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86화 (186/425)

186. 악마와 성기사 (6)

오토의 다급한 외침에도 카스피와 바토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아틸라에게 고정한 채, 자신을 공격하는 악마의 하수인들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아틸라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토리의 눈빛과.

조금 전 카스피가 했던 말 때문에.

‘아까 그 여자 성기사가 너한테 눈웃음쳤을 때, 왜 그런 표정을 지었어?’

아틸라는 마음속으로 인정했다.

키릴이 자신을 향해 미소할 때, 조금이지만 심장이 두근거렸었다고.

그러나 그것엔 이유가 있었다.

아틸라, 아니 김도현은 패영전의 작가이고.

김도현은 패영전의 주인공인 샤를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즉 김도현은 소설을 집필하며 샤를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언젠가 바토리는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보기에 넌 샤를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그 말대로다.

아틸라는 샤를을 볼 때마다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다른 세상 속을 살아가는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

그렇기에 아틸라가 패영전의 메인 히로인인 키릴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많은 독자들에게 진(眞) 히로인으로 인정받는 바토리를 바라볼 때 역시도.

“왜 대답이 없는 것이더냐 야만전사야.”

아틸라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그의 눈동자가 주위를 살폈다.

이힉! 이힉! 비명을 지르며 주민들을 난도질하는 오토.

그 아래서 열심히 앞발 공격을 날리는 펀치.

펀치의 머리 위에서 깔깔대는 도롱뇽.

그러던 중 아틸라는 창밖에서 거친 폭발이 일어난 것을 감지했다.

소리가 어찌나 거대했는지 바토리와 카스피마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아틸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어나 출입문을 박찼다.

그 순간 떠올랐다.

[ 침입악마 시나리오가 이어집니다. ]

‘오.’

[ 두 번째 임무 ]

[ 마을 교회 안에 둥지를 틀어 앉은 중급 악마, 벨페고르를 처치하십시오. ]

‘키릴의 말대로 벨페고르가 맞았던 모양이군.’

[ 임무 완료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과연 임무창의 내용대로 소리의 진원지는 교회였다.

그런데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시커멓게 변색된 벽면과 지붕에서 걸쭉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것을 뚫고 새하얀 빛의 선들이 뿜어지고 있었다.

키릴의 광명검.

파팡! 파파파팡!

벨페고르의 부름을 받은 것인지, 악마의 하수인들이 교회를 향해 달려갔다.

아틸라도 달렸다.

바토리, 카스피, 오토가 아틸라의 뒤를 따랐다.

“히익! 대체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요!”

“벨페고르가 상당한 준비를 해 둔 모양이구나.”

바토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변색된 교회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악마의 마법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중급 악마 벨페고르의 마법진이라기엔 다소 강력하구나.”

아틸라가 물었다.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리고?”

“마법진이 완전하지 않구나.”

“알아듣게 설명해 봐라.”

“저 마법진엔 역린(逆鱗)이 존재한다.”

“역린이라.”

아까 전부터 코를 킁킁대던 도롱뇽이 거들었다.

“바토리 할망구 말대로다 야만 미물. 중급 악마 따위가 만든 마법진 치고는 상당하군. 분명 상급 악마 이상의 배후가 있을 거다.”

“이 근방에서 감지되는 다른 마기가 있나.”

“아니. 근처에서 다른 악마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뭐, 조무래기들은 조금 보이지만.”

교회의 어둠을 뚫고 수십 마리 하급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틸라가 히죽 입가를 올렸다.

“그렇다면 저 교회 안에 있는 놈만 잡아 죽이면 된다는 거로군.”

아틸라는 벨페고르를 때려잡아 달콤한 보상을 받는 것보다 식당에서의 곤란한 상황을 회피했다는 것에 더욱 큰 만족감을 느꼈다.

아틸라의 얼굴을 흘겨보며 바토리가 말했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해 가는구나. 야만전사야.”

“마법진의 역린이 어디인지나 말해 봐라.”

“지붕 한가운데.”

[ 도약(跳躍) ]

콰앙! 하늘 위에서 낙하한 아틸라의 신형이 교회 지붕 정중앙을 관통했다.

* * *

키릴은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피곤했고, 상당한 성력을 소모했다.

정화 임무를 위해 마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셀과 벨페고르를 상대했고.

도주하던 크로셀을 쫓아 달리다 만난 아틸라와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으며.

마침내 돌아온 마을에서는 둥지를 틀어 앉은 벨페고르를 단독으로 상대하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키릴은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성력 회복을 위한 기도의 시간도 갖지 못했지.’

그런 상태로 언데드가 된 동료 성기사들을 죽였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주민들을 난도질했다.

키릴의 육체와 의지는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벨페고르의 속삭임이 키릴의 정신을 흔들었다.

- 고집부리지 마라. 네 육체와 의지를 내게 넘겨라. 그렇게 한다면 너는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될 것이다.

거짓의 악마, 벨페고르.

저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간 자들의 말로가 바로 이 마을의 주민들이다.

‘성력이 없는 일반인은 악마의 속삭임을 이겨 낼 수 없다.’

바꿔 말하자면 성기사는 악마의 속삭임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

그래서 벨페고르도 이곳을 찾은 성기사들만은 숨통을 끊은 뒤 언데드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자(死者)의 영혼과 생자(生者)의 영혼은 다르다.

또한 생자의 영혼이 고결할수록, 타락에 빠뜨렸을 때의 가치는 커진다.

그렇다면 당연히, 악마들이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은 살아있는 성기사.

그중에서도 키릴 크레센시아처럼 방대한 성력을 지닌 자다.

- 네 영혼을 타락시킨 뒤 취한다면 난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악마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벨페고르의 목표는 키릴의 영혼이었다.

그는 크로셀과 합심해 마을을 곤경에 빠뜨렸고, 성기사들을 유인했다.

물론 벨페고르는 ‘거짓의 악마’라는 이명답게 크로셀을 배신하고 몸을 숨겼다.

이후 성기사들은 홀로 남은 크로셀을 집중 공격했고, 도주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깊은 부상으로 사망한 기사대장의 입을 빌려 벨페고르는 이렇게 소리쳤다.

‘쫓아라!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은 벨페고르의 뜻대로 되었다.

키릴과 나머지 성기사들은 크로셀을 쫓았다.

그사이 벨페고르는 키릴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교회에 들어가 사제의 육체를 빼앗고, 자신의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키릴을 둥지 안으로 유인해, 그녀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있다.

벨페고르의 계략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조금.

조금만 더 지나면.

‘저 먹음직스러운 영혼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벨페고르는 실수한 것이 있었다.

벨페고르는 키릴이 크로셀을 죽였을 거라 생각했다.

다시 말해 키릴이 아닌 다른 인간이 크로셀을 죽일 수 있을 거란 가정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벨페고르가 준비한 마법진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위력이 상당한 만큼, 일단 마법진이 시동되고 나면 바깥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벨페고르는 어느 우락부락한 덩치의 야만전사가 벼락처럼 교회 지붕을 뚫고 들어와 마법진을 깨부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콰앙!

아틸라의 신형은 마법진의 역린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도약 스킬이 빚어낸 충격파가 마법진을 흔적도 없이 찢어발겼다.

퍼어어어엉!

시커멓게 변했던 교회의 외벽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둥지 안에 숨어 있던 벨페고르의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틸라는 웃었다.

“거기 있었나. 거짓의 악마 벨페고르.”

벨페고르는 흔히 검은 갑주를 입은 기사의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벨페고르의 본모습이 아니다.

염소의 뿔을 머리 양옆에 단 비쩍 마른 노인.

그것이야말로 벨페고르 본연의 모습이다.

바로 지금처럼.

- 너, 너는 누구……!

벨페고르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 돌진(突進) ]

돌진으로 거리를 좁힌 아틸라가 흑철검을 뻗었다.

벨페고르는 놀랐다.

저런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벨페고르는 등 뒤에서 뽑아낸 무기로 흑철검을 막았다.

그러나 인간의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했고, 벨페고르는 중심을 잃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때였다.

[ 발 구르기 ]

아틸라의 오른발이 지면을 지르밟았다.

바닥이 거칠게 요동치며 벨페고르의 몸을 더욱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 틈을 노린 흑철검이 상대의 무기 위를 미끄러지듯 훑었고, 벨페고르의 목에 박혔다.

“크허…… 억……!”

벨페고르가 처음으로 육성을 토해 냈다.

본래 벨페고르는 크로셀보다 강력한 악마다.

그러나 지금의 벨페고르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마법진을 구동하느라 많은 힘을 소모했다.

위기를 느낀 벨페고르는 사역마들을 불렀다.

그러나 반응하는 사역마는 한 마리도 없었다.

바토리와 카스피, 그리고 오토가 놈들을 모조리 처치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디 인간 따위가……!”

그렇게 외치던 벨페고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벨페고르는 자신의 사역마들을 처리한 인간들 속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바, 바, 바, 바토리 에르제베트……!”

바토리를 발견한 순간 벨페고르의 머릿속에 적신호가 켜졌다.

벨페고르는 뒤도 안 보고 도주하려 했다.

그러나 아틸라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내리쳐진 흑철방패가 벨페고르의 무릎뼈를 으깼다.

“케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는 벨페고르의 입안에 무휼이 박혔다.

아틸라는 크로셀의 숨통을 끊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대로 벨페고르의 가랑이를 향해 무휼을 내리그었다.

“크뤄뤄러럭……!”

그것으로 끝이었다.

바람 빠지는 신음을 흘리며 벨페고르의 몸이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 * *

키릴은 눈을 떴다.

눈앞이 부옇게 흐렸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키릴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기사대장의 죽음.

벨페고르의 마법진.

지붕을 뚫고 난입한 아틸라.

그리고 그의 몸에서 발산된 충격파가 악마의 마법진을 산산조각으로 부수는 광경.

이후 아틸라는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벨페고르에게 공격을 퍼부었고, 종이 자르듯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것이 정신을 잃기 전의 키릴이 본 마지막 광경.

“오. 정신이 드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키릴은 자신의 몸이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감각했다.

멍하니 눈을 껌뻑이던 키릴이 어느 순간 흠칫 놀라 몸을 일으켰다.

“히익! 깜짝이야!”

오토가 소리쳤다.

키릴은 오토를 알아봤다.

그리고 자신이 오토의 말 위에 함께 탄 채,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깨어났나. 오래도 자는군.”

“지금…… 어디로…….”

“수도로 간다.”

키릴은 멍한 얼굴로 아틸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벨페고르를 베어버리던 광경이 생생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그 순간 키릴은 자신의 가슴이 세차게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 떨림은 아틸라가 고개를 돌려 자신과 눈을 마주친 순간 최고조에 달했다.

미소하는 그의 입가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임무를 마쳤으면 단에 돌아가 보고를 해야지. 안 그래?”

키릴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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