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92화 (192/425)

192. 연회 (1)

‘이게 무슨……!’

다리우스가 아틸라를 올려 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눈은 아틸라의 왼손에 들린 짤막한 검을 향해 있었다.

‘성검!’

“좋은 경기였소 다리우스 단장. 그리고 키릴.”

그렇게 말한 아틸라가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성기사들을 향해 질주했다.

“다, 단장과 부단장이……!”

“게다가 키릴마저 낙마했다고……?”

성기사들은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경기는 슬슬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다리우스, 요한, 키릴이 모두 낙마한 상황.

이제 아틸라를 막을 성기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이고 아틸라 님!”

때맞춰 오토와 8팀의 용병들이 알폰소의 4개 팀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아틸라와 합류했다.

그사이 8팀의 용병 중 절반이 낙마했지만.

알폰소의 4개 팀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새끼. 생각보다 빨리 연막에서 벗어났군.”

“말도 마쇼! 살다살다 그런 아비규환은 처음이었으니까!”

오토가 킬킬대며 손을 내저었다.

아틸라도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무튼 제법이었다 오토.”

“별말씀을! 친구끼리 쑥스럽게 그러는 거 아니요! 으하하하하하!”

아틸라와 오토가 말을 달렸다.

살아남은 8팀의 용병 넷이 그 뒤를 따랐다.

경기의 흐름은 이미 8팀에게로 넘어갔다.

게다가.

오토의 보조를 받는 아틸라는 더욱 강했다.

“대단하다! 8팀!”

“달려! 계속 달리라고!”

아틸라의 8팀은 경기장을 종횡무진했다.

머지않아 우렁찬 나팔 소리가 울렸다.

“경기 종료!”

관중들이 기립해 환호했다.

우렁찬 박수 소리가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메웠다.

“야만전사야!”

“아틸라! 영주 나리!”

바토리와 카스피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끼아옹! 펀치가 포효했고 도롱뇽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대며 웃었다.

동료들의 모습을 관중석에서 찾은 아틸라가 씩 소리 없이 웃었다.

오토가 제 가슴을 두드리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 * *

그날 밤.

우승팀을 축하하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연회가 벌어진 곳은 샹크리스 왕성.

샹크리스 국왕의 지루한 축사에 이어, 보기에도 화려한 술과 음식이 테이블마다 가득 채워졌다.

“아틸라 님! 샹크리스 왕성의 술맛이 아주 일품이오! 으하하하하!”

오토는 8팀의 용병들과 둘러앉아 신나게 술을 마셨다.

용병들이 떠들었다.

“오토 대장! 이제 우린 어디로 가는 거요!”

“맞소!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함께 용병단이나 꾸려 봅시다!”

“오토 단장과 아틸라 돌격대장! 줄여서 오틸라 용병단! 어떻소!”

“그거 좋군! 나는 찬성이다!”

“나도 나도! 으하하하하하!”

오토뿐 아니라 용병들도 한껏 들뜬 얼굴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었다.

8팀에 배정받았던 그들은 용병 중에서도 인맥이 없는 자들.

이렇게 왕성 안의 화려한 연회 같은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힘든 육체노동을 마치고 마시는 술맛이 아주 별미이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저 아름다운 두 아가씨는 누구요?”

“그러게 말이오. 나도 궁금했었는데.”

용병들이 코를 벌름대며 바토리와 카스피에게 관심을 가졌다.

냉미녀의 포스를 풀풀 풍기는 바토리에겐 용병들도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지만.

“헤에? 아름다운 두 아가씨? 그 말은 나도 아름다운 아가씨라는 뜻이잖아? 아하하하하!”

털털한 성격의 카스피는 금세 용병들 사이로 녹아들었다.

잠시 후엔 오토와 어깨동무를 하며 신나게 술을 퍼마셨다.

“하하하하! 그래서 그때 영주 나리가 말이야!”

“그, 그 이야기는 또 왜 하는 거요!”

카스피와 오토의 주정을 듣던 아틸라는 묵직한 술병을 손에 들고 테라스 쪽으로 나갔다.

맛 좋은 술을 마시며 바라보는 별하늘은 아름다웠다.

아무리 마셔도 취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곧 두 번째 성물인가.’

바라키엘 신전.

그곳의 마기를 정화하고 나면.

오르피나의 두 번째 성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남은 건 두 개.’

아틸라는 오르피나의 성물을 가급적 빠르게 찾고 싶었다.

처음 성물을 찾으려 했던 이유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크라켄과 싸울 때였지.’

툴루즈 백작령에 등장했던 소환마귀 크라켄.

그날 아틸라는 샤를, 바토리, 오토, 카스피, 피핀, 제롬 등 많은 영웅급 등장인물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크라켄을 쓰러뜨렸다.

‘거대화한 펀치도 있었군.’

그 와중에 샤를은 오른팔을 잃었었고.

바토리 역시 왼팔의 마력을 과도하게 쓴 탓에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후유증이라면 샤를 역시 마찬가지지.’

바토리는 현자의 돌로 어느 정도 후유증을 치료했다.

또한 현자의 돌이 지닌 ‘억제’의 마력으로 재차 폭주할 가능성을 줄여 놓았다.

그러나 샤를은 아직 오른팔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래서 아틸라는 샤를에게 빚을 진 기분을 갖고 있었고, 언젠가 그의 오른팔도 완전하게 치유시켜 줄 생각이었다.

‘지금도 무지막지하게 강한데. 오른팔을 회복시키고 나면 더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겠지.’

그러나 필요한 일이다.

현재 이 세계는 자신이 만들었던 패영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버서커 카르타고의 등장.

사도 ‘엘’과 ‘아자젤’.

공간 환술이 불러일으킨 세계선의 붕괴.

중간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악마들.

그리고.

- 머지않아 거대한 변화가 현세를 덮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대격변(大激變)의 시대가 너희 앞에 찾아올 것이다.

다가올 대격변.

‘대비해야 한다.’

물론 아틸라의 최종 목표는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정섬을 찾아 헤매고.

사도 아자젤을 추격하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힘을 되찾는 과정들 모두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였으니까.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틸라는.

이곳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이 세계에.

그리고 동료들에게 정을 붙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구로는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고양이 녀석도.’

하지만.

이 세계의 위협을 방관할 생각 또한 없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오르피나의 성물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처음의 목적처럼, 단순히 리베르의 구슬을 부활시켜 바토리를 관조자로 되돌리기 위함이 아니다.

오르피나의 네 성물엔 특별한 힘이 담겨 있다.

그것이 한데 모인다면, 그리고 향후 바토리에게 주어질 ‘어떤’ 시련을 이겨 낸다면.

‘바토리는 이전의 관조자 시절보다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성장한 그녀의 힘은 다가올 대격변에서 큰 힘이 될 것이다.

그 여파로 자연스레 부활하게 될 리베르도.

오른팔의 후유증을 이겨 낼 샤를 역시도.

“훌륭한 경기였소. 아틸라 경.”

묵직한 목소리가 아틸라를 생각에서 끌어냈다.

아틸라는 뒤를 돌았다.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두툼한 손.

샹크리스 국왕이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국왕의 손을 맞잡았다.

국왕 옆엔 후계자로 내정된 첫 번째 왕자와, 막내인 프리실라 공주가 뒤따르고 있었다.

“아……!”

아틸라와 눈이 마주친 프리실라 공주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아틸라는 물끄러미 공주를 바라봤다.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리고 바토리가 나바라 왕국에서 변장했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소설 속에선 대사 몇 마디 날리고 사라지는 공주였는데.’

소설 패왕영웅전기에서 프리실라 공주의 비중은 상당히 낮다.

원작에서 프리실라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발루아로 시작해 아스투리아, 노르드, 후마이야, 그리고 나바라 왕국을 차례로 정복한 샤를이.

다음 차례로 샹크리스 왕국을 침공했을 때.

‘크레센시아 기사단이여!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프리실라는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의 명예 기사.

그녀는 국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기사들과 함께 출전해 샤를의 군대를 막아선다.

‘성기사들이여! 우리는 빛의 신 포이베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분의 인도에 따라, 남쪽의 침략자 샤를 아인하르트를 막아 내야 합니다!”

한편 샤를은 샹크리스 왕국과 전쟁을 치르며.

지금까지의 정복전쟁 때는 만나지 못했던 엄청난 강자를 조우하게 된다.

패영전의 여주인공.

키릴 크레센시아.

‘너는.’

샤를은 키릴과 검을 섞으며 놀라운 감각을 마주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샤를은 이전까지 ‘신력’을 지닌 상대와 겨뤄 본 적이 없었다.

샤를에게 유일하게 패배를 안겨 주었던 엘프 영웅, ‘타리엘 페살라스’도 신력을 지닌 자는 아니었으니까.

‘좋은 승부였네, 샤를 아인하르트. 자네는 앞으로 더욱더 강해질 테지.’

그러나 키릴은 샤를처럼 신력을 지닌 전사였다.

군신(軍神) ‘아레스’의 화신, 샤를 아인하르트.

광신(光神) ‘포이베’의 화신, 키릴 크레센시아.

‘당신은……?’

키릴 또한 샤를의 힘을 알아본다.

그렇게.

패영전의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말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아, 아틸라 경.”

프리실라의 맑은 목소리가 아틸라의 귀에 스몄다.

밝은 레몬빛 머리카락.

보석처럼 빛나는 노란 눈동자.

아틸라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공주에 대한 예를 표했다.

샹크리스 국왕이 말했다.

“딸아이가 무척이나 아틸라 경이 마음에 든 모양이군. 평소엔 남 앞에 나서길 그렇게도 싫어하는 아이인데, 오늘은 먼저 연회에 참석하겠다며 선수를 치는 게 아니겠소. 허허허허허.”

“아바마마…….”

발갛게 얼굴을 물들인 프리실라가 부끄럽다는 듯 속삭였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국왕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옆의 아름다운 분은.”

그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던 왕자가 입을 열었다.

기척을 느낀 아틸라가 옆을 돌아봤다.

어느새 다가온 바토리가 왕자를 향해 우아한 궁정식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아틸라 경의 동료이자 혼약자, 바토리 에르제베트라 합니다.”

아틸라는 쩌억 입을 벌렸다.

이봐. 그 혼약자 코스프레는 진즉 끝난 게 아니었어?

“호, 혼약자……?”

프리실라 공주 역시 혼약자라는 말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국왕과 왕자는 달랐다.

그들은 ‘바토리 에르제베트’라는 이름에 주목했다.

‘설마.’

바토리 에르제베트.

먼 옛날, 샹크리스 왕국의 궁정 마법사를 지냈던 전설의 마법사.

‘그럴 리가.’

국왕은 선대왕에게 들었던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외모를 떠올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만물을 꿰뚫어보는 듯한 신비로운 검은 눈.

오뚝한 콧날 아래, 갓 피어난 장미를 연상케 하는 붉은 입술.

그 여인이 국왕의 눈앞에 있었다.

“다, 당신은 설마……!”

바토리는 굳이 자신에 대해 부연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품에서 꺼낸 백조의 메달을 국왕에게 내보였을 뿐이다.

“아바마마! 이것은……!”

“배, 백조의 메달!”

그것 이상의 확실한 설명은 없었으니까.

“백조의…… 메달……?”

그제서야 프리실라도 상황을 알아챘다.

그녀의 놀란 눈동자가 바토리를 바라봤다.

프리실라를 향한 바토리의 입술이 매혹의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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