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북쪽으로 (3)
[ 공중으로 높게 뛰어오른 후 떨어져, 타점에 강한 충격을 가합니다. ]
[ 타점을 중심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형성되며, 충격파의 범위 안에 있는 적들에게 강력한 물리 피해를 입힙니다. ]
“오.”
아틸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어느새 일행의 방을 나서 높다란 첩탑 지붕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 있고 싶었고, 지나간 일과 앞으로의 일을 차근차근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
그리고 보상으로 생성된 스킬은 아틸라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건 마치.
‘루이제의 구울들을 상대할 때 사용했던 기술.’
슈시아의 발키리 부대와 함께 루이제의 구울 군단을 상대했을 때, 아틸라는 환술 이동기를 응용해 이와 비슷한 기술을 시도했었다.
바로, 구울이 밀집한 지역의 머리 위로 이동기를 시전한 뒤 지면으로 추락해 강한 충격을 일으킨 기술.
그것은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과 결합하며 단단한 지면을 흡사 파문이 드리운 수면처럼 출렁이게 만들었고, 그 충격으로 수많은 구울의 몸을 조각냈다.
아틸라마저 놀랄 정도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선보였던 기술.
그것이 아예 스킬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건 정말 엄청난 기술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완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구울들을 파괴했을 때의 자신은 몸 상태가 극도로 좋았었고, 또한 환술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있었으니까.
일례로 카르타고를 상대하며 기술을 사용했을 땐 카르타고의 칼질 한 번에 완벽하게 제압됐었다.
심지어 그때의 카르타고는 자신의 공격뿐 아니라 샤를의 공격까지 막아 냈다.
‘검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나와 샤를의 공격을 동시에 무력화시키다니.’
아틸라는 카르타고의 강함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그러면서 아틸라는 카르타고를 향해 기술을 보였을 때는 루이제의 구울들을 상대했을 때보다 기술의 위력이 약했던 것을 상기했다.
그건 아마도 여러 차례 환술 이동기를 쓰며 몸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힘이었다면 제아무리 카르타고라도 그리 쉽게 막지는 못했을 테지.’
어찌 됐든 아틸라는 만족했다.
보상으로 얻은 이 ‘도약’ 스킬이 환술 속 기술보다 약할는지는 몰라도, 이런 효용성 높은 스킬이 생긴다는 건 환영할 일이다.
언제나 비슷한 방식으로 싸워 왔던 그의 전투 방식도 참신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돌진과 마찬가지로, 도약도 순간 이동기에 가까운 기술.’
심지어 하나의 적에게 특화된 돌진에 비해 도약은 여러 명의 적을 상대할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스킬이다.
얼마 전 획득한 ‘휩쓸기’에 이어 또다시 광역 공격 스킬을 얻어 낸 아틸라.
‘왠지 앞으로는 여러 적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일이 많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카르타고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 머지않아 거대한 변화가 현세를 덮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대격변의 시대가 너희 앞에 찾아올 것이다.
버서커의 광기에 지배당하는 와중에도 아틸라는 그 말을 똑똑히 들었었다.
그때였다.
[ 메피스토펠레스 시나리오가 완전하게 종료되었습니다. ]
[ 시나리오 종료 보상이 주어집니다. ]
‘뭐라고?’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그간 아틸라는 수해의 괴물, 소환마귀, 귀살 등 여러 시나리오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런 그도 하나의 시나리오를 완전하게 종료시킨 건 처음이었고, 그래서 ‘시나리오 종료 보상’이라는 게 있는 줄 몰랐다.
[ 보상으로 환수, 도롱뇽이 새로운 스킬을 습득합니다. ]
“뭐야. 기껏 준다는 게 도롱뇽의 스킬?”
“뭐라? 이몸의 스킬이라고?”
갑자기 들려온 도롱뇽의 목소리에 아틸라는 눈동자를 굴렸다.
헥헥대며 첨탑을 기어 올라온 펀치와, 그 위에 올라탄 도롱뇽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뭐야 도롱뇽. 왜 따라온 거냐.”
“따, 따라오긴! 이 곰탱이가 간다길래 합석했을 뿐이다!”
끼아옹! 달려온 펀치가 아틸라의 겨드랑이에 동글게 몸을 말았다.
괜히 주변을 어슬렁대던 도롱뇽이 아틸라의 반대편 겨드랑이에 똬리를 틀려다 꿀밤을 맞고는 펀치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볼록해진 머리를 매만지며 도롱뇽이 물었다.
“어이 야만 미물. 근데 조금 전엔 무슨 말이냐. 이몸의 새로운 스킬이라니.”
도롱뇽의 물음을 무시하며 아틸라는 상태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 해방(解放) ]
“해방?”
“해방?”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도롱뇽을 사나운 눈으로 쳐다본 아틸라가 이어지는 메시지를 살폈다.
[ 환수, 도롱뇽의 봉인된 힘을 해방시켜 일정 시간 성체(成體)로 변화시킵니다. ]
아틸라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뭐, 뭐라고!”
“뭐야! 뭔데 그래 야만 미물!”
아틸라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봤다는 얼굴이었다.
도롱뇽의 채근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성체라니! 설마 그 전성기 때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말하는 건가!’
전성기 때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신에 근접한 존재다.
정령왕들은 물론이고, 최강의 관조자였던 바토리마저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실력자.
물론 ‘일정 시간’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아주 일순간이라도 도롱뇽을 전성기 시절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로 되돌릴 수 있다면.
‘웬만한 적은 그냥 끔살이다!’
그러나.
[ 해방의 권능이 ‘1레벨’만큼 개화합니다. ]
[ 환수, 도롱뇽의 봉인된 힘이 ‘1레벨’만큼만 해방됩니다. ]
“빌어먹을. 그럼 그렇지.”
“나도 좀 알려 줘!”
그러나 아틸라는 실망하지 않았다.
아무리 ‘1레벨’만큼이라도 분명 상당한 힘일 터.
그때였다.
[ 세계선의 붕괴로 인해 세 번째 임무가 소멸되었던 관계로,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
“응?”
[ 환수, 도롱뇽의 스킬이 업그레이드됩니다. ]
[ 포식의 권능이 ‘10레벨’만큼 개화합니다. ]
[ 이제 동족 중에서, 중하위종에 해당하는 대상에게도 스킬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
“오.”
아틸라의 입가가 히죽 올라갔다.
포식의 시전 대상이 하위종에서 중하위종으로 올라갔다.
보다 많은 용족에게 포식 스킬을 시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게다가.
[ 해방 스킬과 함께 사용하면 더욱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좋군. 아주 좋아.”
자신의 새로운 스킬, 도약.
도롱뇽의 새로운 스킬, 해방.
그리고 포식 스킬의 업그레이드.
한꺼번에 세 개의 보상을 받게 된 아틸라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면서 아틸라는 옆에서 계속 무슨 스킬이냐 물어오는 도롱뇽에게 아주 직관적인 방법으로 답을 주었다.
“야만 미물! 내게도 빨리 설명을……응? 으어? 으어어어어!”
키랴랴랴랴랴!
그날, 황금바위의 첨탑 위 허공에 황소만 한 크기의 검은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이튿날 일행은 황금바위성을 떠났다.
“또 오게 아틸라!”
“내 마법사는 좋아하지 않지만, 바토리 아가씨만은 예외일세! 언제든 찾아와 주게!”
“살쾡이 살수 아가씨도 꼭 놀러 오게!”
“이봐 오토! 자네 칼춤도 멋졌다고! 음핫핫핫하!”
많은 황금바위 드워프들이 그들에게 손 흔들어 인사했다.
크누트, 라그나, 골든핑거 그리고 보에몽도 일행의 손을 잡으며 이별의 아쉬움을 나눴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안 그런가 아틸라.”
“물론. 무기와 방어구가 상하면 또 찾아와도 되겠나? 골든핑거.”
“당연하지. 언제든 방문하게! 아틸라와 동료들이라면 언제나 무보수로 수리해 줄 테니.”
“히익! 저, 저도 말입니까 골든핑거 장인님!”
“그 무슨 당연한 소린가! 음핫핫핫핫하!”
골든핑거가 껄껄 웃으며 오토의 등을 두드렸다.
지난밤 잠도 자지 않고 플레이트 아머에 검과 방패까지 착용한 채 거울을 들여다보기 여념이 없던 오토는 골든핑거의 확답에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카스피도 기쁜 건 마찬가지였다.
드워프들과 인사를 나누던 아틸라가 마지막으로 보에몽 앞에 섰다.
“보에몽.”
보에몽은 말없이 아틸라를 올려봤다.
처음 봤을 때보다 한층 성숙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아틸라가 말했다.
“넌 훌륭한 왕이 될 거다.”
보에몽의 눈에 부릅 힘이 들어갔다.
입술을 씰룩이며 보에몽은 제 아버지인 크누트를 돌아봤고, 크누트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도 알아 아틸라.”
아틸라는 보에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뒤를 돌았다.
- 북쪽을 목적지로 삼으시길. 지금의 난 당신에게 이 정도 말밖에 해 줄 것이 없네요.
아틸라는 소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래. 이제 북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 * *
황금바위산은 노르드 왕국 북동쪽 국경에 위치해 있다.
즉 황금바위산을 떠나 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국경을 넘는다는 의미였다.
나바라 왕국.
아틸라 일행의 새로운 목적지였다.
“통행증을 보여 주시오.”
관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말했다.
얼마 전 아인하르트와 노르드와의 대전쟁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그들은 국경 경비에 상당히 삼엄한 모습을 보였다.
‘경비병의 숫자도 상당하군.’
그뿐 아니라 관문을 넘으려는 모든 사람을 지나치리만치 집요하게 수색했다.
아틸라 일행처럼 수상쩍어 보이는 자들은 당연히 통과시키지 않을 기세.
그래서일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토리가 나섰다.
“걱정 말거라 야만전사야. 이런 건 또 내 전문이지 않느냐.”
바토리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경비병 앞에 섰다.
“우리가 통행증을 잃어버렸느니라. 한 번만 눈감아줄 수 있겠느냐.”
바토리의 눈웃음과, 귀를 녹일 듯한 달달한 음성에 경비병의 얼굴이 헤벌쭉 풀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관문을 지키는 경비대장이 다가와 경비병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고는 험악한 얼굴로 외쳤다.
“이자를 끌고 가 감옥에 처넣어라!”
“히익! 자, 잘못했습니다 경비대장!”
경비병이 끌려갔다.
바토리는 새로이 등장한 경비대장에게 미인계를 써 보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비대장은 여자였던 것이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자는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
바토리는 무어라 항변하려 하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일행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아틸라에게 속삭였다.
“저 여자만 아니었어도 성공이었느니라.”
경비대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일행을 훑었다.
그러더니 아틸라의 어깨 뒤에 숨은 오토에서 멈췄다.
“이봐. 거기.”
오토가 흠칫 놀라며 더욱 몸을 숨겼다.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오는 경비대장의 앞을 라일이 가로막았다.
“적마탑의 마법사 라일 플라마다.”
라일이 신분증을 꺼내 보이자 경비대장의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가슴을 두드려 나바라 왕국의 예를 표한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적마탑의 고귀한 마법사님과 일행인 줄도 모르고 그만.”
마탑의 마법사는 어디서나 준 귀족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적마탑은 나바라 왕국 안에 있었기에, 이곳에서 적마탑 마법사의 위세는 어느 귀족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었다.
“괜찮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경비가 평소보다 삼엄한 것 같은데.”
라일의 물음에 경비대장이 놀란 얼굴로 답했다.
“설마 아직 듣지 못하신 겁니까. 적마탑이 습격당했습니다. 심지어 탑주께서 위중한 상황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