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70화 (170/425)

170. 공주와 혼약자 (3)

아틸라가 스킬, 휩쓸기를 사용하기 전.

룽겔 가문의 네 기사는 상대의 단검이 양손검에 버금가는 길이로 변화하는 모습을 봤다.

‘저, 저런 말도 안 되는……!’

심지어 그 검에선 눈부신 광채가 뿜어졌다.

지금껏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네 기사는 의심할 것도 없이 마음속으로 동시에 외쳤다.

‘광명검(光明劍)!’

그 압도적인 광경에 기사들은 자신의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물러날 수는 없다.

자신들은 명예로운 룽겔 가문의 기사다.

“광명검이고 나발이고! 밀어붙여!”

네 기사는 달렸다.

광명검을 손에 든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그가 자세를 낮추며 검 손잡이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폭풍 같은 빛의 선이 네 기사에게 쏘아졌다.

[ 휩쓸기 ]

기사들은 본능적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각자의 무기를 당겨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감각했다.

저 횡으로 베어 오는 광명의 검이 자신들의 허리를 무자비하게 절단할 것이라는걸.

파카카캉!

기사들의 무기가 날아가고, 부러지고, 찢겼다.

네 기사의 몸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허리가 절단된 이는 없었다.

“과, 광명검께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주셨다!”

군중 속에서 어느 기사가 외쳤다.

그 말대로였다.

아틸라는 휩쓸기를 시전하기 전부터 기사들과의 거리를 재고 있었고.

무휼을 휘두르는 순간, 네 기사의 무기만을 타격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 나도 봤어!”

“광명검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경께서 자비를 베푸셨다!”

“과연 빛의 신 ‘포이베’를 섬기는 성기사!”

네 기사는 엉거주춤하게 주저앉은 채 아틸라를 올려봤다.

그들을 향해 아틸라가 성큼성큼 걸었다.

무휼을 겨누며 물었다.

“계속하겠소?”

태양처럼 빛나는 성검을 올려보며 네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졌소.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경.”

아틸라는 기사들에게 차례로 손을 뻗어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자리에서 일어선 네 기사가 가슴을 두드려 나바라 왕국의 예를 표했다.

아틸라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하는 것으로 인사를 받았다.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아틸레르를 외치는 군중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바토리가 걸어 나왔다.

그녀를 보며 아틸라도 웃었다.

* * *

그날 저녁, 룽겔 공작은 아틸라와 바토리에게 눈이 돌아갈 정도의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정말로 훌륭한 결투였소 아틸레르 경! 과연 크레센시아 성기사단과 광명검의 명성은 허튼 것이 아니었구려! 하하하하하!”

바토리가 입술을 가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공작께서도 참. 제 부친께서 아틸레르 경의 검술을 믿고 이렇게 여행을 허해 주셨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하하하! 그렇지! 공주께서 분명 그리 말씀하셨지!”

벌컥벌컥 술을 들이붓는 아틸라를 보며 룽겔 공작이 말했다.

“오. 주량이 상당하신 모양이오 아틸레르 경.”

이번에도 아틸라는 대답 없이 고개만 까딱했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룽겔 공작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머릿속에서 빠르게 주판을 두들기고 있었다.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그야말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사다. 이런 대단한 기사가 시기적절하게 공작령을 방문하다니. 마치 빛의 신 포이베께서 내게 나바라의 왕좌를 안배하시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빛의 신 포이베는 샹크리스 왕국에서 섬기는 신으로, 크레센시아의 성기사들에게 빛의 가호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룽겔 공작은 그동안 포이베의 기적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아틸레르 크레센시아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실력을 보였고, 룽겔 공작은 포이베의 가호 ‘광명검’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왕좌에 오르면 샹크리스 왕국과의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해야겠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성기사가 이 정도의 실력이라니. 그렇다면 그 유명한 ‘키릴 크레센시아’는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란 말인가.’

키릴 크레센시아.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의 젊은 기사로, 소문으론 성기사단장보다도 뛰어난 검술을 지녔다고 한다.

사실상 샹크리스 왕국 최강자라 불리는 존재.

‘어찌 됐든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다. 아틸레르 경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 이곳에 오래 머무르도록 유도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샹크리스 왕국의 성기사는 빚을 잊지 않는다.

자신이 최대한의 친절을 베푼다면, 분명 이번 전쟁에 여러모로 도움을 줄 것이다.

‘칠삭둥이 왕자 녀석이 한 번에 두 명의 기사를 쓰러뜨렸다고? 우습군.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경은 그보다 강한 기사 넷을 쓰러뜨렸다!’

룽겔 공작은 침이 마르게 아틸라의 무예를 칭송했다.

아틸라는 내내 무심한 얼굴이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심안을 통해 룽겔 공작의 속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키릴 크레센시아라.’

공작의 심언 속에서 그 이름을 확인한 아틸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패영전의 영웅, 키릴 크레센시아.

그녀는 룽겔 공작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대단한 강자였다.

‘무려 패영전의 여주인공이니까.’

패영전의 남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샤를이다.

그런 샤를의 라이벌이자, 짝으로 설정한 주인공이 바로 키릴 크레센시아.

룽겔 공작이 손수 따라 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아틸라는 잠시 이곳에 머무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보인 가짜 광명검이 너무 인상적이었는지 오늘도 룽겔 공작은 케플러의 연구 시설에 대해 떠올리지 않았고.

아울러 이곳의 술과 고기는 최상급이었으니까.

* * *

며칠 후.

도롱뇽은 투명화로 몸을 숨긴 채 공작성을 배회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야만 미물! 지는 맛있는 거 다 처먹고 다니면서 내겐 이런 잔심부름이나 시키다니!’

도롱뇽이 아틸라에게 받은 임무는 케플러의 연구 시설을 찾는 것이었다.

아틸라는 그간 룽겔 공작을 볼 때마다 심안을 시전했지만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기껏 결투를 통해 의심의 싹을 잘라 놨는데, 그의 깊은 비밀인 연금술에 대해 묻는다면 이전보다 더한 의심을 사게 될 테니까.

‘어이 도롱뇽. 지금부터 케플러의 연구 시설을 찾는 거다. 놈은 분명 검은 보석의 힘을 이용하고 있을 테니 잘 돌아다니면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

‘참고로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밥은 없다.’

밥이 없다는 아틸라의 말에 도롱뇽은 강하게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펀치에게도 도움의 눈빛을 보내 봤건만, 바닥을 뒹굴며 바토리와 장난질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도롱뇽의 연구 시설 찾기 퀘스트가 시작됐다.

며칠을 굶은 도롱뇽은 홀쭉해진 배를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흑흑……! 허리가 개미허리가 됐잖아!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님이 어쩌다 이런 꼴이! 빌어처먹을 곰탱이 새끼도 똑같아! 내가 그렇게 애절한 눈빛을 보냈는데 본 체도 안 하고! 나쁜 놈! 맨날 말로만 친구라…… 켁!’

“어? 방금 뭐가 발에 걸린 것 같았는데?”

“네 발에 네가 걸린 거 아니니?”

“아, 아니야! 정말 발에 뭐가 부딪혔다니까?”

“아무것도 없는걸? 그건 그렇고 말이야.”

“뭐가?”

“아틸레르 크레센시아 경 말이야. 정말 너무너무 멋지지 않아? 아아. 난 언제 그런 멋진 기사님을 만나게 될까.”

“어휴, 또 그 소리니? 우리 같은 하녀들이 그런 기사님을 만날 날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니까?”

“흥. 나도 알거든? 생각만이라도 해 보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

“가자. 귀염둥이 올 시간이야.”

“헉! 맞네? 얼른 가자!”

멀어지는 두 하녀를 보며 도롱뇽은 바닥에 퉤, 침을 뱉었다.

하녀의 발에 걷어차인 턱이 아직도 얼얼했다.

빈정이 상한 도롱뇽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있는데 툭, 하고 잘 익은 고기 한 점이 떨어졌다.

‘엥?’

도롱뇽은 고개를 들었다.

펀치가 혀를 헥헥대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곰탱아아아아!’

도롱뇽이 펀치를 끌어안았다.

펀치는 그런 도롱뇽의 얼굴을 몇 차례 핥았고, 도롱뇽은 펀치가 가져온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배가 볼록해진 도롱뇽이 펀치의 덜미로 기어올랐다.

‘역시 와 줬구나 곰탱이! 난 니가 꼭 올 줄 알았다니까!’

도롱뇽을 태운 펀치가 복도를 달렸다.

조금 전 도롱뇽을 걷어찼던 하녀가 사라진 방향이었다.

중간에 몇 번인가 다른 하녀들을 마주했다.

“어머. 강아지.”

그러나 그들은 펀치가 프리실라 공주의 애완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딱히 펀치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어이 곰탱이. 고기 또 없냐?’

- 많아.

- 저쪽에.

‘오. 많다고? 정말?’

- 응.

- 조금 전 고기도.

- 거기서 가져온 거야.

- 얼른 가자 내 친구 도롱뇽아.

‘그래그래. 내 친구 곰탱아! 얼른 가자! 캬캬캬!’

머지않아 펀치는 조리실에 들어섰다.

며칠간 이곳에서 머물며, 펀치는 어떻게 해야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는지 체득했다.

“어머. 프리실라 공주 전하의 강아지네.”

“또 왔다고? 나도 볼래.”

“어쩜 이렇게 귀엽지?”

하녀들이 펀치를 내려다봤다.

그런 하녀들을 올려보며 펀치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뒤 혀를 헥헥댔다.

“꺄아아 귀여워!”

“심자앙……! 내 심장이이이……!”

심지어 펀치를 가장 좋아하는 건 하녀장이었다.

심장을 움켜쥐고 식은땀을 흘리던 하녀장은 남는 고기를 보기 좋게 썰어 펀치 앞에 대령했다.

부유한 공작성엔 남는 고기도 일등품이었다.

‘오 곰탱이! 네놈에게 이런 재주가!’

- 얼른 먹어.

- 내 친구 도롱뇽아.

그렇게 말하며 펀치가 고기를 베어 물었다.

도롱뇽도 질세라 옆에서 고기를 뜯었다.

펀치에게 정신이 팔린 하녀들은 도롱뇽의 자그만 입모양대로 줄어드는 고기에는 신경을 쓸 틈조차 없었다.

그렇게 몇 차례 고기 접시가 대령되었고, 마침내 한계까지 배를 채운 펀치와 도롱뇽이 자리에 드러누웠다.

‘꺼어억……! 영원히 여기 살았으면 좋겠다 곰탱아.’

그때였다.

“오늘 내 식사를 만든 게 누구야!”

쾅! 조리실의 문을 걷어차며 어떤 남자가 소리쳤다.

하녀 하나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부, 분명 기름기 없는 살코기로…….”

“뭐? 이걸 보고도 그런 헛소릴 늘어놓을 참인가!”

와장창! 남자가 고기 접시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하녀장이 달려와 굽신대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케플러 님! 지금 당장 새로 식사를……!”

“오늘은 됐다! 이미 입맛은 다 떨어져 버렸으니까! 내일 아침 식사나 제대로 가져오도록!”

남자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문을 걷어차며 나갔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한 하녀장이 잔뜩 미안한 얼굴로 펀치를 돌아봤다.

“미안해 강아지야. 깜짝 놀랐…… 응?”

강아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 * *

‘저놈이다! 저놈의 뒤를 밟아 곰탱이!’

펀치는 케플러의 뒤를 쫓고 있었다.

- 저 사람이.

- 아틸라가 찾는 그 사람?

도롱뇽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좁혀졌다.

‘그래. 분명해. 저놈에게서 명계의 썩은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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