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토너먼트 (5)
키릴은 사실 아틸라와 일대 일 결투를 벌이고 싶었다.
첫 결투 때 아틸라에게 패한 것에 대해 호승심이 인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아틸라라는 기사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키릴을 다리우스가 만류했다.
‘그만두거라. 키릴.’
열흘 전.
아틸라 일행에게 숙소를 마련해 준 다리우스는 은밀히 키릴을 불렀다.
그리고 대사제에게 들었던, 메피스토펠레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고위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인간계에 모습을 드러냈었고.
누군가의 손에 소멸당했다는 것을.
‘대사제님의 말로는 같은 고위악마, 어쩌면 대악마일 가능성이 있다 하시더군.’
키릴은 놀랐다.
그러나 이어진 다리우스의 말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틸라 경이 고위악마?’
다리우스는 아틸라가 그 ‘고위악마’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키릴 역시 아틸라를 처음 봤을 땐 중급 악마 벨페고르라 의심했었다.
같은 중급 악마인 크로셀을 죽였고, 또 아틸라의 몸에서 마기 비슷한 기운이 감지됐었기 때문.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키릴은 아틸라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지웠다.
바토리의 보증 때문이 아니었다.
무엇 때문이었더라.
‘그래.’
키릴은 기억했다.
벨페고르의 둥지에 갇혀.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의 늪을 허우적댔을 때.
- 네 영혼을 타락시킨 뒤 취한다면 난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악마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벼락처럼 강림한 아틸라는 자신을 구해 줬다.
‘거기 있었나. 거짓의 악마 벨페고르.’
그때 아틸라가 벨페고르에게 맹공을 퍼부어 소멸시키는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기절한 자신을 말에 태우고 하르티칸을 향하던 길에 보였던.
‘임무를 마쳤으면 단에 돌아가 보고를 해야지. 안 그래?’
시원하게 미소하는 입술 사이로 드러난 하얀 이.
그때를 떠올리던 키릴의 입술이 희미한 호선을 그렸다.
‘내가 무슨……!’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 냈다.
사심이 들어가서는 곤란하다.
이번 사안엔 왕국의 사활이 걸려 있다.
나는 샹크리스의 성기사다.
‘아틸라 경이 악마일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존재한다면, 난 그것을 밝혀내야 한다.’
키릴은 다리우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만약.
아틸라 경이 악마가 맞는다면.
‘반드시 내 손으로 쓰러뜨린다.’
그렇게 토너먼트에 출전한 키릴은 다리우스와 함께 아틸라를 협공했다.
아틸라의 실력은 대단했다.
처음 맞붙었을 때보다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강함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굉장한 승마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기술.
거기에 더해.
그의 군마는 말 그대로 바람처럼 빨랐다.
‘말도 안 되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틸라는 키릴과 다리우스의 협공에 적절히 대응하며 상급성기사들을 각개격파했다.
물론 그 모습이 그리 여유로워 보이진 않았다.
키릴은 직감했다.
아틸라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키릴. 두 번째 작전으로 간다.”
다리우스의 속삭임에 키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부단장 요한이 자신의 진영을 벗어났다.
다리우스는 아틸라에게 강한 일격을 내질렀다.
파캉!
그것을 아틸라가 막았다.
이번 일격은 상당히 강했기에 아틸라의 자세가 아주 약간 흐트러졌다.
그 실낱같은 틈으로 키릴이 아밍 소드를 뻗었다.
‘완벽한 타이밍이다!’
키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경기를 시작한 이후 가장 깔끔하게 들어간 공격.
‘지금의 공격이라면!’
키릴은 기대했다.
아틸라가 이 일격을 막아 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틸라는 군마의 몸과 자신의 상체를 동시에 비트는 기술을 발휘해 키릴의 공격을 피했다.
키릴은 어이가 없었다.
‘대체 저 승마술은……!’
아틸라가 말을 달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다리우스가 뒤를 쫓았다.
“또 도망칠 셈인가!”
아틸라는 어렵지 않게 다리우스의 추격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명의 성기사를 추가로 낙마시켰다.
그때 기척을 죽이고 나타난 부단장 요한이 아틸라에게 검을 뻗었다.
키릴은 지금이 두 번째 작전을 마무리 지을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이다!’
키릴을 돕기 위한 성기사들은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들 역시 다리우스의 두 번째 작전에 대해 알고 있다.
그래서 부단장 요한이 자리를 이탈했을 때, 예정된 진을 펼치며 키릴에게 접근했다.
키릴의 몸이 성기사들 사이에 묻혔다.
이윽고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파캉!
요한이 휘두른 검이 아틸라의 검과 부딪쳤다.
그때를 노려 다리우스가 창을 뻗었다.
마치 하나의 몸이 쏘아 낸 것 같은 완벽한 연계 공격.
키릴은 감탄했다.
‘역시 대단하다. 단장과 부단장의 호흡은.’
그러면서 키릴은 아틸라를 노려봤다.
아틸라는 다리우스와 요한의 무기를 동시에 받아 내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틈틈이 시선을 움직여 무언갈 찾는 여유마저 보였다.
키릴을 찾는 것이었다.
‘내가 몸을 숨겼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아틸라의 몸놀림이 더욱 날렵해졌다.
키릴이 빠진 자리에 부단장이 들어갔고, 부단장과 단장은 환상적인 연계를 펼쳤지만 아틸라에겐 통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성기사는 그들만이 아니었다.
“단장!”
“지금 갑니다! 부단장!”
3개 팀의 성기사들이 아틸라에게 몰려들었다.
그것만은 아틸라도 부담이 되는 모양인지, 재차 놀라운 승마술을 보이며 달아났다.
키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예정대로다.’
성기사들은 마구잡이로 아틸라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정교하게 짜인 ‘포위의 진’을 펼치며 아틸라를 구속하고 있었다.
또한 단장과 부단장은 집요하게 아틸라를 추격하며 그의 시야를 강제시키고 있다.
“언제까지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은가!”
“더 이상은 못 간다!”
아틸라는 성기사들의 ‘포위의 진’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러나 그건 다리우스의 작전이었다.
키릴 또한 아틸라가 그곳으로 말을 달려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키릴은 성기사의 무리 뒤에 숨어 아틸라의 사각으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말 등을 밟고 자세를 낮췄다.
‘바로 지금!’
키릴이 말 등을 지르밟으며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키릴은 확신했다.
아틸라는 자신의 위치를 눈치채지 못했다.
다리우스 단장의 작전이 통한 것이다.
‘이번이라면!’
다리우스는 두 가지의 작전을 세워 놨었다.
첫 번째 작전은 다리우스와 키릴이 직접 아틸라를 상대하고, 나머지 성기사들이 방해꾼들을 견제하며 아틸라를 포위하는 것.
그러나 아틸라는 생각지도 못한 승마술을 갖고 있었고, 이 작전은 실패했다.
‘저런 승마술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래서 다리우스는 두 번째 작전을 실행했다.
그것은 부단장 요한이 2팀의 지휘를 포기하고, 아틸라를 쓰러뜨리는 데 힘을 보태는 것.
물론 길게는 쓸 수 없는 작전이었다.
알폰소 왕자의 4개 팀을 요한의 지휘 없이 막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요한이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래서 다리우스는 키릴에게 결정타를 맡겼다.
그는 키릴의 공격력과 스피드가 자신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키릴은 샹크리스 최강의 성기사다.’
그런데 두 번째 작전을 실행하기 전,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뒤늦게 등장한 8팀.
그들이 아틸라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알폰소의 4개 팀을 막아 내고 있는 것이다.
다리우스는 크게 놀랐다.
‘설마 아틸라는 처음부터.’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단독으로 우릴 상대하려 했던 것인가!’
기사 혼자서 36인의 성기사를 상대한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떠올릴 수 없었다.
다리우스의 눈이 8팀의 용병들을 이끄는 오토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저 오토란 사내는 아틸라의 동료.’
분명했다.
미리 언질이 없었다면 결코 저런 행동을 취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다리우스와 성기사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우릴 얕잡아봤군. 아틸라.’
계획대로 키릴은 성기사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다리우스와 요한은 아틸라를 협공하며 그의 시야를 강제했고.
아틸라는 성기사들의 ‘포위의 진’을 뚫기 위해, 예정된 장소로 말을 달리고 있다.
“걸려들었구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성기사들이 아틸라의 앞을 막아섰다.
가장 취약한 듯 보였던 그 지점은, 실은 가장 대비가 잘 된 곳이었다.
아틸라가 군마의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던 키릴은.
타앗!
아틸라의 덜미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눈이 뒤통수에 달리기라도 하지 않은 이상, 절대로 볼 수 없는 위치.
키릴은 아틸라의 사각을 완벽하게 이용했다.
‘이대로 아틸라를 낙마시키고, 말을 빼앗는다!’
그러면서 키릴은 대비했다.
아틸라는 고위악마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가 정말로 고위악마가 맞는다면.
자신의 공격이 명중하는 순간,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고오오오오.
키릴의 아밍 소드에 엄청난 성력이 덧씌워졌다.
그것이 아틸라를 습격했다.
그 순간 키릴은 투구 속에 감춰져 있던 아틸라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봤다.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어떻게!’
아틸라의 왼손이 움직였다.
카앙!
내뻗은 무휼이 키릴의 아밍 소드를 막았다.
키릴의 성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무휼 또한 성검이었고, 아틸라는 키릴의 성력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용력을 가지고 있었다.
키릴은 당황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어떻게 자신의 공격을 알아채고, 막아 낼 수 있었단 말인가!
“네 단장의 속을 좀 들여다봤거든.”
아틸라가 씩 웃었다.
그 말대로 아틸라는 키릴이 사라졌다는 것을 감지하자마자 다리우스에게 심안을 시전했다.
경기 내내 아틸라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다리우스였기에 당연히 심안은 통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그의 심언(心言)을 통해, 아틸라는 키릴의 다음 수를 읽어 냈다.
‘같잖은 수를.’
그러나 위험한 수였다.
심안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아틸라는 키릴의 일격을 결코 막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아 냈다. 그리고.’
아틸라의 손이 키릴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목을 칼자루로 내리쳐 아밍 소드를 떨어뜨렸다.
“크흑……!”
뒤따라오는 다리우스를 향해 키릴을 내던졌다.
다리우스는 허둥대며 키릴의 몸을 받았고, 그들을 향해 아틸라가 폭풍처럼 말을 몰았다.
다리우스는 당황했다.
갑작스레 날아온 키릴을 받아든 탓에, 그는 아틸라의 공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단장!”
부단장 요한이 아틸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아틸라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크허억……!”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른 채 말에서 떨어졌다.
“부단장께서!”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성기사들이 소리쳤다.
그들의 동요는 금세 사그라졌다.
키릴을 안아든 다리우스를 향해 아틸라가 벼락처럼 방패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콰아앙!
말 그대로 벼락이 치는 듯한 소음이 경기장을 울렸다.
주인을 잃은 군마가 이히힝! 달려 나갔다.
지면에 떨어진 다리우스와 키릴이 멍한 얼굴로 아틸라를 올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