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01화 (201/425)

201. 전조 (1)

아틸라는 키릴, 카스피와 함께 나가라자 탁샤카를 보고 있었다.

탁샤카의 머리는 모두 일곱 개.

그중 중심에 있는 머리는 다른 머리보다 두 배는 컸고.

그 머리만 유일하게 금빛의 비늘 왕관을 쓰고 있었다.

“우두머리로군.”

아틸라는 크라켄의 촉수를 상대했던 일을 떠올렸다.

크라켄의 촉수는 여덟 개.

그중 두 개가 우두머리 촉수였다.

반면 나가라자 탁샤카는 우두머리가 하나, 졸개가 여섯.

단순히 숫자로만 따지면 탁샤카가 상대하기 수월해 보이지만.

‘탁샤카는 상급 악마다.’

상급 마귀 크라켄과 상급 악마 탁샤카.

두 마물 사이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아무리 탁샤카가 상급 악마 중에서 약체에 속하는 녀석이긴 해도.’

상급 마귀 크라켄은 웬만한 하급 악마는 씹어 먹을 수 있다.

중급 악마, 그중에서도 강한 개체들만이 크라켄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상급 악마는 다르다.

크라켄과 탁샤카가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크라켄은 결코 탁샤카를 이길 수 없다.’

“어떻게 싸울 생각이죠? 아틸라.”

키릴이 물어왔다.

그녀는 불안감을 느꼈다.

‘모든 동료들이 힘을 모아 싸워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바토리와 오토가 자리를 떠났다.

물론 키릴은 두 사람이 무슨 이유로 자리를 비웠는지 알고 있었다.

‘악마진을 붕괴시켜, 탁샤카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러나 그것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아틸라, 카스피, 그리고 자신이 탁샤카를 막아야 한다.

끼아옹!

키릴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펀치가 포효했다.

그러나 키릴은 펀치를 동료라기보다는 지켜야 할 대상으로 봤다.

키릴은 수년 전, 그러니까 자신이 키릴 오를로프였던 시절의 마을 강아지들을 떠올렸다.

강아지들은 마을 전체를 자신의 집으로 삼았다.

자유롭게 들판을 달리고, 배가 고프면 아무 주민이나 붙잡고 헥헥 혀를 내밀었다.

키릴에게도 자주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강아지가 있었다.

“내가 우두머리와 우측 세 마리를 상대한다. 키릴, 넌 좌측의 세 마리를 맡아라. 그리고 카스피.”

“응 아틸라.”

“넌 키릴이 맡은 머리들을 차례로 제거한다.”

“맡겨 달라고!”

카스피가 자신 있다는 듯 크게 외쳤다.

아틸라의 눈이 펀치를 돌아봤다.

“펀치. 키릴의 곁에 붙어 있어.”

그 말에 키릴이 놀라 말했다.

“아틸라. 펀치가 제 곁에 있으면 위험할 거예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길게 이야기할 틈은 없었다.

어느새 탁샤카는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치르르. 치르르르르…….

묘하게 날선 소음을 울리며 탁샤카가 뭍으로 올라왔다.

아틸라는 탁샤카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잠깐 대기하고 있어라.”

그렇게 말한 아틸라가 탁샤카를 향해 달렸다.

“무, 무슨……!”

키릴이 따라 달리려 했지만 카스피가 막았다.

“아틸라 말 못 들었어?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지만!”

그 순간 아틸라의 몸이 하늘 위로 솟았다.

[ 도약(跳躍) ]

‘저건……!’

키릴은 기억했다.

중급 악마 크로셀을 쫓는 과정에서 만났던 아틸라와의 첫 대결.

그때 키릴은 저 기술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나 높이 뛰어오른다고!’

키릴이 처음 도약 스킬을 봤을 때, 아틸라는 공중 최고점까지 올라가지 않았었다.

‘빠르게 타격을 가해야 했고, 또 위력을 반감시키기 위해서였지.’

아틸라는 도약 스킬이 더 높은 공중에서 낙하할수록 위력이 커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약간이지만 시간이 지체된다.

그래서 아틸라는 키릴과 네 명의 성기사를 상대할 때, 지면에서 도약하는 것과 동시에 타점을 특정했다.

그리고.

지금의 아틸라는.

[ 타점을 특정합니다. ]

공중 최고점에 오를 때까지 기다린 뒤 타점을 특정했다.

타점은 당연히.

“우두머리지.”

콰아아앙!

아틸라의 신형이 금빛 왕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가공할 충격파가 지면을 울렸다.

키릴은 날아드는 대지의 파편을 막기 위해 방패로 몸을 가려야 했다.

‘엄청난 위력이다!’

키릴은 놀랐다.

지난번과 같은 기술이지만, 위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난번의 아틸라가.

동료 성기사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술의 위력을 약화시켜 주었다는 걸.

“이제 가자고!”

카스피가 탁샤카를 향해 달렸다.

키릴도 달렸다.

끼아옹! 펀치가 키릴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 네놈. 인간.

세로로 쪼개진 탁샤카의 머리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고는 수복을 시작했다.

‘그래. 역시 둥지 속의 나가다, 이거냐.’

우두머리만이 아니다.

도약의 충격파로 너덜너덜해진 여섯 졸개들도 느릿느릿 수복을 시작했다.

‘우두머리 먼저 수복할 생각이군. 현명한 판단이다.’

아틸라는 그것을 그냥 보아 넘길 생각이 없었다.

우두머리를 향해 흑철검을 뻗었다.

날아드는 졸개들은 방패로 쳐냈다.

“아틸라!”

“내가 왔다고 아틸라!”

키릴과 카스피가 도착했다.

그들의 몸엔 아틸라와 마찬가지로 ‘피의 보호막’이 씌워져 있었다.

바토리가 자리를 뜨기 전, 보호막을 시전해 주고 간 것이다.

- 건방진.

우두머리는 금세 수복을 마쳤다.

나가는 원래 물의 정령.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치유의 힘이다.

회복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우두머리가 수복을 마치자 졸개들의 수복 속도가 빨라졌다.

[ 휩쓸기 ]

흑철검이 우두머리와 세 졸개를 동시 타격했다.

키릴도 좌측 세 졸개의 어그로를 잡아끌고 난타전을 벌였다.

그 모습을 보며 아틸라는 생각했다.

‘과연 대단하군.’

키릴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물론 바토리의 보호막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 졸개가 내뿜는 독액은 보호막의 체력을 순식간에 깎아 냈다.

아틸라도 그것을 느꼈다.

‘탁샤카의 독은 강력하다.’

놈이 지닌 독액은 출혈독과 신경독으로 나뉜다.

먼저 출혈독(出血毒)은.

‘타깃의 체력을 지속적으로 갉아 내는 독.’

키릴이 상대 중인 좌측의 세 졸개가 지닌 독이다.

그러나 체력을 소모시키는 것 외엔 특별한 후유증을 동반하지 않는, 비교적 단순한 독.

그러나 신경독(神經毒)은 다르다.

신경독은 직접적으로 타깃의 체력을 깎아 내진 않지만.

‘무서운 후유증을 동반한다.’

아틸라가 상대하는 세 졸개가 뿜고 있는 독이 바로 신경독이다.

그리고 중심의 우두머리는.

여섯 졸개들이 지닌 것보다 더욱 강한 출혈독과 신경독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

즉 아틸라는 출혈독만을 조심하면 되는 키릴과 달리.

출혈독과 신경독을 모두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것을 증거하듯 아틸라의 보호막은 키릴의 것보다 빨리 사라졌다.

[ 신경독이 체내에 침투했습니다. ]

[ 신경독에 저항을 시작합니다. ]

[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

보호막이 사라지기 무섭게 독액이 침투했지만, 아틸라는 저항했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아틸라는 오래전, 타란툴라의 수액을 통해 자신의 몸을 강화한 적이 있다.

[ 타란툴라의 맹독을 이겨 낸 육체가 한 단계 진화합니다. ]

[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

물론 영구 지속되는 진화는 아니었다.

[ 이 효과는 10분 동안 지속됩니다. ]

그러나 어찌 됐든 아틸라는 타란툴라의 맹독을 맨몸으로 이겨 낸 적이 있었고.

그래서 보통의 사람보다는 독에 대한 저항력이 강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 신경독이 체내에 침투했습니다. ]

[ 신경독에 저항을 시작합니다. ]

[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

[ 신경독(근육 마비)에 감염되었습니다. ]

[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감소합니다. ]

[ 이 효과는 4회까지 중첩 적용될 수 있습니다. ]

‘빌어먹을. 이제부터 시작인가.’

아틸라의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상태창의 벽이 떠올랐다.

[ 출혈독(파괴)에 감염되었습니다. ]

[ 5초마다 일정량의 체력이 감소합니다. ]

[ 이 효과는 5회까지 중첩 적용될 수 있습니다. ]

[ 신경독(정신 마비)에 감염되었습니다. ]

[ 정신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

[ 이 효과는 7회까지 중첩 적용될 수 있습니다. ]

[ 출혈독(고통)에 감염되었습니다. ]

[ 회복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

[ 이 효과는 6회까지 중첩 적용될 수 있습니다. ]

* * *

한편 바토리는.

오토와 함께 순조롭게 악마진의 상징물을 파괴하고 있었다.

“바토리 아가씨! 이게 벌써 몇 개째요! 이렇게나 많은 상징물을 부쉈는데 아직도 먼 거요?”

“허 참! 약해빠진 종복 미물 새끼. 이제 겨우 세 개밖에 못 부쉈다.”

“히익! 여태 세 개밖에 못 부쉈다고? 빌어먹을 다크 나가를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후……. 바토리 할망구. 저 미물 새끼 너무 시끄러우니 걍 여기 두고 가자.”

“그럴 순 없느니라. 너도 보지 않았느냐. 철혈귀검이 제법 내 방패막이를 해 주는 모습을.”

바토리의 말대로였다.

이들은 악마진의 상징물을 파괴하는 과정에 다크 나가들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때마다 오토가 탱커 역할을 해 준 덕에 별다른 피해 없이 놈들을 격퇴할 수 있었다.

“마, 말도 마쇼! 방금 전엔 정말 죽는 줄로만 알았소! 아틸라 님도 없이 두 마리의 다크 나가를 상대하다니. 내 이러다 정말 제 명에 못 죽을 거 같단 말이오!”

그 말에 바토리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흐응? 제 명이라 하였느냐. 그러고 보니 언젠가 아틸라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나는구나.”

“무, 무슨 말 말이우? 혹시 아틸라 님이 내 칭찬이라도 한 거요?”

“넌 원래 오동나무 도적단의 두목질을 할 때 죽을 운명이었다고 말이다.”

“히이이익!”

오토는 아틸라와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자신은 그때 죽음의 문턱을 아주 코앞에서 경험했었으니까.

“으으……!”

“알았으면 서두르자꾸나 철혈귀검아.”

바토리가 오토를 채근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살짝 굳어져 있었다.

바토리는 자신의 마력의 소모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숲의 난쟁이 노움 덕에 현자의 돌을 쓸 만하게 개조했지만, 이런 부작용이 따르는 것이로구나.’

바토리는 알키미야에게 현자의 돌에 담긴 ‘억제’의 마력을 느슨하게 풀어 달라는 주문을 했었다.

과연 알키미야는 연금술의 장인답게 그것에 성공했지만.

그 대신 마력 소모가 심해지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악마진을 모두 파괴한다 해도, 아틸라를 도울 힘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바토리는 그것에 강한 불안감을 느꼈다.

물끄러미 오토를 바라보던 바토리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철혈귀검의 실력으론 아직 다크 나가를 상대할 수 없다.’

결국 다크 나가는 자신이 상대해야만 한다.

카스피나 키릴을 추가로 데려왔다면 일이 좀 더 수월했을 테지만.

바토리는 그럴 수 없었다.

‘나가라자의 독액은 위험하다.’

아틸라에겐 카스피와 키릴이 필요하다.

바토리는 아틸라를 더 이상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도롱뇽이 말했다.

“어이. 너무 걱정 마라 바토리 할망구.”

“뭐라?”

“야만 미물 녀석은 그리 쉽게 당하지 않아. 제아무리 나가라자의 독액이 강하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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