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바라키엘 신전 (1)
패영전 원작에서 바토리와 카스피는 앙숙이다.
서로를 죽이려 하지만 죽이지 못하는, 물과 기름과도 같은 사이.
그러던 중 키릴이 등장한다.
키릴은 샤를의 라이벌이면서도, 샤를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특별한 존재.
키릴이 지닌 올곧은 성품과 강대한 성력은 샤를이 ‘악마의 힘’에 빠지려 할 때마다 그를 위기에서 구한다.
소설의 마지막 444화에서.
남부의 모든 왕국을 통일한 샤를이.
북쪽의 거대 제국에 선전포고를 내릴 때까지.
‘나는 크리엘도라 대륙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도.
바토리, 키릴, 카스피가 한자리에 만났다.
“이곳이 바라키엘 신전…….”
키릴은 바라키엘 신전을 처음 와 봤다.
당연한 일이었다.
바라키엘 신전에선 강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고, 그것을 견디며 입장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르티칸의 대사제뿐이었으니까.
“으윽……! 냄새가 지독해 아틸라.”
“그러게나 말이오! 코가 썩는 것 같소!”
카스피와 오토가 인상을 찌푸렸다.
신전 근처는 마기로 가득했다.
“이 정도의 마기라니. 신전 안에 상당한 거물이 들어앉은 모양이구나.”
바토리가 여유롭게 미소했다.
그것이 현자의 돌에 수작을 벌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아틸라는 바토리에게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아틸라는 근처를 지나던 야생짐승 하나를 건드려 전투 상황을 만든 뒤, 동료들과 파티를 맺었다.
“성스러운 오러를 발동시켜라. 키릴.”
키릴은 그 말을 따랐다.
[ 성스러운 오러 ]
[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30% 상승합니다. ]
[ 30미터 반경 안에 위치한 파티원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
아틸라는 조금 놀랐다.
30미터라는 넓은 반경도 놀라웠지만.
‘마기에 대한 저항력 30퍼센트.’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하르티칸 대사제의 저항력이 20퍼센트에 불과하니까.’
물론 하르티칸의 대사제는 오러 말고도 스스로의 정신력과, 여러 신성력을 발휘해 마기를 견뎠을 터다.
마기는 어둠의 힘.
인간의 정신력으로도 어느 정도는 극복이 가능하다.
오토와 카스피가 지금, 오러 없이도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니까.
‘아무리 신전 밖으로 흘러나오는 마기의 찌꺼기라 해도.’
일반인이었다면 정신을 잃거나, 심한 경우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다.
과연 오토와 카스피는 성스러운 오러가 발동되자마자 활짝 표정을 폈다.
“엇! 악취가 더 이상 나지 않수.”
“영주 나리도? 나도나도.”
아틸라는 신전의 문을 열었다.
짙은 마기가 일행을 덮쳤지만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 침입악마 시나리오가 이어집니다. ]
‘역시, 이 안에도 침입악마 녀석이 있는 모양이군.’
[ 세 번째 임무 ]
[ 바라키엘 신전을 오염시킨 악마를 찾아 쓰러뜨리고, 신전을 정화하십시오. ]
‘어떤 악마인지는 밝히지 않는 건가.’
[ 임무 완료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아틸라를 선두로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일행이 진입하자 입구는 저절로 닫혔다.
벽과 천장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와 시야 확보의 어려움은 없었다.
아틸라가 앞장서고 키릴이 뒤를 따랐다.
가운데엔 바토리와 카스피가 섰다.
오토는 언제나처럼 후미 경계와 바토리 수호 임무를 맡았다.
“어이. 도롱뇽.”
코를 킁킁대던 도롱뇽이 팔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아틸라가 말했던 대로, 그새 도롱뇽의 상처는 말끔히 나아 있었다.
“저쪽이다 야만 미물. 저쪽에서 강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어느 정도 수준의 악마지?”
도롱뇽이 다시금 코를 발름댔다.
“상급. 어쩌면 그보다 강할 지도.”
아틸라는 도롱뇽이 지닌 마법 저항의 오러도 켜둔 상태였다.
[ 마법 저항의 오러 ]
[ 모든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10% 상승합니다. ]
그간 도롱뇽이 레벨업을 하며, 원래는 5퍼센트였던 저항력이 10퍼센트로 늘어났다.
그것만이 아니다.
물, 불, 대지, 바람에 특화된 오러를 켜면 수치는 20퍼센트로 상승한다.
[ 20미터 반경 안에 위치한 파티원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
10미터였던 반경도 20미터로 늘었다.
이제야 좀 활용성이 높은 스킬로 바뀐 것.
‘등장하는 악마의 속성이 확실해지면 빠르게 오러 속성을 바꿔야겠지.’
악마는 어둠의 마력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놈들 중엔 일반적인 4대 속성을 사용하는 악마도 상당수 끼어 있다.
일행은 한동안 걸었다.
그러나 사원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풍경도 점점 괴이하게 바뀌었다.
“야만전사야.”
“정말로 세계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긴 한 모양이군.”
아틸라는 바라키엘 신전의 위협이 그리 급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달랐다.
바라키엘 신전은 현재, 상당히 위험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마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 모양이구나. 이곳은.”
“마, 마계?”
놀라 묻는 키릴에게 바토리가 말했다.
“그렇단다. 바라키엘 신전은 원래부터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던 곳. 세계선의 경계가 옅어진 지금, 마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었다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아까부터 세계선의 경계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죠?”
설명은 아틸라가 했다.
모든 것을 밝힌 것은 아니다.
아틸라는 카르타고나 사도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고, 키릴이 이해할 수 있을 범주의 내용만을 알려 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키릴에겐 더없이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럴 수가…….”
“넌 최근 성력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을 거다. 너뿐 아니라 크레센시아의 모든 성기사들이 느꼈겠지. 그것 또한 세계선의 붕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키릴은 입을 다물었다.
다리우스 단장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아틸라는 그보다 더욱 세부적인 것을 알려 주었다.
일행은 다시 발을 움직였다.
언젠가부터 똑똑, 물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바닥에서 시커먼 액체가 솟아올랐다.
쿠르르르륵!
액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커다란 나가(Naga)였다.
그중에서도.
새까만 몸을 지닌 중급 악마.
“다크 나가(Dark Naga)로군.”
중급 악마이자 물의 악마 나가.
또한 녀석은 용족이다.
그것을 깨달은 도롱뇽이 잽싸게 선두로 달려 나갔다.
“케헷헷헷헤! 이몸이 활약할 시간이다!”
그러고는 두 발로 직립한 채 팔짱을 끼고 다크 나가를 노려봤다.
“플라이웜 미물 녀석 이후로 오랜만이로군! 제 발로 먹잇감이 나타나다니!”
도롱뇽이 양 앞발을 번쩍 추겨들며 인상을 썼다.
“카아아아아앗!”
제 딴에는 먹잇감을 겁주려는 행동이었겠지만.
막상 그 모습을 보는 나가의 입장에선 기가 찰 일이었다.
“뭐야. 하찮은 미물 녀석이라 이몸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김빠졌다는 듯 도롱뇽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아 맞다. 하긴 저 녀석도 플라이웜처럼 뇌 없는 뱀 대가리 새끼였지. 맞아맞아! 그랬어! 캬캬캬캬캬!”
만족한 얼굴의 도롱뇽이 쩌억 입을 벌렸다.
“카아아아아아앗!”
“저리 꺼져라 도롱뇽 새끼. 다크 나가는 중위(中位)종 용족이니까.”
아틸라는 도룡뇽의 덜미를 손가락으로 잡아 뒤로 던졌다.
“꾸에에엑! 뭐, 뭐냐! 야만 미물!”
날아오는 도롱뇽을 펀치가 덥석 입으로 받았다.
아틸라의 말대로 다크 나가는 중위종에 속하는 용족.
아직 중하위(中下位)종까지밖에 포식할 수 없는 도롱뇽의 먹이는 될 수 없다.
‘아깝군. 도롱뇽의 포식이 한 단계 더 진화했다면 잡아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틸라는 이내 생각을 지웠다.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오히려 잘 된 일일는지도 모른다.
‘사원을 오염시킨 우두머리 악마를 만나기 전에 키릴과의 호흡을 맞춰 둘 필요가 있으니까.’
그때 세 마리의 다크 나가가 추가로 나타났다.
키릴이 당황한 얼굴로 좌우를 돌아봤다.
‘시작부터 네 마리의 중급 악마라니!’
게다가 여긴 평범한 장소가 아니다.
바토리의 말대로라면, 이곳은 마계로 이어지는 통로.
‘악마는 마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얼마 전 아틸라가 쓰러뜨린 크로셀과 벨페고르도 물론 강했지만.
녀석들은 중간계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결코 마계에서의 모습보다 강할 순 없다.
‘그러나 이곳은 중간계와 마계 사이에 위치한 곳.’
마계에 있을 때의 모습에 미치진 못하겠지만.
완전히 중간계로 넘어온 경우보다는 힘을 보존하고 있을 것이다.
키릴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한 마리는 아틸라가 맡고, 다른 하나는 내가 맡는다.’
그럼 나머지 둘은 바토리와 오토, 카스피가 처리해야 하는데.
‘가능할 것인가.’
바토리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오토와 카스피가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한편 아틸라는.
“시작부터 중급 악마 네 마리라.”
그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몸풀기로 딱 좋군.”
‘뭐, 뭐라고?’
키릴은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몸풀기라니……!’
이어진 아틸라의 말은 키릴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내가 네 마리를 한꺼번에 붙잡아 두겠다.”
“그, 그, 그게 대체 무슨……!”
아틸라에겐 스킬, ‘휩쓸기’가 있다.
그것과 ‘도발의 외침’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네 마리의 적까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잡아둘 수 있다.
“알겠수!”
“알았어 아틸라!”
오토, 카스피, 그리고 바토리는 이 전략을 사용한 적이 있다.
키클롭스의 감옥을 향하기 위해 황금바위산 동쪽의 수해에 진입했을 때.
‘어떤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네 마리까지는 내가 붙잡는다. 그 이상이 추가되면 크누트가 역할을 분담한다.’
그때와 바뀐 건 크누트 대신 키릴이 파티원이라는 것.
키릴이 외쳤다.
“하지만 아틸라!”
“키릴, 넌 서브탱커다.”
“서브……탱커? 그게 무슨 말이죠?”
“내가 놓치는 녀석이 있으면 네가 붙잡아 둔다는 거지. 내 역할을 보조하는 거다.”
아틸라는 키릴에게 크누트가 했던 역할을 맡겼다.
“그게 무슨……!”
“잡담할 시간 없다. 내가 네 마리를 한데 모아 광역 공격기를 펼치면 합류하도록. 간다.”
아틸라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다크 나가에게 달렸다.
그러면서 시전했다.
[ 전사의 외침 ]
[ 모든 파티원의 근력과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
‘뭐, 뭐지 이건……!’
누구나 처음에는 그랬듯, 키릴도 전사의 외침 버프를 받는 순간 크게 놀랐다.
‘믿기지 않는 활력이 전신을 순환하고 있다!’
“역시 놀란 거요? 이건 아틸라 님이 사용하는 기술이요! 으하하하하!”
제 스킬도 아니면서 오토가 자랑했다.
바토리의 보호막이 아틸라에게 씌워졌고.
아틸라는 흑철검으로 다크 나가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나 다크 나가가 손에 든 삼지창으로 그것을 막았다.
‘음? 네임드가 아니라 충분히 먹힐 줄 알았더니.’
다크 나가는 중급 나가지만.
네임드는 아니다.
‘크로셀이나 벨페고르는 유일무이한 악마. 즉 네임드지만.’
눈앞의 다크 나가들은 비슷한 개체가 수없이 많다.
즉.
‘중급 악마라도 다 같은 중급 악마가 아니라는 뜻.’
같은 등급의 악마라면 네임드가 훨씬 강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조우한 다크 나가들은 네임드가 아니었기에.
아틸라는 자신의 첫 공격이 가로막혔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그래. 이곳은 절반 정도는 마계나 마찬가지였지.’
이것이 키릴이 우려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틸라의 생각은 키릴과 달랐다.
악마놈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은 경험치를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