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토너먼트 (4)
오토는 아틸라에게 받은 임무가 있었다.
“어이 오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열흘 전, 다리우스의 집무실을 나서 숙소에 도착한 동료들에게 아틸라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이었다.
“뭐, 뭘 말이우?”
아틸라는 심안을 통해 다리우스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틸라의 선택은 다리우스의 계획을 그대로 따라주는 것이었다.
한 명의 방해꾼도 없이.
“이번 토너먼트는 여덟 개 팀으로 치러질 거다. 성기사들로 구성된 1팀부터 3팀. 그리고 타국의 기사와 용병들로 채워진 4팀부터 8팀.”
“엥?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유?”
“그건 네가 알 것 없고. 아무튼 우린 8팀으로 소속될 거다. 특별한 인맥 없는 용병들의 그저 그런 팀이지.”
“엥? 방금 우리라 하셨소?”
“그래. 너도 출전할 거다. 토너먼트에.”
“내, 내가 말이우?”
오토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여, 역시 날 친구라 생각하는 거요? 아틸라 님!”
나바라 왕국을 떠나며, 오토는 아틸라에게 자신이 친구냐고 물었었다.
‘정말 내가 아틸라 님의 친구인 거요? 그런 거요?’
“친구는 개뿔.”
아틸라가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나 오토는 싱글벙글이었다.
“그래! 내가 할 일이 뭐요! 이 오토 친구에게 맡겨만 주쇼!”
아틸라는 오토에게 할 일을 설명했다.
그 일이라는 게 별거는 아니었다.
8팀에 소속된 용병들을 만나 친해질 것.
그리고 토너먼트에서 오토를 지휘관으로 하는 명령체계를 갖출 것.
“어차피 놈들은 돈을 좇는 용병이다. 네가 어느 정도 검술 실력을 보인 뒤 적당히 금화로 구슬린다면, 모두 네 말을 따르게 될 테지.”
오토가 껄껄 웃으며 제 가슴을 두드렸다.
“아이고 아틸라 님! 내가 누군지 그새 잊으셨소! 내가 바로 오동나무 용병단의 단장! 철혈귀검 오토요! 으하하하하!”
그 말대로 오토는 용병들을 구워삶는 데 재주가 있었다.
하룻밤 거나하게 술을 먹이고, 이튿날 가벼운 결투를 벌이는 것으로 오토는 8팀의 용병들을 휘어잡았다.
물론 술판은 하룻밤만으로 끝나지 않고 매일 밤마다 이어졌지만.
아틸라도 몇 번인가 술자리에 모습을 드러내 용병들과 어느 정도의 친분을 쌓았다.
“정말이오? 정말 그 말대로만 하면 금화를 그만큼 주겠다는 거요?”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요! 나 철혈귀검 오토는 결코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오! 으하하하하!”
아틸라의 계획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랬다.
1팀부터 3팀까지의 모든 성기사들을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것.
당연히 오토는 극구 반대했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아무리 아틸라 님이라 해도 상대는 성기사요!’
물론 아틸라도 혼자서 36인에 달하는 성기사를 모조리 쓰러뜨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성기사들은 모두 엄선된 자들이다.
상급기사들.
두 명의 기사대장.
단장보다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지만, 상당한 실력자에 속하는 부단장 요한.
성기사단장 다리우스.
그리고 키릴까지.
그들 모두를 아틸라가 쓰러뜨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설령 쓰러뜨릴 수 있다 해도 자제해야 하는 일이었다.
‘만약 내가 홀로 36인의 성기사를 모조리 쓰러뜨린다면, 그땐 정말로 저들이 날 대악마 같은 존재로 볼 테니까.’
그래서 아틸라는 키릴과 다리우스를 제외한 성기사들과는 최대한 교전을 피할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키릴과 다리우스를 쓰러뜨린다.
그 정도면 다리우스와 대사제의 의심을 사지 않는 선에서, 다리우스가 내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바토리의 정체를 밝히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바토리는 백조의 메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도움을 받는다면 토너먼트 없이도 키릴의 힘을 빌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틸라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먼 옛날 샹크리스 왕국의 궁정 마법사였던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위대한 존재였다.
‘그녀의 후손(실은 본인이지만)이 왕국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이미 패영전 역사는 많은 것이 바뀌어 버렸으나.
그렇다고 굳이 더욱 역사를 뒤트는 행동을 아틸라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홀로 성기사들을 상대한다는 아틸라의 계획을 보다 수월하게 실천하려면 방해꾼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오토의 임무는 이것이었다.
“오토. 네 첫 번째 임무는 8팀의 용병들을 이끌고 알폰소의 기사 팀을 막는 거다. 분명 녀석은 4팀부터 7팀까지의 인원을 통제하고 있을 거다.”
그래서 오토는 그렇게 했다.
살쾡이 암살자가 무지성으로 펼쳐 놓은 연막을 뚫고.
마찬가지로 연막에 빠져 허우적대던 8팀의 용병들을 한자리에 모아 군마에 태운 뒤.
이미 시합이 시작된 원형 경기장을 전력으로 내달려 알폰소의 앞을 가로막았다.
“살쾡이 암살자 때문에 조금 늦었수. 아틸라 님.”
그런 오토를 보며 알폰소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뱉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설마 그 인원으로 우리들을 막아 보겠다고?”
“오우 정답이우.”
오토가 히죽 웃으며 검과 방패를 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8팀의 용병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물론 용병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보았다.
며칠 전 오토가 결투를 통해 보였던 놀라운 검술과.
토너먼트에서 상대를 낙마시킬 때마다 쥐여 주겠다며 흔들던.
오토의 두둑한 금화 주머니를.
‘잘만 되면 한몫 제대로 챙길 수 있다!’
‘게다가 오토는 상당한 실력의 기사!’
‘저 정도의 기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용병들은 조금 전, 오토보다 더욱 뛰어난 기사를 봤다.
‘아틸라라 했던가.’
‘저런 엄청난 실력자가 있었다니!’
용병들은 아틸라가 홀로 성기사 무리를 상대하며 몇 명의 성기사를 낙마시키고.
또 다리우스와 키릴의 협공을 안정적으로 막아 내는 광경을 봤다.
‘어, 어쩌면 정말 우리 8팀이 우승할지도 몰라!’
‘맞아! 오토와 아틸라! 두 기사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그렇게 용병들의 사기가 점점 충전되고 있을 때.
오토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첫 번째 작전이다! 용병 새끼들아아아!”
용병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은 미리 오토에게 언질 받은 대로, 아틸라와 함께 싸우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 전사의 외침 ]
[ 모든 공격대원의 근력과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
물론 용병들은 아틸라의 눈앞에 파티 요청창이 생성됐고, 그것을 수락한 아틸라가 전사의 외침을 시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리나 이것만은 분명했다.
그들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활력이 자신들의 몸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확인했다.
“모, 몸에서 힘이 넘친다!”
“이런 놀라운 감각이 있었다니!”
“말도 안 돼!”
또한 전사의 외침은 언제나 그랬듯, 용병들의 자신감을 상승시켰다.
용병들의 입가가 히죽 올라갔다.
지금의 몸 상태라면 절대로 낙마하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절로 생겼다.
하늘을 찌를 듯 상승한 용병들의 사기를 감각하며 오토가 외쳤다.
“전군 진겨어어억! 지금부터 두 번째 작전을 실시한다!”
“우와아아아아!”
“달려달려! 용병 새끼들아!”
오토와 10인의 용병이 말을 달렸다.
그들의 상대는 알폰소를 포함한 48인의 기사.
적의 숫자는 네 배 이상 많았지만 용병들은 두렵지 않았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토너먼트 경기에서 웬만해선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전통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 외에도 그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는 구석’이, 적장인 알폰소를 향해 일직선으로 말을 달렸다.
용병들이 소리쳤다.
“오토 대장!”
“적장을 물리쳐 주십쇼!”
“믿습니다! 오토 대장!”
오토는 어느새 용병들의 대장이 되어 있었다.
열흘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질펀하게 술자리를 가진 그들은 이미 생사의 고비를 몇 차례는 함께 넘긴 듯한 동료애를 느끼고 있었다.
용병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은 지극히 단순하다.
빼어난 무력을 보이고.
두둑이 금화를 챙겨 주는 것.
“미천한 용병대장 주제에 건방진!”
알폰소가 마주 말을 달렸다.
알폰소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저 사내가 나바라 왕국의 왕일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
또한 저 미천한 용병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실은 크리엘도라 남부 대륙 내에서도 몇 없는 영웅 등급의 전사라는 것도.
무지(無知)에 대한 대가는 컸다.
카앙!
오토의 강철검과 무기를 맞댄 순간, 알폰소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무, 무슨 이런 힘이……!’
아틸라만큼은 아니지만, 오토의 힘은 강했다.
게다가 지금의 오토는 ‘전사의 외침’ 버프마저 손에 넣은 상태.
알폰소 정도의 기사가 상대 가능한 자가 결코 아니었다.
‘위험해!’
한 합의 격돌로 알폰소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그 위급한 상황에 알폰소는 본능적으로 프리실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프리실라는 우스꽝스럽게 뒤로 넘어가는 알폰소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황이 알폰소에게 믿을 수 없는 힘을 주었다.
“크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알폰소가 몸의 중심을 잡았다.
낙마할 것처럼 보였던 그가 기적적으로 회생하자 관중석의 여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것이 알폰소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오토의 강철방패가 알폰소의 어깨를 후려쳤고, 그 충격으로 알폰소는 말 위에서 떨어졌다.
* * *
알폰소가 낙마하는 모습을 곁눈으로 확인한 아틸라가 입가를 올렸다.
‘오토 녀석. 결국 해냈군.’
이것으로 기사들의 4개 팀은 우두머리를 잃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더 이상 오토가 이끄는 8팀의 용병들을 막을 수 없다.
‘이제 저들은 날 방해할 수 없다.’
승리를 향한 첫 번째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첫 번째 임무를 마친 오토가 두 번째 임무를 이어 완수하는 것.
그렇게 되면 아틸라는 이번 토너먼트에서의 목적을 완벽하게 이룰 수 있다.
파캉!
아틸라의 흑철검이 다리우스의 창날을 막았다.
그 틈을 노려 키릴이 아밍 소드를 뻗어 왔다.
그 타이밍과 방향이 어찌나 절묘했는지 아틸라는 자칫 큰 타격을 입을 뻔했다.
‘역시 키릴이다. 타고난 전투 감각이 다리우스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아.’
아슬아슬 키릴의 검을 회피한 아틸라가 자리를 벗어났다.
“또 도망칠 셈인가!”
다리우스가 소리치며 아틸라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유목민의 승마술과 기마 태세를 지닌 아틸라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다리우스와 거리를 벌리며 아틸라는 두 명의 성기사를 추가로 낙마시켰다.
그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날카로운 공격이 쇄도했다.
키릴이나 다리우스보다는 약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을 만큼 첨예한 공격.
‘그래. 너까지 가세했다는 건가.’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의 부단장, 요한 크레센시아.
그가 상급기사들의 지휘를 포기하고 다리우스와 합류했다.
‘좋은 선택이군. 어차피 상급기사로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거다.’
아틸라는 흑철검으로 요한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다리우스가 창을 찔러 왔다.
다리우스와 요한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만큼 대단히 호흡이 좋았다.
아틸라는 흑철방패를 들어 다리우스의 창 공격을 막았다.
그러면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키릴은?’
키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