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35화 (135/425)

135. 버서커 (1)

버서커 카르타고.

바토리와 리베르가 아틸라 이전에 관조하던 사내.

‘불패의 용병왕’이란 이명을 지녔던 카르타고는 말 그대로 패배를 모르는 전사였다.

남부 대륙의 수많은 전사들이 그의 명성에 도전했다.

편을 갈라 싸우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찰나의 빈틈을 노리는 기습의 장에서.

때론 서로를 존중하며 행해지는 결투의 형식으로.

그러나 카르타고를 이긴 전사는 없었다.

일대 일의 제한적인 결투부터 다대 일의 구정물 싸움까지, 카르타고를 쓰러뜨린 전사는 패영전의 역사상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르타고는 그가 살던 시대의 압도적인 일인자였다.’

소설 패영전엔 주인공인 샤를과 버서커 카르타고의 강함에 대해 비교한 서술이 있다.

물론 두 전사가 살아간 시대는 다르다.

그러나 과거의 최강자와 샤를을 직접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주인공이 지닌 강함의 척도를 독자에게 보다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장치로 활용했던 것이다.

결과는 카르타고의 압승이었다.

카르타고는 샤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장에서 수많은 상대를 쓰러뜨렸다.

이유는 분명했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소설에서 샤를은 성장 중인 전사였고, 아울러 카르타고가 활동하던 시기는 패영전 역사 속에서 손꼽히는 혼돈의 시대였기 때문.

그리고 혼돈의 시대에선 필연적으로 영웅이 등장하는 법이다.

카르타고는 그 시대의 압도적인 영웅이었다.

또한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크리엘도라 남부 대륙을 살고 있는 이라면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르는 이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

그래서 금사자의 기사들은.

눈앞의 데스나이트가 내뱉은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뭐라고……?”

“저자가 지금 분명…….”

“버서커…… 카르타고?”

기사들의 눈이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이어 그들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수없이 들었었다.

‘핏물로 변색된 적색 머리칼.’

‘그보다 진한 검붉은빛 갑주를 입고.’

‘남부 대륙의 모든 전장을 휩쓸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사내.’

“저, 정말로 저자가 버서커 카르타고라고?”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카르타고는 검은 든 자라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존재.

그런 그가 데스나이트가 되어 현세에 나타나다니.

기사들은 전설 속 영웅이 타락한 모습을 인정하지 못했다.

검을 뽑아들었다.

샤를이 외쳤다.

“돌격하라! 상대는 혼자다! 이대로 놈을 쓰러뜨리고 남쪽 전선으로 돌아간다!”

“오오오오오!”

샤를과 기사들이 맹렬히 돌진했다.

검붉은 투구 속 푸른 안광이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봤다.

- 피라미들 같으니.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 뭐야!”

기사들이 당황했다.

샤를도 눈을 부릅뜨며 사라진 데스나이트를 찾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파괴적인 소음이 울렸다.

샤를은 뒤를 돌았다.

허리가 동강 난 기사와 군마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저, 저게 무슨!”

“으힉! 히익!”

“으아아아아아!”

그 광경을 본 기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고깃덩이가 되어 흩어지는 시체 너머로 데스나이트와, 흑빛 오러를 발하는 그의 검이 보였다.

‘어느 틈에!’

샤를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 전 데스나이트가 보인 움직임은 일반적인 빠름이 아니었다.

‘이건 마치 아틸라의……!’

아니다.

저건 아틸라의 기술과는 다르다.

그러나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데스나이트가 재차 휘두른 검에 또 다른 기사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크헉……!”

“크르르르릅……!”

샤를은 데스나이트를 향해 일직선으로 말을 달렸다.

그는 확신했다.

저자가 지닌 특별한 외형.

극한으로 단련된 금사자의 기사들을 어린아이처럼 쓰러뜨리는 신기.

“기사들은 후퇴하라! 내가 단독으로 저자를 상대하겠다!”

샤를은 더 이상 기사를 잃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버서커 카르타고.

기사들의 실력으론 저 전설 속 괴물에게 자그만 흠집조차 낼 수 없다.

“하,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폐하!”

기사들이 항변했지만 왕명이라는 샤를의 외침에 이를 악물며 후퇴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주군이 당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둘의 결투를 주시했다.

- 부하들을 물리다니. 좋은 판단이군 샤를 아인하르트.

카르타고의 검이 샤를에게 쏘아졌다.

샤를도 검을 들었다.

두 자루 검이 부닥친 것과 동시에 샤를은 자신의 말과 함께 크게 뒤로 밀려났다.

‘이렇게 강한 자가……!’

단 한 번 검을 섞은 것으로 샤를은 알았다.

말도 안 되는 강함.

파우스트의 사령술사들이 아무리 강력한 마법사였다 해도, 이자보다 강하진 않았다.

그간 샤를은 파우스트의 관조자와, 그들이 소환한 언데드들과 싸워 왔다.

그러면서 느낀 건 제아무리 언데드가 강력해도 그들을 소환한 사령술사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데스나이트, 아니 버서커 카르타고는 그보다도 압도적인 강함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소환사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언데드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소환사가 있었다.

데스나이트 역시 언데드에 속하는 괴물이고, 그렇다면 근처에 소환사가 있어야만 한다.

- 날 소환한 사령술사를 찾고 있는 건가. 샤를 아인하르트.

마음을 읽은 것처럼 카르타고가 말했다.

그의 검이 샤를을 습격했다.

샤를은 재차 검을 뻗었고, 두 자루 검이 쉴 새 없이 몸을 섞었다.

“크윽……!”

그때마다 샤를이 자신의 군마와 함께 뒤로 밀려났다.

카르타고는 틈을 주지 않고 유령마를 전진시키며 샤를을 압박했다.

- 과연 요정들의 신기로 벼려 낸 검이로군.

카르타고가 생전에 사용하던 무기와 방어구는 그리 고급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평범한 무기로도 자신보다 강력한 방어구를 지닌 적들을 손쉽게 제압했다.

그가 지닌 특별한 신기 때문이었다.

‘오러.’

카르타고는 자신의 몸에서 발산하는 오러를 무기에 덧씌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카스피가 지닌 귀살의 힘과 비슷한 면이 있는 그것은 그의 평범한 검을 드워프 장인의 최고급 무기에도 밀리지 않는 명검으로 만들었다.

카캉! 검이 부딪으며 샤를의 몸이 다시 한번 뒤로 밀렸다.

그의 군마가 거친 숨을 토했다.

좋은 품종의 말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샤를이 뛰어난 기술로 충격을 완화시키지 않았다면 진즉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 과연 패왕이라 불릴 만한 힘이로군. 나의 공격을 이렇게까지 막아 낼 수 있는 자는 지금껏 없었다.

샤를은 기다렸다.

아직 자신에겐 저자를 쓰러뜨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감각했다.

강대한 적을 만나 싸울 때마다 느껴지던, 그리고 종래엔 자신에게 변치 않는 승리를 안겨 주던 특별한 힘을.

‘지금도 난, 강해지고 있다.’

그 증거로 상대의 검을 받아 낼 때의 충격이 조금씩 완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샤를은 그 변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기회는 많지 않다.

지금의 긴장을 유지하며 최대한 힘을 비축해야 한다.

- 방어만 할 생각인가. 좀 더 날 즐겁게 해 보거라.

카르타고의 검세가 매서워졌다.

완화되던 충격이 다시금 거칠어졌다.

군마가 피를 토했다.

그 와중에도 녀석은 자신의 주인에게 한결같은 충성심을 보였다.

“폐, 폐하……!”

“더, 더는 못 참겠어! 나 혼자라도 간다!”

“그만둬! 지금 가면 폐하께 방해만 될 뿐이다!”

그 말을 무시하며 젊은 기사 하나가 말을 달려왔다.

샤를도 그것을 봤다.

“물러나라! 왕명을 어길 셈인가!”

그 순간 카르타고의 검이 기묘한 곡선을 그렸다.

그것을 비껴 막은 샤를이 반격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카르타고의 신형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이어 말을 달려오던 기사의 눈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무, 무슨……!”

놀란 기사가 엉거주춤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 자세 그대로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일직선으로 절단됐다.

그와 동일한 모습으로 절단된 말이 쪼개진 사과처럼 좌우로 무너졌다.

샤를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말을 달렸다.

피거품을 토해 내면서도 그의 군마는 주인의 명령을 따랐다.

- 호오.

카르타고가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고는 샤를을 향해 직진했다.

그의 검신에 흑빛 오러가 둘러졌다.

샤를의 검신엔 황금빛 신력이 차올랐다.

- 아레스의 신력. 그런 재밌는 것을 지금껏 숨겨 두었단 말인가.

카르타고의 오러가 더욱 강성해졌다.

샤를은 자신의 힘을 모두 개방했다.

어차피 히든카드는 드러났다.

그렇다면 지금.

‘승부를 건다!’

두 마리 말이 교차하며 흑빛과 금빛의 검무를 추었다.

교착은 순간이었지만 검의 얽힘은 무수히 많은 선을 허공 위에 뿌렸다.

일순 대등해 보이던 둘의 검세가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샤를의 몸에서 핏물이 솟았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폐, 폐하!”

그러나 카르타고도 이번만은 멀쩡하지 못했다.

그의 몸 곳곳에서 검은 오러가 핏물처럼 흩어졌다.

- 대단하군. 넌 정말로 대단한 사내다. 너 같은 자가 나의 시대에 있었다면, 생자(生者)일 때의 삶이 배는 즐거웠을 것이다.

카르타고의 투구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투구 속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샤를은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검을 휘둘러라. 날뛰어라! 나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 보거라! 샤를 아인하르트!

아레스의 신력이 불을 뿜었다.

카르타고를 습격했다.

기사들의 눈엔 샤를이 카르타고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폐, 폐하께서 반격하셨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누구보다도 샤를이 잘 알았다.

자신의 검세는 처음 카르타고를 상대했을 때보다 강해졌지만 역부족이었다.

샤를은 인정했다.

조금 더 버티며 기회를 엿봐야 했다.

그런데 조바심을 냈다.

파우스트와의 전쟁으로 많은 기사와 병사를 잃은 그는 더 이상 기사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어리석었군. 샤를 아인하르트.’

카르타고의 검격이 점점 더 활력을 머금었다.

샤를의 군마는 이제 거의 숨이 넘어가지 직전이었다.

그리고 샤를은 자신에게 최후의 카드가 남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붉은 눈의 귀공자에게 일격을 먹일 때 사용했던 그 힘.

‘미심쩍은 힘이라 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반격의 기회는 영영 사라질 것이다.

그의 검에서 금빛 신력이 갈무리됐다.

- 무엇을 하는 건가. 너는 벌써 승부를 포기한 것인가. 샤를 아인하르트!

카르타고의 푸른 안광이 더욱 거칠게 타올랐다.

이어 경악의 빛으로 변했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샤를의 검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 그 힘은. 설마 네 녀석은!

샤를의 검날에서 흑빛의 기운이 발산됐다.

그것은 카르타고의 검신에서 발하는 기운과 동류의 것이었고, 그 순간 샤를은 자신의 정신세계가 이질적인 무언가에게 침식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였다.

“비켜라! 샤를!”

우렁찬 목소리가 머리 위를 울렸다.

불현듯 등장한 낯익은 목소리에 샤를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허공에서 돋아난 흑빛 갑주의 전사가 역수로 검을 쥔 채 벼락처럼 낙하하고 있었다.

샤를은 그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봤다.

“아틸라!”

패왕의 입술 끝이 반격의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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