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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72화 (172/425)

172. 연금술이 낳은 괴물 (2)

도롱뇽은 뒤를 돌아봤다.

곰의 얼굴을 한 괴물이 건물 벽을 통째로 부수며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놈의 사나운 눈동자는 이쪽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저, 저게 구해 준 은인에게 뜰 눈깔이냐!’

- 아니야.

- 저건.

‘닥치고 달려!’

소리를 듣고 온 검은 마법사들이 당황했다.

“저, 저게 무슨!”

“탈출했다! 키메라가 탈출했다!”

- 쟤 이름이 키메라인가 봐.

‘아 쫌 닥치라고!’

그때 검은 마법사 하나가 펀치를 발견했다.

“어? 이 강아지는 분명 프리실라 공주의……!”

퍼걱! 키메라의 앞발이 그의 등을 후려쳤다.

검은 마법사는 한순간에 잘 다져진 고깃덩이로 변했다.

그 광경을 본 다른 검은 마법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 으힉!”

“케, 케플러 님을! 케플러 님을 모셔 와라! 어서!”

‘케플러라고? 곰탱이! 잠깐 멈춰!’

펀치와 도롱뇽은 도주를 멈추고 그늘 속에 숨었다.

키메라는 검은 마법사들을 마구 앞발로 후려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며 무언갈 찾았다.

‘시, 시벌! 저거 지금 우리 찾고 있는 거 아니냐!’

잠시 후 케플러가 달려왔다.

그는 한 손에 커다란 검은 보석을 쥐고 있었고, 키메라를 향해 뻗었다.

- 키메라.

- 말을 안 들으려 하고 있어.

펀치의 말대로, 키메라는 케플러의 검은 보석에 통제되지 않았다.

이유는 키메라에 대한 정신 지배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 시험관에서 꺼내졌기 때문.

다시 말해 펀치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어째서 이런 일이!”

케플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는 동안 키메라는 검은 마법사 두어 명을 더 때려눕혔다.

“으……! 으으……!”

검은 마법사들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보니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을 뿐, 그들은 평범한 병사들이었다.

키메라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케플러에게 다가갔다.

케플러는 검은 보석을 더욱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보석에서 불길한 검은 기운이 불길처럼 타올랐고, 키메라는 더 이상 케플러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크르르르르르……!

키메라가 점점 몸을 웅크렸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사나운 울음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었다.

케플러의 지시에 따르고 싶지 않은데 저절로 몸이 반응하는 듯한 모습.

이윽고 키메라는 완전히 바닥에 엎드렸다.

“됐다! 어서 키메라를 포박해라!”

케플러의 명령에 검은 로브의 병사들이 쇠사슬을 들고 나타났다.

키메라의 몸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 도롱뇽아.

- 나.

- 키메라 구해 주고 싶어.

‘뭐? 이런 미친 곰탱이 새끼가. 아까 죽을뻔한 꼴을 당해 보고도 그러냐!’

- 아니야.

- 키메라는 우릴.

펀치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히이익! 미친 곰탱이 새끼! 이게 드디어 완전히 돌아 버렸구나!’

- 난 검은 보석을 훔칠게.

- 넌 쇠사슬을.

‘미친놈아! 내 말 좀 들으라고!’

펄쩍 자리에서 뛰어오른 펀치가 케플러의 손목을 물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케플러는 비명을 지르며 검은 보석을 떨어뜨렸다.

펀치가 그것을 꿀꺽 삼켰다.

케플러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뭐, 뭐, 뭐, 뭐냐 이 곰 새끼는!”

- 도롱뇽아.

‘비, 빌어먹을! 끊었다! 내가 쇠사슬 끊었…… 히이익! 날 보잖아 저 키메라 새끼가!’

“잡아라! 저 곰을 잡아!”

케플러가 실성한 것처럼 소리쳤다.

그러나 병사들은 펀치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도롱뇽의 ‘강인한 송곳니’에 의해 포박에서 풀린 키메라가 무지막지한 앞발 공격을 선사했기 때문.

“크헉……!”

“꺽……!”

그 사이 펀치는 도롱뇽을 입에 물고 달렸다.

케플러는 당황했다.

여분의 보석은 있다.

하지만, 수중에 지닌 것은 없었다.

“마, 막아라! 키메라를 막아!”

기사 하나가 달려왔다.

“이쪽입니다! 케플러 님!”

기사와 병사들의 도움으로 케플러는 현장에서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키메라는 자리의 병사 대부분을 피떡으로 만든 뒤, 연구 시설에서 도망쳤다.

* * *

아틸라는 룽겔 연합군과 함께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케플러의 연구 시설에 관한 건 도롱뇽과 펀치에게 맡겼다.

아틸라는 그동안 심안으로 별다른 소득을 보지 못했다.

바토리의 환술로 룽겔 공작을 현혹해 볼까도 했지만, 그만두었다.

‘바토리는 현자의 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환술은 애초부터 바토리의 주 종목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와 테헤누트의 고서를 통해 미지의 힘으로 성장한 그녀의 환술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프리실라 공주께서는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귀환왕자의 군대는 우리 룽겔 연합군의 기세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룽겔 공작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토리도 미소했다.

“걱정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위용을 지닌 연합군과 더불어, 아틸레르 경께서 절 지켜 줄 터인데 무어가 걱정이겠습니까.”

“하하하하. 그 말이 맞습니다. 저 역시도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경께서 이렇게 함께 출정해 주시니…… 아, 물론 직접 전투에 참여해 달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룽겔 공작이 파충류처럼 눈알을 굴렸다.

“며칠 전 결투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 준 아틸레르 경이 이 자리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크게 만족하고 있지요. 하하하하.”

룽겔 공작의 말은 사실이었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그 하나만으로도 많은 기사와 병사들은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또한 그들은 믿었다.

만약 전쟁이 불리한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면, 저 믿음직한 성기사 아틸레르 경이 적병들을 모조리 쓰러뜨려 주리라고.

룽겔 공작 역시 그것을 노리고 아틸라를 전장에 참여시켰다.

‘성기사는 빚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룽겔 공작의 생각은 틀렸다.

아틸라는 성기사가 아니다.

* * *

“미친 곰탱이 새끼! 너 때문에 영락없이 쫓기는 신세가 됐잖아! 빌어먹을! 이제 고기도 못 먹게 됐고! 언제 그 괴물 키메라가 잡아먹으러 올지 모른다고! 곰탱이, 너도 봤지! 그 키메라가 우릴 잘근잘근 씹어 먹으려고 막……, 뭐라? 아 나 진짜 또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네. 키메라가 무슨 말을 해! 걔 진짜로 우릴 잡아먹으려 했다니까!”

도롱뇽이 펀치의 이마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겼다.

- 아파.

- 아파 도롱뇽아.

“아프라고 당기는 거다! 미친 곰탱이 새꺄!”

도롱뇽을 등에 태운 펀치는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공작성을 벗어난 지는 한참 지났다.

몇 번인가 케플러의 추격대가 말을 달려왔지만 펀치는 자그만 몸을 이용해 최대한 몸을 숨겼다.

물론 펀치의 실력이면 웬만한 기사와 병사쯤은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펀치는 공작성을 벗어난 이후 자신의 몸이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싸움을 회피했다.

- 도롱뇽아.

- 아틸라에게 가려면.

- 아직 멀었어?

“당연히 멀었지! 야만 미물은 말을 타고 갔다고! 니 그 짜리몽땅한 다리로 죽어라 달려 봐야 따라잡을 수 없어!”

- 다리는.

- 네가 더 짧잖아.

“난 원래 길어! 그것도 아주 어어엄청나게! 내가 완전히 힘만 되찾으면 곰탱이 넌 내 한쪽 발가락 때보다도 쪼그맣다고! 알아?”

- 그치만 지금은 짧은걸.

그렇게 펀치와 도롱뇽은 티격태격하며 발을 움직였다.

물론 이동하는 건 펀치 혼자였고, 도롱뇽은 그 위에 앉아 있었지만.

머지않아 펀치는 자신의 몸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느꼈다.

- 내 친구 도롱뇽아.

- 나 배고파.

“배고파도 지금은 참아야 돼. 언제 그 미친놈들이 식인마를 타고 쫓아올지 모른다고. 그 덩치 큰 키메라 새끼도 그렇고.”

펀치의 발이 멈춰 섰다.

주르르, 만세를 부르듯 앞발을 미끄러뜨린 펀치의 뱃가죽이 지면에 눌어붙었다.

“야 곰탱이! 뭐 하는 거야!”

- 배고파서 못 걷겠어.

“빌어먹을 설상가상이구만!”

주위를 둘러본 도롱뇽은 펀치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펀치의 동그란 꼬리를 붙잡고 힘껏 당겼다.

그러나 도롱뇽의 자그만 몸으로 펀치를 옮기는 건 무리였다.

“야야! 잠깐만 일어나 봐! 이렇게 눈에 잘 띄는 곳에 뻗어 있으면 안 된다고!”

펀치는 대답조차 없었다.

쌕쌕대는 숨소리를 내는 것이 잠든 것 같기도 했다.

“후…….”

어쩔 수 없이 도롱뇽은 근처의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을 물고 와 펀치의 몸을 덮었다.

잎새 사이로 돋아난 곰 꼬리가 신경 쓰였지만 애써 무시한 도롱뇽은 킁킁, 후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래. 곰탱이 새끼가 좋아하는 토끼 냄새가 나는군.’

“야 곰탱이!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도롱뇽은 파닥파닥 냄새를 쫓아 달렸다.

과연 얼마 안 가 도롱뇽은 탐스러운 궁둥이를 가진 흰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다.

“오. 굳.”

케헷헷, 웃으며 도롱뇽은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바꿨다.

살금살금 토끼에게 접근했다.

토끼는 풀을 뜯느라 정신이 없는지, 도롱뇽의 습격에 아무런 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무방비한 녀석. 그러니 나 같은 포식자에게 가차 없이 사냥당하는 거다.’

도롱뇽의 비늘이 파르르 곤두섰다.

사정거리 안에 토끼가 들어섰다는 것을 확인한 도롱뇽이 무서운 기세로 질주했다.

“카아아아아악!”

야수처럼 포효하며 도롱뇽이 토끼에게 몸을 날렸다.

그 소리에 토끼가 느긋이 뒤를 돌아봤다.

그제서야 도롱뇽은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 시벌 토끼가 원래 이렇게 컸나?’

코앞에서 본 토끼는 엄청나게 컸다.

이 토끼가 다른 토끼에 비해 커다란 게 아니었다.

도롱뇽이 작았다.

‘비, 빌어먹을!’

투명화가 풀어지며 도롱뇽의 몸이 허공에 드러났다.

도롱뇽은 바늘 끝처럼 자그만 발톱을 한껏 세워 토끼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발톱은 토끼에게 닿지 않았다.

토끼의 발바닥이 도롱뇽의 머리를 내리쳤다.

“꾸에에엑……!”

머리에 강한 진동을 느끼며 도롱뇽이 땅에 처박혔다.

도롱뇽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크흑흑……! 하다 하다 이젠 토끼한테까지……!”

토끼는 도롱뇽의 등을 한 번 콕 찔러 보더니 다시 풀을 뜯는 것에 집중했다.

도롱뇽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코앞에 토끼의 탐스러운 목이 보였다.

[ 강인한 송곳니 ]

와드득! 도롱뇽의 회심의 일격에 토끼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직립한 도롱뇽이 탁탁, 앞발을 털었다.

“후. 별것도 아닌 새끼가 까불고 있어.”

그러고는 토끼 귀를 질질 끌며 펀치에게 이동했다.

펀치만큼 무겁진 않았기에, 도롱뇽은 조금씩이지만 차근차근 이동할 수 있었다.

“케헷헷헷! 곰탱아! 내가 뭘 사냥했는지 알면 깜짝 놀……!”

도롱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리저리 헤쳐진 나뭇가지와 나뭇잎 위로 무방비하게 드러난 펀치의 등이 보였다.

그 앞엔 발에서 시커먼 기운을 뿜는 군마와, 그 위에 올라탄 병사들이 있었다.

병사의 칼끝이 펀치의 몸을 뒤집었고, 동그란 배를 겨눴다.

도롱뇽은 무작정 달렸다.

“고, 곰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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