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39화 (139/425)

139. 버서커 (5)

맹수의 송곳니처럼 무휼이 카르타고를 습격했다.

카르타고는 간발의 차로 그것을 막았지만 측면에서 쏘아진 샤를의 검세까지 어쩌진 못했다.

그의 옆구리에서 검은 오러가 흩어졌다.

카르타고는 이동기를 사용해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틸라가 그랬듯, 카르타고 또한 이런 특별한 이동기는 무제한으로 사용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카르타고의 푸른 안광이 달려드는 아틸라와, 샤를과, 저 멀리 보이는 인간들을 바라봤다.

그는 다소 놀란 상태였다.

버서커 아틸라가 7인의 데스나이트를 모조리 소멸시킨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건 그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살육의 대상을 무시하고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 너는 버서커의 능력을 사용하면서도 스스로의 의지를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지금도 녀석은 샤를을 제외한 채 오직 자신만을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카르타고는 아틸라의 눈을 바라봤다.

사라진 검은자위.

우툴두툴 돋아난 핏줄.

그리고 온몸에서 치솟는 핏물과 짐승처럼 내보인 어금니는 그가 버서커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었다.

- 그런데 어떻게.

버서커의 경지는 양날의 검과 같다.

경계를 넘어선 전사는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폭발적인 힘을 얻게 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성이 마비된다.

적아(敵我)를 구분하지 못하고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육의 화신이 된 버서커는 주변에 단 하나의 생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피와 살을 탐하는 괴물이 되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뒤엔 폭발적인 후유증을 감내해야 한다.

날아드는 두 대적자의 검을 받아 내던 카르타고는 이윽고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아틸라의 손에서 빛나는 붉은 보석의 반지.

카르타고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시공추적의 반지.

또한 아틸라가 처음 이곳에 등장했을 땐 그의 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았다는 것도.

카르타고는 웃었다.

- 버서커 아틸라. 너는 망국의 공주가 인정한 새로운 승천 후보자인 것인가.

그제서야 그는 아틸라가 경계를 넘어서고도 일말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버서커 아틸라와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시공추적의 반지로 이어진 바토리의 의지가 그의 정신에 개입하고 있다.

- 먼 옛날, 나를 관조했던 그녀가 내게 그리했던 것처럼.

그러나 길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의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관조자가 아니다.

카르타고는 아틸라와 바토리가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세계에 진입해 있다는 것과, 그것이 버서커 아틸라에 대한 바토리의 개입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환술은 머지않아 부서질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로 다른 세계선에 존재하던 아틸라와 바토리가 같은 세계선에서 만났다.

그것은 곧 메피스토펠레스가 세공한 세계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뜻.

그리고 메피스토펠레스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파 놓은 함정에 결국 그 자신이 빠지게 되리라는 것을.

- 두 명의 대적자여.

아틸라와 샤를의 검세를 막아 내며 카르타고가 말했다.

- 머지않아 거대한 변화가 현세를 덮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대격변(大激變)의 시대가 너희 앞에 찾아올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은 현세와 마계, 그리고 명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자신이 만들어 낸 환술 속에서 파우스트의 흑마술사들로 하여금 수많은 마계의 언데드를 소환하도록 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명계로 이어지는 통로 중 하나인 키클롭스의 감옥에 환술 입구를 생성했다는 것이며.

마지막 이유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계획과 달리 ‘어느 강력한 존재’의 의지에 이끌린 파우스트의 흑마술사들이 명계에 존재하던 자신을 현세로 불러왔다는 것이다.

- 메피스토펠레스는 큰 실수를 했다. 그는 그 존재와 손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

‘그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카르타고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 존재와 조우하게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명계에 머무르던 자신이 현세로 다시 돌아오게 된 까닭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라는 것도.

- 그렇지만 궁금하군. 어떤 힘이 메피스토펠레스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세계선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단 말인가.

카르타고는 다시금 아틸라의 손에 끼워진 붉은 보석에 주목했다.

그는 아틸라가 반지를 착용한 시점을 떠올렸다.

그리고 추리했다.

어쩌면 환술의 세계선을 무너뜨린 주체는 다름 아닌 눈앞의 버서커, 아틸라가 아닐까.

그러나 잠시 후 자신의 생각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깨달은 카르타고는 자조적인 웃음을 뱉었다.

그래.

무리한 생각이다.

그럼에도 그는 만족했다.

- 버서커 아틸라. 그리고 패왕 샤를 아인하르트.

카르타고는 이 여흥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감각했다.

그의 몸에서 한층 강력한 오러가 뿜어졌다.

쇄도하는 샤를의 검을 강하게 밀쳤다.

직전까지와 완전히 달라진 그의 검격에 샤를의 팔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 다음에 만났을 땐 그 망가진 오른팔이 고쳐져 있었으면 하는군.

카르타고는 샤를의 오른팔이 망가져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팔이 완전한 상태였다면 버서커 아틸라보다 더욱 껄끄러운 상대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것도.

뱀처럼 휘어진 카르타고의 오러가 샤를을 습격했다.

그것에 맞은 샤를의 몸이 크게 뒤로 날아갔다.

그 자리로 무휼이 짓쳐들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그 상황을 예측했고, 준비 또한 되어 있었다.

카카캉!

검은 오러에 적중 당한 무휼이 허공으로 솟았다.

이어 맨손이 된 아틸라의 몸에 재차 오러가 직격했고,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아틸라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샤를과 아틸라는 순식간에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카르타고는 발밑의 아틸라에게 검을 겨눴다.

이곳을 떠나기 전, 그의 광기를 몸에서 완전히 지워 두어야 한다.

- 이것은 너를 위한 선물이다. 버서커 아틸라.

그 순간 카르타고는 머리 위를 엄습하는 가공할 마력을 포착했다.

고개를 들었다.

기다란 날개를 펼친 새까만 드래곤이 자신을 향해 쩌억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카르타고는 그것의 정체를 직감적으로 알았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키랴랴랴랴랴랴랴!

흑염(黑焰)의 브레스가 카르타고를 습격했다.

카르타고는 공격용으로 쓰려던 검은 오러를 방어로 돌렸다.

파드드드드드드듯!

카르타고의 투구가 진동했다.

저 가공할 드래곤의 브레스를 오러의 장막으로 방어하며 카르타고는 생각했다.

죽음의 숨결.

한때는 모든 드래곤들의 정점에 서있던 최강의 드래곤이자, 어느 사악한 힘에 지배되어 사르데니야 왕국을 한 줌 잿더미로 만든 재앙의 광룡.

바토리 에르제베트를 망국의 공주로 전락시켜 관조자의 삶을 살게 하고, 사색(四色)의 신 오르피나를 파멸의 신으로 타락시키는 데 일조한 존재.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네가 바토리 에르제베트와 함께 버서커 아틸라를 돕겠다는 것인가.

카르타고가 더욱 강하게 오러를 방출했다.

흑염의 브레스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카르타고는 자신이 있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힘을 잃었다.

지금 이 정도의 브레스를 구현할 수 있는 것도 놈이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 있기 때문이다.

- 여기까지로군.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카르타고의 오러가 강해지는 만큼 브레스는 약해졌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아니 도롱뇽은 아틸라를 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발현해 이곳으로 날아왔다.

카르타고가 말했던 것처럼 환술 속 세계선의 경계가 무너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인의 의지 없이 도롱뇽은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없었고, 그래서 거대하게 부풀었던 그의 몸체는 순식간에 자그매졌다.

“키헥! 키헤에엑!”

기침을 토하며 도롱뇽이 아틸라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이제는 완연한 도롱뇽의 모습으로 돌아온 광룡을 보며 카르타고는 지금이야말로 저 사나운 드래곤을 소멸시킬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날카로운 오러를 몸에 두른 그의 검이 도롱뇽을 향했다.

그러다가 급히 측면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곳엔 거대화한 펀치와, 펀치의 등에 올라탄 카스피가 있었다.

핏물이 응고된 듯한 카스피의 붉은 두 눈을 보며 카르타고가 말했다.

- 귀살의 일족.

파지짓! 카르타고의 검에서 오러가 방출됐다.

그러나 카스피는 귀안의 힘을 통해 그것을 예측하고 있었고, 한발 앞서 펀치의 등에서 도약하는 것으로 회피했다.

펀치 역시도 카스피가 도약하는 힘을 이용해 방향을 전환하는 것으로 아슬아슬하게 오러의 습격에서 벗어났다.

- 내 친구 도롱뇽아.

- 카스피의 말대로야.

- 나도 성공했어.

- 나도 너처럼 커졌어.

그렇게 외치며 펀치가 아틸라의 덜미를 덥석 물었다.

- 도망가자 아틸라.

- 카스피가.

- 그러라고 했어.

그 사이 공중으로 떠오른 카스피를 향해 카르타고의 오러가 재차 쏘아졌다.

그러나 카스피는 이번에도 그것을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카르타고는 조금 놀랐다.

- 하싸씬의 기술.

그랬다.

카스피는 소멸을 사용해 두 번째 오러를 피했다.

사라졌던 카스피의 신형이 카르타고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양손에 쥐어진 단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귀기를 머금고 있었다.

‘제발 쓰러져라! 제발!’

지금의 공격이 통하지 못하면 자신이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을 카스피는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선택했다.

설령 자신이 여기서 죽게 되더라도, 위기에 빠진 아틸라를 못 본 체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 두려운 경험을 했다.

‘이번에는 내가 구할 거야. 아틸라를.’

카스피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붉은 귀기를 머금은 두 자루 단검이 폭풍처럼 카르타고의 덜미를 습격했다.

그리고 카스피는 자신의 공격이 상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 수 있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됐어 아틸라! 내가 녀석을……!’

그러나 그건 카스피의 착각이었다.

뱀처럼 고개를 비튼 카르타고가 단검을 회피했다.

카스피의 눈이 커졌다.

흔들리는 그녀의 시야를 잠식한 것은 검붉은 투구 속에서 금세라도 폭발할 것처럼 살기를 드러내는 한 쌍의 푸른 안광이었다.

- 너는 불필요한 존재다. 지금 죽여 두는 편이 좋겠군.

강렬한 살기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그녀의 목을 옥죄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카스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녀의 입술이 거친 외침을 토했다.

“달려 펀치! 반드시 아틸라를 구하는 거야!”

그 말대로 펀치는 달렸다.

거대화한 펀치의 입안엔 시체처럼 늘어진 아틸라의 덜미가 단단하게 물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스피는 웃었다.

회전하는 그녀의 시야가 환각처럼 번졌다.

날아드는 카르타고의 검을 회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의 판단에 모든 것을 걸었다.

카스피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리려던 카르타고는 상대의 허리에 감긴 사슬을 발견했다.

그녀의 몸이 회전을 거듭할 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감겨지는 그것은 이질적인 빛을 발하는 새하얀 하늘 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카르타고는 머리 위를 엄습하는 날카로운 파공음을 들었다.

자연스레 그의 투구가 들어 올려졌고,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무언가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새하얀 하늘 위에서 단두대처럼 추락한 카스피의 사슬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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