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88화 (188/425)

188. 토너먼트 (2)

지구의 중세 유럽엔 ‘토너먼트(Tournament)’라 불리는 경기가 있었다.

토너먼트라는 단어는 ‘맴돌다’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으며.

단체전인 ‘멜레(Melee)’와, 일대일 경기인 ‘주스트(Joust)’로 구분된다.

이중 ‘주스트’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마상창시합(馬上槍試合)’이다.

‘마상창시합의 챔피언이 결정됐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이곳, 패영전 세계관에도 지구의 중세 유럽과 유사한 토너먼트가 존재하며.

남부 대륙에서는 샹크리스 왕국이 대대적으로 토너먼트 시합을 벌이고 있다.

타국의 기사들도 상당수 참여할 만큼 인기가 좋은 이 토너먼트는 지구의 그것과는 큰 차별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하르티칸 대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토너먼트를 권장한다는 것이다.

‘빛의 기사들에게 축복과 영광을!’

‘포이베의 광명을!’

본래 지구의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와 성직자들이 토너먼트 시합을 경멸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7대 죄악’을 포함하는 야만적인 시합이라는 이유였다.

예를 들어 우승으로 자신을 뽐내고 싶어 하기에 ‘교만’.

자신을 드러내 여성을 유혹하려는 마음을 품기에 ‘음욕’.

시합 후의 파티에서 질펀하게 먹고 마시기에 ‘식탐’.

그러나 그럼에도 토너먼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고.

‘오, 토너먼트가 열린다고? 이번엔 어딘가!’

많은 귀족들은 교회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토너먼트 경기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조금 전에도 말했듯.

이곳, 패영전 세계관에서는 하르티칸 대교회가 토너먼트를 적극 권장한다.

이유라면 역시.

패영전 세계관의 악마들 때문이다.

‘악마들은 호시탐탐 중간계를 노리고 있다.’

‘빛의 신 포이베는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성기사를 원하신다.’

그런 이유로 샹크리스의 광명교는 명예로운 전투를 장려했다.

그중 하나가 토너먼트였고.

그렇기에 샹크리스의 토너먼트는 지구보다 더욱 발전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번 토너먼트는 여덟 팀이 출전합니다. 성기사들로 이뤄진 팀이 셋. 나머진 일반 기사들과 용병, 혹은 타국의 전사들로 이뤄진 팀이죠. 먼저 성기사들의 팀에 대해 알려 드리자면 다리우스 단장의 1팀과, 요한 부단장의 2팀, 그리고 상급성기사들이 주축인 3팀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팀들은…….”

차근차근 설명하는 키릴의 얼굴을 아틸라는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런 아틸라를 오토와 카스피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키릴이 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틸라가 동료들에게 미리 전해 준 내용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일행이 다리우스가 마련해 준 숙소에 머무른 지 이틀이 지난 밤이었다.

“그런 정보들을 알려 줘도 되는 건가? 우리가 함께 벨페고르를 잡은 사이이긴 해도, 토너먼트에선 적일 텐데.”

아틸라의 말대로.

아틸라가 속한 8팀과 키릴이 속한 1팀은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대였다.

“이런 정보는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기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뒤늦게 참여하게 된 아틸라 경과 오토 경이 빠르게 상황을 전달받아야만 오히려 공정한 시합이라 할 수 있겠죠.”

토너먼트엔 아틸라뿐 아니라 오토도 참가하기로 했다.

키릴은 성기사들의 3개 팀 외에도 각별히 주의해야 할 팀에 대해 말해 주었다.

“올해는 남쪽 왕국들이 전쟁 중인 탓에 북쪽 왕국의 기사들로 팀이 구성됐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요주의 팀이라면 역시,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왕자’와 그의 측근들로 구성된 7팀이라 할 수 있겠죠.”

키릴의 말대로 카스티야의 왕자, 알폰소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물론 아틸라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가장 요주의 인물이라면 역시 성기사단장 다리우스 크레센시아.’

그리고.

‘키릴.’

심지어 둘은 같은 1팀에 속해 있다.

아틸라는 다리우스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이틀 전 집무실에서 처음 다리우스를 만났을 때.

아틸라는 심안을 통해 그의 심중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날 악마로 의심하는군.’

다리우스는 아틸라에게 토너먼트에 출전하고, 또 우승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다리우스의 속셈은 뻔했다.

단체전에서 아틸라에게 맹공을 퍼붓고, 악마의 힘을 드러내는지 확인할 생각인 것.

심지어 다리우스는 3개 팀으로 이뤄진 모든 성기사들의 전력을 아틸라에게 집중할 계획이다.

참고로 이런 작전은 토너먼트 단체전에선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경기 규칙에 위배가 되지 않는다는 뜻.

“전 아틸라 경과 함께 바라키엘 신전의 위협을 제거하길 원합니다.”

“그거 고맙군.”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토너먼트에 소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키릴이 방을 나섰다.

키릴이 사라진 출입문을 바라보며 아틸라는 피식 입가를 올렸다.

* * *

시합 날이 밝았다.

하르티칸의 거대한 원형 경기장 안엔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다리우스 크레센시아!”

“이번엔 다리우스 단장과 키릴 경이 같은 팀에 속했으니 우승은 확정이군!”

관중석의 상석엔 샹크리스 국왕과 네 명의 왕자, 그리고 세 명의 공주가 앉아 있었다.

그중 막내인 프리실라 공주의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나바라 왕국에서 바토리가 변장했던 것처럼 긴 레몬빛 머리칼과, 같은 색의 빛나는 눈을 지니고 있었다.

“프리실라 공주 전하다.”

“공주 전하의 아름다움은 왕국 제일이지!”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왕자가 청혼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그때 새하얀 군마를 탄 ‘알폰소 카스티야’ 왕자가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태양빛을 받은 그의 갑주가 눈부셨다.

그는 이번 토너먼트를 위해 새로 갑주를 맞췄다.

다그닥 다그닥, 프리실라 공주 방향으로 말을 몰고 간 알폰소 왕자가 바닥에 내려섰다.

그러고는 공주를 향해 절도 있는 궁정식 예를 표했다.

그의 입엔 새빨간 장미 한 송이가 물려 있었다.

“샹크리스 왕국의 일곱 번째 축복. 힐데가르다 숲과 일곱 무지개의 수호자.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의 명예 기사. 프리실라 샹크리스 공주 전하께 인사드리오.”

인사를 마친 알폰소가 입에 물었던 장미를 손에 쥐고 공주에게 바치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젊은 여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부러워했다.

알폰소 왕자는 빼어난 검술 실력뿐만 아니라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프리실라 공주는 살짝 시선을 돌려 그의 구애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아름답고 도도하군. 프리실라 공주.’

알폰소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런 고고한 꽃을 꺾어 무너뜨릴 때의 쾌감이야말로 더욱 짜릿한 법이지.’

알폰소뿐 아니라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많은 기사들이 여인에게 장미꽃을 전했다.

연모하던 여인에게 기사들이 구애의 뜻을 전하는 이 같은 광경은, 토너먼트가 시작되기 전의 짧은 동안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아름다운 그대에게 이 장미를 바치겠소!”

“승리의 영광을 그대에게!”

한편 아틸라는 8팀에게 배정된 대기 공간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경기장으로 통하는 창살문은 이미 올려졌다.

잠시 후 나팔 소리가 울리면, 여덟 개의 대기 공간에서 많은 기사들이 경기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건 그렇고 팀원들은 아직인가.’

각 팀은 12인의 기사로 구성돼 있다.

아틸라와 오토 외에도 열 명의 기사가 한 팀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대기 공간엔 아틸라뿐이었다.

오토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긴장이 된다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돌아올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건만 오토는 돌아오지 않았고, 나머지 기사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오토 녀석. 제대로 좀 관리하라니까.’

아틸라는 오토에게 지시해 둔 일이 있었다.

잡념을 떨쳐 내고 몸을 풀던 아틸라는 문득 등 뒤에서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바토리와 펀치였다.

“어떠하느냐.”

“몸 상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게 아니고 프리실라 공주 말이다. 저기 관중석에 있는 걸 보았느냐.”

“봤지.”

그 말에 바토리는 살짝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사뿐사뿐 걸어 아틸라의 정면을 가로막고 섰다.

“나와 비교한다면 누가 더 미인이라 생각하느냐.”

아틸라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바토리를 내려 봤다.

“그러고 보니 너 어떻게 들어왔냐? 여긴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기사들 외엔 출입 금지일 텐데.”

“대답을 회피하지 말거라.”

“글쎄.”

바토리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혹시 말이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네가 저런 머리색과 눈동자 색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거라면.”

“됐으니 펀치 데리고 관중석으로 가라. 조금 있으면 팀원들이 들어올 거다.”

대답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들이라면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 내가 연막을 좀 뿌려 놨거든.”

이번엔 카스피와 도롱뇽이었다.

그런데 뭐?

대기실 앞에 연막술을 펼쳐 놨다고?

아틸라의 동그래진 눈을 보며 카스피가 헤헤 웃었다.

“어? 그런데 영주 나리는?”

“아까 똥 싼다고 나갔다. 지금은 연막의 안개 속을 헤매고 있겠군.”

“흐에에엣? 그, 그런 거야? 방해꾼들 없이 바토리랑 응원 좀 해 주려 했더니!”

카스피는 서둘러 대기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혀를 차며 그 모습을 보던 아틸라는 바토리가 재차 묻기 전에 선수를 쳤다.

“지난번에 말했을 텐데. 그냥 생긴 대로 있으라고.”

“그건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었다.”

아틸라를 응시하던 바토리가 슬쩍 눈알을 굴려 바닥을 바라봤다.

그때 뿌우우! 각 팀의 입장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좋다고.”

흠칫 놀란 바토리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아틸라는 그곳에 없었다.

어느새 아틸라는 자신의 군마 위에 올라타 있었고, 검은 투구를 눌러썼다.

그러고는 힘차게 경기장으로 달려 나갔다.

* * *

“뭐야. 8팀은 저 검은 갑주의 기사 혼자뿐인가?”

관중이 술렁거렸다.

“그럴 리가. 토너먼트는 한 팀이 12인의 기사로 구성된다고.”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보라고. 저 흑기사 혼자뿐이잖아.”

그 말대로, 8팀에서 나온 기사는 아틸라뿐이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카스피의 연막이 해제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테고.

그때까지 오토를 비롯한 팀원들은 경기장에 들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뭐, 어쩌면 오히려 편할지도.’

아틸라는 저 멀리 성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하나처럼 통일된 백금빛 갑주를 입고 있었다.

팀의 구분을 위해 적색, 청색, 황색의 휘장을 두르고 있는 것이 유일한 차이.

아틸라는 가슴에 두른 휘장을 내려 봤다.

8팀에겐 흑빛 휘장이 주어졌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수십 마리 군마가 움직이는 소리가 우렁찼다.

경기장 바닥이 흔들렸고, 공기의 밀도가 높아졌다.

각 팀은 눈치를 살피며, 각자의 진영을 꾸렸다.

4팀부터 7팀까지의 일반 기사들은 이 토너먼트가 성기사들에게 유리한 경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담합했다.

그 담합에 아틸라의 8팀이 끼지 못했던 이유는, 8팀은 특별한 인맥이 없는 용병들 위주로 급조된 팀이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는 용병 나부랭이들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

그렇듯 8개의 팀이 난전을 벌일 것처럼 보이는 이 토너먼트는.

실상은 성기사의 3개 팀.

유력 가문의 기사들로 구성된 4개 팀.

그리고 어중이떠중이로 급조된 8팀.

이렇게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4팀부터 7팀까지의 통합 지휘관을 맡은 알폰소가 8팀의 흑기사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얼마나 오합지졸이면 나머지 11명은 경기장에 도착조차 하지 못했단 말인가.’

뿌우우우우우!

조금 전보다 두 배는 긴 나팔 소리가 본격적인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 순간 8팀의 흑기사가 말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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