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토너먼트 (3)
다리우스 크레센시아는 놀랐다.
아틸라가 속한 8팀의 다른 인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기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자마자, 아틸라가 단독으로 성기사들을 향해 말을 달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 상대해 주지.’
다리우스의 입가가 위로 올라갔다.
그는 3개 팀의 성기사들에게 진영을 갖추라 명한 뒤, 아틸라를 향해 직선으로 말을 달렸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다리우스의 오른손엔 기다란 창이 쥐여 있었다.
그는 평소엔 키릴이나 다른 성기사들이 쓰는 것과 같은 아밍 소드를 사용했지만, 기마 전투에서만큼은 창을 선호했다.
게다가 그는 창술의 달인이었다.
“다리우스 단장을 따르라!”
“우와아아아아!”
전속력으로 말을 달리는 다리우스의 뒤를 키릴과, 나머지 10인의 성기사들이 쫓았다.
그 뒤를 2팀과 3팀의 성기사들이 진을 이루며 달렸다.
‘제법 대단한 기세로군. 다리우스 크레센시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다리우스와 성기사들을 보며 아틸라는 웃었다.
그는 이번 토너먼트에서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며칠 전 중급 악마 벨페고르를 처치하며 얻은 보상.
[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
[ 보상이 주어집니다. ]
그것은.
[ 새로운 태세가 개방됩니다. ]
‘파괴 태세’(비록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후로 오랜만에 생성된 새로운 태세.
[ 기마 태세 ]
‘기마 태세’였다.
[ 주무기의 공격 사거리가 10% 증가합니다. ]
[ 주무기로 검이나 창을 들었을 때, 공격 사거리가 5% 추가 증가합니다. ]
[ 군마의 이동 속도가 5% 증가합니다. ]
[ 기마 상태에서만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아틸라의 전투는 대부분 말에서 내린 상태에서, 즉 두 발을 지면에 디딘 상태에서 이뤄졌다.
이유라면 본래가 야만족 출신인 아틸라에겐 그것이 익숙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아틸라가 지닌 몇몇 스킬이 말에 올라탄 상태에선 시전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새로운 태세, ‘기마(騎馬)’가 생성됐다.
‘이건 분명 엄청난 스킬이다.’
공격 사거리 10퍼센트 증가.
게다가 주무기로 검이나 창을 들면, 사거리는 무려 15퍼센트가 증가한다.
말의 이동 속도 증가도 가히 사기적인 기술이다.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거나, 혹은 빠르게 전장에서 이탈해야 할 때 큰 도움을 줄 기술.
게다가 아틸라에겐 기마 태세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특별한 스킬이 있다.
[ 유목민의 승마술 ]
‘유목민의 승마술’과 ‘기마 태세’의 조합이라면.
그 어떤 불리한 전장 위에 떨어지더라도 아틸라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수십 마리 군마가 내뿜는 말발굽 소리가 아틸라의 고막을 울렸다.
장창을 손에 든 다리우스의 모습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아틸라는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빠르게 원하는 것을 보여 주지. 다리우스.’
흑철검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다리우스의 군마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상대가 자신을 향해 창날을 겨누는 것을 확인한 아틸라가 태세를 전환했다.
[ 기마 태세 ]
그 순간 아틸라의 군마가 빨라졌다.
5퍼센트의 이속 증가 효과는 이렇게나 서로의 말이 가까워졌을 때 큰 차이를 드러냈다.
다리우스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빨라졌다고?’
그러나 그 정도로는 다리우스를 당황하게 할 수 없었다.
다리우스는 빠르게 지금의 상황을 분석했다.
‘그렇군. 창보다 짧은 검의 사거리를 만회하기 위해 이런 전략을 펼쳤다.’
아틸라의 흑철검은 본래 양손무기.
평범한 한손검보다 사거리가 길다.
그러나 그럼에도 창보다 길 수는 없었고, 게다가 다리우스는 보통의 것보다 한층 기다란 창을 쥐고 있었다.
‘내가 창날을 겨누는 것을 보자마자 말의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검과 창이 지닌 사거리의 격차를 줄이려는 거다.’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감히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기술.
그도 그럴 것이 날아오는 창날을 향해 더욱 속도를 높이며 전진한다는 건, 자신의 목숨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대단한 담력을 지닌 자로군.’
다리우스는 상대의 기술을 인정했다.
그리고 약간이지만, 자신의 공격이 상대를 타격하지 못할 가능성이 올라갔다는 것을 인지했다.
자신의 실수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아틸라의 기술 탓에, 결과적으로 창을 내뻗는 타이밍이 늦어진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거리는 내 쪽이 우위에 있다.’
다리우스는 아주 살짝 입가를 올렸다.
그는 여전히 승리를 자신했다.
상대가 아무리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두른다 해도, 결코 자신의 몸에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확인해 주겠다. 네가 인간인지, 아니면 악마인 것인지!’
아틸라의 동공에 새하얀 빛이 반사됐다.
다리우스가 창날에 성력을 씌웠기 때문이다.
“하아아압!”
다리우스는 아틸라를 향해 자신 있게 창을 뻗었다.
아틸라도 마주 검을 뻗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이것은!’
다리우스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불현듯 아틸라의 검 끝이 길게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마법도 아니고, 검신이 늘어날 리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틸라의 검신은 분명 길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가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고 있었다.
‘크으윽……!’
이대로라면 당하는 건 이쪽이다.
그렇게 생각한 다리우스는 내뻗던 창날을 사선으로 틀었다.
그 계획은 성공했다.
방향을 바꾼 창날은 아슬아슬하게 아틸라의 흑철검을 건드렸고, 검의 궤도를 바꿨다.
그런 줄 알았다.
‘무, 무슨 힘이……!’
그러나 어림없었다.
아틸라의 검은 다리우스의 방해에도 궤도를 바꾸지 않고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다리우스는 창자루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날카로운 파찰음이 공기를 울렸다.
파캉!
다리우스의 창과 아틸라의 흑철검 사이로 새하얀 아밍 소드가 난입했다.
그것이 아틸라의 검을 주춤하게 만들었고, 기회를 잡은 다리우스가 창날을 비틀어 흑철검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키릴 크레센시아.”
키릴의 아밍 소드가 흑철검을 뿌리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키릴과 다리우스가 힘을 합쳐 아틸라를 밀어냈다.
단순한 힘의 대결이었다면 아틸라가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샹크리스에서 가장 빼어난 성력을 지닌 두 성기사.
게다가 그중 한 명은 샤를과 비견되는 실력자였다.
투트트트틋……!
아틸라의 군마가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에도 아틸라는 유목민의 승마술을 시전해 군마의 발목과 무릎을 보호했다.
1팀의 성기사들이 좌우에서 아틸라를 습격했다.
아틸라의 군마가 춤추는 듯한 곡선을 그리며 포위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 아틸라는 흑철검을 휘둘러 두 명의 성기사를 낙마시키는 데 성공했다.
“크헉!”
“끄아아아……!”
단체전에서 낙마한 기사는 출전 자격이 회수된다.
이유는 불필요한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악마를 처단할 만큼 강력한 기사를 육성하기 위한 토너먼트라 해도.
그 기사들이 죽거나 불구의 몸이 된다면 소용없는 일이었으니까.
“감히!”
동료의 낙마에 분노한 성기사들이 아틸라에게 몰려들었다.
1팀의 성기사들뿐 아니라, 2팀과 3팀의 성기사들도 진을 이뤄 아틸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아틸라는 신기에 가까운 승마술로 활로를 찾았고, 기회가 올 때마다 검을 휘둘러 성기사들을 낙마시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키릴의 아밍 소드가 날아들었다.
아틸라는 흑철검으로 그것을 막고, 반격했다.
그러나 다리우스의 창날이 다시금 그것을 방어했다.
두 성기사의 무기가 폭풍처럼 아틸라에게 쇄도했다.
* * *
카스티야 왕국의 왕자, 알폰소는 단신으로 성기사들의 진영을 휘젓는 아틸라를 보며 경악했다.
‘저, 저게 사람인가……!’
알폰소 역시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는 실력의 기사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도 아틸라의 승마술과 검술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기사다.’
원래 알폰소가 세운 계획에 8팀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알폰소는 4팀부터 6팀까지의 기사들을 이용해 성기사들의 움직임을 봉한 뒤.
자신의 측근들로 구성된 7팀으로 다리우스와 키릴을 각개격파할 생각이었다.
‘다리우스와 키릴만 제압한다면 승산이 있다.’
그런데.
홀로 등장한 8팀의 흑기사가 자신의 계획을 망가뜨렸다.
‘아니다.’
알폰소는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이건 호재나 다름없었다.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의 양대 산맥인 다리우스와 키릴이 저 흑기사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이야말로 우두머리를 잃은 2팀과 3팀의 성기사들을 각개격파할 기회라는 의미.
물론 2팀엔 부단장인 ‘요한 크레센시아’가 있고, 3팀은 2인의 기사대장과 상급기사로 구성된 정예 부대다.
그러나 그들이 다리우스와 키릴에 비견될 정도의 실력자는 아니라는 것을 알폰소는 알고 있었다.
알폰소의 입가가 올라갔다.
검을 들어 성기사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전군! 돌격!”
대부대를 이끄는 전장의 지휘관처럼 알폰소가 외쳤다.
그 당당한 모습에 관중석의 여인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알폰소는 힐끗 고개 돌려 프리실라를 쳐다봤다.
프리실라는 처음 경기장에서 봤을 때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경기장의 전투에 몰입해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바라보는 대상이 알폰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알폰소의 얼굴이 구겨졌다.
프리실라의 시선은 8팀의 흑기사를 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알폰소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성기사들을 향해, 선두에서 말을 달렸다.
‘지금은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 저기뿐이어서 그렇다. 내가 성기사들을 낙마시킨다면 프리실라도 이쪽을 주목할 수밖에 없을 터.’
알폰소는 자그만 소년 시절, 프리실라 공주를 봤다.
그는 첫눈에 공주에게 반했다.
그리고 공주에게 어울리는 사내가 되기 위해 검술 훈련에 매진했다.
그러나 프리실라는 알폰소에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얼마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혼담이 오가기도 했지만, 프리실라 공주의 거절로 무산됐다.
알폰소에게 프리실라는 절벽 위의 꽃과 같았다.
그리고 최근 알폰소는, 프리실라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드시 꺾어 보이겠다. ‘프리실라 샹크리스’라는 절벽 위의 꽃을.’
소년의 순수했던 연심은 광기 어린 집착으로 변했다.
알폰소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목청껏 소리치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그때 한 무리의 기사들이 알폰소의 앞을 가로막았다.
알폰소는 그들의 몸에 둘러진 검은 휘장을 봤다.
‘8팀의 기사들?’
그랬다.
그들은 지금껏 모습을 보이지 않던 8팀의 기사들이었다.
11명의 기사 중 가장 근사한 차림을 한 사내가 선두로 나섰다.
그의 입가가 히죽 올라갔다.
“살쾡이 암살자 때문에 조금 늦었수. 아틸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