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74화 (174/425)

174. 연금술이 낳은 괴물 (4)

케플러는 추격대의 군마가 식인마로 변신한 것과, 병사들을 잡아먹은 것을 확인했다.

검은 보석의 의지를 통해.

‘어떻게 된 것인가.’

지난번 오토마이어 왕자를 추격하던 기병대들과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를 더욱 놀라게 한 일은 따로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연구 시설을 탈출한 키메라가 식인마들을 모조리 때려잡은 것이다.

‘설마 그 새끼곰을 도운 것인가. 하지만 그럴 리가.’

갑작스레 연구 시설에 나타난 새끼곰에게 케플러는 검은 보석 하나를 잃었다.

이후 병사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된 건, 그 새끼곰이 샹크리스 왕국에서 온 프리실라 공주의 애완동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 분명 타국의 공주와 기사가 성을 방문했었지.’

케플러도 먼발치에서 그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에선 별다른 위험이 느껴지지 않았고, 검은 보석 역시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케플러는 그들에게서 관심을 끄고 키메라 제작의 마무리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어떻게 그 곰은 성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연구 시설에 들어올 수 있었단 말인가.’

케플러는 검은 보석에게 지금까지의 의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보석은 스스로 입을 열고 싶을 때만 제 의지를 전해 온다.

아무튼 이 사실을 룽겔 공작이 알게 된다면 또 귀찮은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이 뻔했다.

케플러는 그것이 정말 싫었다.

‘빌어먹을 늙은이. 내 덕분에 장수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다행히 룽겔 공작은 전쟁을 위해 공작령을 떠났다.

실수를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다.

‘어차피 공작은 식인마에 대한 일을 알지 못한다. 검은 보석과 키메라를 확보해 예정대로 전쟁을 지원한다면 병사 몇 잃은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지.’

룽겔 공작은 계획 없이 왕자를 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룽겔 연합군과 오토마이어 왕자의 군대가 전면전에 돌입하는 시기에 맞춰, 키메라로 왕자의 목을 따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괴물에게 죽임 당하는 왕자.’

룽겔 공작은 그것이 왕국을 버리고 도주했던 왕자가 이제서야 천벌을 받은 것이라 외치며, 떨어질 대로 떨어진 적군의 사기를 바닥까지 내리꽂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왕자를 해치운 키메라는 자취를 감추고.

구심점을 잃어 전의를 상실한 왕자의 군대는 결국 룽겔 연합군에게 항복한다는 계획.

그런데 키메라가 연구 시설에서 도주했다.

게다가 그 키메라를 제어하던 검은 보석마저 잃어버렸다.

‘내 탓이 아냐! 어리석은 룽겔 공작이 이 시기에 타국의 손님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원래 케플러와 공작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엔 아니었다.

검은 보석의 신비를 마주한 이후, 케플러는 점점 룽겔 공작에게 반감을 느꼈다.

‘그래도 이 연구 시설만큼은 훌륭하지. 검은 보석의 신비를 모두 밝혀낼 때까지는 좋든 싫든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지금 시급한 건 달아난 키메라와 검은 보석의 확보.

케플러는 지금이야말로 공작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새로운 연구를 시험해 볼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눈이 거대한 시험관을 향했다.

보글보글, 기포가 솟아오르는 그 안엔 건장한 체격의 사내 하나가 두 눈을 감은 채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룽겔 공작이 자랑하던 다섯 기사 중 하나이자, 아틸라와의 결투에 참여하지 못했던 기사였다.

또한 시험관에서 탈출한 키메라로부터 케플러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던 기사이기도 했다.

‘이쪽입니다! 케플러 님!’

룽겔 공작은 그를 이번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고 성 안에 남겼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케플러를 지키라는 의도였지만 기사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번 결투에서 선택받지 못한 것에 이어, 전쟁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건 룽겔 공작이 자신의 실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케플러는 그의 욕망을 채워 주었다.

지금 저 기사의 몸 안엔, 케플러가 이제껏 연구한 연금술의 오의와 검은 보석을 통해 얻은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케플러의 손가락이 시험관 옆의 버튼을 눌렀다.

기사의 몸이 검은빛으로 변했다.

“우윽……! 우으……! 우으으으으……!”

기사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꺾었다.

수 시간이 지난 후 기사의 몸이 시체처럼 늘어졌다.

아니, 그는 정말로 숨이 끊어졌다.

그러나 케플러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검은 보석의 의지대로 행동했고, 그렇게 하면 기사가 죽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기사가 눈을 떴다.

그 안에서 푸르스름한 안광이 피어올랐다.

* * *

“어이 곰탱이. 이제 알겠지. 그 케플러라는 연금술사 놈이 보낸 병사들을 이몸께서 완벽하게 제압해 널 구해 줬다는걸.”

토끼고기를 으적으적 씹으며 도롱뇽이 말했다.

펀치는 완전히 몸을 회복한 듯 동그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니까 곰탱이. 앞으로 내 말을 더 잘 들어야 한다.”

- 그치만 도롱뇽아.

- 식인마는 아니었잖아.

“뭐라는 거야 또. 그 식인마도 내가 처리한 거라니까? 저기 보이냐 식인마 새끼들 반 쪼가리가 되어 널브러진 거. 저놈들도 다 내가 이 강인한 송곳니로……!”

- 거짓말.

- 키메라가 도와준 거 알아.

“아 진짜라니까? 저 키메라 새끼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 곰탱이 너 깨운다고 혓바닥으로 살살 핥아댄 거 말고는!”

그 말에 키메라가 물끄러미 도롱뇽을 바라봤다.

도롱뇽이 움찔 몸을 떨며 정정했다.

“아 뭐, 그래. 사실 키메라 녀석이 약간의 도움을 주긴 했지. 하지만 달려드는 식인마에게 가장 먼저 몸을 날려 막아선 건 바로 나야! 이몸께서 저 식인마들을 상대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 고기가 질겨 도롱뇽아.

“뭐라?”

- 고기.

- 익혀서 먹고 싶어.

- 아틸라가 만들어 주는 것처럼.

“미친 곰탱이 새끼. 고기를 익혀 먹는 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다. 넌 원래 생고기를 뜯는 짐승이라고!”

- 그치만 그게 더 맛있는걸.

도롱뇽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후……. 알았다. 잠깐 있어봐.”

주위를 살피던 도롱뇽은 근처에 보이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왔다.

그러면서 키메라에게 말했다.

“야 이 미물 키메라 새끼야! 멀거니 서있지 말고 얼른 가서 두툼한 나뭇조각이나 주워 와!”

키메라는 사나운 눈으로 도롱뇽을 바라보다가, 펀치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고는 엄청난 양의 땔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 키메라 새끼. 말 잘 듣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토끼도 몇 마리 잡아 왔다.

“오오오!”

신이 난 도롱뇽은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두툼한 나뭇조각 위에 세워 들었다.

그러고는 양 앞발을 마구 비벼 회전시켰다.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이 곰탱이. 이리 와서 입으로 살살 불어 봐라. 그래. 그렇게. 아니! 너무 세게 불지 말고!”

잠시 후 불이 붙었고, 모닥불이 만들어졌다.

다섯 마리의 토끼가 노릇노릇 구워졌다.

도롱뇽과 펀치는 잘 익은 토끼를 한 마리씩 쥐고 뜯어 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키메라를 향해 도롱뇽이 말했다.

“뭘 꼬나봐 새끼야.”

그러고는 토끼 다리 한 짝을 떼어 키메라에게 던졌다.

“뭐, 너도 나름 수고는 했으니 먹어 둬라. 내 부하가 된 기념으로 특별히 나눠 주는 거니, 앞으로 말 잘 듣도록.”

고개를 갸웃하던 키메라가 그것을 입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며 퉤퉤 뱉어 냈다.

“케헷헷헷헤! 그 덩치에 뜨거운 건 못 먹는 거냐!”

도롱뇽이 배를 잡고 웃었다.

키메라는 바닥에 떨어진 토끼고기에 코를 가져가 킁킁 냄새를 맡다가 이번엔 코를 덴 듯 우어어! 비명을 지르며 몇 걸음 뒤로 달아났다.

그 모습에 도롱뇽이 바닥을 구르며 깔깔댔다.

“케헷헷! 케헷헷헷헤! 저 병신 같은 새끼!”

식사를 마친 도롱뇽은 펀치와 함께 키메라의 등에 올라탔다.

“이제부터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는 거다. 너무 빨리 달리면 곰탱이 새끼가 떨어질 수 있으니 적정 속도를 유지하도록.”

키메라는 도롱뇽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펀치와 무언가 의사소통을 마친 키메라가 고개를 끄덕였고, 남쪽을 향해 달렸다.

흔들리는 키메라의 등 위에서 도롱뇽은 졸음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도롱뇽아.

- 일어나 봐 도롱뇽아.

도롱뇽은 펀치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앞발로 눈을 비비며 중얼댔다.

“……뭐야 키메라 새끼. 한숨도 안 자고 밤새 달린 건가?”

- 응.

- 키메라는 먹지 않아도 되고.

- 잠 자지 않아도 된대.

“뭐라? 이거 진짜 괴물 새끼였네. 뭐, 나도 완전한 몸 상태였을 땐 굳이 먹거나 자지 않아도 괜찮았긴 하지만.”

- 근데 도롱뇽아.

- 내 친구 키메라가.

“뭐? 친구? 언제부터 봤다고 저놈이 네 친구야!”

도롱뇽이 발끈하며 외쳤다.

- 그치만.

- 친구 맞는걸.

“친구는 무슨 친구! 저놈은 말도 안 통하는 괴물 새끼라고! 게다가 언제 돌변해 우릴 잡아먹을지 몰라!”

- 키메라 우릴 도와줬어.

- 식인마로부터 구해 줬어.

“흥. 난 인정 못해! 아무튼 키메라가 뭐. 뭐라는데!”

- 무언가가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대.

* * *

룽겔 연합군과 왕자의 군대는 전면전을 벌이기 전 형식적인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역시나 서로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뼈와 살을 가르는 전쟁뿐이다.

‘오토마이어 녀석. 몰라보게 달라지긴 했군.’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룽겔 공작은 생각했다.

클로비스 백작과 지글러 백작을 양옆에 끼고 등장한 오토마이어 왕자는 항간의 소문대로 율켄마이어를 떠올리게 하는 용모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왕자와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치욕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전면전이 벌어지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 오토마이어는 케플러가 만든 키메라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룽겔 공작은 품에서 자그만 검은 보석 하나를 꺼냈다.

이것은 주위에 검은 보석의 기운을 발하는 생명체가 다가오면 진동으로 그것을 알려 주는 기능을 했다.

룽겔 공작은 클로비스 백작성 근처에 진영을 꾸린 채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검은 보석은 진동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상당한 시일이 한 차례의 교전도 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룽겔 공작은 검은 보석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좋아. 오고 있군!’

룽겔 공작은 공성전의 시작을 알렸다.

그의 신호에 맞춰 연합군의 병력이 클로비스 백작성을 향해 달렸다.

클로비스 역시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며 대응의 준비를 했다.

“궁병대! 조준!”

“발사!”

성벽 위에서 화살비가 쏘아졌다.

연합군은 방패를 들어 그것을 막았고, 몇 명은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그렇게 전쟁의 첫 포문이 열렸다.

“드디어 시작이로구나. 야만전사야.”

“그럼 슬슬 구경이나 해 볼까.”

아틸라는 웃었다.

그는 그 유명한 귀환왕자가 이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큰 호기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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