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06화 (206/425)

206. 환술 속의 환술 (1)

아틸라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키릴을 봤다.

그 위를 날아오는 드래곤을 봤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아틸라는 피를 갈구했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육체가 파괴될 때마다 쾌감 비슷한 흥분을 느꼈다.

‘아틸라!’

키릴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온다.

아틸라는 키릴을 향해 드라칼리온을 뻗었다.

키릴의 방패가 그것을 막았다.

백색의 신력을 발하는 성스러운 방패.

아틸라는 오른손에 힘을 주어 방패를 밀쳐 냈다.

- 야만 미무우울!

드래곤의 앞발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것이 아틸라의 왼손을 가격했고, 무휼이 튕겨져 날아갔다.

아틸라는 드래곤의 발목을 쥐었다.

힘껏 아래로 휘둘렀다.

“크아아아아아!”

쿠웅! 드래곤이 지면에 꽂혔다.

아틸라는 드래곤의 배 위로 올라가 드라칼리온을 내리쳤다.

그것을 키릴의 방패가 막았다.

그러나 아틸라의 괴력은 대단했고, 키릴은 그 힘을 버틸 수 없었다.

“크흑……!”

그런 키릴을 펀치가 도왔다.

펀치는 몸통 박치기로 아틸라의 등을 밀쳤다.

아틸라의 몸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그의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 도롱뇽아.

- 아틸라 또 저렇게 됐어.

-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틸라는 그 목소리를 기억했다.

이전에 카르타고를 상대했을 때도 들었던.

펀치의 목소리.

“히익! 아틸라 님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오토가 아틸라에게 달려왔지만 키릴과 펀치가 막았다.

오토는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한 아틸라를 본 적이 없다.

“악! 다시 작아졌다!”

도롱뇽의 해방 지속시간이 끝났다.

펀치의 거대화도 종료됐다.

남은 건 키릴.

그리고 오토뿐이다.

“빌어먹을!”

오토가 아틸라를 향해 달렸다.

키릴이 그 옆을 나란히 달렸다.

오토의 강철검과 키릴의 방패가 아틸라를 공격했다.

두 번의 격렬한 충격이 있었고, 바닥을 뒹구는 건 오토와 키릴이었다.

아틸라가 짐승의 울음을 내뱉었다.

그는 작아진 드라칼리온을 바닥에 내던졌다.

맨손으로 오토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냥감의 숨통을 끊기 위해 질주하는 맹수 같았다.

아틸라가 주먹을 뻗었다.

그것이 오토의 얼굴에 꽂혔다.

“히이익!”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틸라의 주먹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아틸라는 손에서 느껴지지 않는 타격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새 주위 풍경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공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말의 정신을 회복한 것이더냐.”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마가 드러난 검은 생머리.

같은 색의 눈동자.

눈처럼 새하얀 얼굴.

오뚝하게 솟은 코.

그리고.

핏물이 연상되는 붉은 입술.

“넌 누구이더냐.”

여자가 물었다.

이상한 일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질문을 여자 쪽에서 하고 있었으니까.

“난 너에게 대악마 아몬의 환술을 걸었다. 한데 환술에 걸린 건 너뿐만이 아니로구나.”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시 묻겠다. 넌 누구이더냐. 누구이길래 날 네 환술의 세계로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이냐.”

여자의 목소리를 흘려 넘기며 고개를 내렸다.

펼쳐진 두 손.

아무것도 쥐여 있지 않은 두 손.

원래는 무언가 손안에 쥐여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입술을 연 순간 발소리가 들렸다.

한두 명이 내는 소리가 아니다.

차분하게 걷는 소리.

다급히 달리는 소리.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고개를 들었다.

풍경은 대도시 한복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서울?”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모르게 내뱉긴 했지만, 서울이 뜻하는 게 무언지는 몰랐다.

하늘을 뚫을 듯이 솟아오른 네모진 건물들.

빵빵 경적을 울리며 이동하는 자동차들.

바삐 움직이는 행인들.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타인의 시선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그들 사이에.

조금 전의 여자가 서 있었다.

“너는.”

여자는 홀로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붉은색 로브.

부드러운 윤이 흐르는 긴 망토.

그리고.

스스스스슷…….

여자의 예스러운 복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붉은색 로브가 같은 색의 현대적인 코트로 변했다.

코트 아래 드러난 짧은 치마.

길고 곧은 종아리.

밤색 구두.

허리까지 늘어진 하얀 머플러.

눈이 내렸다.

겨울이었다.

“이것이 네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풍경이더냐.”

여자의 입술 사이로 뽀얀 입깁이 퍼져 나왔다.

“김도현.”

그제서야 김도현은 기억했다.

자신의 이름이 김도현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다시 풍경이 변했다.

흰 가운을 입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끝도 보이지 않는 긴 복도.

병원이다.

눈앞에 생성된 하얀 문을 열었다.

덜컥.

반쯤 열린 창.

흩날리는 커튼.

덩그러니 놓인 침대.

누워있는 어머니.

“어머니.”

대답은 없다.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깨어 있는 시간이 드물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한 걸음 다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스륵.

신기루처럼 어머니가 사라졌다.

풍경은 또다시 변했고.

낯익은 소리가 귀를 울렸다.

고양이가 보인다.

야옹.

발치로 다가온 고양이가 고로롱고로롱 소리를 냈다.

무릎을 구부려 고양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촉.

‘아니.’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모르겠어.”

고양이는 점차 작아졌다.

이윽고 처음 만났던 날처럼 작아져, 어느 자동차 밑에서 울고 있다.

자동차 아래로 손을 넣어 고양이를 꺼냈다.

이것이.

고양이와의 첫 만남.

스르륵.

손안에서 고양이가 사라졌다.

풍경은 시시각각 변했고, 과거로 돌아갔다.

눈높이가 낮아진다.

손도, 발도 작아진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인다.

‘…….’

아버지의 눈은 언제나처럼 먼 곳을 향해 있다.

그러나 소리 내 부르면 다정한 눈으로 돌아봐주곤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는 대상을 함께 바라봤다.

그 여자였다.

붉은 코트에 흰 머플러를 두른.

여자의 눈은 직전까지와 달랐다.

심연을 떠올리게 하던 깊고 검은 눈은 누군가 그 안에 자갈을 던진 것처럼 파문을 그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바토리.”

그 순간 여자의 옷이 찢겨 날아갔다.

이어 화려한 드레스가 여자의 몸을 감쌌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재질로 만들어진 옷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발광했고, 미려한 장식이 달려 있었다.

여자는 조금 어려진 듯했다.

그러나 달라진 모습과 대비되듯 여자의 눈동자는 여전히 파문을 만들고 있었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술이 무어라 소리를 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 * *

아틸라는 눈을 떴다.

“저, 정신이 든 거요! 아틸라 님!”

눈물을 글썽이는 오토의 얼굴.

아틸라는 상체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바라키엘 신전 앞이었다.

“탁샤카는…….”

“기억나지 않는 것이더냐.”

바토리가 옆에 앉으며 말했다.

“탁샤카는 소멸했느니라. 덕분에 신전의 마기 또한 사라졌지.”

물끄러미 바토리를 바라보던 아틸라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혀를 헥헥대는 펀치와, 그 위에 앉은 도롱뇽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카스피와 키릴이 보이지 않는다.

“카스피는 탁샤카의 독에 당했다. 키릴이 말에 태워 하르티칸 대교회로 달리고 있지.”

“……독에?”

아틸라는 탁샤카와의 전투를 떠올렸다.

그러나 찌릿한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첨예한 통증.

마치 기억을 떠올리려는 걸 방해하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그곳에서 다른 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응급처치는 제대로 해 두었으니 별일은 일어나지 않을 게다. 우리도 얼른 일을 마무리하고 출발하자꾸나.”

“……일이라고?”

“그것마저 잊은 게냐. 우린 이곳에 오르피나의 두 번째 성물을 찾으러 오지 않았더냐.”

“아, 아틸라 님 혹시 머리를 다치신 거 아니요? 술을 항아리째 들이부어도 취하는 모습 한 번 안 보이던 양반이 대체 왜 이러는 거요?”

오토는 대답을 갈구하듯 바토리를 바라봤다.

“버서커의 힘을 발현한 후유증이니라.”

“버, 버서커?”

“이만한 후유증으로 끝난 게 다행이다. 더 늦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게야.”

아틸라는 몸을 일으켰다.

과연 후유증은 있었다.

언제나 활력이 가득하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아틸라는 다시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오르피나의 두 번째 성물을 얻기 위해서였다.

바토리와 오토가 그 뒤를 따랐다.

* * *

키릴과 카스피는 안전하게 하르티칸에 도착했다.

카스피는 바로 대교회로 옮겨져 대사제의 치유를 받았다.

“이거 놀랍군 키릴. 애초부터 독에 강한 내성을 지닌 육체에, 응급처치 또한 완벽하니 말일세.”

이튿날 아틸라, 바토리, 오토도 하르티칸에 도착했다.

바라키엘 신전을 정화해 왕국의 위협을 몰아낸 아틸라 일행에겐 호화로운 숙소가 마련돼 있었다.

“흐응. 제법 봐줄만 하구나.”

일행은 잠시 하르티칸에 머무르기로 했다.

카스피의 몸을 완전히 치유하기 위해서였고, 바토리와 오토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광폭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아틸라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휴식을 취하며 아틸라는 권능, 광폭을 발현한 이후의 일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구간도 있었지만, 대부분 검게 칠해진 먹물처럼 어둡기만 했다.

물론 아틸라는 키릴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탁샤카를 쓰러뜨렸는지 들었다.

또한 이후의 일도 바토리, 도롱뇽, 오토에게 들었다.

“나 정말 깜짝 놀랐소! 아틸라 님이 내 얼굴에 주먹을 꽂으려는 순간! 갑자기 눈알이 희번덕 돌아가더니 풀썩 쓰러지지 뭐요!”

오토는 쓰러진 아틸라를 업고 신전 밖을 나섰다.

아틸라는 약 한 시간 후 깨어났다.

“후…….”

아틸라는 굳이 기억나지 않는 일을 떠올리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아틸라는 탁자 위에 오르피나의 두 성물을 올려놨다.

하나는 키클롭스의 감옥에서 찾아낸 목걸이.

다른 하나는 며칠 전 바라키엘 신전에서 얻은 귀걸이였다.

‘목걸이와 귀걸이. 남은 건 팔찌와 반지인가.’

그 말대로.

오르피나의 네 성물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의 형태를 갖고 있다.

각각 떨어져 있을 땐 평범한 장신구 그 이상도 아니지만.

네 개가 한자리에 모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르피나의 성물을 모두 모으면.

“이제 두 개가 남은 것이로구나.”

바토리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지금 숙소엔 바토리와 아틸라, 그리고 펀치만이 있었다.

오토는 도롱뇽과 함께 카스피를 데리러 갔다.

카스피의 독은 말끔히 치유됐다.

끼아옹.

펀치가 아틸라의 발치로 다가왔다.

아틸라는 늘 하던 대로 펀치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지구에서의 김도현도 이런 식으로 고양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불현듯 아틸라의 손이 멈췄다.

‘…….’

아틸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 봤다.

바라키엘 신전에서.

고양이의 이마를 쓰다듬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틸라는 마주 앉은 바토리를 쳐다봤다.

“바라키엘 신전에서 환술로 내 정신에 침투했었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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