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버서커 (3)
“……조금만 혼자 버티고 있어라. 샤를.”
아틸라의 말에 샤를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설마 뛰어서 저들을 쫓을 생각인가!”
아틸라는 대답 대신 몸으로 그것을 보였다.
그의 신형이 샤를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종적을 감췄던 아틸라의 신형이 일곱 데스나이트 중 하나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휘두른 흑철방패가 놈의 어깨를 가격했다.
그 갑작스러운 충격에 데스나이트는 유령마에서 떨어졌고, 아틸라는 그대로 유령마의 안장에 올라탔다.
유령마는 이리저리 몸을 날뛰며 아틸라를 떨어뜨리려 했다.
아틸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에겐 이 다급한 상황에 걸맞은 훌륭한 스킬이 있었으니까.
[ 유목민의 승마술 ]
생각대로였다.
유목민의 승마술은 유령마에게도 통했다.
아틸라는 한결 온순해진 유령마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살아 있는 말과는 다른 이질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유령마가 질주했다.
흔들리는 말 위에서 아틸라의 얼굴이 구깃구깃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또 머리가……!’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만 가능한 빠른 이동기.
이전에도 말했듯 그것엔 부작용이 있었다.
사용할 때마다 아틸라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이유 없이 화가 났으며, 찌르는 듯한 두통이 머리를 습격했다.
서리나무숲을 찾으려 두어 차례 이동기를 사용하다 발견한 그 부작용은 그의 몸에 조금씩 부하를 쌓고 있었다.
게다가 아틸라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여러 차례의 이동기를 사용했다.
그것은 그의 몸에 더욱 과도한 부하가 되어 중첩되어 갔고, 조금 전 이동기를 사용하며 임계점을 드러냈다.
아틸라는 본능적으로 그것에 대해 강한 위험을 느꼈다.
‘더는 이동기를 사용해선 안 돼. 이대로 놈들을 막아 낸다.’
아틸라의 추격을 감지한 데스나이트 하나가 말머리를 돌리며 달려왔다.
아틸라도 유령마를 이끌고 놈에게 돌진했다.
데스나이트의 검과 흑철검이 부닥치며 불꽃이 튀었다.
아틸라는 검을 겨루는 와중에도 말을 멈추지 않고 동료들에게 달렸다.
데스나이트 역시 그런 아틸라를 바짝 추격하며 검을 휘둘렀다.
‘이 녀석도 상당한 강자다.’
데스나이트는 강했다.
그렇지만 녀석은 카르타고가 아니었다.
일대 일로는 결코 아틸라의 상대가 될 수 없었고, 게다가 아틸라에겐 심판의 외침도 있었다.
아틸라의 공세가 매서워졌다.
20퍼센트 강화된 공격력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마구 흔들었다.
몇 번인가 데스나이트가 예리한 반격을 꾀했지만 번번이 아틸라에게 파쇄당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틸라는 기회를 잡았다.
거칠게 휘둘린 흑철방패가 상대의 가드를 무너뜨렸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어진 흑철검이 놈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절단된 데스나이트의 몸이 지면에 처박혔다.
그 자리로 카르타고가 난입했다.
- 재밌는 기술을 사용하는군. 야만전사 아틸라.
아틸라는 놀랐다.
자신은 줄곧 말을 달리며 싸웠다.
아무리 카르타고의 유령마가 빠르다 해도, 이렇게 빨리 쫓아올 수는 없다.
‘어떻게 된 거지?’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카르타고의 검이 아틸라를 습격했고, 아틸라는 빠른 시간 안에 카르타고를 뿌리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욱이 살아남은 5인의 데스나이트는 동료들을 향해 차근차근 거리를 좁히는 중이다.
‘빌어먹을.’
아틸라는 환술 이동기를 시전했다.
그의 몸이 카르타고의 앞에서 사라지고, 앞서 달리던 데스나이트들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 놈만 더 제거하면 된다. 나머진 카스피와 크누트, 그리고 거대화한 펀치가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아틸라는 눈앞의 데스나이트만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녀석을 처리하고, 샤를과 합류한 뒤 카르타고를 쓰러뜨린다.
그때까지 동료들이 버텨만 준다면 나머지 데스나이트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카르타고가 쓰러지면 부하 녀석들은 알아서 소멸할지도 모르고.’
그때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아틸라의 눈앞 허공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유령마를 탄 카르타고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틸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제서야 그는 조금 전 카르타고가 자신의 뒤를 쫓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환술 이동기를 사용한다고!’
카르타고의 검과 흑철방패가 맞부딪쳤다.
이번의 일격은 대단했다.
그동안 수많은 공격에도 제 모습을 유지하던 흑철방패가 대포알에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움푹 찌그러졌다.
방패를 든 왼팔에서 찌르르 진동이 일었다.
이 상태라면 오래는 막아 내지 못한다.
또한 방패가 이 지경이 될 정도라면 그의 플레이트 아머와 흑철검 역시 더는 안전한 무구가 아니었다.
그 순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날 선 통증이 아틸라의 머리를 후벼 팠다.
아틸라는 궁지에 몰렸다.
그는 카르타고뿐만 아니라 머리를 깨부술 듯 괴롭히는 격통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의 울림으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아틸라!’
샤를의 목소리가 들렸다.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음성처럼 몽롱하게 들렸다.
깨어날 수 없는 지독한 술에 취한 기분이었다.
그것이 아틸라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어이없이 무너질 수는 없다.
‘한 번만…… 더…….’
아틸라는 환술 이동기를 시전했다.
그러나 카르타고가 이번에도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대한 뱀의 혀처럼 검이 날아들었다.
아틸라는 본능처럼 팔을 뻗어 그것을 막았다.
그러는 사이 5인의 데스나이트와 금사자 기사단, 그리고 아틸라의 동료들은 전투를 시작했다.
병장기 부딪는 소음과 고통에 찬 절규, 크누트의 기합과 카스피의 외침이 그것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 …… ……! …… …… ……! ……!
카르타고의 목소리가 괴이한 울림이 되어 심장을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검은 쉴 새 없이 날아들었고, 아틸라는 오직 본능에만 의지해 그것을 막았다.
눈앞이 점점 붉어졌다.
적빛의 투명한 막이 동공에 씌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붉게 보였다.
지금의 상태는 위험하다.
자신이 아닌 이질적인 무언가가 의지를 통제하려는 것 같다.
펀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아틸라는 펀치가 거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틸라는 펀치에게 거대화를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이유 또한 몰랐다.
아틸라는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부여잡았다.
펀치의 곁으로 이동기를 시전했다.
두개골이 쪼개지는 듯한 격통과 함께 눈앞으로 시커먼 검날이 날아들었고, 팔을 휘둘러 그것을 뿌리쳤다.
- 아틸라.
- 아틸라다.
- 내 친구 도롱뇽아.
- 아틸라가 구해 주러 왔어.
신기한 일이었다.
흙탕물처럼 혼탁한 정신 속에서 펀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
펀치가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고, 아틸라는 문득 펀치의 목소리가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 내 친구 도롱뇽아.
- 아틸라.
- 검 부러졌어.
- 방패도 망가졌어.
- 갑옷도 점점 부서지고 있어.
- 방법이 없겠어?
아틸라는 부옇게 흐려진 눈으로 자신의 양손을 바라봤다.
펀치의 말대로였다.
어느새 흑철방패는 오래된 냄비처럼 찌그러져 있었고, 플레이트 아머는 군데군데 부서져 사라졌으며, 날이 부러진 흑철검은 무휼보다도 짧아졌다.
‘……무휼?’
낯익은 이름.
아틸라는 무휼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려 했다.
‘미친 곰탱이 새끼! 방법은 무슨 방…… 으히이이익! 야, 야만 미물! 대장 데스나이트가 왔다!’
이 와중에도 도롱뇽의 목소리는 시끄러웠다.
아틸라는 왼손을 더듬었다.
손에 무언가가 쥐여졌고, 아틸라는 그것이 무휼의 칼자루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휼을 뽑아 자세를 잡았다.
방어 태세로 전환하려 했다.
그런데 되지 않았다.
카아앙!
반사적으로 내뻗은 무휼이 카르타고의 검을 막았다.
카르타고는 아틸라의 괴물 같은 반사 신경과 그의 몸에서 뿜어지기 시작한 새로운 힘에 내심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샤를 아인하르트도 대단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더욱 흥미로는 상대는 눈앞의 야만전사 아틸라라고.
- 내 친구 도롱뇽아.
- 저러다 아틸라 죽겠어.
- 방법이.
- 방법이 없을까.
펀치의 말대로 아틸라는 거의 실성한 것처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카르타고가 그런 허술한 움직임에 당할 리 없다.
그가 아틸라의 공격을 막고, 회피하고, 검을 찔러 넣었다.
아틸라의 몸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아틸라! 아틸라아아아!’
카스피의 외침이 들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영겁의 세월이 지나간 것일까, 아니면 찰나의 시간이었을 뿐일까.
아틸라의 몸에 수많은 상처가 생겼다.
플레이트 아머가 걸레짝처럼 찢기기 시작했다.
그의 동공이 부옇게 변했다.
물에 풀린 염료처럼 시야가 흔들렸다.
그 속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전부터 떠올라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시스템 경고 ]
[ 과거의 전설적인 영웅과 원작자의 두 세계가 충돌을 일으킵니다. ]
아틸라는 그것을 눈으로 읽을 수 없었다.
[ 발생한 충돌이 고위 환술과 뒤섞여 혼돈의 세계선을 구성합니다. ]
그러나 그것은 아틸라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새겨졌다.
[ 시스템 경고 ]
[ 충격에 주의하십시오. ]
[ 새로운 권능이 발현될 조건이 갖춰지고 있습니다. ]
아틸라는 검을 휘둘렀다.
[ 이 권능엔 강한 부작용이 따릅니다. ]
[ 그것은 자칫 시전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
계속해서 휘둘렀다.
[ 부작용을 줄이려면 시전자의 정신력과 체력이 큰 폭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
근육이 찢기며 핏물이 튀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펀치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통해 아틸라는 도롱뇽이 큰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야만전사야.’
바토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구해야 한다.’
아틸라는 다시금 이동기를 시전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도롱뇽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을 테지만, 이곳에 존재할 리 없는 바토리의 음성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바토…… 리.”
등 뒤에서 뜨거운 감각이 치밀어 올랐다.
[ 새로운 권능이 발현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그의 등에서 분수처럼 핏물이 솟았다.
대량 출혈의 영향으로 머릿속이 환기됐다.
그러나 아주 짧았고, 그 찰나간 아틸라의 시야에 들어온 건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은 어느 파충류의 눈이었다.
‘괘, 괜찮냐 야만 미물! 야만 미무우우우울!’
시끄러웠다.
‘하, 하찮은 네놈이 이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빌어먹을! 빌어처먹을 야만 미무우우울!’
시끄러웠다.
녀석의 머리를 쥐어 터뜨리고 싶다.
다행히 도롱뇽의 목소리는 금세 사그라졌다.
[ 새로운 권능의 열화 버전이었던 ‘파괴 태세’가 삭제됩니다. ]
눈앞이 더욱 붉어졌다.
주위의 모든 것이 새빨갛게 보였다.
그 가운데서 유달리 선명하게 드러난 메시지창을 제외한다면.
[ 세 번째 권능이 개방됩니다. ]
아틸라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어버렸다.
그가 입은 모든 상처에서 핏물이 솟았다.
그는 위압감을 드러내려는 짐승처럼 몸을 부풀렸다.
뒤로 젖힌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진동하는 시야 속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 광폭(狂暴) ]
핏빛의 하늘을 노려보며 그가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