

전사는 방패를 들어 막았다.

하지만 브레스의 가공할 위력에 엄청난 기세로 튕겨 바닥을 굴렀다.

몸을 일으킨 드래곤이 전사를 습격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날아든 마력의 창날이 드래곤의 날개를 관통했다.

분노한 드래곤은 재차 브레스를 뿜으려 했다.

하지만 아가리를 벌리기 무섭게 또 다른 마력 창날이 목구멍에 박혔다.

크르륵! 크륵! 캬르르르륵!

드래곤이 괴로운 듯 목을 비틀었다.

드래곤의 푸른 눈동자가 주위를 둘러봤다.

짐승처럼 뛰어오른 전사가 다시 한번 놈의 얼굴에 검을 꽂았다.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 이렇게 찔러도 팔팔한 거냐.”

드래곤의 앞발이 전사를 타격했다.

그와 동시에 뒷발의 힘을 이용해 공중으로 솟았다.

부웅!

직전까지 드래곤이 있던 자리 위로 마력의 창날이 지나갔다.

바닥을 구르던 전사가 몸을 일으켰을 땐, 드래곤은 이미 하늘 높은 곳까지 이동한 뒤였다.

그러나 전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하늘을 향해 도약했다.

“도롱뇽!”

그 순간 라쿠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봤다.

뛰어오른 전사의 발밑으로 광활한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진 것이다.

드래곤의 날개였다.

‘또 드래곤이라고……!’

평생 동안 한 번 보기도 힘든 드래곤이 두 마리나 나타났다.

라쿠나는 이것이 지독한 악몽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다.

그래서 그녀는 검은 드래곤의 등에 올라탄 전사가, 도주하는 드래곤을 추격하는 광경을 볼 수 없었다.

* * *

타닥타닥, 모닥불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라쿠나는 눈을 떴다.

“엇. 깨어났다. 깨어났어 아틸라!”

호들갑스러운 목소리.

라쿠나는 눈꺼풀을 깜빡이며 눈의 초점을 잡았다.

그리고 라쿠나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앞의 여자가 드래곤의 추락으로부터 자신을 구해 준 그녀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꿈이 아니었어……?’

라쿠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가죽옷의 여자가 그것을 도왔다.

“크흑……!”

찌르는 듯한 통증이 라쿠나의 전신을 습격했다.

하지만 간신히 참아 낼 정도는 되었고, 라쿠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타오르는 모닥불.

노릇노릇 익어 가는 물고기들.

고귀한 신분으로 보이는 강철 갑주의 기사.

붉은 로브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

자그만 새끼곰.

그리고.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군.”

부서진 검은 갑옷의 전사.

“당신은…….”

“정신 차렸으면 허기부터 채워라. 어이 카스피.”

“응 아틸라.”

전사의 말에 가죽옷의 여자가 잘 익은 물고기 한 마리를 건넸다.

그것을 보자마자 라쿠나는 허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우걱우걱 물고기를 씹어 먹었다.

“호오. 생각보다 식욕이 왕성하군.”

전사가 피식 웃으며 술병을 들이켰다.

전사 옆에 앉은 붉은 옷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치유라 할 수는 없지만, 통증은 다소 완화시켜 두었단다. 청마탑으로 돌아가는 데 큰 불편은 없을 것이야.”

그 말에 라쿠나의 눈빛이 변했다.

“내가 청색 마탑의 마법사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드래곤을 향해 제법 강력한 물 속성 마법을 시전하지 않았더냐. 그 정도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자라면 청마탑의 마법사 외엔 생각할 수 없지.”

“드래곤에게 마력 창날을 날렸던 마법사가 당신인가.”

“그렇단다.”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커다란 짐 가방 안에서 무언갈 꺼냈다.

라쿠나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운디네!”

그랬다.

여자의 손에 들린 건 운디네.

게다가 자신이 보았던 것처럼 무언가에 오염된 운디네였다.

운디네는 붉은 옷의 여자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마력구 안에 잠들어 있었다.

라쿠나는 서둘러 자신의 가방 안을 살폈다.

그 안엔 자신이 포획한 운디네가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었다.

“시끄럽게 굴길래 재워 놓았느니라.”

라쿠나는 놀라움 반, 의심 반의 눈으로 일행을 돌아봤다.

강철 갑주의 기사가 다가와 라쿠나에게 물통을 내밀었다.

라쿠나는 꿀꺽꿀꺽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지?”

대답은 강철 갑주의 남자가 했다.

“내 이름은 오토마이어 나바라. 나바라 왕국의 왕이오.”

라쿠나는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남자는 분명, 자신이 나바라 왕국의 왕이라 말했다.

“이쪽은 내 동료인 아틸라, 바토리, 그리고 카스피요. 우리 넷은 어떤 목적이 있어 수오미 왕국에 왔지. 그러던 중 대호수에서 사악한 힘에 오염된 물정령들을 발견해 제압했고, 이후 드래곤에게 습격당하는 그대를 보게 된 거요.”

라쿠나는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정리해 보려 했다.

남자, 아니 오토마이어 왕이 물었다.

“어쩌다 드래곤에게 습격당하게 된 거요.”

그 순간 라쿠나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자신을 향해 한껏 벌어졌던 드래곤의 아가리.

그 속에서 라쿠나는 무언갈 발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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