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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61화 (161/425)

161. 은밀한 숲의 연금술사 (1)

아틸라는 흑철방패를 내민 채 화염의 열기를 버텼다.

오래지 않아 화염은 사그라졌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드워프 놈들이 만든 방패야? 그중에서도 장인인지 뭔지 하는 놈들의 솜씨 같은데.”

몸을 일으킨 아틸라가 흑철방패를 거뒀다.

방패엔 여전히 열기가 남아 있었다.

갑옷 또한 마찬가지.

이것이 골든핑거가 만든 무구가 아니었다면, 아틸라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갑옷 속에서 통구이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드워프 놈들의 친구라면 그 빌어먹을 ‘검은 마법사’ 놈들과 한패는 아니겠군. 말해라 인간 전사. 이곳을 찾은 이유가 뭐지?”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알키미야.”

조잡한 화염방사기처럼 생긴 물건을 손에 든 여자 노움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엥? 뭐야 너!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파울루에게 들었다.”

거짓말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파울루의 이름을 대는 것이 상대의 경계를 푸는 방법이란 걸 알고 있었다.

“뭐? 파울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던 노움, 알키미야가 화염방사기의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이상한데. 파울루가 내 이름과, 내가 있는 곳을 알려 줬다고?”

“그래.”

“녀석을 어디서 만났지?”

“아스투리아 왕국의 키다리 산. 지금은 아인하르트 왕국이 되었지.”

알키미야는 아직 의심이 남은 얼굴이었다.

아틸라는 바토리를 불러 현자의 돌을 받아 낸 뒤 알키미야를 향해 내밀었다.

“못 믿겠으면 확인해 봐라. 네 동생 파울루가 직접 만든 것이니까.”

아틸라의 말대로, 알키미야는 파울루의 누이였다.

물론 노움은 인간처럼 가족에 대한 정이 강한 종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보단 나았다.

“수상한 짓 하지 마. 그랬다간 이 ‘알키미야의 불’로 지져 버릴 테니까.”

역시 자기 이름을 붙여 놓았군.

하고 생각하며 아틸라는 속으로 웃었다.

알키미야는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노움이다.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온 알키미야가 아틸라의 손에서 돌을 낚아챘다.

그것을 살펴보던 그녀가 구슬 같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뭐, 뭐야 이건! 이걸 파울루가 만들었다고?”

“그래.”

“거, 거짓말! 파울루가 언제 ‘진리의 연금술’을……!”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마라. 너라면 그 돌이 파울루가 만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알키미야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틸라의 말대로, 그녀는 손안의 돌에서 파울루의 연금술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한걸? 파울루의 기술 말고도 다른 것이 섞여 있다.”

“눈치챈 건가. 돌이 망가지는 바람에 인간 연금술사의 힘을 빌렸었다.”

“뭐? 인간 연금술사?”

배를 잡고 깔깔대던 알키미야가 소리쳤다.

“웃기는군! 인간 따위가 연금술을 한다고? 놈들은 연금술의 본질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것이 없어! 그래서 파울루 녀석이 만든 돌을 오히려 망쳐 놓았군!”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하다. 알키미야.”

알키미야가 눈썹을 꿈틀대며 아틸라를 올려 봤다.

“뭐야. 설마 이걸 고쳐 달라고?”

“그 말대로다.”

“거절하지.”

“이유를 듣고 싶군.”

“내가 알키미야이기 때문이지. 난 파울루 같은 허접한 연금술사가 만든 돌 따위 고칠 생각이 조금도 없거든. 심지어 인간 연금술사의 손이 섞인 물건이라면 더더욱.”

“파울루가 허접한 연금술사라고? 조금 전엔 ‘진리의 연금술’이라 말하지 않았었나?”

진리(眞理)의 연금술.

마법사에게 ‘진리의 경지’라는 것이 있듯, 진리의 연금술은 연금술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비, 빌어먹을 그래! 내가 말했다! 어찌 됐든 난 이 돌을 고쳐 줄 생각이 없으니 도로 가져가! 그리고 썩 내 숲에서 물러나라!”

알키미야가 아틸라에게 현자의 돌을 내밀었다.

그것을 잡은 아틸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져가라면서 손에 힘을 꽉 주고 있군.”

“내, 내가 언제!”

“솔직해지는 게 어때 알키미야. 너도 이 ‘현자의 돌’을 연구하고 싶잖아.”

알키미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현자의 돌? 이게 현자의 돌이라고?”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채지 않았나. 진리의 연금술 운운할 때부터.”

“…….”

“이걸 연구하게 해 주지. 그것에 대한 등가교환으로 넌 현자의 돌을 수리하는 거다. 어때.”

알키미야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대작인 ‘알키미야의 불’을 쏘아 내기 위해 상당량의 원료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틸라를 향해 발사했던 불도 실은 원료가 모두 소모되는 바람에 꺼져 버린 것.

그리고 현자의 돌을 마주한 그녀는, 이 돌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다.

“네가 돌을 완벽하게 수리해 준다면, 나 역시 ‘알키미야의 불’을 완전하게 만들어 줄 방법을 제공하지.”

“뭐, 뭐?”

자신의 심중을 읽은 듯한 말에 알키미야가 화들짝 놀랐다.

“무, 무얼 제공할 건데.”

“알키미야의 불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현자의 돌’의 배합식.”

놀란 토끼 눈을 뜬 알키미야를 내려 보며 아틸라가 히죽 웃었다.

패영전 세계에서 현자의 돌이란 하나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쓰임새에 따라 여러 가지 돌을 제작할 수 있지.’

파울루를 통해 만들었던 첫 번째 현자의 돌은 서리나무숲에서 빌린 ‘생명의 보석’과 리베르의 구슬, 즉 ‘파멸한 신의 조각’을 이용한 것이었다.

지금 아틸라의 수중엔 생명의 보석이 없다.

그러나 그에겐 생명의 보석보다 더욱 훌륭한 물건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바토리의 현자의 돌을 단순히 수리하는 것을 넘어 한 단계 뛰어난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할 생각이었다.

‘물론 알키미야의 불도 완성시켜 주고 말이지.’

“음. 음. 음! 음! 그래! 좋아!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으니 일단 따라와! 다시 말하지만 허튼수작을 부렸다간!”

“그래. 알키미야의 불로 우릴 통구이로 만들 생각이겠지.”

“알았으면 됐어! 하지만 그 정도론 제대로 된 등가교환이라 할 수 없지! 내가 손해를 보는 장사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파울루 녀석이 만든 냄새 나는 물건의 수리라니!”

알키미야의 눈이 바토리를 향했다.

“이 돌을 보나 네 차림을 보나, 넌 마법사인 모양이지?”

“그렇단다. 숲의 난쟁이 노움아.”

“센 편인가? 네 마법 말이야.”

“어디 가서 약하다 소리 들을 정돈 아니란다.”

“하긴. 이 돌을 다룰 정도면 그 정도 실력은 되어야겠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더냐.”

“얼마 전 숲에 ‘검은 마법사’들이 들이닥쳤다. 다행히 놈들은 머지않아 물러갔지만 숲의 일부가 심하게 오염됐거든. 그리고 그건 내 ‘알키미야의 불’로 소각해도 완전히 정화되지 않더군.”

“그래서, 내게 그 정화를 부탁할 생각이더냐.”

“부탁은 무슨! 공정한 등가교환이다!”

알키미야의 말에 바토리가 소리 내 웃었다.

그러고는 알키미야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흐응? 지금 공정이라 하였느냐. 그 돌은 지금 상태에서도 제 기능을 하고 있단다. 네가 우리에게 줄 도움이란 ‘아주 약간’ 망가진 그것을 수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 한데 우리가 네게 주어야 할 도움은 현자의 돌을 연구할 기회를 주는 것과, 그 ‘알키미야의 불’이란 것을 완전체로 만들어 주는 것, 거기에 더해 오염된 숲의 정화까지. 아무리 보아도 이건 제대로 된 등가교환이 아닌 것 같구나. 그렇지 않느냐 숲의 난쟁이 노움아.”

알키미야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새빨개진 얼굴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노움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민감하다.

그리고 등가교환(等價交換)이란, 가치가 동등한 것을 교환할 때만 이름 붙일 수 있는 것.

“그,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이대로 교환이 이뤄지면 넌 등가교환을 위장한 부등가교환(不等價交換)을 시행한 기억에 평생토록 시달릴 테지. 물론 오염된 숲의 정화는 도와주겠다. 허나 그렇다면 너 또한 나의 부탁을 한 가지 더 들어줘야 할 것이야. 물론 저 뒤에 있는 잘생긴 전사에겐 비밀로 하고 말이다.”

알키미야와 바토리의 눈이 이쪽을 향하는 것을 본 아틸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바토리의 속삭임은 매우 작아서(어쩌면 마력을 씌운 것일지도) 아틸라는 바토리가 말하는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 거야 할망구.’

궁금했지만 아틸라는 바토리에게 심안을 시전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알키미야가 바토리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앞장서며 말했다.

“뭘 멍하니 서 있어! 빨리빨리 따라와!”

* * *

“정말 아틸라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야?”

카스피가 다시 물었다.

“아니 아틸라에게 언제까지 적마탑에 머무를 건지, 또 이동하면 어디로 이동할 거냐고 기껏 물어 놓고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에엥? 그걸 어찌 아쇼?”

“그때 깨어 있었으니까.”

“히이익! 그럼 그때 내가 했던 낯간지러운 소릴 다 듣고 있었단 거요!”

“아, 뭐 사선을 함께 넘나든 동료니 어쩌니 했던 거? 그게 뭐 낯간지러운 소리라고.”

“잠시 쉬어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젯밤부터 쉴 새 없이 말을 달렸습니다. 말도 많이 지쳤고, 왕자 전하께서도 잠시나마 눈을 붙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떠올랐던 해는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하늘엔 어스름한 달이 떠올라 있었다.

오토가 말했다.

“왕자라는 호칭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소, 로잘린 경.”

“하지만 왕자 전하.”

“난 지금 쫓기는 몸이오. 그렇다면 ‘왕자’라는 호칭은 지금의 우리 상황에 적합지 않은 말이지. 그냥 ‘오토’라 불러 주시오. 나 역시 그대를 로잘린이라 부르겠소.”

마지못해 로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말에서 내려 휴식을 취했다.

로잘린은 자신이 불침번을 설 테니 오토에게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라 말했지만 오토는 한사코 거부하고 자신이 불침번을 섰다.

머지않아 나무에 기댄 로잘린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카스피도 많이 피곤했는지 로잘린 곁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두 여인의 모습을 내려 보던 오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

오토는 로잘린의 조언에 따라 클로비스 백작가를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인 이본 클로비스의 본가.

룽겔 공작만큼은 아니지만 왕국에서 나름의 권력을 쥐고 있는 가문.

‘그러나 그런 가문에서조차 어머니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오토는 로잘린에게 어머니의 최후를 들었다.

그녀는 로잘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오토마이어 왕자를 국외로 도피시킨 것은 자신의 독단이었노라고 말했다.

대노한 율켄마이어 왕은 이본을 옥에 가두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이본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그녀의 입안에선 독극물이 검출됐다.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독살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룽겔 공작이…….’

누구의 소행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옥에 가두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결코 쉽게 독에 노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토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전사처럼 보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토는 아버지처럼 강해지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강한 자를 동경했고, 한편으로 의지했다.

과거에 로잘린에게 그리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아틸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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