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전장의 발키리 (3)
루이제는 조금 당황했다.
‘뭐지? 설마 날 알아보는 건가?’
그럴 리 없다.
자신이 뒤집어쓴 구울의 껍데기는 그저 그런 눈가리개가 아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감각을 지닌 자라도 절대로 알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혹시!’
루이제는 서리나무 일족의 왕, 아이리스 호어프로스트가 지닌 특별한 힘을 기억했다.
루이제의 눈이 발키리들을 훑었고, 슈시아를 찾아냈다.
그녀는 아이리스 호어프로스트와 똑같은 눈을 뜨고 있었고, 그 차가운 시선은 흔들림 없이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 순간 야만전사의 투구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직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저돌적인 움직임에 루이제는 자신의 위치가 완전히 노출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만전사의 검과 방패가 구울들을 내동댕이쳤다.
그러면서 루이제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루이제는 놀란 와중에도 침착을 잃지 않았다.
‘멍청한 것. 올 테면 와 보라지.’
루이제의 입술 사이로 주문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듯 구울의 벽이 펼쳐졌다.
야만전사의 투구가 아주 살짝 기울어졌다.
루이제의 눈엔 그의 투구가 피식 웃는 것처럼 보였다.
퍼퍼펑! 휘둘린 칼질이 구울의 몸을 폭파시켰다.
직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야만전사의 모습에 루이제는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힘을 숨기고 있던 건가!’
야만전사의 투구가 조금씩 멀어졌다.
루이제 자신은 감각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내, 내가 도망치고 있었어?’
자존심이 상한 루이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시금 주문을 읊어 구울의 벽을 세웠다.
그러나 상대의 돌파력이 너무 대단했다.
‘이대로라면 잡힌다.’
루이제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그녀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지금은 물러난다.’
살아남은 구울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구울을 만들어 다시 돌아오면 된다.
그리고 그때는 결코 오늘 같은 실수는 반복되지 않으리라.
‘호어프로스트의 계집. 제 어미보다 더욱 눈의 힘을 단련했군.’
루이제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 따위 극복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녀의 마법진이 검은빛을 뿜었다.
그것이 머리 위로 집약되며 틈새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제법이었군. 야만전사.”
루이제는 구울의 껍질을 벗었다.
그러자 반투명한 흑색 로브를 입은 젊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틈새로의 진입을 시작했다.
자신을 올려 보는 야만전사의 투구를 보며 아찔한 승리감을 느낀 루이제가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어? 어어?”
틈새로 진입하던 루이제의 몸이 공중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느릿느릿 하강을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틈새로 통하는 길은 생성됐고, 자신은 분명 그 안으로 안전하게 진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루이제의 시선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그녀의 예민한 감각은 지척에서 느껴지는 불온한 감각을 포착했다.
자신의 반투명한 흑색 로브.
그것의 끝자락에 이질적인 자국이 나 있었다.
마치 자그만 집게 같은 것으로 눌린 듯한 그것은.
루이제의 입에서 빠른 주문이 영창됐다.
허공에 맺힌 검은 기운이 로브의 자국으로 쏘아졌다.
“케헥! 뭐, 뭐야 이건!”
검은 기운에 가격 당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이제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마뱀?”
그랬다.
루이제의 로브 자락을 붙잡고 있던 건 투명화로 몸을 숨긴 도롱뇽이었다.
아틸라는 루이제가 틈새로 통하는 마법진을 구성했을 거라는 걸 짐작했고, 그래서 도롱뇽에게 어떤 명령을 해 두었다.
명을 받은 도롱뇽은 아틸라가 구울 군단과 싸우는 동안 살금살금 루이제에게 접근했다.
예상대로 루이제는 자신의 위치가 아틸라에게 발각됐다는 것을 감지하자마자 도주를 시도했다.
그리고 틈을 노려 도롱뇽은 그녀의 로브 자락을 붙잡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을 확인한 아틸라는 시전했다.
[ 주인의 영역 ]
[ 환수, 도롱뇽을 강제로 영역 안에 불러들입니다. ]
루이제와 함께 공중으로 떠오르던 도롱뇽의 몸이 하강을 시작했다.
도롱뇽에게 로브 자락을 붙잡힌 루이제 역시 틈새로의 진입을 멈추며 하강했다.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루이제는 자신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직감했다.
발을 들어 도마뱀의 얼굴을 마구 밟았다.
“떨어져! 떨어지라고! 이 빌어먹을 도마뱀!”
“꾸엑! 꾸엑! 꾸에에엑!”
그러나 비명을 지르면서도 도마뱀은 루이제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몇 번의 마법 공격을 맞아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루이제는 자신의 로브 자락을 찢어냈다.
드러난 그녀의 속살은 눈처럼 하얬지만 이내 붉은 핏물이 흩어졌다.
찢긴 옷자락에서 루이제의 맨 다리로 자리를 옮긴 도롱뇽이 아가리와 양 앞발로 그녀의 피부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아악! 아아아아악!”
루이제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그녀였지만 이런 류의 고통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놔! 노, 놓으라고! 이 정신 나간 도마뱀 새끼!”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파충류의 눈을 끔벅대는 도롱뇽을 보며 루이제는 이를 악물었다.
“쏴라!”
틈을 노린 발키리들의 화살이 루이제에게 쏘아졌다.
그러나 마법진으로 구성해 둔 방어막이 그것을 막았다.
“슈시아!”
아틸라는 슈시아를 불러 발키리들이 구울 사냥에 전념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 조건 2: 관조자 루이제가 완전한 전투불능이 되는 순간, 발키리들의 전투 기여도가 70%를 넘어서야 합니다. ]
그리고 현재 스코어는.
[ 발키리의 전투 기여도: 68% ]
아틸라가 직전까지 완전한 힘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틸라는 루이제를 향해 직진했다.
조금만 더 접근하면 돌진 스킬로 단숨에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그러는 동안 루이제의 의지는 주위의 구울들을 불러들였다.
가장 먼저 다가온 구울 한 마리가 도롱뇽에게 발톱을 휘둘렀다.
도롱뇽이 혼비백산하며 소리쳤다.
“히이이익! 나 죽는다!”
- 내 친구 도롱뇽아.
- 나 지금 가.
“빠, 빨리 와! 빌어먹을 곰탱이 새끼!”
어디선가 날아오른 펀치의 앞발이 구울을 강타했다.
그러나 구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펀치의 눈이 동그래졌다.
- 어?
- 왜.
“미, 미친 곰탱이 새끼! 변신이 풀렸잖아!”
펀치의 거대화 시간이 종료됐다.
그 사이 루이제는 다시금 틈새로 진입하기 위한 강력한 마법을 영창했고, 조금씩 틈새로 재진입을 시작하고 있었다.
도롱뇽의 좁쌀만 한 비늘이 바짝 곤두섰다.
“으아아아! 야만 미물! 나, 나까지 빨려 들어간다!”
자신의 앞발을 내려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펀치가 폴짝 몸을 뛰었다.
그러고는 도롱뇽의 두 뒷다리를 토끼 귀 잡듯 붙잡았다.
“아아악 시벌 깜짝이야! 곰탱이 새끼! 거길 왜 잡아!”
- 아틸라가.
- 잡으라 했어.
“뭐?”
[ 주인의 영역 ]
[ 환수, 펀치를 강제로 영역 안에 불러들입니다. ]
도롱뇽에 이어 아틸라는 펀치에게도 주인의 영역을 시전했다.
틈새로 빨려들던 루이제의 몸이 다시금 하강했다.
루이제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뭐, 뭐, 뭐야 이건 또!”
“아아악! 내 허리 찢어진다! 이거 놔 곰탱이 새끼! 내 허리 찢어진다고오오!”
빌어먹을. 루이제는 더 많은 구울을 불러들였다.
구울들의 턱이 한껏 벌어지며 펀치와 도롱뇽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퍼걱! 퍼거거거걱!
휘둘린 흑철검과 흑철방패가 구울들의 몸을 분쇄했다.
발 아래서 일어난 살육의 현장에 루이제는 얼음처럼 몸이 굳었다.
그제서야 확실하게 보였다.
검은 투구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사나운 맹수의 두 눈이.
“너, 너는……!”
“스스로 틈새를 열어 주다니, 덕분에 여러 번 죽일 수고를 덜었군.”
“그, 그게 무슨…….”
그 순간 루이제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관조자들이 드나들 수 있는 틈새는 중간계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
만약 저 야만전사가 노리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라면……!
“아, 안 돼!”
루이제는 서둘러 틈새로 통하는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나 아틸라가 한발 빨랐다.
“너처럼 뒈지는 관조자는 다시없을 거다.”
매끄럽게 휘둘린 흑철검이 루이제의 허리를 절단했다.
“어……? 어어…….”
루이제의 상반신이 틈새로 빨려 들어갔다.
반면 도롱뇽과 펀치에게 붙잡힌 하반신은 지면으로 추락했다.
이어 관조자의 입장을 확인한 틈새가 스스로 문을 닫았고, 바닥에 널브러진 루이제의 하반신에서 꿀렁꿀렁 피가 흘러나왔다.
서로 다른 공간으로 흩어진 루이제의 잘린 두 몸뚱이는 서로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파르르 경련하던 루이제의 두 다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렇게 루이제는 관조자 답지 않은 최후를 맞이했다.
* * *
“끄, 끝난 건가……?”
“정말 끝난…… 거라고?”
아인하르트의 병사들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루이제가 죽자 구울들은 주인 잃은 꼭두각시처럼 무너졌다.
그러고는 진득한 검은 액체로 화해 땅으로 흡수됐다.
그 과정에서 고약한 악취가 풍겨났지만 서서히 사라졌다.
머지않아 전장 위엔 엘프와, 인간과, 인간의 시체와, 검게 변색된 대지만이 남아 있었다.
펀치가 자신도 있다며 혀를 헥헥댔다.
도롱뇽은 허리가 두 배는 길어진 거 같다며 아직도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도롱뇽을 발로 걷어차고 펀치의 동그란 이마를 쓰다듬은 아틸라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
[ 발키리의 전투 기여도: 71% ]
아슬아슬하게 임무를 완료했다.
[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보상 1: 동료, 카스피를 같은 세계선으로 불러들입니다. ]
[ 보상 2: 동료, 크누트를 같은 세계선으로 불러들입니다. ]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도 시스템은 바토리를 불러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동료를 조우할 수 있다는 것에 아틸라는 만족했다.
‘남은 건 바토리와 오토인가.’
아틸라는 의지를 발현해 카스피와 크누트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고양이처럼 잔뜩 몸을 웅크린 카스피와, 도끼를 양손에 움켜쥔 크누트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어? 어어어어? 아틸라?”
“이건 무슨…….”
크누트는 여전히 도끼를 쥔 채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분명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 무언가와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겠지.
“아틸라아아아으앙!”
카스피가 울먹거리며 아틸라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펀치와 도롱뇽을 차례로 품에 안고 뺨을 비볐다.
펀치는 헥헥대며 카스피의 얼굴을 핥았고, 도롱뇽은 허리가 찢어진다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아틸라.”
아틸라는 도롱뇽의 허리를 쥐고 흔드는 카스피를 불렀다.
그러고는 크누트와 카스피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뭐? 바토리가? 그, 그럼 영주 나리는?”
“찾지 못했지.”
“그,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다음 임무를 수행한다.”
“엥? 다음 임무?”
아틸라의 눈앞엔 새로운 상태창이 떠올라 있었다.
[ 세 번째 임무 ]
[ 샤를 아인하르트와 함께 북쪽의 괴물을 쓰러뜨리십시오. ]
이어진 메시지를 확인한 아틸라의 눈에 부릅 힘이 들어갔다.
[ 북쪽의 괴물은 죽일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