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97화 (197/425)

197. 바토리와 키릴 (2)

키릴은 자신을 덮치는 용병들을 봤다.

그 용병들을 쓰러뜨린 아버지가, 짐승처럼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봤다.

아버지의 목에 박힌 검.

검 손잡이를 쥔 자신의 손.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풍경.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불타는 마을.

‘하아아…….’

‘하아아아아…….’

그 안에서 뒹구는 알몸의 남녀.

자신들의 몸이 불에 타 잿개비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던 음욕의 행위들.

마주친 악마.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아!”

키릴의 몸에서 폭발적인 성력이 뿜어졌다.

그런데 무언가 달랐다.

폭죽처럼 터져 나가던 그것이 키릴을 중심으로 구의 형상을 갖췄다.

이어 키릴의 몸으로 흡수됐다.

“터득한 것이로구나.”

바토리가 입가를 올렸다.

바토리는 깨달았다.

키릴이 ‘성스러운 오러’를 발현했다는 것을.

게다가 그건.

아틸라마저 놀라게 할 정도의 강력한 오러였다.

‘저렇게 강력하다고?’

키릴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흑빛 칼날을 봤다.

우선 키릴은 검과 방패에 재차 성력을 주입해 머리 위 칼날을 튕겨 냈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흑빛 칼날을 검으로 가격한 뒤,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방패로 내리쳤다.

카앙!

흑빛 칼날이 땅에 처박혔다.

그럼에도 칼날은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고, 다시금 키릴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키릴은 찰나간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파아앙!

놀라운 속도로 바토리와 거리를 좁혔다.

애초에 바토리와 그다지 거리가 벌어져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흐응. 이제 좀 그럴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구나.”

바토리를 향해 쇄도하는 키릴의 노란 눈동자는 차가웠다.

그 속에서 타오르는 살기를 바토리는 감각했다.

바토리의 눈동자도 사납게 변했다.

그녀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파캉!

키릴의 아밍 소드와 바토리의 마력이 맞부딪쳤다.

바토리는 맨손이었지만,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엄청난 마력이 검의 형상을 이뤄 키릴의 검을 쳐 냈다.

“히이익! 저, 저거 위험한 거 아니요!”

“마,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아틸라!”

오토와 카스피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둘이 보기에도 지금의 상황은 위험했다.

저건 대련이라기보다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실전에 가까웠다.

아틸라도 그것을 알았다.

‘빌어먹을 할망구가.’

또한 아틸라는 깨달았다.

지금의 바토리는 무언가 이상하다.

‘마력이 너무 강해.’

관조자 때만큼은 아니지만.

인간이 된 이후의 바토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마력.

아틸라는 바토리의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툴루즈 백작령에 출몰한 크라켄을 상대했을 때.

‘바토리가 폭주했을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현자의 돌은 완벽하게 복구됐고, 그렇다면 바토리의 마력을 억제하고 있어야 한다.

‘돌을 버린 건가?’

아니다.

아틸라는 바토리의 왼팔에 팔찌처럼 감긴 현자의 돌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왜.

‘……설마?’

아틸라는 기억했다.

은밀한 숲의 알키미야를 만나 현자의 돌 수리를 의뢰했을 때.

바토리는 알키미야에게 은밀하게 무언갈 속삭였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토리는 이후에도 몇 차례 알키미야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눴다.

‘빌어먹을.’

분명했다.

바토리는 현자의 돌에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

카아아앙!

날카로운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키릴의 비명이 뒤를 이었다.

키릴은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이었더냐. 고작 이 정도로 내 혼약자와 대련한 것이었더냐.”

바토리가 서늘한 눈빛으로 키릴을 내려 봤다.

아틸라는 어이가 없었다.

오토와 카스피도 쩌억 입을 벌리며 아틸라를 쳐다봤다.

“호, 혼약자……?”

“그, 그게 정말이오! 아틸라 님!”

“정말은 무슨. 저 할망구 헛소리에 한두 번 속냐.”

아틸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고 있었다.

전황은 바토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키릴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키릴은 바토리에게 받은 타격을 상당히 완화시켰다.

그리고 지금, 모든 성력을 아밍 소드에 집중시키고 있다.

아틸라는 직감했다.

한 번 더 둘이 부딪친다면, 둘 중 하나는 큰 부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화르륵.

바토리의 손에서 강렬한 불꽃이 뿜어졌다.

키릴이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키며 검을 뻗었다.

그 틈으로 아틸라가 손에 쥔 것을 던졌다.

그리고 시전했다.

[ 해방(解放) ]

“꾸에에엑! 찌르지 마! 찌르지 말라고으아아아악!”

성체가 된 도롱뇽의 처절한 비명이 공기를 울렸다.

* * *

“나 죽는다! 나 죽어! 빌어먹을 바토리 할망구의 불꽃에 데이고! 성기사 미물의 검에 뱃가죽이 쑤셔졌도다! 야만 미물! 어떻게 나한테 이런 잔인한 짓을……! 흐흑……!”

도롱뇽이 배를 뒤집으며 울부짖었다.

그 말대로 도롱뇽은 한쪽 어깨엔 시커먼 화상이 생기고, 다른 쪽 옆구리에선 줄줄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도롱뇽아. 그러게 누가 그리 갑자기 끼어들라 했더냐.”

“끼어들긴!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런 줄 알아? 다 저 빌어처먹을 야만 미물이…… 흐아아악! 또 정신 공격이! 정신 공격이이이……!”

아틸라는 시끄러운 도롱뇽에게 정신 교육을 시전했다.

아틸라가 바토리와 키릴 사이로 도롱뇽을 던진 건 물론 위험한 수였다.

그러나 아틸라는 도롱뇽이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렇게 되었다.

‘바토리는 내 움직임과, 도롱뇽이 끼어드는 것을 감지했다.’

그래서 바토리는 공격 방향을 바꿔 도롱뇽의 어깨를 타격했다.

그 덕에 방향이 전환된 도롱뇽은 키릴의 아밍 소드가 심장을 꿰뚫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바토리는 모든 걸 알고 적절히 대처해 놓고,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틸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음흉하다. 아주 음흉한 할망구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키릴도 도롱뇽에게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도롱뇽이 드래곤이었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

“드, 드래곤 님이었을 줄이야. 제가 정말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신의 피조물 중 가장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는 종(種), 드래곤.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성기사 역시 드래곤을 동경한다.

성력이라는 것도 큰 범주에서 보면 마력에 속하는 힘이기 때문.

키릴은 아틸라에게 더욱 큰 놀라움을 느꼈다.

‘아틸라. 저 사람은 대체.’

아틸라 그 자신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동료들 또한 평범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뛰어난 실력의 전사이자 나바라 왕국의 왕인 오토.

직접 눈으로 보았음에도 믿을 수 없는 실력을 지닌 마법사 바토리 에르제베트.

거기에 더해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피조물인 드래곤까지.

‘그렇다면 저 카스피라는 여자도.’

보통내기가 아니란 것만은 확실하다.

‘오토마이어 나바라 왕이 가장 평범해 보이는 상황이라니.’

그러던 중 키릴의 눈이 펀치에게 닿았다.

곰을 닮은 귀여운 강아지.

그래, 아틸라에게도 평범한 동료는 하나쯤 있었구나 생각하며 키릴은 펀치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펀치가 기분 좋게 헥헥댔다.

“어이.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

“크흑……! 야만 미물……! 치료나 좀 해 주고……!”

“네 몸뚱이면 그 정도 상처는 금방 회복할 수 있을 텐데. 왜. 아니면 정신 교육 한 번 더 할까?”

도롱뇽이 질겁하며 펀치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해 질 녘이 되었기에 일행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오토는 물고기를 잔뜩 잡아 오겠다며 냇가로 달려갔고, 아틸라는 땔감을 구하러 갔다.

아틸라의 뒤를 카스피가 조르르 따라갔다.

잔뜩 입술을 오물거리는 꼴이, 바토리가 말한 ‘혼약자’에 대한 걸 캐물을 셈이 분명했다.

키릴도 아틸라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는 카스피의 살기 어린 눈동자를 본 순간 자리에 멈춰 섰다.

‘뭐, 뭐지? 방금 카스피의 눈이 핏물처럼 보였던 것 같은데.’

키릴은 도리도리 고개를 털었다.

힘든 하루였다.

헛것이라도 본 모양이지.

“이쪽으로 오너라. 키릴.”

유일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히 앉아 있던 바토리가 키릴을 불렀다.

키릴은 어색하게 바토리 옆에 앉았다.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바토리.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거 다행이구나.”

키릴은 알고 있었다.

조금 전 대련에서 바토리가 보였던 모든 행동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한계점으로 몰아넣어, 성스러운 오러를 발현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라는걸.

“……그건 환술이었나요?”

“눈치챈 것이더냐. 그래. 그건 환술이었다.”

“그렇다면 마기는…….”

“어쭙잖은 흉내에 불과하니라.”

아니다.

그건 어쭙잖은 흉내 같은 것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마법사다.’

키릴은 이 파티의 목적이 궁금해졌다.

당장은 바라키엘 신전에서 어떤 성물을 찾는 것이 목표라고 하지만.

그 후엔 어떤 여정을 이어 갈지.

그리고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물을 정도로 키릴은 아틸라 일행과 가깝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진 키릴은 다시 한번 바토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바토리. 덕분에 성력의 새로운 활용법을 알게 되었어요.”

바토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화젯거리를 찾던 키릴이 싱긋 미소하며 물었다.

“그런데 몰랐어요. 바토리가 아틸라의 혼약자였을 줄은.”

“그는 나의 혼약자가 아니다.”

“네?”

키릴은 당황했다.

바토리가 이어 말했다.

“그건 그저, 나의 작은 바람일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바토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틸라는 네게서 어떤 가능성을 본 것 같구나. 그 이유로 그는 널 보다 강한 성기사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난 너를 도왔다. 네가 보다 강한 성력을 일깨울 수 있도록.”

바토리의 눈이 키릴을 바라봤다.

“즉, 내가 널 도운 건 널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원하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난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더는 내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바토리.”

“만약 훗날 네가 그의 적이 된다면, 그래서 그가 널 제거하려는 마음을 먹는다면, 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널 죽이려 할 테니까.”

바토리의 표정은 무심했다.

그래서 키릴은 더욱더 바토리의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허리춤의 검 손잡이에 손이 갈 정도로.

“오늘도 물고기 풍년이오! 하하하하하!”

오토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오토의 옆을 달려오던 펀치가 바토리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신나게 놀다 왔느냐. 펀치야.”

바토리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얼굴로 펀치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잠시 후 아틸라와 카스피도 잔뜩 땔감을 들고 돌아왔다.

궁금증을 해소한 듯 한결 개운한 얼굴이 된 카스피를 보며 바토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올랐다.

오토가 잡아 온 물고기는 맛있었다.

한 나라의 왕이 직접 잡아 만든 생선구이라니, 라고 생각하며 키릴은 신기하면서도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튿날 아침, 일행은 신전을 향해 말을 달렸다.

키릴의 능력이 목표치에 다다랐고 ‘성스러운 오러’ 역시 습득을 마쳤기에, 아틸라도 더는 느긋하게 굴지 않고 신전으로의 이동에 집중했다.

사흘 뒤,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