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54화 (154/425)

154. 무너지는 마탑 (2)

낙하하는 아틸라의 두 발이 허공을 날던 플라이웜의 등을 지르밟았다.

상당한 충격이었지만 도약 스킬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기에 플라이웜은 수 미터 아래로 내려앉는 정도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아틸라의 목적은 수 미터 아래로 하강하는 것이 아닌, 무너지는 적마탑보다 빠르게 지면에 도달하는 것.

그래서 아틸라는 플라이웜의 한쪽 날개를 잘라 버린 뒤, 낙하하는 타이밍을 계산해 다른 플라이웜의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타깃의 등에 안전하게 착지한 아틸라는 동일한 방법으로 다음, 그다음 플라이웜을 밟으며 지면을 향해 움직였다.

“당신은…… 누구…….”

등 뒤에서 클레르가 중얼댔지만 무시했다.

아틸라는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허리가 동강난 마탑이 무너지는 속도는 거침이 없었고, 결국 아틸라의 이동 속도를 뛰어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아틸라는 모험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단단히 잡으시오. 클레르 플라마.”

아틸라는 무너지는 적마탑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공중에서 빙글 몸을 돌려 머리와 발의 위치를 바꾼 뒤, 내려앉는 적마탑의 외벽을 거꾸로 밟았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육중한 무게를 감각하며 시전했다.

[ 도약(跳躍) ]

거꾸로 선 아틸라의 신형이 지면을 향해 발사됐다.

그 상태에서 아틸라는 다시금 몸을 회전시켜 머리와 발의 위치를 원상복구시켰다.

그러자 보였다.

가까워지는 지면 위로, 자신의 시선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붉은빛의 타점이.

‘됐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적마탑과 지면을 돌아보며 아틸라는 적절한 타점을 찾았다.

그 와중에 그는 바토리가 무어라 소리치며 주문을 영창하는 것을 봤고, 클레르의 몸에 ‘피의 보호막’이 둘러졌다.

저만치에서 라일은 적마탑 마법사들과 함께 다가올 충격파를 대비해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아틸라가 피식 입가를 올렸다.

그래. 다들 눈치껏 잘 움직여 주고 있군.

[ 타점을 특정합니다. ]

쿠웅! 지면에 도달한 아틸라의 발밑에서 강한 충격파가 일었다.

폭풍처럼 몰아친 그것이 사방으로 번졌지만 피해를 입은 이는 없었다.

바토리와 라일이 잘 대처해 주었기 때문.

“야만전사야!”

“이, 이게 무슨 일이요 아틸라 님!”

“아틸라아아아!”

흙먼지를 헤치며 말을 달려오는 바토리, 오토, 카스피가 보였다.

아틸라는 오토에게 클레르를 데리고 피신하라 명했다.

“아, 아틸라 님은 어쩌시려고……!”

“어쩌긴 뭘 어째. 저걸 막아야지.”

아틸라가 눈짓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오토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 저 무너지는 탑을 맨몸으로 막겠다 이 말이요!”

“안 돼 아틸라! 아무리 아틸라가 힘이 세다 해도 저건……!”

아틸라 역시 알고 있었다.

저 무너지는 적마탑은 후마이야의 전투 코끼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울 터.

물론 포식의 주인으로 상승된 근력 수치 또한 그때보다 크지만, 그래도 저 거대한 건물을 막아 낼 정도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엔 크게 다른 점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아틸라에겐.

“마 지카이 루 베르필르.”

바토리의 마력이 있다.

피피피피핏!

하늘을 향해 펼쳐진 바토리의 오른손에서 붉은 마력의 실이 뿜어졌다.

그것은 일전에 플라이웜의 발목을 낚아챘을 때보다 더욱 많고, 단단했으며, 또한 길었다.

마력의 실이 추락하는 적마탑을 포박했다.

그러고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늘 위에서 끌어당기는 것처럼 팽팽하게 그것을 당겼다.

부드득. 부드드드득……!

마탑의 추락 속도가 야주 약간 더디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우우웅. 우우우우우웅……!

추락하는 마탑에서 거친 진동이 일었다.

마탑의 절단면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댔다.

바토리는 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마탑을 유지하던 강대한 마력이 폭발의 전조를 보이는 것이다.

“수 트라이 루 베르필르!”

바토리의 입에서 또 다른 고대 마법이 영창됐다.

이번엔 은빛 마력의 실이었다.

그것이 적마탑의 절단면을 붕대처럼 휘감으며 마력의 폭발을 억제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아틸라의 차례였다.

무너지는 마탑의 무게중심을 가늠하며 그가 달렸다.

[ 전사의 외침 ]

[ 모든 파티원의 근력과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

아틸라는 전사의 외침으로 근력 수치를 더욱 상승시켰다.

그사이 바토리는 계속해서 붉은 실과 은빛 실을 쏘며 마탑의 몸을 휘감고, 하늘로 당겨 올렸다.

“아틸라 님! 바토리 아가씨! 저, 정말로 저걸 막을 셈이요!”

클레르의 몸을 안고 말 위에 오르며 오토가 외쳤다.

적마탑은 이제 지면과 닿을 듯이 가까워져 있었다.

바토리의 입에서 또 다른 고대 마법이 영창됐다.

“스쿠트흠 데 이그니!”

추락하는 마탑을 가로막는 마력의 장막이 펼쳐졌다.

마탑이 무너지는 속도가 조금 더 더디어졌다.

그러나 그 정도론 부족했다.

때마침 자리를 잡은 아틸라의 발이 멈춰 섰다.

아틸라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양 발목과 무릎에 힘을 주었다.

적빛과 은빛 마력의 실과 투명 장막에 가로막힌 마탑을 노려보며 두 팔을 뻗었다.

부드드드드득!

아틸라의 손바닥이 마탑의 벽을 파고들었다.

두 발은 지면을 뚫으며 내려앉았다.

아틸라는 온몸의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걸 들었다.

바토리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적마탑의 마력 폭주를 막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 트라이 루 베르필르!”

바토리는 이를 악물며 은빛의 실을 날렸다.

그것이 마탑의 안정성이 취약한 곳을 찾아내고, 빠르게 동여맸다.

다행히도 그녀의 노력은 효과가 있었다.

우웅. 우우우우웅.

금세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이던 마탑의 울림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바토리는 다시금 적색 마력의 실을 뿜어내 아틸라를 도우려 했다.

그런데 할 수 없었다.

‘마력이 벌써 바닥났다고?’

바토리는 당황한 얼굴로 아틸라를 돌아봤다.

괴수처럼 시뻘게진 얼굴로 적마탑을 손에 든 야만전사.

그러나 간신히 버티는 것이 고작으로 보였다.

“야, 야만전사야!”

설상가상으로 살아남은 플라이웜들이 아틸라에게 날아들었다.

아틸라가 이곳으로 내려오며 놈들을 완전히 죽이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이 빌어먹을 놈들! 아틸라 님에게 손대지 마라아아아!”

쏜살같이 말을 타고 달려온 오토가 플라이웜을 방패로 후려쳤다.

이어 날아든 사슬낫이 녀석의 목을 휘감았고, 움직임이 제한된 놈의 가슴에 오토가 검을 찔렀다.

“무, 물러나라! 물러나라고 이놈들아!”

오토가 방패를 추켜들며 아틸라의 앞을 막았다.

그 옆으로 진입한 카스피가 다른 플라이웜에게 사슬낫을 던졌고, 펀치는 또 다른 플라이웜의 꼬리를 앙증맞게 물고 있었다.

[ 거대화(巨大化) ]

아틸라의 의지를 전해 받은 펀치가 몸을 부풀렸다.

기다렸다는 듯 펀치가 앞발을 휘둘렀고, 오토에게 달려들던 두 마리 플라이웜 중 하나를 지면에 처박았다.

흐려지는 눈으로 그 모습을 보며 아틸라는 계속해서 도롱뇽에게 의지를 전했다.

지금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건 오직 도롱뇽이 지닌 특별한 능력뿐이다.

그러나 도롱뇽은 아틸라의 의지에 답하지 않았다.

아틸라가 처한 극한의 상황이, 펀치보다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도롱뇽에게 제대로 의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롱뇽이 이곳으로 날아올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인지 아틸라는 알 수 없었다.

아틸라의 잇새로 쉴 새 없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으윽……! 크흑……! 끄으으으으……!”

오토, 카스피, 펀치는 혼신의 힘을 다해 플라이웜들을 막았다.

바토리 역시 적마탑에 씌워진 자신의 마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애썼다.

‘일단 적마탑의 폭주는 막았다.’

그러나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머지않아 아틸라는 기력이 쇠할 것이고, 적마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결국.

“야만전사야!”

바토리의 외침과 동시에 아틸라는 저 멀리 적빛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양손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봤다.

아틸라가 그 모습을 발견한 건 직전이었지만, 사실 그 마법사는 아틸라가 무사히 지면에 착지한 뒤 계속해서 양손에 마력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적마탑 마법사가 행하는 주문과 달랐다.

그 특별하면서도 기묘한 마법의 발현은 오직, ‘메피스토’를 품은 라일 플라마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겨누어라. 라일 플라마.’

메피스토의 의지를 전달받은 라일이 머리 위로 왼손을 뻗었다.

그의 오른손이 무언갈 투척하려는 사람처럼 등 뒤로 당겨졌다.

화르륵. 화르르르륵.

타오르는 오른손이 화염을 뿜었고, 지금껏 본 적 없는 길이의 창날을 그려 냈다.

라일의 눈이 칼날처럼 빛났다.

그가 겨냥하는 것은 성체가 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와 격전을 벌이는 중인 거대 와이번!

전장 3미터에 달하는 불의 창날이 라일의 손에서 쏘아졌다.

무서운 속도로 쇄도한 그것이 거대 와이번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그오어어! 그오어어어어!

타깃을 적중시켰다는 것을 확인한 라일의 입꼬리가 위를 향했다.

그러고는 털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아틸라는 도롱뇽의 기척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아틸라는 송곳니를 드러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지금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플라이웜들을 살려 뒀던 이유였으니까.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처먹어라!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으으!”

[ 포식(捕食) ]

유성처럼 추락한 도롱뇽이 쩌억 입을 벌렸다.

도롱뇽은 아직 해방의 권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체의 모습을 유지한 채 시전한 포식의 권능은.

[ 해방 스킬과 함께 사용하면 더욱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콰르르르르르륵!

[ 환수, 도롱뇽이 플라이웜(x7)을 포식했습니다. ]

[ 환수, 도롱뇽이 플라이웜(x4)을 포식했습니다. ]

[ 환수, 도롱뇽이 플라이웜(x8)을 포식했습니다. ]

[ 환수, 도롱뇽이…… ]

그리고 발동했다.

[ 포식의 주인 ]

[ 근력이 28% 상승합니다. ]

[ 근력이 16% 상승합니다. ]

[ 근력이 32% 상승합니다. ]

[ 근력이…… ]

아틸라는 자신의 몸이 상위 등급의 무언가로 진화하는 감각을 맛봤다.

빠드드듯……! 구부러졌던 그의 무릎이 펴지기 시작했다.

부서질 것처럼 삐걱대던 팔꿈치도 제 위치를 찾았다.

“크아아아아아!”

아틸라는 미끄러지듯 정면으로 몸을 빼냈다.

종이 한 장 정도의 간격을 두고, 적마탑의 상체가 지면에 안착했다.

“도롱뇽!”

그렇게 소리치며 아틸라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몸을 띄웠다.

그 위치로 도롱뇽의 등이 날아왔다.

아틸라는 왼손으론 도롱뇽의 비늘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론 무휼을 쥔 채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오어어어어어!

광분한 거대 와이번이 가슴을 활활 불태우며 아틸라에게 마주 날아왔다.

폭풍처럼 쇄도하는 바람을 느끼며 아틸라는 입가를 찢었다.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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