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36화 (136/425)

136. 버서커 (2)

샤를이 아틸라의 목소리를 듣기 직전.

카르타고는 머리 위에서 심상치 않은 감각을 포착했다.

그래서 그는 샤를이 고개를 든 것보다 한발 빨리 하늘을 올려 봤다.

어둠에 물든 허공 속 어느 지점이 물결처럼 일그러졌다.

그 안에서 검은 갑주의 전사가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카르타고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뻗칠 듯한 검은 오러가 검 끝으로 집약됐다.

상대는 이제 막 이곳으로 모습을 드러낸 상황.

먼저 공격한다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허공 속 상대를 향해 강력한 살상 기술을 발현하려던 카르타고의 눈이 얼핏 전사의 무구를 바라봤다.

한눈에 봐도 장인급 드워프 대장장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작한 갑옷.

이어 그의 등 뒤에 자리 잡은 커다란 방패와, 이제 막 손으로 뽑아들기 시작한 기다란 양손검을 보며 카르타고는 문득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전사에게 샤를 아인하르트 못지않은 강한 흥미를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검 끝에서 꿈틀대던 흑빛 오러가 누그러지고, 안착했다.

카르타고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기대했다.

샤를 아인하르트, 그리고 그 이상으로 흥미를 돋우는 저 허공 위 전사가 힘을 합쳐 자신에게 대적을 시도한다면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은 없을 테니까.

카르타고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비켜라! 샤를!”

움켜쥔 전사의 검 끝이 카르타고를 겨냥했다.

“아틸라!”

저 야만스러운 전사의 이름이 아틸라라는 것을 기억하며 카르타고는 머리 위로 검을 들었다.

그 틈을 노려 샤를이 반격을 시도했다.

그의 검에 깃들었던 흑빛의 기운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져 있었다.

‘아틸라가 왔다.’

샤를은 아틸라가 자신과 힘을 합치기 위해 등장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위험해 보이는 힘을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다.

흑빛 기운이 갈무리된 그의 검이 눈부신 금빛을 내뿜었다.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온 흑철검과 듀란달은 카르타고를 동시에 습격했다.

파카아앙!

그러나 카르타고는 검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두 공격을 막았다.

카르타고의 검세에 밀린 아틸라의 몸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아틸라는 빙글 몸을 돌려 착지에 성공했고, 용수철처럼 몸을 튕기며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샤를의 군마는 충격을 못 이기고 다리가 부러졌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말은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황이었고, 그래서 샤를은 말에서 뛰어내렸다.

아틸라의 공격을 뿌리친 카르타고가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틸라도 바닥에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샤를도 공격 자세를 취하며 카르타고를 노려봤다.

말 위에서 봤을 때도 유령마와 카르타고의 덩치는 압도적이었는데, 바닥에 내려서니 두 배는 커다랗게 보였다.

“역시 흑기사의 정체는 너였던 건가. 아틸라.”

“뭐 그런 셈이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 거지?”

“피핀을 통해 들었다.”

“남쪽 전선을 다녀왔던 건가.”

“그래. 그쪽에 등장한 구울 군단과 관조자는 이쪽에서 처리했다.”

“네가? 혼자서 말인가.”

“서리나무 발키리 39인과 함께다. 발키리들은 피핀의 군영에 남겼다. 파우스트를 절멸할 때까지 그들이 도움을 줄 거다.”

“발키리라고? 제롬이 결국 성공한 건가.”

“제롬? 그 새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발키리는 모두 내가 데려온 거다.”

그 순간 카르타고의 검이 뻗쳐 왔다.

아틸라와 샤를이 그것을 막았다.

2층에서 내리치는 듯한 공격은 직전보다 더욱 매서웠지만 샤를은 오히려 군마 위에 앉아 있을 때보다 편안함을 느꼈다.

샤를은 그것이 아틸라가 시전한 심판의 외침 덕분인 것을 알지 못했다.

“조심해라 아틸라. 보통내기가 아니다.”

“피 흘리는 네 꼴만 봐도 그런 것 같군. 샤를.”

“……나만 당한 것이 아니다. 저자의 몸에도 나의 검이 깊숙하게 박혔지.”

“깊숙하게? 어디? 내 눈엔 전혀 보이지 않는데.”

아틸라가 킬킬댔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눈앞의 데스나이트를 보며 묘한 위화감과 낯익음을 느끼고 있었다.

샤를의 목소리가 그의 궁금증을 해소시켰다.

“놈은 버서커 카르타고다.”

“……뭐라고?”

아틸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충격은 샤를을 포함한 금사자의 그 어떤 기사보다도 강렬한 것이었다.

카르타고는 원작자인 자신이 창조했다.

그렇게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카르타고는 죽었다.’

버서커 카르타고.

크리엘도라 남부 대륙 최강의 전사.

그의 강함은 일반적인 영웅들과 궤를 달리한다.

그가 그 정도의 강함을 지닌 이유는 주인공인 샤를과 다른 시대를 살다 간 영웅이자, 샤를과 조우할 일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원작자 김도현이 카르타고를 그런 어처구니없는 강자로 설정한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신의 주목을 받을 정도의 뛰어난 영웅이 자신의 대의를 위해 적을 쓰러뜨리면 ‘신격(神格)’을 획득할 수 있다.’

신격은 영웅의 몸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그렇게 쌓은 ‘격’은 영웅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고.

마침내 그것을 한계까지 쌓아올린 자는.

‘승천(昇天)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크리엘도라 대륙 최초의 ‘승천자’가 될 수 있었던 사내.

그 놀라운 영웅이 바로 버서커 카르타고였고, 아울러 그것이야말로 바토리와 리베르가 카르타고를 관조했던 단 하나의 이유였다.

바토리는 알고 있었다.

‘격을 쌓아올려 승천한 자는 신과 대등한 존재가 된다.’

‘또한 신이 된 승천자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다른 신과 전쟁을 벌일 수 있다.’

그리고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승천자는.

‘새로운 주신(主神)이 될 수 있다.’

바토리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에게 멸망한 사르데니야 왕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 대해 오르피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것은 오직 주신(主神)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바토리는 이렇게 답했다.

‘새로운 주신을 찾겠나이다.’

바토리는 신의 왼팔을 강탈했다.

오르피나는 파멸의 신이 되었다.

바토리는 언제 등장할지 모를 승천자를 기다리며 길고 긴 관조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등장한 것이 버서커 카르타고였고.

파우스트의 손에 죽임 당했다.

‘그런데 저자가, 카르타고라고?’

아틸라는 믿을 수가 없었다.

카르타고는 과거의 존재다.

그의 소설 속에서 카르타고가 실제로 등장하는 장면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다.

카르타고는 독자들에게 승천자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의 죽음은 바토리가 파우스트를 괴멸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가장 큰 이유였으며.

또한 바토리가 패영전의 주인공이자, 새로운 승천자의 가능성을 지닌 샤를을 관조하기 시작한다는 필연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그런데 저자가 카르타고라니.

‘아포스톨로스라는 존재에 이어, 이번엔 과거의 망령인가.’

아틸라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고민을 한쪽으로 치워 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카르타고의 검격은 그가 딴 생각을 하며 막아 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죽음의 기운이 아틸라의 목젖을 습격했다.

아틸라는 검을 들어 그것을 막았지만 짓쳐드는 검세는 그대로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 순간 측면에서 난입한 샤를의 검이 아틸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샤를이 외쳤다.

“전투 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아틸라!”

“알고 있다. 샤를.”

찌르르 울리는 팔의 통증을 감각하며 아틸라는 웃었다.

그래. 나타날 리 없는 놈이 나타나면 또 어떤가.

“나도 원래는 이곳에 없었어야 할 존재거든.”

그의 입가에서 송곳니가 드러났다.

부웅 몸을 날리며 등 뒤의 방패를 추켜올렸다.

힘차게 내리쳤다.

콰아앙!

그것을 막아 낸 카르타고의 몸이 일순 기울었다.

아틸라는 그대로 공중에서 흑철검을 창날처럼 뻗었다.

카르타고는 믿기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며 그것을 피했다.

그 자리로 샤를의 검이 난입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포효를 울리며 유령마가 앞발을 높이 들었고, 그렇게 생겨난 허공으로 샤를의 검이 지나갔다.

그 광경을 보며 아틸라는 생각했다.

빌어먹을. 제대로 된 말 한 필만 있었어도 보다 편하게 놈을 상대할 수 있을 텐데.

카스피와 크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틸라아아아!”

“갑자기 먼저 가면 어쩌자는 겐가! 아틸라!”

끼아옹! 펀치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들은 허겁지겁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수 시간 전, 피핀의 군영을 떠난 아틸라 일행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한적한 들판으로 이동했다.

두어 번 더 이동해 목적지의 범위를 좁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야생마 한 마리를 발견한 아틸라가 ‘유목민의 승마술’로 녀석을 길들였고, 그 뒤로 이곳까지 말을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야생마라도 아틸라, 카스피, 크누트, 펀치를 동시에 태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쉬지도 않고 전력질주하는 바람에 머지않아 야생마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때부터 일행을 두 발로 뛰었다.

그리고 샤를과 데스나이트의 전투를 먼 곳에서 발견한 아틸라가 그들의 머리 위로 빠른 이동을 시전한 것이었다.

카르타고도 아틸라의 동료들을 발견했다.

다시금 힘을 합쳐 돌진해 오는 아틸라와 샤를을 칼질 한 번에 밀쳐 낸 카르타고가 지면에 검을 꽂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투트틋. 투듯. 투트트트듯…….

지면을 뚫고 일곱 마리의 유령마가 솟아올랐다.

그 위엔 검은 기운을 뿜는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앉아 있었다.

금사자 기사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데, 데스나이트들이……!”

“또 있었다고……?”

샤를도 놀란 눈을 뜨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번에도 가장 놀란 건 금사자 기사들도, 샤를도 아닌 아틸라였다.

‘이건 무슨……!’

데스나이트는 리치처럼 사령술사들이 만들어 내는 존재다.

그들은 사령술사의 부름을 받고 이 세계로 소환된다.

그러므로 아틸라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어딘가에 카르타고를 소환한 존재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예를 들면 저기 보이는 시체의 산 내부라든지.

그런데 방금, 카르타고가 데스나이트를 소환했다.

‘그렇다는 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아틸라는 고개 돌려 시체의 산을 바라봤다.

- 그대 역시 샤를 아인하르트와 마찬가지로 나를 소환한 사령술사를 찾는 것인가.

카르타고의 목소리와 동시에 아틸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응고된 핏물과 살점, 그리고 부러진 뼈다귀로 얼룩져 있었지만 시체의 산 위엔 기사와 병사들의 시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파우스트의 관조자들이었을 존재.

그들이 형편없이 부서진 구슬이 되어 시체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

“너는…… 널 소환한 파우스트의 사령술사들을 모조리 해치운 것인가.”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있다.

본래 언데드는 소환사의 죽음과 함께 사그라진다.

그런데 카르타고는 자신을 소환한 사령술사들을 모두 죽였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거기에 더해 또 다른 데스나이트를 소환해 내기까지 하다니.

- 가라 형제들이여. 생자의 피를 빨아들여라.

명을 받은 일곱 데스나이트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노리는 건 금사자 기사단과 아틸라의 동료들.

카르타고는 아틸라와 샤를과의 전투를 기대하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전군! 이동하라!”

샤를은 금사자 기사단을 카스피와 크누트 쪽으로 이동시켰다.

기사단에겐 말이 있다.

힘을 합쳐 싸운다면 가능성이 있다.

한편 카르타고의 행동에 아틸라는 분노했다.

카스피, 펀치, 크누트, 도롱뇽.

그들 모두는 이 빌어먹을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 힘겹게 다시 만난 동료들이다.

악다문 그의 잇새로 맹수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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