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42화 (142/425)

142. 메피스토펠레스 (2)

라일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아틸라……! 네가 어떻게 여기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틸라는 버서커의 광기에 사로잡힌 채 쓰러졌다.

지금쯤 지독한 후유증으로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야 하는 상황.

그런데 어떻게.

라일은 이내 이유를 생각해 냈다.

‘설마 카르타고가!’

카르타고는 일시적으로 소멸했지만, 그전에 아틸라를 쓰러뜨렸다.

지금 아틸라가 버서커의 광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이유.

카르타고가 무언가 힘을 발휘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무슨 생각인가 버서커 카르타고. 그렇다면 설마 붉은 눈의 귀공자 역시도 다른 꿍꿍이가……!’

의문은 또 있었다.

아무리 버서커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해도, 이곳은 자신이 만든 환술 세계의 중심부.

아틸라는 결코 찾아낼 수 없는 곳이다.

단 하나의 가능성이었던 시공추적의 반지도 바토리에게서 빼앗았다.

그렇데 어떻게.

“어떻게 오긴. 환술 이동기로 왔지. 물론 내가 마음대로 지어낸 이름이지만.”

아틸라의 말을 라일은 믿을 수 없었다.

“그럴 리 없다! 아무리 세계선이 무너졌어도 이곳을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

“시공추적의 반지가 위치를 알려 줬으니까.”

“뭐라고?”

라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토리를 환술 중심부로 끌어오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녀의 손에서 반지를 빼앗는 것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라일은 제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반지가…… 없어?”

“흐응. 이것을 찾는 것이더냐.”

라일은 바토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경악했다.

“네, 네놈……! 설마……!”

검은 사슬에 포박돼 옴짝달싹 못 하던 바토리는 그곳에 없었다.

대신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선, 그리고 강력한 환술의 눈을 뜨며 자신에게 대항 중인 바토리가 거기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붉은 보석의 반지가 휘황한 빛을 발했다.

“그랬던 건가……! 처음부터 넌……!”

“나는 처음부터 네 환술에 당하지 않았었다. 아니, 환술에 진입한 것은 맞지만 너의 정신 공격을 버티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지. 지금까지 네가 본 나의 모습은, 너의 환술 속에서 내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떻게……!”

“말하지 않았더냐. 내겐 이것이 있었다고.”

바토리의 가슴 앞쪽 허공엔 검은빛을 발하는 고서가 띄워져 있었다.

라일은 그것을 만든 악마에 대해 알고 있었다.

자신의 환술보다 강력한.

아니, 현존하는 모든 악마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환술을 보유한 악마.

대악마, 아몬(Amon).

“말도 안 되는! 그 힘은 단순히 그것을 펼친다 하여 즉각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네가……!”

“난 그간 준비를 해 왔다. 차근차근 고서의 내용을 습득하고, 분석했지. 아울러 환술이 주특기가 아닌 내가 그 힘을 어느 정도 활용하려면 마법진의 구성이 필수였다. 물론 그것엔 일리시아의 환술 속에서 흡수한 네 마력이 큰 도움이 되었단다.”

“마법진이라고? 대체 언제 그런…….”

그 순간 라일의 눈이 커졌다.

“설마 네놈! 키클롭스의 감옥에서!”

바토리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이제야 깨달았느냐.”

그랬다.

바토리는 키클롭스의 감옥에서 아르게스를 명계로 추락시키기 위한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아르게스를 추방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틸라와 마찬가지로 줄곧 라일을 의심하고 있었고, 그래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키클롭스의 감옥 안에 ‘대악마 아몬의 고서’에서 습득한 환술 마법진을 포함시켰다.

그건 환술이 특기가 아닌 바토리에겐 상당히 위험하고 고된 일이었다.

그녀가 앞서 말했듯, 일리시아의 환술 속에서 얻어 낸 메피스토펠레스의 마력과, 고서의 내용을 습득하려는 불굴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토리는 자신의 마력을 바닥까지 드러내면서도 결국 환술 마법진을 완성시켰고, 이렇게 메피스토펠레스와 아슬아슬한 줄타기 대결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보호막 하나 두를 힘도 없었던 거로군. 할망구.”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허나 덕분에 네가 날 그림처럼 안아들고 출구까지 달려 주지 않았더냐.”

바토리도 웃었다.

라일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제아무리 바토리 에르제베트, 너라도 고작 인간의 몸으로 그런 대환술(大幻術)을 펼칠 수는……!”

그 순간 라일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생각엔 엄청난 오류가 있었다.

인간이 되어 힘을 잃은 건 바토리만이 아니다.

메피스토펠레스.

그 자신도 ‘라일’이라는 인간의 몸에 빙의하며 상당한 힘을 잃었다.

거기에 더해 한때 관조자였던 바토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나긴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그는, 그것에 비해 찰나에 불과했던 인간의 삶에 적응할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넌 알면서도 잊었던 거다. 지금의 네가 이전의 강력한 고위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아인하르트 왕국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환술을 부여하며 네가 지닌 대부분의 힘을 소진했다는 것도.”

바토리가 이어 말했다.

“분명 너는, ‘붉은 눈의 귀공자’가 지원해 준 강대한 힘을 네 것이라 착각했던 게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붉은 눈의 귀공자’라는 말에 아틸라는 조금 놀랐다.

그러나 그건 추후 물어보면 될 일.

지금은 눈앞의 라일을 처리하는 것이 먼저다.

일견 언제든 모가지를 꺾어 버릴 수 있을 첫처럼 나약한 상대로 보이지만, 아틸라는 그럴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처음 이곳에 등장했을 때부터 라일의 목을 부러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것을 라일이 강력한 환술로 버텼다.

그의 환술에 아틸라의 몸은 상대의 목을 움켜진 채 굳어 있었다.

‘그래. 아무리 힘이 감퇴했어도 고위악마다 이건가.’

게다가 이곳은 그가 만든 환술 세계의 중심부.

인간의 몸에 빙의하며, 그리고 과도한 환술을 준비하며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이 공간의 주인은 다름 아닌 메피스토펠레스다.

그것을 증거하듯 라일의 눈에 사악한 빛이 깃들었다.

그의 목을 움켜쥔 아틸라의 손이 쇠처럼 붉게 달구어졌다.

아틸라는 라일에게서 손을 떼었다.

수 걸음 뒤로 물러난 라일의 몸에서 활화산처럼 마기가 터져 나왔다.

“너희는 나의 염원을 방해할 수 없다.”

라일은 자신이 있었다.

바토리가 자신의 정신 공격을 버티는 중이고, 야만전사 아틸라가 이곳에 진입하긴 했지만 그뿐이다.

“아틸라. 넌 카르타고와의 전투에서 모든 기력을 소모했다. 지금 이렇게 후유증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 거기에 더해 넌 지니고 있던 무기와 방어구마저 잃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무기도 있지.”

아틸라의 손에 무휼과, 드라칼리온이 쥐어졌다.

“그래. 그 성검은 인정한다. 그러나 드라칼리온은 제법 모습이 바뀐 것 같군.”

라일의 말대로, 드라칼리온은 단검 정도의 자그만 크기가 되어 있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나의 정신 공격을 부여잡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태. 게다가 라일의 몸을 장악한 나는 지금껏 네가 상대해 본 그 어떤 자보다 강력한 마법사다. 이런 상황에서 아틸라, 네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네 말대로 지금의 내가 혼자만의 힘으로 널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

“무엇을 말인가.”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그 잘난 마법사 찢어 버리는 게 살수라는 거 말이야.”

퍼엉! 라일의 머리 위에서 연막이 터졌다.

당황한 라일의 등 뒤에서 카스피가 모습을 드러냈고, 귀기를 머금은 그녀의 단검이 라일을 습격했다.

“귀살자 카스피!”

라일은 마기의 장막을 펼쳐 그것을 막았다.

그러나 카스피는 소멸을 시전해 라일의 사각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고, 그녀의 칼날은 라일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에 성공했다.

“크흐윽……!”

비틀거리는 라일이 근거리로 순간이동했다.

그곳으로 크누트가 날아왔다.

천둥벼락이었다.

콰쾅!

이번에도 라일은 마기의 보호막을 펼쳐 막았다.

그러나 크누트의 천둥벼락은 막강했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 라일은 수 미터 뒤로 날아 바닥을 굴렀다.

그 위로 거대화한 펀치가 뛰어들었다.

우어어어어!

펀치의 앞발이 라일의 등을 강타했다.

몸을 일으키려다 재차 앞으로 고꾸라진 라일은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이동기를 시전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그에게 아틸라가 쇄도했다.

[ 돌진(突進) ]

돌진의 디버프엔 저항했지만, 자신의 목을 향해 쏘아지는 무휼의 휘황한 빛에 라일은 이번의 공격만큼은 크게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라일의 입이 동굴처럼 벌어지며 시커먼 무언가가 놀라운 속도로 빠져나왔다.

그것은 라일의 몸을 장악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아였다.

그는 선택했다.

자아만 살아 있다면 마계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향후 다른 인간의 몸에 빙의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뒤 기회를 엿봐 다시금 바토리 에르제베트를 포획해 오르피나의 힘을 갈취하면 된다.

날아오르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아를 향해 펀치의 앞발과 크누트의 도끼가 휘둘러졌다.

그러나 육신에서 벗어난 자아는 그런 물리적인 공격으로 타격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 어리석구나.

“어리석긴.”

살쾡이처럼 몸을 날린 카스피의 사슬낫이 쏘아졌다.

그것이 놀랍게도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아를 타격했다.

- 귀살자 카스피! 네가 언제 이런!

카스피가 펼친 공격은 카르타고의 유령마를 쪼갰을 때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지금의 사슬낫엔 불꽃처럼 타오르는 귀기가 덧씌워져 있었으니까.

짧은 동안이었지만 카르타고와 싸우며 카스피는 성장했다.

그녀는 귀기를 다루는 힘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크르르르르르……!

자욱히 펼쳐진 허공 위 연막 속에서 파충류의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그 가공할 광경에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아가 물에 끓는 액체처럼 흔들렸다.

- 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키랴랴랴랴랴랴랴!

흑염의 브레스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아를 습격했다.

- 귀살자 카스피! 넌 이것을 위해 연막술을……!

메피스토펠레스가 앞서 말한 대로, 지금의 아틸라는 모든 기력을 소진한 상태다.

그러나 또한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듯, 아틸라의 강인한 의지는 그 자신의 새로운 자아를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

그 불굴의 의지가 고위 환술의 무너진 세계선과 결합해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전성기와 비슷한 수준의 괴물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지금의 메피스토펠레스는 그 압도적인 힘을 막아 낼 수 있을 만큼 힘을 보존한 상태가 아니었다.

-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다. 나 ‘이단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한낱 인간의 힘에……!

“그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게 바로, 네 새로운 염원 아니었더냐.”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아가 흑염의 브레스에 깎이고, 부서졌다.

그 위를 성력을 개방한 무휼이 습격했다.

손상된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아를 조각조각 깨부수기 시작했다.

- 안 돼! 안 돼! 이럴…… 수는……!

검은 환술의 공간이 진동했다.

일행의 주위를 둘러싼 어두운 기운이 잿개비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보였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이었다.

성인이 아닌, 아주 조그만 소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것은.

“너……!”

아틸라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자의 눈빛.

그의 눈은 패영전 세계에 진입한 이래 가장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악다문 입에서 야수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달렸다.

상대도 아틸라의 눈을 마주 보았다.

소년의 붉은 눈동자에 서늘한 미소가 덧씌워졌다.

“오랜만이네요. 김도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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