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적색의 마탑 (2)
“저게 뭔 거 같냐 도롱뇽.”
말을 타고 달리며 아틸라가 물었다.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던 도롱뇽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멀리 있고 구름이 두꺼워서 잘 모르겠……, 아니 근데 저거 구름 맞나?”
“쓸모없는 새끼.”
“…….”
아틸라의 핀잔에 시무룩한 얼굴이 된 도롱뇽은 카스피가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것을 봤다.
도롱뇽은 힐끗 아틸라의 얼굴을 올려 봤다.
그러고는 이쪽으로 말머리를 붙이는 카스피를 향해 폴짝 뛰었다.
“좋았어. 헤헤.”
카스피는 날아드는 도롱뇽을 받아 품 안에 넣었다.
펀치도 흥미가 동했는지 카스피의 무릎 위로 폴짝 넘어왔다.
“헤헤 펀치. 너도 내가 좋은 거야?”
실없이 웃으며 카스피는 아틸라의 말과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도롱뇽에게 속삭였다.
“도롱뇽.”
“뭐냐. 살쾡이 미물.”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
음? 살쾡이 미물의 이런 소심한 모습은 처음 본다고 생각하며 도롱뇽이 말했다.
“뭔데.”
“그…… 아틸라와 바토리 말이야. 무슨 관계야?”
“무슨 관계?”
“아까 바토리가 말했잖아. 그, 그게…… 뭔가 바토리랑 아틸라가 평범한 동료 사이가 아닌 거 같아서.”
“뭐라?”
“그러니까 내 말은…… 두, 둘이 사귀는 게 아닌가 해서…….”
“케헷헷헷헷헤!”
도롱뇽이 배를 잡고 웃었다.
“뭐, 뭐야! 왜 웃어!”
사지를 파닥대며 한참을 낄낄대던 도롱뇽이 아틸라와 바토리 방향을 슬쩍 쳐다봤다.
아틸라는 구름 위를 노려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바토리는 흘끗흘끗 이쪽을 쳐다보는 꼴이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도롱뇽이 카스피의 어깨에 스스슷 올라갔다.
그러고는 귀엣말로 속삭였다.
“아무 사이 아니다. 그냥 저 노망난 할망구가 혼자 좋다고 쫓아다니는 거야.”
“저, 정말?”
의기소침해 있던 카스피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러엄 정말이지. 이몸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님의 길고 긴 용생(龍生)을 걸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엥? 뭐라? 곰탱이 네가 뭘 안다고 어른 말씀에 끼어드냐.”
“응? 뭐라고?”
“아냐. 곰탱이 미물 새끼가 또 아는 척…… 아 글쎄 둘이 그런 짓 한 적 없다니까 자꾸 그러네. 빌어먹을 곰탱이 새끼가.”
“뭐야 도롱뇽.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아 그러니까, 야만 미물과 저 바토리 할망구는 그런 사이 아니라고.”
“진짜? 그, 그럼 아틸라는 바토리에게 동료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야?”
그 말에 도롱뇽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그간 아틸라가 바토리에게 보였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려 봤다.
‘흠. 이건 좀 애매한데.’
도롱뇽이 보기에 아틸라는 다른 동료들보다 바토리에게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아틸라가 바토리와 오래 여행을 했고, 또 바토리가 실력 있는 마법사이기 때문에 단지 필요에 의한 행동이 아닐까,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도롱뇽은 바로 납득해 버렸다.
“암암. 야만 미물은 바토리에게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다. 쓸 만한 마법사니까 데리고 다니는 것뿐이지.”
“꺄아.”
반색한 카스피가 도롱뇽을 붙잡고 뺨을 문질렀다.
“켁! 케엑! 이거 놔라! 살쾡이 미물!”
도롱뇽이 꽥꽥대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펀치가 헥헥대며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구름 위 비행체들은 조금씩 더 멀어지고 있었다.
저들이 이대로 목적지에 먼저 도착한다면, 일행이 적마탑에 다다랐을 땐 모든 상황이 끝난 뒤일지도 모른다.
아틸라는 생각했다.
‘해방 스킬로 도롱뇽을 성체로 만든 다음, 타고 쫓아갈까.’
그러나 이내 무리라는 것을 인정했다.
해방 스킬의 유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게다가 그동안의 경험상 도롱뇽이 단순히 해방 상태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닌, 과도하게 움직이거나 다른 스킬을 사용하기라도 한다면 그 시간은 더욱 짧아질 확률이 높다.
고민하던 아틸라는 묘안을 떠올렸다.
뭐, 그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지만.
“어이 할망구.”
“왜 그러느냐.”
“저놈들 좀 느려지게 만들어 봐.”
“뭐라?”
“제일 가까운 곳의 한 마리라도 좋다. 조금만 느려지게 해 봐.”
바토리는 고개를 들어 구름 위 그림자들을 바라봤다.
“흐응.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구나.”
“그럼 빨리.”
“한데 내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구나.”
“뭐?”
바토리가 아랫입술을 내밀며 아틸라를 흘겨봤다.
“아까 말이다. 우리의 대화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것 같지 않느냐.”
아틸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또 뭐라는 거야 할망구가. 이 다급한 상황에.
“네가 확실하게 말만 해 준다면 난 언제든…… 꺄아아악!”
바토리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말머리를 붙인 아틸라가 자신의 허리를 안으며 말 아래로 뛰어내리는가 싶더니 가공할 폭풍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러고는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두 사람은 구름 위에 떠올라 있었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바토리가 중얼댔다.
“내, 내, 내가 이 무슨……!”
‘꺄아아악’이라니.
그녀 스스로도 이런 비명을 마지막으로 질러 본 게 언제였는지 몰랐다.
그래서 바토리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져 있었고, 그런 그녀의 귀에 아틸라가 속삭였다.
“일단 스킬로 뛰어오르긴 했다. 이제 네가 저놈들 중 하나를 끌어오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뭐, 뭐라? 그게 무슨.”
아틸라는 도약 스킬을 이용해 이곳까지 뛰어올랐다.
물론 확신은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구름은 낮게 깔려 있었고, 그만큼 저 정체불명의 비행체의 높이도 그리 높지만은 않았다.
‘도롱뇽의 말대로 구름이 아니라 안개 같은 거였나.’
그럼에도 여전히 아틸라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빨리 당겨라 할망구. 안 그러면 이대로 추락해 크게 다칠 거다.”
거짓말이다.
바토리의 보호막이라면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 받는 데미지는 상당량 흡수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이건 원래 이런 스킬이니까.’
아틸라는 발밑의 구름 너머로 존재하는 붉은색 타점을 봤다.
그 타점은 자신의 시선에 따라 시시각각 위치를 바꿨다.
물론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저 중에서 하나의 타점을 골라 추락해 충격파를 날린다는 거로군.’
“너, 넌 정말 언제나 이렇듯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그러면서도 바토리는 이중 영창으로 주문을 읊고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반투명한 적색 실들이 나선의 형상을 그리며 쏘아졌다.
그것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비행체의 뒷다리를 휘감았다.
구르륵?
안개 너머로 무언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검붉은빛 날개와 비늘을 지닌 비행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틸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드래곤을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자그만 몸.
둔해 보이는 체형.
짤막한 날개.
분명했다.
“플라이웜(Fly-Worm)?”
아틸라의 입가가 히죽 올라갔다.
플라이웜은 용족이다.
그것도 얼마 전부터 도롱뇽이 포식할 수 있게 된 중하위종!
“당겨! 바토리!”
아틸라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는 것에 놀란 바토리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구르륵! 구륵! 비명을 지르며 플라이웜이 바토리에게 끌려왔다.
아틸라는 바토리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흐응…….”
그러고는 당겨지는 붉은 실의 반동을 이용해 빙글 공중제비를 넘어 플라이웜의 등에 착지했다.
“아아, 아틸라…….”
취한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바토리를 무시하며 아틸라는 플라이웜의 등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플라이웜은 누가 등 위에 앉은 것도 잊어버린 듯 비행을 계속했다.
플라이웜이 ‘뇌 없는 용족’이라 불릴 정도로 멍청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틸라는 플라이웜의 몸 곳곳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화상?’
분명했다.
이것은 화속성 마법에 공격당한 상처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그렇다면 역시.’
아틸라는 앞서 비행하는 플라이웜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짙은 안개에 가려져 선명히 보이진 않지만, 벌어졌던 거리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아틸라는 전방과 상태창을 주시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꽉 잡아라 바토리.”
“흐응……!”
바토리가 자신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는 것을 감각하며 아틸라는 양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시전했다.
[ 도약(跳躍) ]
아틸라의 몸이 플라이웜의 등을 지르밟으며 공중으로 솟았다.
그 반동으로 아틸라가 타고 있던 플라이웜이 지면으로 추락했고, 더욱 높아진 하늘 위에서 아틸라는 앞서 비행하던 플라이웜의 등에 타점을 특정하는 것에 성공했다.
‘됐다!’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허리를 감싸 안은 바토리의 양팔에 더욱 힘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썩 싫지 않다고 생각하며 아틸라는 타점을 향해 추락했다.
“꺄아아아악!”
두 사람의 긴 머리칼이 불꽃처럼 솟았다.
안개의 숲을 관통한 아틸라의 신형이 두 번째 플라이웜의 척추 한가운데 꽂히며 충격파가 발산했다.
퍼어어어엉!
강렬한 풍압이 일정 범위의 안개를 순식간에 소멸시켰다.
영문도 모른 채 등을 강타당한 두 번째 플라이웜이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바토리! 한 번 더 간다!”
바토리의 손에서 다시금 적빛의 실이 쏘아졌다.
그것이 저만치 세 번째 플라이웜의 발목을 잡았다.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바토리는 실을 당겼고, 아틸라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세 번째 플라이웜의 등에 올라탔다.
“역시 조종하는 놈이 있었나.”
저 멀리 선두를 달리는 비행체와, 그 위에 올라앉은 인영이 보였다.
그와 아틸라 사이엔 아직 다섯 마리의 플라이웜이 남아 있었다.
바람을 머금은 아틸라의 입가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래. 이 정도면 도롱뇽 녀석에겐 아주 훌륭한 만찬이 되겠군.
* * *
수 분 전.
아틸라와 바토리가 평범한 동료 사이라는 것을 도롱뇽의 입을 통해 확인한 카스피는 싱글벙글이었다.
그러던 그녀의 눈이 무언갈 포착했고, 휘둥그렇게 커졌다.
바토리에게 말머리를 붙인 아틸라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엥? 에에엥?”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바토리를 안고 바닥에 착지한 아틸라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흡사 하늘 위로 솟아오른 것 같은 흐릿한 잔상만을 남긴 채.
“흐에에에에엣!”
카스피의 시선이 머리 위를 향했다.
도롱뇽 역시 동일한 광경을 봤기에 머리 위를 올려 봤고, 그 뒤를 따르던 라일과 오토도 같은 곳을 바라봤다.
“뭐, 뭐지? 어떻게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카스피가 중얼거렸다.
오토가 말머리를 붙이며 외쳤다.
“이, 이게 뭔 일이우! 아틸라 님과 바토리 아가씨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요!”
카스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 아틸라가 사용했던 환술 이동기를 떠올렸다.
조금 전 아틸라와 바토리가 사라지던 모습은 그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카스피 역시 아틸라와 함께 여러 차례 그 기술을 경험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니야. 여긴 환술 속 세계가 아닌걸.’
“응? 킁킁. 냄새가 난다. 못생긴 플라이웜의 돌대가리 비린내가.”
도롱뇽의 중얼거림과 동시였다.
퍼어엉! 굉음과 함께 안개구름 속에서 검붉은 덩어리가 추락했다.
“흐에에엣! 저건 또 뭐야!”
“드, 드래곤 아니요!”
“저것은……!”
일행의 반응에 도롱뇽이 깔깔대며 외쳤다.
“드래곤은 무슨! 저건 하찮은 미물 중의 미물, 플라이웜이다! 뇌 없는 돼지 도마뱀 새끼! 캬캬캬캬캬!”
깔깔대며 웃던 도롱뇽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의식 속으로 아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도롱뇽이 소리쳤다.
“살쾡이 미물! 저 플라이웜에게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