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78화 (178/425)

178. 검은 보석의 주인 (3)

키메라는 펀치처럼 조그만 새끼곰이었던 시절, 케플러의 병사들에게 잡혀 왔다.

키메라의 엄마는 새끼를 지키려 싸우다 죽었다.

새끼곰은 죽은 엄마의 가죽을 벗기며 킬킬대는 병사들을 봤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하고 말리라! 생명 창조의 연금술을!’

케플러의 연구 시설엔 새끼곰 말고도 여러 동물들이 잡혀 와 있었다.

조그만 산양.

조랑말.

뱀.

아기 독수리 등등.

수많은 동물들이 저마다의 우리에 갇혀 있었다.

매일같이 우리에서 동물들이 사라졌고, 새로운 동물로 채워졌다.

동물들의 비명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새끼곰의 차례가 되었다.

‘네가 머리가 되는 거다. 네가 바로 내가 만들 새로운 생명체의 의지가 되는 거야. 어떠냐. 가슴 뛰는 일이지? 아니, 이미 가슴은 없어졌으니 알 수가 없나? 크하하하하하!’

새끼곰은 산 채로 목이 잘렸다.

그러나 케플러의 연금술은 머리만 남은 새끼곰을 죽지 않도록 보존하는 법을 알았다.

새끼곰은 시험관으로 들어갔다.

잠시도 견디기 힘든 뜨거운 장소였다.

그곳의 혹염(酷炎)을 견디며 새끼곰은 많은 친구들이 분해되고, 살아남고, 또 죽는 모습을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곰은 새로운 몸을 얻었다.

새로운 다리와 꼬리를 얻었다.

엄마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멋진 뿔도 얻었다.

그러나 새끼곰은 기쁘지 않았다.

친구들의 비명이 뼈를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살고 싶어. 나가고 싶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렇게 키메라가 된 새끼곰은 다시 시험관에 갇혔다.

검은 보석의 힘이 키메라의 몸을 변화시켰다.

빠르게.

아주 급속도로.

그렇게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갑갑한 시험관 너머로 키메라는 자신의 얼굴을 닮은 자그만 친구를 만났다.

그보다 작은 도마뱀 친구도 만났다.

친구들에게 말했다.

날 여기서 나가게 해 줘. 날 꺼내 줘. 구해 줘.

제발.

우어어어어어!

우렁차게 포효하며 키메라가 데스나이트와 군마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이번만은 데스나이트도, 유령마도 큰 위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공기가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키메라를 밀쳐 내려 했다.

그 위로 흑염의 브레스가 쏟아졌다.

파드드드드드드듯!

도롱뇽은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브레스가 데스나이트와, 유령마와, 그리고 키메라를 잿개비로 만드는 광경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바라봤다.

사실 도롱뇽은 키메라가 데스나이트에게 달려들었을 때, 브레스의 방향을 바꾸려 했었다.

그것을 아틸라가 막았다.

처음에 한 번은 어떻게든 저항했지만 도롱뇽은 아틸라의 환수.

결코 주인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

도롱뇽의 핏발 선 눈동자가 투명하게 변했다.

그 아래로 한 줄기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마침내 브레스가 잦아들고, 해방의 힘을 잃은 도롱뇽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데스나이트와 키메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 * *

아틸라와 바토리는 데스나이트를 상대하느라 알지 못했지만, 그사이 카스피는 전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린 날의 오토를 나바라 왕국에서 탈출시켰던 세 명의 견습기사 아론, 로버트, 던컨.

그리고 그녀의 양아버지이자 철혈귀검성의 영주 대리를 하던 라시드와 함께였다.

오랜만에 만난 오토를 향해 세 기사가 소리쳤다.

“아이고 이거 몰라보겠소 대장!”

“완전 신수가 훤해지셨는데? 으하하하!”

“이렇게 혼자 왕국으로 돌아오기요? 이거 섭섭하우! 우리가 그때 얼간이 왕자 전하 모시고 탈출하느라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데!”

카스피가 세 기사와 라시드를 데려오게 된 것엔 숨은 사정이 있었다.

오토가 룽겔 공작의 두 기사와 결투해서 승리했던 날.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지글러 백작이 룽겔 공작을 버리고 오토마이어 왕자를 지원하기로 서약한 날 밤.

사바흐가 찾아왔다.

‘아앗! 스승님!’

‘카스피! 하하하하하!’

오늘따라 더욱 멋을 부리고 온 제자바보 사바흐는 오토와 카스피에게 발루아 왕국의 내전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전은 종식되었다.

발루아의 내전에 은밀히 참여했던 하싸씬과 데비쉬도 각자의 교단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데비쉬는 상당한 전력을 잃었다.

제아무리 하싸씬과 자웅을 겨룰 유일한 암살교단이라지만, 그래도 하싸씬의 저력을 당해 낼 수는 없었던 것.

‘오오오! 결국 하싸씬이 이긴 거로군요 스승님!’

‘당연하지 카스피! 난 사슬낫의 사바흐다!’

‘역시 스승님이세요!’

카스피의 칭찬에 헤벌쭉 입가를 올리던 사바흐가 표정을 바꿨다.

‘샤를 아인하르트가 발루아 왕국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아틸라 일행이 메피스토펠레스를 쓰러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인하르트는 후마이야 왕국을 공격했고 점령에 성공했다.

그렇게 후마이야의 전투 코끼리 부대를 손에 넣은 샤를의 다음 목표는 아틸라(카자르) 탓에 공략에 실패했던 노르드 왕국이었다.

‘아, 아인하르트가 온다!’

‘후마이야의 전투 코끼리 부대도 있어!’

당연히 노르드에겐 후마이야마저 삼킨 아인하르트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노르드는 항복을 선언했다.

노르드 왕성에 무혈입성한 샤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세를 몰아 발루아 왕국까지 진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 즈음 발루아 왕국은 지속되는 내전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발루아의 대영주들은 협의하에 내전을 종식했다.

‘아인하르트’라는 강력한 외세의 힘에 저항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흐에엣! 그럼 영주 나리의 마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버지는?’

사실 가스코뉴의 대영주 작센은 내전이 시작됐을 때부터 오토에게 종군의 의무를 수행하라 명했었다.

그러나 오토는 영주의 자리를 지키지 않았고, 그간 오토의 편의를 봐주던 작센의 배려도 아인하르트의 침입을 앞두고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작센은 오토가 돌아올 때까지, 오토의 영지를 몰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사실은 그 핑계로 카스피를 만나기 위해) 사바흐는 카스피와 오토를 찾아왔다.

그리고 오토는 카스피에게 세 기사와 라시드를 이곳까지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좋아! 맡겨 달라고 영주 나리!’

그날 카스피는 클로비스 백작성을 떠났고.

사바흐는 자신의 계획대로 사랑스러운 제자와 함께 발루아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천히 여행을 즐기고 싶었던 사바흐와 달리 카스피는 서둘러 발을 움직였다.

카스피는 자신을 도와줬던 오토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돌아와 오토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다행히 카스피는 늦지 않게 전장으로 돌아왔다.

오토를 향해 시끄럽게 떠드는 세 기사를 보며 카스피는 히죽 웃었다.

오토도 세 기사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는 재회의 기쁨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전쟁을 마무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전군! 돌격하라!”

오토의 외침에 기사와 병사들이 힘차게 달려 나갔다.

당연히 그들의 선두엔 오토가 있었고.

양옆엔 로잘린과 세이론이 있었으며.

그 뒤엔 아론, 로버트, 던컨, 세 기사가 있었다.

“으하하하! 이거 얼마 만에 대장과 함께 전쟁하는 거요!”

“대장은 무슨! 이제 다시 왕자 전하다!”

“듣고 보니 그렇네! 오토마이어 왕자 전하 나가신다! 으하하하하하!”

낄낄대며 웃던 세 기사는 뒤를 돌아보는 로잘린의 서늘한 눈빛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견습기사 시절의 그들에게 로잘린은 공포와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또한 왕자와 함께 도주하다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자신들을 구해 준 은인이기도 했다.

한편 카스피와 라시드는 이미 적진 깊숙이 침투해 교란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오오! 아직 늙지 않았잖아 아빠!”

“당연한 소릴! 아직 현역이나 진배없다!”

“아하하하하하!”

얼마 전 사바흐를 만난 것에 이어 라시드와 함께 전장에 선 카스피는 잔뜩 신이 났다.

그녀가 사슬낫을 던질 때마다, 단검을 휘두를 때마다 수많은 적병들이 죽어 나갔다.

그런 카스피를 라시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이젠 정말로 특급 살수의 경지에 도달한 게로구나. 카스피.’

그러던 중 후방에서 엄청난 검은 불꽃이 하늘로 뿜어졌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날카로운 포효와 함께였다.

“저, 저게 뭐야!”

병사들이 기겁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거대한 불꽃이었고, 또한 평범한 불꽃이 아니었다.

오토와 카스피만은 그것이 도롱뇽이 발산한 브레스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 소리쳤다.

“드,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나타났다!”

“검은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고 있어!”

기사와 병사들이 크게 당황했다.

드래곤이라니.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드래곤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그들은 경악했다.

아군의 전열히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룽겔 공작의 연합군이 대단한 위세를 뿜고 있다지만, 결국은 인간의 군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후방에 나타난 건 드래곤이었다.

그제서야 기사와 병사들은 드래곤 이전에 나타났던 키메라를 재차 머릿속에 떠올렸고,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오토가 소리쳤다.

“저 검은 드래곤은 나바라 왕가의 편이다! 보아라! 검은 드래곤이 곰의 얼굴을 한 괴물을 상대하고 있다! 그야말로 나바라 왕가의 수호룡인 것이다!”

병사들의 사기 하락를 우려해 즉석에서 지어낸 말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상당했다.

“나바라 왕가의 수호룡?”

“정말인가? 처음 듣는 말인데.”

“그 무슨 불경한 소리야! 왕자 전하께서 직접 말씀하신 거다!”

“맞아! 왕자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저 드래곤은 나바라 왕가의 수호룡이다! 우리 편이라고!”

아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다.

“우와아아아!”

“오토마이어 왕자 전하께서 나바라 왕가의 수호룡을 데려오셨다!”

“나바라 왕가 만세!”

“오토마이어 왕자 전하 만세!”

사람은 언제나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전방엔 룽겔 공작의 대군, 후방엔 드래곤이라는 불가해의 존재를 마주한 병사들은 자신들을 안심시켜 줄 말을 원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대상의 입을 통해 그것을 들었다.

“쳐라! 물러서지 마라!”

“우리는 오늘 왕국의 반역자 룽겔 공작을 처단한다!”

“우와아아아아!”

왕자의 군대와 반대로 룽겔 연합군의 사기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게다가 왕자의 군대엔 믿기 어려운 실력을 지닌 괴물이 둘이나 있었다.

하나는 특급 살수의 경지에 도달한 카스피.

다른 하나는.

“크허억……! 오토마이어…… 왕자……!”

벌써 다섯 명의 기사를 낙마시키는 데 성공한 오토마이어 왕자였다.

“오토마이어 왕자가 저렇게 강하다니……!”

“전성기 때의 율켄마이어 왕을 뛰어넘었다!”

“이길 수 없어……! 우린 이길 수 없다고!”

무너진 병사들의 사기를 되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고 지휘관이 앞장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연합군의 최고 지휘관 룽겔 공작은 뛰어난 무인이 아니었다.

그는 후방에서 자신의 연합군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봤다.

‘키메라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게다가 드래곤이라고? 적진으로 돌격한 아틸레르 경은 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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