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검은 보석의 주인 (2)
도롱뇽의 몸이 황소만 한 크기로 부풀었다.
강인하게 변모한 네 다리 끝에서 날카롭게 발톱이 솟았다.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상징하는 광활한 날개가 활짝 좌우로 펼쳐졌다.
도롱뇽의 머릿속으로 아틸라의 의지가 파고들었다.
‘브레스 쏴라. 도롱뇽.’
쩌억, 도롱뇽의 아가리가 벌어졌다.
그것을 본 데스나이트의 안광이 흔들렸다.
데스나이트는 키메라의 몸에 계속해서 검을 박았다.
그러나 키메라는 온몸을 뜨겁게 불태우면서도 데스나이트를 놓아주지 않았다.
크르르르르르…….
벌어진 도롱뇽의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언제 브레스가 뿜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 브레스가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도롱뇽은 아틸라의 명령에 반하며, 브레스를 억제하고 있었다.
크르르……. 크르르르르르…….
성체가 된 도롱뇽을 향해 달리며 아틸라는 당황했다.
자신은 도롱뇽에게 해방 스킬을 시전했고, 브레스를 쏘라 명령했다.
그런데 듣지 않았다.
아틸라는 도롱뇽의 정신이 자신의 의지를 거부하는 것을 느꼈다.
‘미친 도롱뇽 새끼가!’
아틸라는 도롱뇽의 머릿속에 더욱 강하게 의지를 불어넣었다.
도롱뇽의 눈동자에 울긋불긋 핏발이 돋았다.
도롱뇽은 이번만큼은 아틸라의 의지에 저항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늘을 향해 힘껏 고개를 젖혔다.
키랴랴랴랴랴랴랴!
흑염의 브레스가 하늘로 쏘아졌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전쟁 중이던 양 진영의 모든 병사들이 칼질을 멈추고 그것을 바라봤다.
브레스는 도롱뇽의 호흡이 다할 때까지 계속됐다.
마침내 검은 연기를 흩뿌리며 브레스가 멎었다.
그제서야 아틸라는 도롱뇽의 상태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도롱뇽의 정신세계가 거대한 분노의 감정으로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캬르르르르!
거친 포효를 외치며 날아간 도롱뇽이 데스나이트의 머리통을 붙잡고, 키메라에게서 떼어 냈다.
데스나이트의 군마가 이빨을 드러내며 반항했다.
하지만 도롱뇽의 발길질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이번엔 데스나이트가 도롱뇽의 복부를 향해 검을 쏘았다.
도롱뇽이 발톱으로 막았다.
도롱뇽의 송곳니가 데스나이트의 어깨를 물었다.
부드득! 데스나이트의 왼팔이 어깨째로 뜯겨 나갔다.
우드득! 우드드드득!
절단된 데스나이트의 팔을 도롱뇽이 잘근잘근 씹었다.
그것이 검은 연기로 화해 흩어졌다.
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절단된 데스나이트의 왼쪽 어깨에서 수십 가닥의 촉수가 돋아난 것이다.
그것이 순식간에 팔의 형상을 갖췄다.
지렁이처럼 꿈틀대던 다섯 손가락이 정돈된 형태를 완성했고, 마찬가지로 촉수에서 형태를 바꾼 검고 기다란 검을 찾아 쥐었다.
흑빛의 검날이 도롱뇽의 목으로 쏘아졌다.
그 사이로 아틸라가 끼어들었다.
[ 돌진(突進) ]
아틸라의 흑철검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짓눌렀다.
데스나이트가 맞은편 손에 쥔 검으로 반격했다.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성체가 되고, 또 분노에 사로잡힌 도롱뇽 덕분인지 드라칼리온은 리샤르의 거대 와이번을 상대했을 때보다 한층 커다래져 있었다.
부드드드드듯……!
데스나이트의 완력은 대단했다.
카르타고만큼은 아니지만, 녀석이 소환했던 일곱 데스나이트보다는 분명히 강했다.
‘아니. 다르다. 이전에 상대했던 놈들과 무언가 달라.’
아틸라는 무릎과 발 공격으로 데스나이트의 복부를 타격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상대의 양팔에서 조금이지만 힘이 풀리는 것을 감각한 아틸라는 양 어깨에 힘을 주며 데스나이트를 밀어냈다.
“지금이다. 도롱뇽!”
혼자가 된 데스나이트를 향해 도롱뇽이 브레스를 뿜었다.
그때 검은 군마가 놀라운 속도로 달려와 데스나이트를 등에 태우고 달아났다.
그럼에도 브레스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고, 군마는 흑염의 브레스에 당해 하체를 잃었다.
이히히히힝!
비명을 지르며 군마가 바닥을 굴렀다.
데스나이트도 땅에 처박히며 투구가 벗겨졌다.
브레스의 영향으로 데스나이트는 한쪽 다리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왼팔을 재생시켰던 것처럼 순식간에 오른 다리를 되살렸다.
문득 아틸라는 투구가 벗겨져 드러난 데스나이트의 얼굴이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저 녀석은?’
이내 아틸라는 떠올렸다.
룽겔 공작이 결투를 제안하며 불러들였던 다섯 명의 기사.
그중 아틸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기사였다.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설마 케플러가? 데스나이트를 만들었다고?’
그제서야 아틸라는 깨달았다.
눈앞의 데스나이트가 이전에 상대했던 놈들과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를.
‘놈의 몸 안엔 키메라의 힘이 깃들어 있다.’
데스나이트는 순간적인 움직임이 짐승처럼 야만적이고, 빨랐다.
회복 속도도 경이적이었다.
그즈음 아틸라는 도롱뇽의 정신에서 발하는 혼돈의 목소리를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키메라는 펀치와 도롱뇽을 구했다.
그리고 이곳까지 펀치와 도롱뇽을 안전하게 데리고 왔다.
물론 마지막엔 검은 보석의 힘에 잠식당해 오토를 습격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데스나이트의 추격을 확인하고는 다시 펀치와 도롱뇽을 구하려 했다.’
검은 불길에 타오르는 키메라는 저만치에 쓰러진 채 미동조차 없었다.
그 옆에서 펀치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는 게 보였다.
아틸라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냈다.
지금 중요한 건 데스나이트를 제압하는 것이다.
아틸라는 흑철검을 갈무리하고, 키메라의 척추에서 뽑아낸 무휼과 드라칼리온을 쥐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아틸라는 자신이 있었다.
“아우우우우우!”
늑대처럼 포효하며 달렸다.
그는 직감했다.
데스나이트는 케플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저 데스나이트의 가공할 힘은 케플러의 능력을 아득하게 초월했다.
‘키메라와 마찬가지로, 케플러를 이용해 검은 보석의 주인이 직접 힘을 발현했다.’
파캉! 아틸라와 데스나이트가 서로의 무기를 맞댔다.
둘의 힘은 거의 호각이었지만 미세하게 아틸라가 앞섰다.
그러나 아틸라는 처음 데스나이트를 상대했을 때보다 상대의 완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싸울수록 강해지는 거냐. 샤를 그 빌어먹을 자식처럼!’
승부를 오래 끌어선 위험하다.
아틸라는 도롱뇽이 성체를 유지하는 동안 어떻게든 끝을 낼 생각이었다.
드라칼리온을 뻗었다.
다른 손으론 무휼을 휘둘렀다.
아틸라는 지금껏 쌓아 왔던 기술을 활용해 데스나이트의 몸에 효율적으로 타격을 가했다.
무휼의 성력이 차근차근 쌓여 갔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 축성의 인장 발동 효과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무휼의 날에서 가공할 신력이 뿜어졌다.
기다랗게 변한 무휼의 날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튕겨 냈다.
이어 벼락처럼 떨어진 무휼이 데스나이트의 상체를 비스듬히 베었다.
푸르뤄뤄럭……! 검은 연기가 분수처럼 흩어졌다.
데스나이트의 안광이 더욱 푸르게 타올랐다.
이어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화르르르륵……!
데스나이트의 검이 무휼처럼 형상을 바꿨다.
검날이 더욱 길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데스나이트의 몸에서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울렸다.
절단되었던 그의 몸이 아물고, 더욱 부풀기 시작했다.
아틸라는 데스나이트가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빌어먹을!’
도롱뇽은 이제는 완연한 유령마의 모습을 갖춰 가는 군마를 사정없이 때려 부수고 있었다.
그러나 군마는 제 주인과 마찬가지로 회복력이 뛰어났고, 소실됐던 뒷다리 역시 완벽하게 복구된 상태였다.
아틸라는 해방의 지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상대의 방어에 막힌 두 검을 밀어붙이며 체중을 실었다.
투트트트트틋……!
긴 고랑을 파며 데스나이트의 몸이 밀려났다.
데스나이트의 덩치는 아틸라보다 커져 있었지만, 힘 대결의 승자는 여전히 아틸라였다.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강해지고 있었다.
뒤로 밀리던 데스나이트의 몸이 멈춰 섰고, 반대로 아틸라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아틸라는 민첩하게 상체를 숙이며 데스나이트의 몸을 어깨로 들어 올린 뒤 지면에 처박았다.
그 위에 올라탄 아틸라가 드라칼리온과 무휼을 휘둘러 데스나이트의 양팔을 잘랐다.
역시나 데스나이트는 순식간에 복구를 시작했다.
그것을 넘어 더욱 강력해진 놈의 오른손이 아틸라의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크으윽……!”
목이 부러지는 듯한 압박을 느끼며 아틸라는 놈의 팔뚝을 드라칼리온으로 베었다.
바닥에 착지한 아틸라가 선풍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절단면에서 더욱 빠르게, 더욱 강력한 팔을 재생시킨 데스나이트는 안정적으로 검을 뻗어 그것을 막았다.
그제서야 아틸라는 깨달았다.
놈은 샤를처럼 단순히 싸움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재생할수록 강해진다.
‘이래서는 걷잡을 수 없다. 한 번에, 완전히 소멸시켜야 해.’
그렇다면 방법은.
아틸라는 무기를 갈무리했다.
검을 내뻗는 데스나이트의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기괴하게 꺾인 놈의 팔은 금세 원위치로 돌아왔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놈의 팔은 강해지지 않았다.
‘역시 그렇군. 그래서 키메라 녀석이.’
펀치와 도롱뇽을 구하기 위해 데스나이트를 습격한 키메라는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했었다.
분명 이곳까지 달려오는 동안 데스나이트와 전투를 치르며, 놈이 강해지는 원리를 체득한 것이겠지.
그 순간 묘한 일이 벌어졌다.
데스나이트도 아틸라처럼 무기를 버린 채 맨손으로 덤벼 왔던 것이다.
아틸라는 데스나이트의 몸에서 발산되는 ‘어떤 감정’을 포착했다.
그것은 흥미였다.
‘빌어먹을 새끼가.’
아틸라는 달려드는 데스나이트의 몸을 피하며 뒤를 잡았다.
그러고는 상대의 양팔과 상체를 동시에 부둥켜안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검으로 놈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은 확인했다.
아틸라의 계획은 도롱뇽의 브레스로 데스나이트를 흔적도 없이 태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고대의 주문이 들려왔다.
먼 곳에서 전투를 주시하던 바토리가 결국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휘리릭. 휘리리리릭.
붉은 마력의 실이 데스나이트의 몸을 포박했다.
원래 아틸라는 바토리에게 절대 마법을 쓰지 말고 지켜보기만 하라고 명령했었다.
바토리에겐 현자의 돌이 없었고, 마법을 과용했다간 자칫 폭주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바토리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타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바토리가 아틸라의 지시를 어기고 마법을 시전했다.
바토리의 판단은 옳았다.
‘나이스 바토리!’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의지를 전하며 몸을 피했다.
도롱뇽의 아가리가 쩌억 벌어졌다.
붉은 마력의 실에 포박 당한 데스나이트를 향해 브레스가 뿜어졌다.
키랴랴랴랴랴랴랴!
그 순간 데스나이트의 몸에서 파괴적인 검은 기운이 뿌려졌고, 바토리의 포박을 산산조각으로 부쉈다.
아틸라는 놀랐다.
아무리 바토리가 제대로 된 힘을 발현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저렇게 빨리 포박을 풀어 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자유의 몸이 된 데스나이트가 브레스를 피하려 몸을 움직였다.
때마침 달려온 유령마가 데스나이트를 등에 태웠고, 그렇게 데스나이트는 도롱뇽의 브레스로부터 탈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을 습격한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키메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