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연금술이 낳은 괴물 (1)
도롱뇽은 케플러에게서 명계의 냄새를 맡았다.
가까이 올 때까지는 알 수 없었다.
녀석의 몸에서 발하는 연금술의 기운이 명계의 냄새를 상당히 가려 주는 듯했다.
‘명계의 냄새를 풍기는 연금술사에, 이름도 케플러라 했었지?’
도롱뇽은 아틸라가 그 이름을 언급한 걸 기억하고 있었다.
‘절대 놓치면 안 돼. 곰탱이.’
펀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케플러를 미행했다.
그러는 동안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다.
해가 저물어 가기 때문이 아니었다.
‘창이 사라졌군.’
어느새 주위엔 창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옮기던 케플러가 구석진 곳에 위치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달려! 곰탱이!’
문이 닫히기 직전, 펀치는 아슬아슬하게 문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곳은 평범한 방이었다.
케플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엥? 어디로 사라졌지?’
도롱뇽은 앞발로 턱을 만지며 생각했다.
분명 이 방 안에는 연구 시설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 것이다.
도롱뇽은 코를 킁킁대며 명계의 썩은내를 포착했다.
‘저쪽이다 곰탱이.’
펀치는 도롱뇽이 가리키는 곳으로 발을 움직였다.
‘어이. 앞발 좀 들어봐. 그래그래. 그렇게.’
직립한 펀치의 이마를 밟고 선 도롱뇽이 콧구멍을 발름대며 벽을 살폈다.
잠시 후 도롱뇽은 어떤 버튼 같은 것을 발견했다.
‘찾았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문처럼 열렸다.
그곳엔 끝도 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어두운 계단이 있었다.
‘케헷헷헷헤! 발견했다! 발견했어! 이제 이걸 야만 미물에게 알려 주면 지긋지긋한 임무에서 해방이다!’
- 그럴 수 없어 도롱뇽아.
‘엥? 그건 또 뭔 소리냐.’
- 아틸라 나갔어.
- 바토리랑.
‘뭐? 어디 갔는데.’
- 그 공작의 군대가.
- 전투하러 갔는데.
- 데려갔어.
- 아틸라랑 바토리.
‘뭐, 뭐야! 기껏 찾아 놨더니 나갔다고? 언제 갔는데!’
- 오늘 아침에.
- 그치만 난 남았어.
- 내 친구 도롱뇽 밥 챙겨 주려고.
- 나 잘했지.
푸욱, 한숨을 내쉰 도롱뇽이 펀치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하는 수 없군. 내려가 보자. 곰탱이.’
- 아틸라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전쟁을 나갔다면서. 그거 그렇게 금방 돌아올 수 있는 거 아니야. 짧아도 며칠, 길면 몇 주는 걸릴걸.’
- 아.
- 그래서 아틸라가 날.
‘내려가 보자. 이 아래서 올라오는 냄새가 영 심상치 않아.’
- 응. 알았어.
펀치는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펀치의 이마에 오른 도롱뇽은 후각에 정신을 집중하며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했다.
‘계속 가. 그래그래. 아직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마침내 둘은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어딘가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자 은은한 빛이 새어들었다.
그곳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뭐야.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었어?’
연구 시설은 상당히 넓었다.
언뜻 시야에 들어오는 인간만 스무 명은 넘어 보였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저놈들이 그 노움 미물이 말했던 검은 마법사들이로군.’
검은 마법사들의 시야를 피해 펀치가 살금살금 움직였다.
방향은 도롱뇽이 잡았다.
‘지금부터 각별히 조심해라. 지난번 가짜 와이번이나 식인마 같은 괴물이 있을지 몰라.’
도롱뇽은 임무를 받기 전, 아틸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케플러의 연금술과 엮인 검은 보석은 리샤르의 거대 와이번 같은, 아니 어쩌면 더욱 강력한 괴물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케플러는 그렇게나 많은 수의 식인마를 만들었다. 그렇다는 건 놈이 가진 검은 보석이 리샤르가 지녔던 양을 압도하거나, 아니면 연금술과 검은 보석의 궁합이 상당하다는 뜻이겠지.’
‘식인마는 케플러가 완성시키고자 하는 연구의 시발점에 지나지 않을 거다.’
아틸라는 원작에서의 케플러가 어떤 종류의 연구에 집착했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도롱뇽에게 설명해 주었다.
‘킁킁. 어이 곰탱이. 저쪽이다. 저쪽에서 아주 지독한 냄새가 풍겨온다.’
- 근데 도롱뇽아.
- 물어볼 게 있어.
‘뭔데,’
- 아틸라는 그 노움에게.
- 왜 그런 중요한 물건들을 맡기고 온 거야?
‘중요한 물건?’
- 응.
- 현자의 돌하고.
- 오르피나의 성물.
도롱뇽이 피식 웃었다.
‘그래 봬도 노움은 나름 약속을 지키는 종족이다. 가지고 도망친다거나 하지 않아.’
- 저 검은 마법사들이.
- 사엽초를 뜯어갔잖아.
- 그럼 그 노움과 마주쳤었다는 거잖아.
도롱뇽은 펀치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검은 마법사들은 은밀한 숲에서 사엽초를 뜯어가는 도중 알키미야와 조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놈들이 알키미야의 연구실을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법 또한 없다.
현자의 돌과 오르피나의 성물을 강탈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러나 도롱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놈들이 그 숲을 다시 찾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거다.’
- 왜?
‘사엽초를 제외한 연금술 재료는 은밀한 숲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놈들은 노움 미물의 불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지. 너도 봤잖아 곰탱이. 노움의 연금술로 만들어 낸 그 무시무시한 불길을.’
- 아.
그때가 생각난 듯 펀치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알키미야의 불은 어떤 의미에선 화속성 마법보다도 까다로운 힘이다.
또한 알키미야가 지닌 무기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도롱뇽은 알키미야의 연구실에서 심상치 않은 장비를 다수 발견했었다.
‘게다가 놈들은 그 노움이 현자의 돌과 오르피나의 성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잖아. 그러니 일부러 연구실을 찾아갈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고 할 수 있지.’
- 와아.
- 똑똑하다.
- 내 친구 도롱뇽.
‘그걸 이제 알았냐 에헴! 근데 곰탱이. 혼자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 그 노움 무서웠어.
- 그래서 걱정됐어.
- 아틸라 물건.
- 가져갈까 봐.
‘케헷헷헷헤! 쓰잘데없는 걱정 마라. 만약 물건이 없어지면 야만 미물이 어디 가만있을 놈이냐. 대륙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박살을 내버릴걸?’
- 그럼 도롱뇽아.
- 너도 이제.
- 도망치지 않을 거야?
‘뭐라? 도망?’
- 응.
- 너 계속.
- 아틸라에게서 도망치려 했잖아.
도롱뇽은 침묵했다.
그러고는 가만히 생각을 되짚었다.
왜지.
왜 언제부턴가 난 야만 미물의 손에서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거지.
- 응?
- 도롱뇽아.
‘다, 당분간은 야만 미물에게서 떨어질 생각 없다.’
- 왜?
‘왜, 왜냐하면! 그, 그래! 내가 없었으면 야만 미물이 벌써 몇 번은 죽었을 테니까! 곰탱이 너도 기억하지? 그 카르타고 만났을 때도 그렇고, 거대 와이번과 싸울 때도 내가 돕지 않았으면…….’
- 아틸라가 죽지 않길 원하는 거야?
- 그치만 아틸라가 죽으면 넌 자유로워질 수 있잖아.
‘그, 그게…… 그, 그, 그래! 야만 미물은 언젠가 내가 힘을 되찾으면 직접 혼내줄 거니까! 그전까지는 야만 미물이 죽어선 안 되지! 암암! 그래서 내가 힘을 완전히 되찾을 때까지만 야만 미물을 보호해 주는 거야!’
- 그럼 힘을 되찾을 때까진 아틸라 곁에 있을 거야?
- 내 곁에 있을 거야?
‘그건 쉽게 말하자면 불가항력! 불가항력이라는 거다! 모든 것은 내 복수를 위해!’
- 다행이다.
‘다행은 무슨! 내가 힘만 되찾으면 야만 미물 따윈 그냥 콱! 한 방 감도 안 된다고! 하지만 염려 마라 곰탱이. 넌 내가 특별히 살려 줄 테니까.’
그러나 펀치는 도롱뇽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첫째는 도롱뇽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도롱뇽이 힘을 완전히 되찾을 날이 과연 올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둘은 연구 시설의 핵심 건물에 다다랐다.
딱 봐도 그곳에선 수상한 연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도롱뇽이 한껏 코끝을 찡그렸다.
‘우웩. 토할 것 같다!’
펀치는 조심조심 건물을 살펴봤다.
아주 살짝 열린 창문 하나를 발견한 펀치가 그곳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드르륵, 창문을 밀고 들어간 펀치가 바닥에 내려섰다.
도롱뇽이 코를 킁킁대며 실내를 살폈다.
‘음. 사엽초. 사엽초라.’
도롱뇽은 먼저 사엽초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게 있으면 현자의 돌을 수리할 수 있다.
‘빌어먹을. 내 원수인 바토리 할망구가 힘을 되찾는 걸 도와줘야 한다니.’
- 근데 도롱뇽아.
- 정말로 네가 바토리의 왕국을 멸망시킨 거야?
‘그래.’
- 왜?
‘아, 오늘따라 질문 드럽게도 많네. 그걸 곰탱이 니가 알아 뭐 하게!’
- 아니.
- 난 그냥.
- 네가 그랬을 거 같지 않아서.
도롱뇽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나직이 내뱉었다.
‘……내가 그런 건 맞지만, 내 의지로 한건 아니야.’
- 그럼?
‘아, 그러니까 쫌!’
그때 도롱뇽의 눈에 이상한 것이 포착됐다.
‘엥? 저건 뭐야.’
실내 한가운데 거대한 시험관이 세워진 것이 보였다.
부글부글 기포가 끓는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생물이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렇게 생긴 미물이 있었나?’
곰의 얼굴에 산양의 뿔.
일반적인 들짐승처럼 네 개의 다리를 갖고 있었는데, 발톱은 맹금류의 그것을 보는 것처럼 길고 단단했다.
게다가 정수리부터 꼬리로 이어지는 등줄기엔 말의 갈기 같은 것이 비죽이 솟았고, 꼬리 끝엔 뱀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몇몇 동물을 분해해서 한 마리로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양새로군. 왠지 기분 나쁜데.’
도롱뇽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어이. 가자 곰탱이.’
그러나 펀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시험관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끼. 곰 대가리 달렸다고 신기하냐.’
펀치의 머리에서 풀쩍 뛰어내린 도롱뇽은 다시 사엽초 찾는 일에 집중했다.
킁킁, 도롱뇽의 후각이 명계의 썩은내 속에서 사엽초의 향을 감지했다.
마침내 도롱뇽은 사엽초가 그득히 쌓인 창고를 발견했다.
‘오. 여기 잔뜩 있잖아!’
도롱뇽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내가 사엽초를 잔뜩 가지고 나가면 야만 미물 녀석이 좋아하겠지.’
도롱뇽은 아틸라가 펀치의 이마를 쓰다듬듯,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히죽 웃었다.
사엽초를 아구아구 입안에 욱여넣었다.
잠시 후 배가 당구공처럼 동그래진 도롱뇽이 뒤를 보며 말했다.
‘어이 곰탱이. 너도 좀 입안에 잔뜩…….’
펀치가 보이지 않았다.
‘엥?’
그 대신 거대한 검은 벽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고개를 든 도롱뇽은 조금 전까지 시험관에 웅크리고 있던 기괴한 생물의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히익!’
도롱뇽은 냅다 달렸다.
녀석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자마자 마주 달려오는 펀치가 보였다.
- 내가.
- 풀어 줬어.
‘저걸 왜 풀어 줘 미친놈아!’
- 나가고 싶다고 했어.
- 불쌍하게 잡혀 있었어.
도롱뇽의 등 뒤에서 곰의 포효가 들려왔다.
펀치는 도롱뇽을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풀쩍 창틈으로 빠져나갔다.
- 진짜야 도롱뇽아.
- 구해 달라고 했어.
‘미친 곰탱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