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44화 (144/425)

144. 북쪽으로 (1)

소년이 입을 열었다.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라. 뭐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엉망이 된 얼굴과 별개로 소년의 발음은 또박또박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돌아갈 시간이네요. 당신이 불필요하게 검을 휘두르는 바람에.”

소년이 키득키득 웃었다.

반쯤 무너진 얼굴 속에서도 그는 정말로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시발 새끼가 처웃고 지랄이…… 어어?”

프스스슷……, 소년의 몸이 검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것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고, 저 높은 곳에서 합쳐지더니 검은 새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입을 열었다.

- 북쪽을 목적지로 삼으시길. 지금의 난 당신에게 이 정도 말밖에 해 줄 것이 없네요.

크게 공중을 한 바퀴 선회한 검은 새가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이어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이 완전히 소멸했다.

주위는 평화로운 숲속이었다.

황금바위산 한가운데 덩그러니 선 아틸라는 검은 새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동안 노려봤다.

* * *

수 시간 후.

일행은 황금바위성에 들어와 있었다.

황금바위산에서 발생한 요란한 기운을 감지한 라그나가 드워프 전사들을 이끌고 달려와 일행을 발견했기 때문.

크누트는 왕의 침실에 누웠다.

부상이 심하긴 했지만 목숨을 잃은 정도는 아니었다.

드워프가 지닌 강인한 체력 덕에 며칠 지나면 완치할 수 있다는 듯했다.

“미안하게 됐군. 크누트.”

“그런 말 말게 아틸라. 자네는 여전히 황금바위 드워프의 은인이니까.”

아틸라 일행은 빈 방으로 안내됐다.

드워프의 방답게 투박한 곳이었지만 지친 몸을 회복시키는 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체력을 보존하고 있던 오토는 의도치 않게 고생문이 열렸다.

“어이 오토. 네가 지금부터 우리의 병수발을 드는 거다.”

“뭐, 뭐요!”

아틸라의 명령으로 오토는 일행의 하인이라도 된 것처럼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게 됐다.

그러던 중 그는 몇 번인가 ‘나 이제 못 하겠수!’ 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는데, 그때마다 아틸라의 서늘한 눈빛을 보고는 태도를 바꿨다.

툴툴대는 오토에게 카스피가 물어왔다.

“근데 영주 나리는 여태 어디에 있었던 거야?”

“뭐가 말이우.”

“우리가 파우스트의 언데드랑 무지막지하게 강한 데스나이트랑 막 싸우고 할 때 어디에 있었냐고. 어디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딱! 하고 나타난 거야?”

오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스피의 말대로,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이 깨지며 오토는 갑작스레 일행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답 없는 오토를 아틸라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원래 북쪽의 괴물을 쓰러뜨리라는 메피스토펠레스 시나리오의 세 번째 임무 보상은 두 번째와 동일한 내용이었다.

[ 보상: 잃어버린 동료를 같은 세계선으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

[ 불러들일 수 있는 동료와 인원은 무작위로 선정됩니다. ]

아틸라는 카르타고를 소멸시키며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그 이전, 광폭의 권능을 발현하며 이 보상은 무의미한 것으로 바뀌었다.

[ 시스템 경고 ]

[ 과거의 전설적인 영웅과 원작자의 두 세계가 충돌을 일으킵니다. ]

[ 발생한 충돌이 고위 환술과 뒤섞여 혼돈의 세계선을 구성합니다. ]

추후에 안 일이지만, 저 메시지와 함께 세계선은 붕괴했고 임무도 함께 사라졌다.

[ 예기치 않은 세계선의 붕괴로 세 번째 임무가 소멸됩니다. ]

게다가 그 뒤 떠오른 네 번째 임무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아틸라는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고, 나름의 가설을 세워 둔 상태였다.

그러나 어찌 됐든 세계선이 무너진 덕에 바토리는 시공추적의 반지를 통해 아틸라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또한 아틸라는 동료들에게 손을 대지 않은 채 카르타고에게만 공격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크누트가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도롱뇽과 펀치, 카스피, 샤를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일행은 이곳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카르타고는 막강한 상대였다.

그렇지만 아틸라는 결국 놈을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것이 녀석의 완전한 소멸로는 이어지지 않은 모양이지만.

아틸라는 황금바위성으로 옮겨지며 바토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카르타고는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란다.’

‘그는 머지않아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게야.’

‘그리고 그때의 그는 더욱 강력해진 모습일 테지.’

“뭐야 영주 나리. 왜 아무 말이 없어.”

카스피가 오토를 캐묻는 소리가 아틸라를 생각에서 끄집어냈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수.”

“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니까.”

“흠. 나도 그렇긴 한데.”

카스피는 자신이 겪은 환술을 기억했다.

아기로 변한 자신.

그런 자신을 안고 어디론가 달리던 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와 살육의 장.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어릴 때 기억인지, 아니면 메피스토펠레스가 마음대로 조작한 환상인지 그녀는 몰랐다.

‘하지만 환술은 대개 상대의 머릿속에서 가장 취약한 기억을 찾아 공격한다고 들었어.’

간혹 그런 일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헤어져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그래서 자신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혔다고 여기던 사람이 어느 날 생생하게 꿈속에서 등장하는 일이.

그제서야 그 사람을 떠올리며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며 옛 추억을 회상하곤 하는 일이.

카스피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환술 속에서 본 두려운 환상 또한, 실제로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은 아닐까.

머리를 굴리자 지끈지끈 두통이 밀려왔다.

아직 그녀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모두들 많이 지쳤단다 카스피. 이곳에서 며칠간 충분히 쉬고 난 뒤에 천천히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느냐.”

“응 바토리.”

카스피가 답하며 싱긋 웃었고, 바토리도 미소했다.

그러면서 바토리는 힐끔 아틸라를 돌아봤다.

그녀 역시 아틸라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아틸라는 붉은 눈의 귀공자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 붉은 눈의 귀공자가 아틸라를 ‘김도현’이란 독특한 이름으로 불렀던 것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아틸라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그래서 바토리는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근데 저 녀석도 이렇게 우리와 함께 있어도 되는 거요?”

오토가 구석의 침대를 눈짓하며 말했다.

그곳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라일이 누워 있었다.

“저 아이는 이제 메피스토펠레스의 그릇이 아니란다. 우리 못지않게 고생을 했을 터인데, 숲속에 버려두고 올 수는 없지 않느냐.”

“그야 그렇지만. 뭐, 알겠수.”

오토는 영 탐탁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오토를 바토리가 주의 깊게 바라봤다.

그녀가 보기에 오토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을 경험한 뒤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평소처럼 까부는 일이 줄었고, 혼자 멍하니 허공을 올려보는 일이 잦았다.

어느새 아틸라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오토가 뒤치다꺼리를 맡아 줘야 했기에 한동안 일행은 남녀 구분 없이 한 방에서 머물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상당히 몸을 회복한 크누트가 라그나와 함께 방문했다.

“몸은 좀 어떤가. 괜찮아졌다면 함께 가 주었으면 하는 곳이 있네만.”

마침 일행의 체력도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그런데 오토는 방 안에 남기를 원했다.

“난 여기서 쉬고 싶수. 저 라일인지 뭔지 하는 마법사를 혼자 두는 것도 찜찜하니까.”

그러나 크누트는 오토도 꼭 함께 가야 한다며 재차 권유했고, 결국 라그나가 환자 옆에 남겠다고 말한 뒤에야 주섬주섬 일행을 따라나섰다.

이동하는 길에 아틸라가 말했다.

“어이. 오토.”

“왜 그러슈.”

“요즘 왜 그렇게 무게 잡고 있냐. 안 어울리게.”

“…….”

오토는 답하지 않았고 아틸라도 더는 묻지 않았다.

일행은 말없이 크누트를 따라 걸었다.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일행은 대장장이 골목에 들어서 있었다.

“오. 크누트!”

“이봐 크누트! 상처는 다 나은 건가?”

“아틸라 앞을 눈치 없이 가로막다 혼쭐이 났다지? 벌써 소문이 온 마을에 다 퍼졌다고! 누음핫핫핫핫하!”

대장장이들이 쾌차한 크누트를 보며 농담 한 마디씩을 건넸고, 크누트는 언제나와 같은 우렁찬 웃음소리로 그것을 받았다.

쉼 없이 발을 움직인 크누트가 골든핑거의 대장간 앞에서 멈춰 섰다.

크누트와 아틸라 일행을 발견한 골든핑거가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지난번 악귀 사건으로 스미스 가문이 완전히 멸망했기에, 골든핑거는 황금바위산에 유일하게 남은 장인이었다.

그랬다.

골든핑거는 장인이 되었다.

“상처는 벌써 다 나은 겐가? 크누트.”

크누트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 골든핑거가 아틸라 일행을 보며 반색했다.

“어서 오게 아틸라. 그리고 인간 친구들.”

“눈 밑이 영 퀭한데 골든핑거.”

“지난 보름 동안 이것들을 수리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네. 마침 딱 좋을 때 왔군. 안 그래도 부르려던 참이었거든, 음핫핫핫핫하!”

골든핑거는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 바퀴 달린 긴 작업대 하날 끌고 나왔다.

그 위엔 말끔하게 수리된 흑철검과 흑철방패, 그리고 플레이트 아머가 놓여 있었다.

“수리가 끝난 건가?”

“부서진 조각들이 온전히 남아 있어 별 어려움은 없었네. 확인해 보겠나?”

“그러지.”

아틸라의 무구는 처음 손에 넣었을 때와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골든핑거의 말대로,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이 소멸하며 부서진 아틸라의 무구 조각이 모조리 한자리에 모여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그나는 그 조각을 빠짐없이 챙겨 골든핑거에게 전했고, 그 뒤 골든핑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리에 전념했던 것.

“대단하군 골든핑거. 그 짧은 기간에 이렇게까지 말끔하게 수리하다니.”

확인을 마친 아틸라가 감탄하며 말했다.

만족한 골든핑거가 자그만 작업대 하나를 더 끌고 왔다.

그 위엔 카스피의 단검과 사슬낫이 말끔하게 수리돼 있었다.

“고, 고마워 난쟁이 장인 아저씨!”

“자. 그리고 이건.”

골든핑거가 히죽 웃으며 또 다른 작업대를 끌고 왔다.

“오토. 자네 거네.”

시큰둥한 얼굴로 작업대를 쳐다보던 오토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힉! 히익! 히이이이익!”

작업대 위엔 잘 만들어진 검과 방패, 그리고 플레이트 아머가 놓여 있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오토가 골든핑거의 두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그러고는 대장장이 골목이 떠나가라 외쳤다.

“호우호우! 호우우우!”

* * *

“이것 보시오 아틸라 님! 드디어 이 오토에게도 플레이트 아머가 생겼다는 것 아니요! 으하하하하!”

“이 검의 날카로움 좀 보게! 이 정도로 날이 서 있으면 살쾡이 암살자의 얇은 가죽옷쯤은 종이 베듯 갈라 버릴 수 있을 거요! 으하하하하!”

“게다가 방패는 또 어떻고! 내가 최고로 존경하는 드워프 장인이신 골든핑거 포저 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이건 흑철방패 못지않은 강도와 경도를 자랑하면서도 무게는 현저하게 줄인 작품이라지 않소! 이 말인즉슨! 아틸라 님의 흑철방패보다 더 상위 등급의 방패일지도 모른다, 이 말씀이오! 으하! 으하! 으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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