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55화 (155/425)

155. 무너지는 마탑 (3)

라일의 일격을 맞은 거대 와이번은 크게 흥분한 상태였다.

녀석의 몸에서 더욱 짙은 그림자의 힘이 뿜어졌다.

그것은 리샤르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 이게…… 무슨……!”

리샤르는 자신의 몸이 거대 와이번과 동화되는 것을 느꼈다.

아니, 흡수되고 있었다.

자신을 따르던 와이번 기수들이 같은 꼴을 당할 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였지만, 정작 자신에게 벌어지자 크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리샤르는 와이번의 등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자신의 하체는 이미 와이번과 한 몸처럼 융합돼 있었다.

“이것은……!”

리샤르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기묘한 광채를 뿜었다.

그의 머릿속에 지나간 일들이 스쳐갔다.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여섯 개의 보석.

그것을 통해 자신과 연결된 어떤 절대적인 존재.

그리고 간택.

리샤르는 자신의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되는 ‘그 존재’의 목소리에 매료됐다.

그래서 리샤르는 목소리의 의지에 따라, 디디에를 포함한 다섯 명의 기사를 포섭해 와이번 기수로 만들었다.

그들에겐 모두 동일한 보상을 약속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 즉시, 기사단장으로 임명해 주겠네.’

기사들은 리샤르의 제안을 따랐다.

그들이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누구보다도 나바라 왕국에 충성을 다하는 기사들.

지금의 기사단장은 허물이 많은 인물이었다.

‘기사단을 재건하고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남쪽은 신생 왕국 아인하르트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며 주변국들을 흡수하고 있다.’

패왕 샤를 아인하르트의 명성은 나바라 왕국에도 닿아 있었다.

그리고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남쪽의 위협을 대비해야 한다고 여겼다.

‘국방력을 키우는 것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러나 지금의 왕국엔 자금이 충분치 않다.’

현재 나바라 왕국은 왕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상황.

게다가 적마탑마저 품에 안고 있다.

기사들은 해마다 적마탑으로 이동하는 지원금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리샤르의 제안에 동조했다.

무능한 기사단장을 갈아치우고, 더불어 적마탑이 멸망한다면 왕국이 예전의 힘을 되찾는 것도 꿈이 아니라 여겼던 것.

그러나 그들은 리샤르에게 속았다.

디디에를 제외한 나머지 네 기사는 차마 인간의 사체라 부르기도 어려운 모양새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젠 리샤르의 차례였다.

그는 다른 기수들보다 더욱 큰 보석을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와이번과의 동화도 빨랐다.

“큭큭큭큭…… 그래! 이것 역시도 그분의 뜻이란 말인가!”

리샤르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고는 검은 보석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그의 눈과 코와 입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졌다.

그것이 그의 몸을 휘감고, 순식간에 거대 와이번과 동화시켰다.

무너지는 리샤르의 몸이 와이번의 척추에 흡수됐다.

그와 동시에 와이번의 이마에서 시커먼 뿔이 돋아났다.

“저런 미친! 저 미물 새끼가 가짜 와이번과 완전히 동화했잖아!”

도롱뇽이 외쳤다.

와이번이 입을 벌렸다.

아틸라는 놈이 브레스를 쏘아 낼 생각이라는 걸 알았다.

“저 뿔이다 야만 미물! 저 뿔에서 강력한 힘이 느껴져!”

도롱뇽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틸라는 해방 스킬의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무휼에 쌓인 성력도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와이번의 입에서 브레스가 쏘아졌다.

이 상황에서 도롱뇽의 브레스로 대항하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다.

“아파도 참아라 도롱뇽.”

“뭐? 그게 무슨…… 꾸에에에엑!”

[ 도약(跳躍) ]

도롱뇽의 덜미를 짓밟으며 아틸라의 몸이 하늘 위로 솟았다.

그 여파로 도롱뇽의 몸이 아래로 밀려났고, 아슬아슬하게 와이번의 브레스를 피했다.

[ 타점을 특정합니다. ]

콰앙! 아틸라의 두 발이 와이번의 등을 짓밟았다.

그곳에서 뿜어지는 충격파가 와이번의 몸을 흔들었고, 그것에 더욱 분노한 와이번이 자신의 기다란 목을 이용해 아틸라를 습격했다.

“그래. 와라.”

아틸라는 무휼을 갈무리하고 다른 무기를 손에 들었다.

급박하게 치러지는 전투 탓에 잊고 있었지만, 그에겐 무휼과 흑철검 말고 또 다른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는 도롱뇽의 힘이 강해질수록 함께 강해지는 아주 특별한 무기였다.

[ 드라칼리온 ]

상대는 명계의 힘이 닿은 괴물.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이 지닌 미지의 힘에 걸었다.

평소보다 길어진 드라칼리온이 와이번의 아가리를 베었다.

핏물 같은 검은 연기가 흩어졌고, 녀석은 목구멍을 꿈틀대며 재차 브레스를 발산하려 했다.

그래서 아틸라는 양팔로 와이번의 목을 휘감았다.

우드득.

‘포식의 주인’으로 상승한 초인적인 근력이 와이번의 목을 부러뜨렸다.

와이번이 괴로운 듯 몸을 뒤틀었고,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으로 녀석의 목을 찔러 가며 머리를 향해 기었다.

놈의 이마에 돋아난 뿔을 움켜잡았다.

드라칼리온으로 내리쳤다.

파듯! 콰직! 콰드드듯!

몇 차례 후려치자 뿔이 흔들렸다.

와이번은 거칠게 발톱을 휘두르며 아틸라를 떼어 내려 했고, 그때마다 그는 뿔을 엄폐물 삼아 공격을 피했다.

그러는 사이 도롱뇽의 해방 지속 시간이 끝났다.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이 원래의 장난감 같은 크기로 돌아온 것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키헤에에에엑! 나 떨어진다! 떨어진다고 야만 미무우우울!’

아틸라는 힘이 쇠한 드라칼리온을 입에 물었다.

양손으로 와이번의 뿔을 움켜쥐고, 당겼다.

뿌드드드드드듯……!

드라칼리온에 손상 입은 뿔이 조금씩 뽑혀 나오는가 싶더니 완전히 머리에서 분리됐다.

뿔이 뽑힌 자리에서 분수처럼 검은 기운이 솟았다.

그 음습한 마력을 피해 아틸라는 미끄럼틀 타듯 와이번의 목을 타고 내려왔다.

두 손을 들어 거대한 뿔을 거꾸로 쥐었다.

힘껏 와이번의 등에 찔러 넣었다.

* * *

해방의 지속 시간이 다해 추락하던 도롱뇽은 카스피가 안전하게 받아 냈다.

“케헥! 주,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잘 받았지? 헤헤.”

오토는 혹시 모를 적의 기습에 대비해 검과 방패를 들고 바토리의 곁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틸라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오토뿐 아니라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틸라와 거대 와이번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저건……!”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마치 고대의 인간 전사가 마수와 결전을 벌이는 듯하군……!”

라일도 가까스로 돌아 누우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메피스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버서커 아틸라는 특별한 존재다.’

그 말대로였다.

아틸라는 저 무시무시한 거대 와이번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에겐 데스나이트 카르타고마저 쓰러뜨린 전설의 검, ‘드라칼리온’이 쥐어져 있다.

또한 라일은 어렴풋이 짐작만 가능했지만, 아틸라는 ‘포식의 주인’ 스킬로 초인적인 근력을 획득한 상태.

그러나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아틸라의 무력은 대단했다.

보통의 전사라면 저런 괴수를 상대로 일대일의 싸움을 벌일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아틸라는, 어떻게.’

메피스토의 말대로 그는 특별한 존재다.

그러나 그 특별함의 정도가 지나쳤다.

라일의 눈엔 아틸라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보였다.

메피스토가 속삭였다.

‘버서커 아틸라는 현재 승천자에 가장 근접한 존재다.’

‘승천자?’

‘그렇다. 버서커 아틸라. 패왕 샤를 아인하르트. 머지않아 이들은 승천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지에 따라 이 세계는 많은 것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지?’

‘메피스토펠레스와 붉은 눈의 귀공자, 데스나이트 카르타고, 그리고 버서커 아틸라의 힘은 세계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것은 다가올 승천자의 존재와, 그들이 펼칠 새로운 전쟁이 반드시 ‘신계(神界)’에서 이루어지지만은 않을 거란 새로운 결론을 도출했다.’

라일은 메피스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에 대해 캐물을 상황이 아니다.

지금 지상에 서 있는 자들에겐 저 와이번을 쓰러뜨릴 힘이 없다.

자신을 포함한 적마탑 마법사들은 대부분의 마력을 소진했고, 저 대단한 마법사인 바토리 에르제베트조차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순간 라일은 아틸라가 와이번의 기다란 뿔을 맨손으로 뽑아내는 광경을 봤다.

“저, 저건……!”

“맨손으로 뽑아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적마탑 마법사들은 느끼고 있었다.

저 거대 와이번의 머리에 돋아난 것이 평범한 뿔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저 전사는 맨손으로 뿔을 뽑아 버렸다.

이어 전사가 와이번의 목을 타고 미끄러지듯 몸체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거꾸로 들어 올린 뿔을 와이번의 등에 밀어 넣었다.

콰드드득!

와이번의 몸체가 뚫리는 소음이 먼 지상까지 들렸다.

몇 번인가 사지를 뒤틀던 와이번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고는 지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추락을 시작했다.

“위, 위험해!”

“이대로 추락하면……!”

늘어진 와이번은 지면에 드러누운 적마탑의 상체를 향해 똑바로 낙하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직감했다.

폭주하려던 적마탑의 마력은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마법사가 가까스로 억제시킨 상태.

그런데 그 위로 저 가공할 기운을 발하는 거대 와이번이 떨어진다면.

“포, 폭주다! 마력의 폭주가 일어날 거야!”

마법사들은 당황했다.

그때 젊은 마법사 하나가 소리쳤다.

“자, 잠깐! 저 전사가 무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전사는 와이번의 등에 박힌 뿔을 붙잡고 비틀며 낙하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충분치 않았다.

거대 와이번에겐 날개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극적인 방향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아……!”

“이대로라면……!”

한편 와이번의 뿔을 부여잡은 아틸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와이번은 적마탑에 추락한다.

그리고 엄청난 마력의 폭발이 발생할 것이다.

아틸라는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는 뿔을 더욱 옆으로 당기며 체중을 실었다.

그러자 뿔의 각도가 지면과 수평을 이루며 와이번의 몸이 옆으로 누운 모양새로 기울었다.

아틸라는 기울어진 와이번의 등을 양발로 짚었다.

다가오는 지면을 노려봤다.

지면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 도약(跳躍) ]

아틸라의 두 발이 와이번의 등을 박찼다.

그 반동으로 비스듬히 날아간 와이번의 몸체가 적마탑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박혔다.

“오오오!”

마법사들이 경탄의 목소리를 뱉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위험한 상태였다.

떨어지는 관성에 더해 도약까지 시전된 그의 몸은 지면에 닿는 즉시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것이다.

마법사들도 그것을 알았다.

아틸라는 흔들리는 시야를 다잡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타점을 확인하고, 결정했다.

[ 타점을 특정합니다. ]

떠오르는 메시지와 함께 그의 몸이 공중에서 중심을 잡았다.

그 순간 마법사들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어느 야만전사의 믿을 수 없는 몸놀림을 봤다.

콰아아앙!

지금껏 본 중 가장 강렬한 충격파를 발하며, 그렇게 전사의 두 발이 지면을 짚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