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무너지는 마탑 (1)
“저쪽이다 살쾡이 미물! 캬캬캬!”
“알았어 도롱뇽! 헤헤헤!”
추락하는 플라이웜들을 향해 카스피가 신나게 말을 달렸다.
그 위에서 도롱뇽이 마음껏 포식했다.
“좋아좋아!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오 진짜? 근데 왠지 나도 그런 것 같은데!”
카스피의 생각은 사실이었다.
도롱뇽이 포식한 플라이웜은 모두 경험치로 변했고, 그것은 카스피에게도 일정량 이전되었으니까.
“이번엔 저쪽이다 살쾡이 미물!”
카스피와 도롱뇽은 쉴 틈이 없었다.
추락하는 플라이웜은 아틸라가 떨어뜨리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적마탑의 마법사들.
그들도 플라이웜들을 상당수 격추시켰고, 그렇게 떨어진 플라이웜은 모두 도롱뇽의 먹이가 되었다.
“케헷헷헷헤! 매일이 오늘 같으면 내 힘을 되찾는 것도 먼 미래는 아닐 거야! 그래. 한 100년만 오늘처럼 보낸다면!”
“100년이라고? 그때면 나도 아틸라도 모두 죽어 없을걸?”
카스피의 말에 도롱뇽이 피식 웃었다.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살쾡이 미물, 너는 몰라도 야만 미물은 절대 죽지 않을 거다. 그리고 100년 뒤엔 아마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있을걸.”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놀라 묻는 카스피를 돌아보던 도롱뇽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지. 그래. 어쩌면 너도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겠군. 지금처럼 계속 야만 미물을 졸졸 따라다닌다면 말이야.”
“그게 대체 무슨……!”
그 순간 두 마리의 플라이웜이 카스피와 도롱뇽을 기습했다.
둘은 당황하지 않았다.
왼쪽의 타깃을 향해 도롱뇽이 악어처럼 입을 벌렸다.
오른쪽은 카스피가 맡았다.
그녀는 곡예하듯 몸을 날리며 단검을 뽑았고, 언제 던져졌는지 모를 사슬낫은 플라이웜의 목을 칭칭 감고 있었다.
“하압!”
귀기로 붉어진 사슬낫이 플라이웜의 목을 조였다.
마찬가지로 귀기를 머금은 단검이 상대의 가슴과, 다리와, 날개를 베었다.
핏물처럼 변한 두 눈을 가늘게 좁히며 카스피가 웃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플라이웜의 발을 묶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의 타깃을 처리한 도롱뇽이 이 녀석에게 포식의 아가리를 벌려올 때까지.
“다 됐다 살쾡이 미무우우울!”
도롱뇽의 목소리와 동시에 카스피가 측면으로 몸을 날렸다.
콰르르륵! 포식의 소음과 함께 그녀가 상대하던 플라이웜이 앙상한 뼈만 남은 채 무너졌다.
포식은 그렇게 두 마리의 습격자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때 도롱뇽의 머릿속에 아틸라의 의지가 전해졌다.
‘튀어 올라와라. 도롱뇽.’
도롱뇽은 적마탑의 전투에 참여하기 전 아틸라에게 들은 계획이 있었다.
도롱뇽으로서는 상당히 내키지 않는 계획.
그러나 도롱뇽은 아틸라의 정신 교육이 두려웠고, 그래서 카스피에게 외쳤다.
“두 번째 계획이다 살쾡이 미물! 바토리 할망구에게 가자!”
“알았어!”
카스피는 도롱뇽을 말에 태운 뒤 바토리에게 달렸다.
마침 바토리는 두 조각으로 잘려 떨어진 두 번째 와이번과, 날개를 잃고 추락한 세 번째 와이번의 몸을 억류하고 있었다.
도롱뇽을 발견한 바토리가 입가를 올렸다.
“흐응. 드디어 때가 된 것이더냐.”
“아, 아프게 하지 마!”
“걱정 말거라. 야만 미물 아틸라도 두 번이나 견뎌 냈던 것이니. 설마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님께서 고작 인간에 불과한 내 마력을 견디지 못할 일이야 있겠느냐.”
“으으……!”
바들바들 떠는 도롱뇽을 바토리가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주문을 읊었고, 잠시 후 도롱뇽은 퍼엉! 하는 소음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었다.
“꾸에에에엑! 빌어먹을 할망구! 아프게 하지 말라니까……!”
바토리는 아틸라를 향해 도롱뇽을 날렸다.
그녀는 이전에 아틸라에게 시전했을 때보다 적은 힘으로 도롱뇽을 더욱 먼 곳으로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이유라면 물론 도롱뇽이 아틸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구가 작고 가벼웠기 때문.
그리고 아틸라는 자신을 향해 거리를 좁히는 도롱뇽을 감지했다.
[ 주인의 영역 ]
[ 환수, 도롱뇽을 강제로 영역 안에 불러들입니다. ]
주인의 의지가 전해진 도롱뇽이 네 다리를 파닥거렸다.
마치 물 위를 헤엄치는 것처럼.
“으아아! 또 발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렇게 도롱뇽은 무사히 아틸라의 품에 안착했다.
아틸라가 씨익 웃었다.
“준비됐냐. 도롱뇽.”
“무, 물론이지!”
아틸라는 흑철방패를 치웠다.
그리고 방패가 사라진 자리엔 괴수처럼 입을 벌린 도롱뇽이 있었다.
[ 포식(捕食) ]
방패가 사라지자마자 좋다고 달려들던 플라이웜 하나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아틸라는 와이번을 움켜쥔 손을 축 삼아 크게 한 바퀴 몸을 돌렸다.
콰르륵! 콰륵! 콰르르르르륵!
[ 환수, 도롱뇽이 플라이웜(x2)을 포식했습니다. ]
[ 환수, 도롱뇽이 플라이웜(x4)을 포식했습니다. ]
[ 환수, 도롱뇽이 플라이웜(x6)을 포식했습니다. ]
[ 환수, 도롱뇽이 플라이웜(x3)을 포식했습니다. ]
[ 환수, 도롱뇽이…… ]
사방에서 공격하던 플라이웜들이 도롱뇽의 입안으로 빨려 들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
꺼억, 트림하는 도롱뇽을 보며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새끼. 밑에서 많이도 처먹고 올라온 모양이네.”
도롱뇽은 레벨업을 했고, 포식 스킬도 10레벨에서 12레벨로 두 단계나 업그레이드됐다.
아틸라는 만족했다.
도롱뇽의 빠른 성장을 위해 녀석을 밑에서 대기하게 하며, 최대한 많은 포식을 유도했던 것이니까.
게다가 아틸라는 다른 방식으로도 도롱뇽의 포식을 체감하고 있었다.
[ 포식의 주인 ]
[ 근력이 8% 상승합니다. ]
[ 근력이 16% 상승합니다. ]
[ 근력이 24% 상승합니다. ]
[ 근력이 12% 상승합니다. ]
[ 근력이…… ]
그동안 쌓인 ‘포식의 주인’의 근력 증가치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기 때문.
후마이야 왕국에서 기상전을 치를 때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에헴! 내가 한 놈도 빼먹지 않고 모두 포식했다! 무, 물론 야만 미물 네놈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잔말 말고, 바로 간다.”
아틸라는 무휼을 들어 발밑의 와이번에게 겨눴고, 목을 잘랐다.
목 없는 와이번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아틸라는 여전히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
[ 해방(解放) ]
황소만 한 크기로 부푼 도롱뇽의 등 위에서 아틸라가 말했다.
“날아라 도롱뇽.”
* * *
아틸라의 등장을 처음 발견했던 적마탑의 탑주, 클레르 플라마는 이후 아틸라의 모습을 주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리샤르 세바스찬 역시 마찬가지였다.
클레르는 마법의 역류를 각오하면서까지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쏟아내고 있었고.
리샤르는 그런 클레르를 상대하며 거대 와이번을 함께 조종해야 했기에 온 신경을 전투에만 집중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승부는 누가 보아도 리샤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만약 클레르가 완전한 몸 상태였다면 결과는 다소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중상을 입었고, 거기에 더해 마법의 역류를 목전에 둔 상태였다.
‘앞으로 두 번……, 아니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클레르는 이를 악물었다.
심장을 둘러싼 마력이 중심을 잃고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눈앞의 리샤르와 거대 와이번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숨 막히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당신은 날 이길 수 없소. 클레르.”
날아드는 리샤르의 마법을 클레르는 화속성 마법으로 분쇄하고, 반격했다.
그 위로 거대 와이번이 브레스를 내뿜었다.
그것은 다른 와이번들이 뿜던 조악한 숨결과 달리 꽤나 브레스 다운 면모를 보였고, 클레르의 반격을 효율적으로 제압했다.
‘저것은……!’
클레르는 와이번의 브레스를 알아보았다.
지난 전투에서 적마탑의 마력장을 무너뜨리고, 외벽에 상당한 손상을 입혔던 미증유(未曾有)의 힘.
클레르는 심장을 순환하는 마지막 마력을 일깨워 손안에 집약하려 했다.
그 순간 마력의 역류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끄아아아아……!”
견디기 힘든 격통이 클레르의 전신에 몰아쳤다.
마력의 집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코앞으로 날아드는 브레스를 보며 클레르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때였다.
키랴랴랴랴랴랴!
클레르의 등 뒤에서 흑염의 마력이 쏘아져 거대 와이번의 브레스와 부닥쳤다.
뒤를 돌아볼 기운도 없었지만 클레르는 그것이 ‘진짜’ 드래곤의 브레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토록 견고하게 정제된 마력의 불꽃은 신의 피조물 중 가장 완벽한 마법을 구사한다는 드래곤이 아니라면 결코 시전할 수 없는 것일 테니까.
파드드드드드듯……!
가공할 마력의 폭풍이 발생했다.
두 브레스의 싸움은 팽팽했다.
아니, 원래는 거대 와이번의 것이 더욱 강력했을 테지만 클레르의 마지막 일격이 위력을 감소시켰다.
“이 허접한 도롱뇽 새끼. 저깟 가짜 와이번의 브레스도 못 이기냐.”
- 으힉! 저 가짜 새끼 보통이 아니야! 비, 빌어먹을! 이몸이 원래 힘의 반의반의반만 되찾았어도 저깟 가짜 새끼의 브레스 쯤은……!
브레스를 쏘느라 입이 고정된 도롱뇽이 전음으로 말했다.
리샤르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거대 와이번의 지배에 집중했다.
그 정도로 상대의 브레스는 대단했다.
‘저, 저건 진짜 드래곤인가! 어떻게 드래곤이 여기에……!’
평생을 마법에 몸 바쳐온 리샤르였지만 진짜 드래곤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칠흑처럼 어두운 비늘. 살기 어린 노란 눈동자. 몸체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기다란 날개. 그렇다면 설마……!’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리샤르가 떠올린 건 그 이름이었다.
‘그, 그럴 리 없다! 이미 오래전에 모습을 감춘 용중용(龍中龍),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이 자리에 나타날 리가!’
두 브레스의 경합에서 발하는 폭발적인 마력이 적마탑을 뒤흔들었다.
이어 적마탑 외벽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클레르는 엄청난 기세로 진동하는 바닥을 느꼈다.
‘적마탑이……!’
그랬다.
지난 전투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적마탑이 두 용족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클레르의 몸을 안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적마탑의 중심이 뚝, 하고 부러졌다.
이어 허리를 숙이는 거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 돼! 적마탑이! 적마탑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내뱉는 클레르를 둘러업으며 아틸라는 지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탑은 단순한 석조 건물이 아니다.
그 안엔 강력한 마력이 잠자고 있고, 이대로 지면에 부딪친다면 저 거대 와이번과 도롱뇽이 일으키는 마력 폭풍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아틸라는 도약의 쿨타임이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포식의 주인으로 극한까지 상승한 근력 수치와, 허공 중간중간에 드러난 플라이웜의 무방비한 등과, 저 아래 점처럼 작게 비치는 바토리를 차례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빌어먹을. 그래. 이 방법밖엔 없다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