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50화 (150/425)

150. 적색의 마탑 (4)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여덟 번째 플라이웜의 이빨이 일순 더욱 길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봤다.

‘저 목걸이 때문인가?’

아틸라는 저 멀리 와이번과, 그 위에서 이쪽을 돌아보는 복면의 인영을 노려봤다.

아틸라와 바토리의 몸이 지면을 향해 추락했다.

멀어지는 와이번을 바라보며 아틸라는 웃었다.

아직 그에겐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 * *

머리 잃은 플라이웜과 그것을 악착같이 입에 문 플라이웜, 그리고 자신을 추격하던 두 명의 인간이 구름 아래로 낙하하는 모습을 확인한 복면 속 입술이 만족의 미소를 머금었다.

‘흥미로운 상대였군. 하지만 여기까지다.’

아틸라의 예상대로 그는 얼마 전 적마탑을 습격했던 인물 중 하나였고, ‘디디에’라는 이름의 젊은 기사였다.

디디에는 최근 적마탑 침공 사건의 주모자에게서 받은 목걸이를 통해 플라이웜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적마탑을 습격하고, 탑주인 클레르 플라마에게 일격을 먹이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그녀에게 깊은 부상을 입힌 건 그 자신이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적마탑의 탑주는 중상을 입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새벽녘에 이어질 2차 침공은 절대로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클레르 플라마. 과연 대단한 마법사이기는 했지.’

디디에는 그녀가 보였던 가공할 마법을 떠올리며 작게 몸서리쳤다.

적마탑의 마법사 중 단연 압도적인 실력자인 클레르 플라마.

그녀는 여든에 가까운 삶을 살며 적마탑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지만 제자 관리엔 미숙함을 보였다.

현재 적마탑에선 몇 개의 세력이 후계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나바라 왕국의 현 상황처럼.’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번 사건의 주모자가 적마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립한 계획은 간단했다.

‘클레르 플라마만 제거하면 된다. 그녀만 죽어 없어진다면 여러 파벌로 갈라진 적마탑은 구심점을 잃고 와해될 테지.’

최근 적마탑은 악귀와 혈귀에 대한 조사로 상당수의 마법사를 파견 보낸 상황.

게다가 탑주인 클레르 플라마는 근래 입수한 혈귀의 머리를 연구하느라 최상층 연구실에 틀어박혔다.

그래서 와이번 부대는 최상층 연구실을 습격해 집중적인 포격을 가했고, 그 작전은 멋지게 들어맞았다.

클레르 플라마는 홀로 수십 마리에 달하는 와이번과, 플라이웜에 맞서 싸웠다.

물론 상황을 알아챈 마탑의 마법사들이 서둘러 합류했지만, 그 사이 클레르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건 그렇고, 목걸이의 힘은 완벽하지 않군.’

디디에는 그간 목걸이의 힘을 이용해 플라이웜을 통제해 왔다.

그런데 지난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플라이웜들이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디디에는 특별한 임무를 받았다.

적마탑에서 먼 남서쪽에 위치한 ‘은밀한 숲’으로 이동해 부상당한 플라이웜들에게 더욱 강한 통제력를 행사해 보고, 그렇게 해도 통제되지 않는 개체는 버려둔 채 합류하라는 명.

디디에는 그렇게 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부상당한 개체들이 통제력을 벗어나는 것을 넘어, 디디에에게 적의를 드러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디디에는 와이번에게 주어진 힘을 이용해 놈들을 살처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큰 문제가 일어났다.

아직 살아 있던 녀석들의 반항이 더욱 거세진 것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디디에는 와이번을 타고 도주했다.

그 와중에 통제력을 잃은 플라이웜과 정상적인 플라이웜 간에 싸움이 일어 많은 개체가 죽었고, 최종적으로 남은 정상 개체는 두 마리에 불과했다.

와이번에 탑승한 디디에와 두 마리의 정상 플라이웜, 그리고 여섯 마리의 비정상 플라이웜이 그렇게 추격전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웬 미친놈이 나타나 알아서 비정상 플라이웜들을 죽여 줄 줄이야.’

물론 그 와중에 정상 플라이웜 하나를 추가로 희생한 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디디에는 만족했다.

‘이만하면 선방이다. 한 마리의 희생으로 여섯 마리의 불순분자를 살처분한 것이니까.’

디디에는 목걸이의 힘을 이용해 하나 남은 플라이웜을 불러들였다.

이대로 적마탑으로 이동해 2차 침공에 합류한다.

생각지 못한 이변에 합류가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예상 밖의 피해도 있었지만 클레르 플라마만 확실히 처리한다면 문책 또한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어찌 됐든 난 적마탑을 무너뜨리는 것에 크게 기여한 몸이니까.’

디디에는 만족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 되면 그는 꿈에 그리던 기사대장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기사대장이 된 자신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디디에는 구름 위로 솟아오르는 플라이웜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플라이웜의 모습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아니, 그건 플라이웜이 아니었다.

“서, 서서서 설마……!”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디디에는 확신했다.

“드래곤!”

크르르르르르르……!

황소만 한 크기의 검은 드래곤이 사나운 눈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상대를 알아본 와이번이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드래곤의 등 위에 똑바로 선 미친놈이 히죽 송곳니를 드러냈다.

“브레스 쏴라 도롱뇽. 딱 뒈지지 않을 정도로만.”

키랴랴랴랴랴랴랴!

흑염의 브레스가 디디에의 시야를 덮었다.

* * *

흔들리는 말 위에서 디디에는 눈을 떴다.

자연스럽게 정신을 차린 것은 아니었다.

아틸라의 따귀 한 대가 그의 얼굴에 강한 충격을 주었으니까.

“커헉! 컥……! 으버버버……!”

“등신 같은 소리 그만하고, 아는 거 전부 털어놔라.”

디디에는 자신의 몸이 포박된 것을 확인했다.

목걸이의 감촉도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옆을 달리는 말 위에서 어느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의 목걸이를 관찰하며 흥미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흐응. 이거 참 재밌는 물건이로구나.”

“그래서, 그게 뭔데 할망구.”

바토리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아틸라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바토리는 디디에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디디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틸라에게 따귀를 맞자마자 서둘러 입을 놀렸다.

“케흑……! 켁! 디, 디디에! 내 이름은 디디에다!”

“디디에. 네가 적마탑을 습격한 범인이더냐.”

정황상 근거는 충분했지만 바토리는 그것에 대해 확실하게 물었다.

아틸라의 눈치를 살핀 디디에가 빠르게 긍정했다.

“그, 그렇다.”

“너 혼자만의 소행은 아닐 것 같구나. 적마탑이 고작 이런 ‘가짜 와이번’과 플라이웜에 당할 리는 없을 테니까.”

“가짜…… 와이번?”

“흐응?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더냐. 네가 타고 있던 와이번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그게 대체 무슨…….”

“네 위에 있는 자는 누구이더냐.”

“…….”

대답 없는 디디에의 뺨을 다시 한번 아틸라가 후려쳤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디디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엉망이 된 얼굴 속에서도 독기 어린 눈으로 아틸라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마주 보던 아틸라가 피식 입가를 올렸다.

“리샤르 세바스찬이로군.”

디디에의 눈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부릅떠졌다.

“어, 어, 어떻게 그걸……!”

“별거 아냐. 인간의 눈 속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담겨 있거든.”

그럴 듯이 말하긴 했지만, 아틸라는 심안을 통해 디디에의 속을 들여다본 것이었다.

바토리가 중얼거렸다.

“리샤르 세바스찬이라.”

“나바라 왕국의 궁정 마법사다 할망구.”

할망구라는 말에 바토리가 토라진 아이처럼 입술을 모았다.

“……나도 알고 있단다. ‘야만전사’야.”

아틸라는 그것이 바토리 나름의 소심한 복수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아틸라는 디디에의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대략적인 정황을 파악했다.

리샤르 세바스찬.

그는 한때 적마탑의 전도유망한 마법사였다.

‘리샤르 플라마.’

그것이 적마탑의 마법사였을 당시 그의 이름이었다.

‘적마탑의 원로들에게 인정받은 마법사는 적색 마탑을 상징하는 이름, 플라마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때의 리샤르는 단순히 원로들에게 인정받은 정도 수준의 마법사가 아니었다.

차기 탑주의 가장 강력한 후보자.

‘그랬던 녀석이 클레르 플라마에게 밀려났지.’

클레르는 리샤르의 후임이었다.

그들은 마법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젊은 남녀였다.

두 사람은 금세 남매처럼, 또 누구의 눈엔 연인으로 비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고, 누구보다 열심히 위대한 적색 마탑의 마력을 연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균열은 머지않아 찾아왔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클레르의 성취가 리샤르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십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리샤르가 더 이상 클레르의 성취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

클레르는 적마탑의 역대 최연소 탑주가 되었다.

리샤르는 적마탑을 떠났다.

클레르가 붙잡으며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떠나지 말아요 리샤르. 날 도와줘요. 내겐 당신이 필요해요.’

‘클레르. 당신에겐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소. 이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적마탑을 떠난 리샤르는 머지않아 나바라 왕국의 궁정 마법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꿈은 왕 밑에 서는 것이 아니었다.

적마탑의 탑주.

그것을 넘어 저 위대한 중앙 마탑까지 제 손아귀에 두는 것이야말로 그의 오랜 염원이었다.

그러나 원작에서의 그는 그 염원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발루아, 아스투리아, 후마이야, 그리고 노르드 왕국을 정복한 샤를이 다음 차례로 나바라 왕국을 침공하기 때문.

‘쳐라! 나바라의 애송이들을 물리쳐라!’

‘우리는 아인하르트의 금사자 기사단이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평생의 염원과 달리 리샤르는 나바라 왕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다.

그리고 샤를의 손에 죽임 당한다.

‘그렇게 되었어야 할 녀석이 여기선 마음을 달리 먹었다, 이거로군.’

이유라면 분명했다.

아틸라는 바토리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바라봤다.

“할망구. 그래서 그 목걸이가 뭐냐고.”

“이건 명계에서 넘어온 물건이로구나.”

“명계라고?”

아틸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머지않아 거대한 변화가 현세를 덮칠 것이다.

카르타고가 말했던 대격변.

그것의 전조가 벌써부터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단다. 아마도 메피스토펠레스의 공간 환술이 세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겠지. 아울러 중간계와 겹침이 생긴 세계는 명계만이 아닐 것이다.”

바토리의 말대로다.

메피스토펠레스와 그 빌어먹을 꼬마의 합작 환술은 분리된 세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중간계, 마계, 명계, 그리고……

아틸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리고 떠올렸다.

그는 라일의 몸에 담긴 메피스토의 기억을 심안으로 관찰했고, 영화처럼 차오르는 이미지를 통해 무언갈 발견했었다.

‘그래. 분명 녀석은.’

메피스토펠레스는 붉은 눈의 소년, 즉 아포스톨로스라는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신과 악마의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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