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바라키엘 신전 (2)
아틸라는 히죽 입가를 올렸다.
[ 발 구르기 ]
아틸라의 발길질에 쿠웅! 지면이 흔들렸다.
그 여파로 다크 나가의 몸이 중심을 잃었고.
아틸라는 흑철방패를 휘둘러 다크 나가의 가슴을 강하게 타격했다.
키에에에에!
비명을 지르는 다크 나가의 복부에 흑철검이 박혔다.
다크 나가는 뱀의 아가리를 벌려 독액을 뿜었다.
하지만 아틸라는 패영전의 원작자.
나가들이 입안에 독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츄하아악!
흑철방패가 독액을 막았다.
아틸라는 빠르게 놈에게서 물러섰다.
그러고는 두 번째 다크 나가를 향해 순식간에 이동했다.
[ 돌진(突進) ]
파아앙!
‘저, 저건 또 무슨!’
키릴의 눈이 부릅떠졌다.
키릴은 아틸라의 돌진 스킬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아틸라는 벨페고르를 해치울 때 돌진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키릴은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래서 아틸라가 돌진하는 광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저건 나와의 대련에선 보여 주지 않은 기술인데……!’
아틸라는 두 번째 다크 나가에게 순조롭게 검을 꽂았다.
돌진의 타깃이었던 다크 나가는 키릴보다 더욱 놀란 상태였으니까.
키에엑!
두 번째 다크 나가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녀석 역시 아가리를 벌려 독액을 뿜었지만 아틸라는 침착하게 방패로 막았다.
‘과연 골든핑거의 방패로군. 나가들의 독액에도 끄떡없다.’
첫 번째 다크 나가가 아틸라를 쫓아 몸을 움직였다.
아틸라는 두 번째 다크 나가를 몰고 달렸다.
그러고는 세 번째, 네 번째 다크 나가에게 차례로 일격을 가했다.
그 광경을 보며 키릴은 불안을 느꼈다.
아무리 아틸라가 강하다 해도, 다크 나가 네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너무 위험해 보였다.
키릴은 조금 전 아틸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네 마리를 한데 모아 광역 공격기를 펼치면 합류하도록.’
그러나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다크 나가 네 마리가 아틸라를 포위하고 있다.
‘내가 도와야 해.’
키릴은 달려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멈추시오 성기사 아가씨!”
오토가 소리쳤다.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는 거요!”
오토는 자신들이 뛰어들어야 할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네 마리의 다크 나가를 한데 모은 아틸라가.
‘풍차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놈들 모두를 타격하는 순간.’
[ 휩쓸기 ]
퍼퍼퍼펑!
바로 지금!
“전군! 진겨어어억!”
“뭐야 영주 나리. 아직도 룽겔 공작 패거리와 싸우는 상상을 하는 거야?”
“그렇게 좋으면 네 왕국으로 돌아가려무나. 철혈귀검아.”
카스피와 바토리가 키득대며 달렸다.
무안한 얼굴로 오토가 외쳤다.
“가, 같이 가야 할 것 아니요! 바토리 아가씨! 살쾡이 암살자!”
휩쓸기에 얻어맞은 다크 나가들이 아틸라에게 강한 공격성을 드러냈다.
아틸라의 눈이 빛났다.
‘역시 생각대로다.’
그동안 아틸라는 수없이 휩쓸기를 사용했다.
그러면서 그는, 휩쓸기가 상대의 어그로를 끌어당기는 데 대단히 유용한 스킬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마리씩 차례로 처리한다!”
“알겠수! 아틸라 님!”
오토가 방패를 추켜들며 달렸다.
이전과 달리 오토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새끼. 왕 되고 나더니 좀 달라졌네.’
아니면.
‘이제 완전한 영웅 등급에 들어섰기 때문인가.’
오토의 강철검이 다크 나가 한 마리를 타격했다.
그와 동시에 키릴의 아밍 소드가 뻗쳤고, 타깃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카스피가 사슬낫을 휘둘렀다.
키릴의 눈이 커졌다.
‘어느 틈에!’
키릴은 신전에 들어선 직후부터, 베일에 싸인 살수 카스피를 주목했었다.
그러나 직전, 그녀의 모습을 놓쳤다.
카스피는 신기루처럼 모습을 감췄다.
그러고는 다크 나가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벼락처럼 사슬낫을 내리친 것이다.
‘게다가 카스피의 그 눈은.’
키릴은 보았다.
핏물처럼 번져 있던 카스피의 안구.
‘잘못 본 게 아니었어.’
거기에 더해 카스피의 몸과 무기에선 기묘한 붉은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다.
키릴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키에에! 키에에에에!
순식간에 세 개의 날붙이에 당한 다크 나가가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상대는 역시 중급 악마.
이 정도 공격으로는 죽지 않는다.
분노한 다크 나가가 독니를 드러냈다.
그러나 오토와 카스피는 당황하지 않았다.
[ 도발의 외침 ]
[ 일정 시간 동안 대상이 오직 시전자만을 공격합니다. ]
아틸라가 시전한 도발의 외침이 녀석의 어그로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다크 나가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주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던 다크 나가는.
키릴을 공격하는 대신, 아틸라를 향해 삼지창을 뻗었다.
‘어떻게 된 거지!’
키릴에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분명 다크 나가는 조금 전, 자신을 공격하려 했었다.
그 순간 아틸라가 날카로운 외침을 발했고.
그 영향으로 다크 나가는 공격 대상을 아틸라로 바꿨다.
‘대체 어떻게……!’
[ 휩쓸기 ]
쿨타임이 돌아온 휩쓸기가 네 마리 다크 나가를 타격했다.
그중 한 마리는 치명상을 입은 듯 온몸에서 피를 흩뿌렸다.
놈에게 흑철검이 쏘아졌다.
녀석은 삼지창을 이용해 막으려 했지만 아틸라의 용력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콰드득!
다크 나가의 입안에 흑철검이 박혔다.
아틸라는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팔 근육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파드드드드듯!
다크 나가의 상체가 길게 세로로 잘렸다.
바나나 껍질처럼 벌어진 놈의 몸이 바닥에 늘어졌다.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두 개로 나뉜 머리를 들어 아틸라를 공격하려 했다.
아틸라의 하체에 힘이 들어갔다.
중심을 낮춘 그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검을 뻗었다.
그것이 다크 나가의 목을 절단했다.
퀴르르르릅……!
그렇게 다크 나가 한 마리의 숨통이 끊어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엔.
아직 힘을 드러내지 않은 강력한 마법사가 있다.
“이히테 페로 노음니하.”
바토리의 손에서 거대한 불화살이 쏘아졌다.
그것이 다크 나가 한 마리의 몸을 관통하고, 또 다른 다크 나가의 옆구리마저 꿰뚫었다.
파드득! 파듯……!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두 다크 나가가 짚더미처럼 쓰러졌다.
다크 나가는 물 속성의 악마.
불 속성 마법과 상극이다.
게다가 바토리가 시전한 불 속성 마법은 압도적인 것이었고.
다크 나가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절명했다.
‘저, 저게 무슨……!’
키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과 오토, 그리고 카스피가 저마다의 무기를 휘둘렀지만 죽지 않았던 다크 나가가.
바토리의 마법 한 방에 즉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토리의 마법은 한 마리의 다크 나가가 아닌,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다크 나가의 숨통마저 끊었다.
그리고 지난번과 달리.
지금의 바토리는 주문을 영창했다.
‘대륙 공용어가 아니었어.’
키릴은 교회에서 많은 타국인을 만났고, 어느 정도의 타국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바토리의 주문은 달랐다.
키릴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언어.
그렇다는 것은.
‘설마…… 고대의 마법?’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키릴은 바토리에 대해 무언가의 가정을 한 적이 있었다.
‘벨페고르는 바토리를 알아봤다.’
바토리의 예스러운 말투.
인간을 벗어난 듯한 신비로운 외모.
주문이 필요 없는 마법.
거기에 더해 방금 바토리가 쓴 마법이 고대의 마법이 맞는다면.
키릴의 눈에 부릅 힘이 들어갔다.
‘설마 바토리는……!’
“뭘 그리 놀라 있는 거요! 성기사 아가씨!”
“흥! 급똥이라도 마려운 모양이지! 우리끼리 가자고 영주 나리!”
“머, 먼저 가면 어쩌자는 거요! 살쾡이 암살자!”
“왜 나한테만 살쾡이라고 하는데! 나도 아가씨라고 불러 달라고!”
“켁! 아가씨라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촤르르륵!
카스피의 사슬낫이 마지막 다크 나가에게 뻗쳤다.
녀석의 이마엔 이미 흑철검이 박혀 있었고.
키릴의 아밍 소드와 오토의 강철검도 질세라 놈을 타격했다.
파캉! 팡! 콰드드드득!
네 자루 날붙이가 다크 나가를 도륙했다.
단 한 마리라도 중간계로 나가면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중급 악마 다크 나가가, 그렇게 숨통이 끊어졌다.
키릴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신에 감도는 묘한 활력에 이어, 소진됐던 체력이 급속도로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오직 아틸라만이 그것을 알아봤다.
동그랗게 눈을 뜬 키릴을 보며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레벨업했군. 키릴.’
흑철검의 핏물을 털어 낸 아틸라가 바토리에게 다가갔다.
“어이. 할망구.”
“알았느니라. 다음부턴 힘을 조절해서 사용할 터이니.”
아틸라는 불만족스러운 눈으로 바토리를 내려 봤다.
그러나 바토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틸라를 마주 볼 뿐이었다.
“흐응. 더 할 말이 있는 것이더냐. 그러고 보니 저쪽에 제법 으슥한 곳이 있었단다.”
“……됐다.”
아틸라는 뒤돌아 다시 선두에 섰다.
동료들의 뛰어난 실력 덕에, 별다른 피해 없이 첫 관문을 돌파했다.
‘도롱뇽의 오러도 한몫했지.’
다크 나가를 보자마자 아틸라는 오러를 바꿨었다.
[ 마법 저항의 오러가 해제됩니다. ]
[ 물 저항의 오러 ]
[ 물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
물 저항의 오러는 키릴의 성스러운 오러와 중복 적용되며, 다크 나가의 공격력을 상당히 상쇄시켰다.
그래서 일행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전투에서 승리했다.
“흠. 다크 나가 같은 미물 따위, 이몸의 포식이면 한방감도 안 되는데.”
도롱뇽이 중얼댔다.
도롱뇽은 펀치의 입속에서 빼꼼 고개만을 내밀고 있었다.
“잔말 말고 길잡이나 해라. 도롱뇽 새끼.”
아틸라의 말에 도롱뇽은 코를 발름대며 방향을 안내했다.
키릴이 말했다.
“저기…… 아틸라.”
“왜.”
“펀치에게 이곳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응?”
아틸라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피식 미소했다.
“걱정할 거 없다. 제 한 몸은 지킬 줄 아는 놈이니까.”
“하지만.”
무어라 더 말하려던 키릴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이 무리의 대장이 아니다.
그저 외부인일 뿐.
“……알겠어요.”
일행은 그 뒤 몇 번인가 다크 나가를 만났다.
놈들은 몇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녔고, 네 마리가 넘는 경우엔 키릴이 서브탱커 역할을 맡았다.
그러면서 키릴은 점점 강해졌다.
늘어난 성력을 보다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료들 또한 그런 키릴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바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로구나.’
머지않아 눅눅한 공기가 일행을 감쌌다.
급격하게 습기가 올라갔다.
이곳저곳에서 부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키릴이 중얼거렸다.
“여긴…….”
어느새 풍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너른 늪지대가 되어 있었다.
아틸라가 말했다.
“마계로 이어지는 통로 안에 둥지를 틀어 놓았군.”
“그런 것 같구나.”
바토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틸라와 나머지 동료들도 주변을 살폈다.
듬성듬성 솟아난 수초들.
‘그렇군.’
아틸라는 이곳이 누구의 둥지인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