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95화 (195/425)

195. 바라키엘 신전으로

다섯 마리 군마가 샹크리스 왕국 평원 위를 걸었다.

한 마리는 흑마.

두 마리는 갈색마.

나머지 둘은 백마였다.

두 백마 중 하나에 타고 있던 여자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바토리였다.

“철혈귀검아. 나바라 왕국과 샹크리스 왕국 간의 동맹 체제는 확실히 갖추고 온 것이더냐.”

지난밤, 바토리는 샹크리스 국왕과 면담을 가졌다.

키릴에게 말했던 대로, 바토리는 자신이 먼 옛날 샹크리스의 궁정 마법사를 지냈던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후손이라고 국왕에게 말했다.

바토리의 외모와 백조의 메달을 확인한 샹크리스 국왕은 당연히 그 말을 믿었다.

‘오오. 그대가 바로 그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후손이란 말인가.’

국왕의 방에서 한동안 사적인 담소를 나누던 바토리는 나바라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샹크리스 국왕은 인접 왕국인 나바라의 정세에 관심이 많았다.

‘나바라 왕국을 거쳐 오셨다 하셨소? 이번에 왕위에 오른 오토마이어 나바라 왕이 상당한 걸물이라 들었소만.’

바토리는 미소했다.

그리고 지금 샹크리스 왕성 연회장에서 거나하게 술에 취한 오토라는 사내가 바로, 오토마이어 나바라 왕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샹크리스 국왕은 크게 놀랐다.

‘이웃 왕국의 왕을 이리 소홀히 대접하다니……! 내 당장……!’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국왕을 바토리가 막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오토마이어 왕은 남쪽의 아인하르트를 견제하기 위해, 샹크리스 왕국과 동맹을 맺고 싶어 한다고.

‘동맹이라 하셨소?’

물론 오토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바토리는 아틸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틸라는 샤를이 나바라 왕국을 집어삼킬 것을 염려하고 있다.’

오토를 부추겨, 라일 플라마를 새로운 탑주로 삼은 적마탑과 동맹 관계를 맺도록 한 것만 봐도.

바토리는 아틸라의 생각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동맹이라. 나 역시 남쪽의 패왕이라 불리는 샤를 아인하르트의 명성은 익히 들은 바가 있소.’

남쪽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는 발루아다.

그러나 지금의 샹크리스 왕국은 발루아 못지않은 전투력을 지녔다.

세계선의 붕괴로 악마의 힘이 짙어지고 있는 만큼, 성기사들의 무력 또한 강해졌으니까.

‘샹크리스의 성기사들은 강하다.’

바토리는 생각했다.

지금의 샹크리스 왕국과.

적마탑을 등에 업은 나바라 왕국이 단단한 동맹 체제를 구축한다면.

‘샤를, 그 아이의 패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아틸라 또한 나바라와 샹크리스, 두 왕국이 샤를을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뿐이다.

“뭐, 바토리 아가씨께서 워낙 말을 잘 해 놓으셔서. 결과만 말하자면 잘 되었수! 하하하하!”

오토는 샹크리스 국왕과 독대를 했다.

이야기는 바토리가 미리 다 해 두었기에, 오토가 할 일이라곤 나바라 왕국에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작성된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뿐이었다.

또 하나의 백마에 올라탄 키릴이 물었다.

“샤를 아인하르트라는 자가 그렇게 강합니까.”

“강하다.”

아틸라는 짧게 답했다.

아틸라가 탄 말은 덩치가 큰 흑마였다.

키릴이 다시 물었다.

“아틸라와 비교한다면 어떻죠?”

그 물음에 세 사람이 동시에 답했다.

“아틸라가 더 강하단다.”

“당연히 아틸라 님이 강하오!”

“아틸라가 강하지!”

마지막으로 아틸라가 답했다.

“내가 더 강할 거다. 아직은.”

“아직이라면?”

“난 샤를과 두 차례 대결한 적이 있다. 두 번 모두 승자는 나였지.”

“2전 2승이라. 그렇다면 아틸라가 더욱 강한 것이 맞지 않나요?”

아틸라는 샤를과 함께 카르타고를 상대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분명 샤를은.

‘악마의 오러를 사용했었지.’

완전히 악마의 힘을 개화한 건 아니다.

그러나.

샤를은 손 대선 안 되는 힘에 손을 대 버렸다.

‘샤를은 요정과 악마의 피를 함께 가지고 태어났다.’

그동안의 샤를을 지배한 건 요정의 피였다.

하지만 더욱 강력한 힘은 역시.

‘악마의 피.’

샤를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지금까지 샤를은 요정의 피로 악마의 힘을 억눌러 왔다.

그것이 깨어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샤를이 악마의 힘을 드러낸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샤를은 싸울수록 강해진다.”

아틸라의 말에 키릴이 고개를 갸웃했다.

“싸울수록 강해지는 건 다른 전사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요?”

“샤를이 싸울수록 강해진다는 뜻은 그것과는 달라. 지금도 샤를은 무서운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아무리 나라도 다음번 승부는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그게 무슨 소리요! 그 금사자 새끼는 아틸라 님이 언제든지 때려잡을 수 있을 거요!”

“맞아 아틸라!”

오토와 카스피가 아틸라의 편을 들었다.

아틸라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키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틸라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분명 샤를 아인하르트는 대단한 강자겠군요.”

“그래.”

“바라키엘 신전을 찾는 이유가 뭐죠?”

아틸라, 바토리, 오토, 카스피, 키릴.

다섯은 바라키엘 신전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아틸라는 물끄러미 키릴을 바라봤다.

“알고 싶나?”

“그 ‘어떤 목적’이라는 것이 궁금해서요.”

키릴은 아틸라가 다리우스 단장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나와 동료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샹크리스 왕국에 왔소. 그리고 목적을 이루려면 강력한 성기사의 힘이 필요하지.’

‘키릴 크레센시아 같은.’

“바라키엘 신전엔 내가 원하는 성물이 있다.”

“성물이라고요?”

“그래. 나와 동료들은 그 성물을 찾기 위해 샹크리스에 온 거다. 물론 그것 말고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그렇게 말한 아틸라의 눈이 바토리를 바라봤다.

그 다른 이유 중 하나를, 바토리가 알아서 해결했기 때문.

‘나바라와 샹크리스의 동맹.’

원래는 아틸라가 다리우스 단장을 통해 시도하려던 그 일을 바토리가 선수쳐서 해 버렸다.

‘하여간 눈치 하난 빠르다니까.’

아틸라의 눈빛을 읽은 바토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키릴이 확인차 물었다.

“그 성물을 찾는 것과 별개로, 우리와 했던 약속은 지켜 주시겠죠?”

“바라키엘 신전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에 대한 것 말인가.”

“네.”

“물론 지킨다. 애초에 성물을 얻으려면 그것부터 해결해야 하니까.”

바라키엘 신전은 샹크리스 왕국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면 열흘쯤 걸리는 거리.

그러나 아틸라는 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신전의 위협은 그리 다급한 일이 아니었고.

또한 아틸라는 키릴과 틈틈이 대련을 하고 싶었다.

‘지금의 키릴은 원작보다 강하다.’

다만 갑작스레 늘어난 성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틸라는 키릴을 조금 더 완성된 성기사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욱 강해진 키릴과 대련하고 싶었다.

아틸라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련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샤를 녀석이 최고의 대련 상대이긴 하지만.’

샤를은 자신의 동료가 아니다.

다음번에 샤를을 만났을 때 적이 되어 있을지, 아니면 아군이 되어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가장 최근의 만남에서는 힘을 합쳐 카르타고를 상대했었지.’

그럼에도 카르타고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카르타고는 쓰러졌지만.

그건 샤를뿐 아니라 카스피, 도롱뇽, 펀치, 크누트, 그리고 바토리마저도 아틸라에게 힘을 보탠 결과였다.

‘카르타고는 범접할 수 없는 강자다.’

그런 카르타고를.

그리고 그보다 강력할지 모를 상대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아틸라는 더욱 강해져야 했다.

아틸라가 키릴을 대련 상대로 선택한 이유였다.

‘키릴에겐 내 힘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물론 오토와 카스피도 일반인의 범주에선 괴물과도 같은 강자다.

그러나 아틸라가 온전한 힘을 발휘해 싸울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경험치 획득을 통해 강해지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틸라의 레벨업 속도는 현저하게 더뎌졌다.

레벨이 오를수록 다음 레벨까지의 필요 경험치가 늘어났기 때문.

그리고 아틸라가 키릴을 선택한 것엔 또 다른 까닭이 있었다.

‘키릴도 더욱 강해져야 한다.’

키릴은 다가올 대격변에서 샤를과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활약을 펼칠지 모르는 인물이다.

‘키릴은 성기사다.’

대격변에서 만나게 될 적들 중 상당수는 마계와 명계의 존재.

놈들을 상대로 키릴의 성력은 큰 도움이 된다.

‘나바라 왕국과의 동맹 관계에서도 힘이 될 테고.’

또한 키릴은 지금 당장 성력을 더욱 갈고닦아야 할 이유가 있다.

‘마기로 가득한 바라키엘 신전으로 들어가려면 키릴의 ‘보호 오러’가 필요하니까.’

정확한 기술명은 ‘성스러운 오러’.

샹크리스의 몇몇 뛰어난 사제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이 기술은.

마기로부터 시전자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스킬이다.

‘쉽게 말하면 도롱뇽의 마법 저항의 오러와 비슷한 거지.’

도롱뇽의 오러가 물, 불, 대지, 바람의 4개 속성 마법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면.

성스러운 오러는 마기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샹크리스의 사제들이 오직 자신에게만 오러를 적용시킬 수 있는 것에 반해.

키릴이 앞으로 개화하게 될 오러는.

‘파티원에게도 적용이 된다.’

지금의 키릴은 성스러운 오러를 갖고 있지 않다.

원작에서도 이 오러는 키릴이 샤를의 동료가 되고 난 후 발현하는 기술이니까.

그러나 아틸라는, 원작보다 강해진 지금의 키릴이라면 성스러운 오러를 발현하는 것쯤 시간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틸라는 키릴이 성스러운 오러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었다.

실전을 방불케하는 대련을 통해.

* * *

냇가에 앉아 돌멩이를 던지던 카스피가 중얼댔다.

“칫. 재미없어.”

옆에 있던 오토가 물었다.

“뭐가 말이우?”

“저 키릴인지 뭔지 하는 성기사가 온 이후 말이야. 아틸라는 틈만 나면 저 여자랑 대련만 하잖아.”

카스피의 말대로, 아틸라는 오늘도 키릴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바토리가 말했다.

“그건 키릴, 저 아이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바토리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스피가 입을 내밀었다.

“나도 강하거든.”

“흐응. 네가 키릴보다 강하다는 말이더냐.”

그 물음에 카스피는 즉답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틸라가 말하지 않았더냐. 대련을 통해 키릴의 ‘성스러운 오러’를 발현시켜야 한다고. 그래야만 바라키엘 신전에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건 그렇지만.”

도롱뇽이 끼어들었다.

“어이 살쾡이 미물. 바토리 할망구나 야만 미물은 성스러운 오러인지 뭔지 하는 그깟 잡기술이 없어도 별문제가 없다. 이몸 또한 웬만한 마기쯤은 우스울 뿐이지. 하지만 너나 종복 미물, 그리고 여기 곰탱이 새끼는 위험해. 즉 야만 미물은 너희 약골들을 위해 저 성기사 미물의 힘을 발현시키려는 거다.”

바토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흐응? 네가 웬일이더냐. 아틸라의 편을 다 들어주고.”

“펴, 편은 무슨! 저 살쾡이 미물이 하도 어린애 같은 소릴 늘어놓기에 한 마디 했을 뿐이다!”

그렇게 말한 도롱뇽이 오히려 물었다.

“할망구. 너야말로 왜 구경만 하고 있는 거냐. 저 성기사 미물의 숨겨진 힘을 발현시키는 데엔 너만 한 적임자가 없을 텐데.”

“흐응? 눈치채고 있었더냐.”

“흥. 날 뭘로 보고.”

바토리의 손가락이 도롱뇽의 자그만 코를 눌렀다.

“뭐, 뭐야! 왜 눌러!”

“그러지 않아도 슬슬 움직이려던 참이었느니라.”

바토리는 냇물에 젖은 발의 물기를 닦고, 신발을 신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틸라와 키릴을 향해 걸어갔다.

“야만전사야.”

그러고는 말했다.

“내가 키릴과 대련해 보겠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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