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38화 (138/425)

138. 버서커 (4)

포효하는 아틸라를 보며 카스피는 몸을 떨었다.

검은자위가 사라진 아틸라의 안구는 우툴두툴 혈관이 돋아나 그 자체가 하나의 괴물처럼 보였다.

엉망이 된 갑주 속에선 쉴 새 없이 피가 분출됐다.

카스피는 두려웠다.

지금까지 아틸라의 여러 면을 봐 왔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틸라!”

카스피는 아틸라에게 달렸다.

그런 그녀를 크누트가 붙잡았다.

“안 되네! 아틸라에게 가선 안 돼!”

크누트는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아틸라는 무언가 위험하다.

“하지만 아틸라가……!”

“우리가 간다 해도 달라질 건 없네! 차라리 눈앞의 데스나이트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 나아!”

크누트의 말에 카스피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 역시 크누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펀치!”

카스피의 부름에 도롱뇽을 입에 문 펀치가 달려왔다.

그러면서 불안한 눈망울을 굴려 아틸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펀치의 입을 억지로 잡아 벌리며 도롱뇽이 꽥꽥 소리쳤다.

“야만 미물! 야만 미무우우울! 이거 놔 곰탱이 새끼! 당장 야만 미물에게 돌아가야 한……!”

펀치는 입을 다물어 도롱뇽을 가뒀다.

입안을 두들기는 도롱뇽의 콩알만 한 앞발이 느껴졌다.

펀치는 도롱뇽을 꿀꺽 삼켜 버릴까 하다 그만두었다.

카르타고의 푸른 안광이 아틸라를 바라봤다.

아틸라의 살기 어린 눈빛도 카르타고를 노려봤다.

차아앙!

쇄도하는 카르타고의 검을 아틸라는 무휼과 흑철검을 교차해 막았다.

그러면서 그의 몸은 엄청난 도약을 시작했고, 카르타고의 검을 거칠게 밀쳐 냈다.

카르타고는 밀려났던 검을 되돌려 반격하려 했다.

그런데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틸라!”

카스피의 외침과 동시에 그녀를 습격하던 데스나이트 하나가 박살이 났다.

어느새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모를 아틸라가 유령마를 덮친 뒤, 그 위에 있던 데스나이트를 도륙한 것이다.

당황한 4인의 데스나이트가 일제히 아틸라에게 덤볐다.

뿌드득, 아틸라의 어금니에서 바위가 갈리는 듯한 소음이 울렸다.

그의 몸이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맹렬하게 질주했다.

한편 카르타고는 직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아틸라의 모습을 보며 희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현세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을 놀라게 만든 두 명의 전사를 발견했다.

- 패왕 샤를 아인하르트. 야만전사 아틸라.

카르타고는 아틸라의 몸에서 발산되는 힘의 정체를 알아봤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것이야말로 인간이었을 때의 자신이 버서커라 불렸던 이유이자, 남부 대륙 최강의 전사로 군림하도록 만든 특별한 힘이었으니까.

- 긴 세월의 강을 넘어 새로운 버서커가 탄생한 것인가.

버서커 아틸라의 모습은 자신의 과거와 같았다.

그와 데스나이트들의 격돌을 지켜보던 카르타고는 아틸라 못지않게 특별한 힘을 지닌 또 하나의 전사를 돌아봤다.

- 샤를 아인하르트.

요정들의 신기로 벼려 낸 검, 듀란달의 주인.

군신 아레스의 축복을 받은 자.

그러나 그와 상반되는 어둠의 마력까지도 한 몸에 지닌 존재.

자신에게 검을 쏘아 내는 푸른 눈의 대적자를 보며 카르타고는 웃었다.

카카캉!

검은 오러를 발하는 두 자루 검이 맹수처럼 서로를 물어뜯었다.

샤를은 검은 오러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냈다.

처음 카르타고를 조우했을 때부터 그는 느끼고 있었다.

카르타고가 지닌 힘이, 자신에게 숨겨진 또 다른 힘과 동류라는 것을.

‘빠르게 끝을 내야 한다.’

이곳까지 달려오며 샤를은 아틸라가 변하는 모습을 봤다.

그는 지금의 아틸라가 이성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유는 있었다.

그 역시도 검은 오러의 힘을 개방한 뒤 무언가에 정신이 잠식되는 기분을 느꼈으니까.

‘지금의 아틸라가 보이는 힘과, 내 힘 사이엔 무언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확신은 없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샤를은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카르타고를 향해 검을 뻗었다.

* * *

핏발 돋은 눈동자가 4인의 데스나이트를 노려봤다.

직전까지 세 명의 데스나이트를 쓰러뜨리며, 그리고 카르타고의 맹공을 상대하며 흑철검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그는 흑철검을 내던지고 가장 앞서 달려오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도약했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눈앞의 방해물을 파괴하겠다는 의지만이 가득 차 있었다.

카앙! 날아드는 데스나이트의 검을 무휼로 막았다.

그것을 넘어 더욱 강한 공격으로 상대를 밀쳐 냈고, 그 가공할 힘에 데스나이트의 몸이 균형을 잃었다.

그는 자세가 무너진 상대의 목뼈를 부러뜨리려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나 잡히는 것은 없었다.

다만 상대의 검은 투구가 몸에서 분리됐을 뿐이었고, 놀랍게도 투구가 사라진 자리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는 목이 있었어야 할 흉갑 속 구멍에서 파릇한 빛이 돋아나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 무휼을 꽂았다.

괴이한 소리를 내며 데스나이트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 자리로 나머지 데스나이트들의 검이 몰아쳤다.

하나는 무휼로 막고, 나머지 둘의 검은 몸에 맞았다.

그는 굳이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신의 몸이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상대를 향한 살육과 파괴의 본능은 더욱 강렬해진다는 것을.

막아 낸 검신을 튕겨 낸 그가 야생짐승과도 같은 몸놀림으로 상대의 흉부에 무휼을 꽂았다.

이어 자유가 된 두 손으로 몸에 박힌 두 자루 검을 잡아 부러뜨렸다.

검을 잃은 데스나이트들이 움찔했다.

그중 하나에게 뛰어든 그가 맨손으로 투구를 뜯고, 그 안에 주먹을 꽂았다.

파스슷……! 모래알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데스나이트가 바닥으로 무너졌다.

나머지 하나도 금세 같은 꼴로 전락했다.

남은 건 가슴에 무휼이 박힌 채 괴로워하는 최후의 데스나이트였고, 그 역시도 주인의 손으로 돌아간 무휼에 난도질당해 최후를 맞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5인의 데스나이트가 소멸했다.

그전에 2인의 데스나이트도 그에게 당했으니, 사실상 그는 카르타고가 소환한 7인의 데스나이트를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전멸시킨 것이었다.

상처 입은 그의 몸에서 핏물이 흩어졌다.

금사자의 기사들은 괴물보다도 더욱 괴물 같은 그의 모습에 몸을 떨었다.

“으으……!”

“저, 저건 대체……!”

그들의 몸이 의지를 잃고, 석상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틸라를 걱정하며 달려드는 이가 있었다.

카스피였다.

“아틸라!”

투둑 툭, 혈관이 불거진 두 눈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목소리를 좇았고, 카스피를 발견했다.

그가 이어 한 행동은 카스피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드러난 맹수의 송곳니가 으르렁댔다.

상대를 죽일 듯이 질주했다.

“아, 아틸라……!”

카스피는 당황했다.

살기로 가득한 그의 두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그녀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압도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얼어붙은 그녀의 몸 위로 파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손이 갈퀴처럼 쇄도했다.

날아든 손끝이 살갗을 뚫고, 근육을 찢고, 뼈를 부쉈다.

그러나 그것은 카스피의 것이 아니었다.

“쿨럭……!”

크누트의 입에서 핏물이 토해졌다.

그는 몸을 날려 아틸라와 카스피 사이로 뛰어들었다.

아틸라는 왼손을 뻗어 크누트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상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부딪치며 짐승의 울음소리를 냈다.

크르르르르르……!

크누트의 얼굴이 새빨갛게 부풀었다.

그럼에도 크누트는 반격하지 않고 고통을 견뎠다.

그는 아틸라에게 빚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게. 아틸라……!”

크누트는 확신했다.

지금의 아틸라를 어떻게든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과.

정신을 차린 아틸라가 어렵사리 되찾은 동료 카스피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절망감을 맛보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에게 빚을 갚는 길이라는 걸.

“정신을…… 차리게……! 자네는……!”

붉게 충혈된 크누트의 눈이 아틸라를 바라봤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를…… 구해야 하지 않는가……!”

아틸라의 얼굴 표정이 변했다.

이어 괴로운 듯 어금니에서 빠드득 소리를 냈다.

그는 기억했다.

조금 전 머릿속을 울렸던 어느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를.

‘야만전사야.’

그것이 다시금 머릿속을 흔들었다.

‘들리느냐 야만전사야.’

‘어찌하여 너와 나의 세계선이 겹치게 된 것인지는 모르나.’

‘지금의 난, 네게 이런 식으로밖에 도움을 줄 수가 없구나.’

목소리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나 그것엔 버서커의 광기에 물든 아틸라조차 인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를 놓아주거라.’

‘네 상대는 그들이 아니란다.’

크누트의 목을 쥔 손에 힘이 풀어졌다.

가슴에 박혀 있던 오른손도 몸에서 꺼내어졌다.

“나, 난쟁이 왕 아저씨!”

허물어지는 크누트의 몸을 카스피가 받았다.

크누트가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카스피는 작은 안도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아틸라는 없었다.

* * *

아득한 지하의 세계에서 오랜 세월 방황한 카르타고.

그가 현세로 되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을 소환한 것으로 보이는 파우스트의 사령술사들을 몰살한 것이었다.

카르타고는 단순히 그들을 구슬로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파우스트의 사령술사들은 알지 못했지만 사후(死後)의 카르타고는 마계를 넘어 ‘명계(冥界)’에까지 도달했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어떤 특별한 기술을 손에 넣었다.

카르타고는 그 기술을 사용해 파우스트 흑마술사들이 지닌 ‘사령’의 힘을 갈취했다.

그것으로 그는 자신을 소환한 사령술사들을 모두 죽였음에도 명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고, 또한 데스나이트들을 소환할 수 있는 힘도 갖게 되었다.

폭풍처럼 짓쳐드는 샤를의 검세를 막으며 카르타고는 자신에게 두 번째로 주어진 현세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아울러 눈앞의 대적자가, 지금의 자신과 동류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 역시도.

- 샤를 아인하르트. 너와 버서커 아틸라의 존재는 나의 현재와 과거를 반추하고 있다.

숨겨진 힘을 발현한 샤를은 강했다.

카르타고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일 만큼.

그러나 그건 잠시였고, 또한 샤를의 착각이었다.

카르타고는 자신이 가진 진정한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즐기고 있었다.

또한 기대했다.

눈앞의 대적자와, 버서커의 힘을 드러낸 또 다른 대적자가 앞으로 얼마큼이나 성장할 것인지.

그리고 재차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그들이 얼마큼이나 강해진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인지.

- 오랜 세월 동안, 난 나의 대적자를 찾아왔다.

카르타고는 만족했다.

이 두 사내라면 분명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을 즐겁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슬슬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량한 전투의 재미에 빠져 자칫 이들을 죽이기라도 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 즐거웠군 샤를 아인하르트. 그리고.

카르타고는 데스나이트들과 결전을 벌이고 있을 아틸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버서커 아틸…….

카르타고의 목울림이 멈췄다.

그의 말문을 막은 건 터질 듯이 팽창한 핏줄을 드러내며 코앞으로 들이닥친 어느 야만전사의 새빨간 두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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