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73화 (173/425)

173. 연금술이 낳은 괴물 (3)

병사의 검 끝이 펀치의 배를 살짝 눌러 보았다.

봉긋한 배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는 꼴이 잠든 것 같았다.

병사는 안심했다.

케플러는 곰을 죽여도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병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이 곰이 프리실라 샹크리스 공주의 애완동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공작령의 손님, 그것도 타국의 공주가 데려온 동물이다.’

게다가 그는 공주의 혼약자인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경이 룽겔 공작이 자랑하는 네 명의 기사를 동시에 쓰러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로만 들어도 아틸레르 경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강자인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이 곰을 죽일 수는 없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 밧줄 가진 거 있으면…… 그와아아아악!”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검을 떨어뜨렸다.

자신의 손가락을 물고 매달린 도마뱀 한 마리가 보였다.

“뭐, 뭐, 뭐야! 이 도마뱀 새……!”

빠드득! 병사의 손가락이 절단됐다.

병사는 당황했다.

[ 강인한 송곳니 ]

빠득! 병사의 손가락 하나가 추가로 절단됐다.

“크윽……! 이 도마뱀 새끼가……!”

병사는 맞은편 주먹을 들어 도롱뇽을 내리쳤다.

그러나 도롱뇽은 재빠르게 병사의 팔을 타고 어깨 위에 올랐고, 미끄러지듯 이동해 그의 목울대를 뜯었다.

“크뤅……! 크르르릅……!”

목을 붙잡은 병사의 손에서 주룩주룩 피가 흘렀다.

나머지 병사들이 말을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도마뱀이다! 도마뱀이 있어!”

병사들이 검을 뽑았다.

그러나 도롱뇽은 너무나 작고, 빨랐다.

자칫 잘못 검을 휘두르면 동료가 크게 다칠 것 같았다.

“끄어어억……!”

분수처럼 피를 쏟던 병사가 말 아래로 떨어졌다.

그가 흘린 핏물이 군마의 등을 적시고, 다리를 지나 바닥에 고였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을 머금은 군마의 발에서 더욱 강렬한 기운이 뿜어졌다.

그러나 병사들은 또 다른 병사에게 달려든 도롱뇽을 저지하느라, 군마의 몸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으아아악!”

두 번째 병사가 눈에서 피를 뿜었다.

이어 그의 목에서 첫 번째 병사와 마찬가지로 피가 분출됐다.

병사의 몸이 말 아래로 추락했다.

“빌어먹을!”

“도마뱀은 무시하고 곰만 확보해!”

두 명의 병사가 말에서 내려 펀치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신속하게 펀치의 몸을 포박했다.

그것을 본 도롱뇽이 풀쩍 말에서 뛰어내렸다.

“내 친구 건드리지 마라! 미물 새꺄!”

그때 어디선가 날아든 방패가 도롱뇽을 타격했다.

꾸엑! 도롱뇽의 몸이 바닥에 꽂혔다.

도롱뇽은 곧장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병사 하나가 재빠르게 도롱뇽의 배를 밟았다.

“드디어 잡았다. 도마뱀 새끼.”

병사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병사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도롱뇽은 내장이 모조리 으스러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빌어먹을 여기서 이렇게 당하는 건가!’

부드득, 근육이 파열하는 소음이 도롱뇽의 몸 안을 울렸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파열한 건 도롱뇽의 몸이 아니었다.

푸슛! 푸슈슈슛……!

도롱뇽을 짓밟고 있던 병사의 상체가 사라졌다.

한쪽 어깨부터 반대쪽 옆구리까지 비스듬히 뜯긴 그의 몸이 바르르 경련하는가 싶더니, 뒤로 넘어갔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도롱뇽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엉금엉금 펀치에게 기어갔다.

병사들의 비명이 머리 위를 울렸다.

걸쭉한 핏물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핏물의 움직임에 맞춰 비명 소리도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이동했다.

그것은 펀치의 몸을 포박하던 두 병사에게까지 닿았다.

“으으……! 오, 오지 마!”

포박된 펀치를 안고 도주하던 병사의 머리가 덥석, 군마의 먹이가 되었다.

아니 그건 더 이상 군마가 아니었다.

식인마였다.

‘미친! 식인마까지 나타난 거냐!’

몸이 조금 회복됐다는 걸 느낀 도롱뇽은 호다닥 펀치를 향해 달렸다.

다행히 식인마들은 병사들을 잡아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 강인한 송곳니 ]

도롱뇽은 송곳니를 사용해 펀치의 포박을 풀었다.

그러고는 펀치의 뺨을 마구 후려쳤다.

‘시, 시발 곰탱이! 일어나! 얼른 일어나라고!’

그러나 펀치는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도롱뇽은 지금의 상황이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 해도, 펀치가 이렇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도롱뇽은 발견했다.

살짝 벌어진 펀치의 입에서 불길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명계의 보석?’

도롱뇽은 펀치가 검은 보석을 삼켰던 것을 기억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그 보석이 펀치를 무력하게 만든 건 틀림이 없어 보였다.

‘그러게 그건 왜 삼켜가지고!’

도롱뇽은 펀치의 입을 벌리고 쑥 머리를 집어넣었다.

검은 보석은 보이지 않았다.

‘어, 잠깐.’

도롱뇽은 펀치의 목 안에서 무언갈 발견했다.

앞발을 더듬어 찾아 입 밖으로 꺼냈다.

검은 보석의 자그만 파편이었다.

‘그랬군! 케플러 녀석이 보석을 떨어뜨렸을 때 살짝 부서졌고, 곰탱이는 그걸 삼켰지만 파편은 목 안에 남아 있었던 거다!’

이히히히히힝!

식인마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도롱뇽은 고개를 돌렸다.

이 자리의 모든 인간을 포식한 식인마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도롱뇽은 보석의 파편을 저 멀리 던졌다.

몇 마리의 식인마가 그쪽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나머지는 도롱뇽과 펀치를 노려보며 방향을 유지했다.

도롱뇽은 펀치의 꼬리를 붙잡고 힘껏 당겼다.

그러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펀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죽음의 기운이 목을 조이며 다가왔다.

도롱뇽은 생각했다.

투명화로 몸을 숨기고 도망친다면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곰탱이는…….’

도롱뇽은 펀치가 자신을 위해 고기를 가져다줬던 것을 기억했다.

또한 펀치와 함께 경험했던 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아틸라, 바토리, 카스피, 그리고 오토에 대한 것들도.

도롱뇽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스르륵, 도롱뇽의 몸이 투명하게 변했다.

“카아아아아앗!”

선두를 달려오는 식인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도롱뇽은 자신의 송곳니가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투명화로 몸을 숨기고, 운만 따라준다면 몇 마리의 식인마는 사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도롱뇽의 오만이었다.

식인마는 토끼처럼 작지 않았고, 조금 전의 인간 병사들처럼 멍청하지도 않았다.

식인마는 자신의 목에 달라붙은 도롱뇽을 인지했다.

도롱뇽의 송곳니가 박히기 전에 세차게 목을 털어 떼어 냈다.

“꾸에엑……!”

바닥에 처박힌 도롱뇽의 눈앞으로 시커먼 말발굽이 내리쳐졌다.

도롱뇽은 빠르게 움직여 피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우어어어어!

어디선가 날아든 맹금류의 앞발이 식인마의 목을 후려쳤다.

그 강력한 일격에 식인마의 목이 구겨진 종이처럼 접혔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롱뇽의 눈이 커졌다.

‘저, 저놈은!’

곰의 얼굴에 산양의 뿔.

말의 갈기와, 맹금류를 닮은 네 다리.

‘키메라잖아!’

식인마를 쓰러뜨린 키메라가 도롱뇽과 펀치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머지 식인마들이 비명을 지르며 키메라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한 마리의 키메라와 여섯 식인마의 대결이 펼쳐졌다.

이히히히힝!

식인마들은 사나웠다.

인간을 포식한 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포악해지고 있었다.

도롱뇽이 던진 검은 보석의 파편을 먹은 개체 하나는 이마에서 뿔까지 돋아나며 더욱 괴물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뿔 달린 식인마를 중심으로 나머지 식인마들이 군집했다.

아무래도 뿔 달린 놈이 대장이 된 듯했다.

녀석이 성난 황소처럼 키메라에게 돌진했다.

저 뿔에 몸이 꿰인다면 제아무리 키메라라도 성치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키메라는 달려드는 대장 식인마의 머리를 앞발로 막은 뒤, 다른 앞발로 놈의 뿔을 잡아 뜯어냈다.

‘힉! 뭐, 뭐야! 엄청나게 세잖아!’

놀란 도롱뇽은 엉금엉금 기어 펀치에게 다가갔다.

저 키메라가 식인마들을 상대 중인 건 맞지만, 아군인지 적군인지 아직은 단언할 수 없다.

뿔을 잃은 식인마의 가슴에 키메라의 발톱이 틀어박혔고, 바닥에 던져졌다.

식인마는 몇 차례 사지를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대장을 잃은 나머지 식인마들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키메라의 발톱과 뿔에 차례로 숨이 끊어졌다.

크르르르르르…….

키메라의 사나운 눈이 도롱뇽과, 펀치를 향했다.

도롱뇽은 자그만 몸을 최대한 부풀리며 키메라와 펀치 사이를 가로막았다.

터벅터벅 발을 움직인 키메라가 도롱뇽을 발톱으로 툭 밀어냈다.

그러고는 뒤로 넘어진 도롱뇽을 발톱 끝으로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악! 이놈이! 이거 놔! 놓으란 말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도롱뇽을 무시하며 키메라는 물끄러미 펀치를 내려 봤다.

펀치를 향해 고개를 내린 키메라가 크르르, 이빨을 드러냈다.

“야 이 괴물 키메라 새끼야! 너 곰탱이 잡아먹기라도 했다간……!”

키메라가 펀치의 배를 핥았다.

이어 얼굴과, 이마와, 몸 곳곳을 핥기 시작했다.

키메라가 발톱을 들어 도롱뇽을 풀어 줬다.

그러면서도 키메라는 펀치의 몸을 핥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펀치가 눈을 뜰 때까지 그 행동은 계속되었다.

* * *

룽겔 연합군은 클로비스 백작령에 진입했다.

룽겔 공작이 자신을 따르는 가문들과 힘을 합쳐 이곳에 도달한 것처럼.

클로비스 백작 역시도 몇몇 가문을 포섭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물론 오토마이어 왕자의 존재였다.

왕자는 중립을 지키려는 가문의 수장들을 만났고, 그들을 설득했다.

물론 클로비스 백작과 지글러 백작이 옆에서 돕지 않았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중립을 지키던 가문들은 오토마이어 왕자를 선택했고.

그들은 클로비스 백작성 안팎으로 룽겔 연합군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흐응. 수비의 클로비스가 제법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구나 야만전사야.”

아틸라와 바토리는 고지에 올라 저 멀리 보이는 클로비스 백작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데 말이다. 카스피가 저 안에 있는 것 같지 않구나.”

“오토는.”

“이상한 일이로구나. 카스피 주변에서 철혈귀검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둘이 헤어졌다는 건가.”

“그런 것 같구나.”

“카스피는 어디 있는데.”

“발루아 왕국에 있단다.”

“뭐?”

난데없이 발루아 왕국?

아틸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스피가 오토의 곁에서 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 발루아 왕국까지 이동했다니.

‘오토와 함께 움직이다가 무슨 이유로 갈라진 건가?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제 어찌할 셈이더냐.”

“뭘.”

“룽겔 연합군이 밀린다면 도움을 줄 것인지 묻는 것이다.”

“글쎄.”

그렇게 말하던 아틸라의 머릿속 생각이 문득 귀환왕자에 닿았다.

20여 년 만에 왕국으로 복귀한 왕자가 벌써 저 정도의 군세를 보유하고 있다.

분명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아틸라는 그것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오토와 카스피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이 일순 머릿속에서 사라질 만큼.

그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뭐, 재밌을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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