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32화 (132/425)

132. 전장의 발키리 (2)

휘둘러진 흑철검이 구울의 몸을 갈랐다.

갈라져 너덜대는 구울의 살점 사이로 발키리의 화살이 꽂혔다.

화살이 지닌 특별한 마력이 구울의 ‘근원(根源)’을 찾아 공격하고 망가뜨렸다.

몇몇 구울은 그렇게 생명력을 잃었다.

그것을 버티며 일어서는 놈에겐 흑철방패가 휘둘러졌다.

방패에 가격 당한 구울의 몸이 또 다른 구울의 가슴에 처박혔다.

부르르 몸을 떠는 놈의 머리에 흑철검이 틀어박혔고, 움직임을 멈췄다.

아틸라를 노리며 네 마리 구울이 뛰어들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 휩쓸기 ]

마찰력의 법칙을 무시한 흑철검이 네 마리 구울을 동시에 강타했다.

달려드는 힘이 강했던 만큼, 놈들은 폭발하는 폭탄처럼 뼈와 살점을 뿌리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아틸라의 상대가 인간이나 짐승이었다면 지금의 광경에 분명 사기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구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망자.

놈들은 흡사 마르지 않는 샘에서 뿜어지는 물줄기처럼 아틸라를 공격했고, 그럴 때마다 흑철검과 흑철방패가 피의 향연을 벌였다.

그와 비슷한 과정이 반복됐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진즉 힘이 다해 쓰러졌을 테지만 아틸라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구울을 상대하는데도 그는 별다른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다.

[ 심판의 외침 ]

[ 언데드를 상대로 공격력과 회복력이 20% 증가합니다. ]

심판의 외침은 시전자의 공격력뿐 아니라 회복력까지 상승시킨다.

게다가 아틸라의 파티엔 영웅의 면모를 개화 중인 슈시아가 있고, 그녀의 몸에선 끊임없이 ‘치유의 바람’이 발산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 학살의 보답 ]

10명의 적을 연이어 쓰러뜨릴 때마다 학살의 보답이 추가로 체력을 회복시켰다.

[ 체력을 2% 회복합니다. ]

[ 체력을 2% 회복…… ]

구울은 스켈레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재생력도 뛰어나다.

스켈레톤처럼 학살의 보답 버프를 마구 받을 수 있는 허약한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아틸라는 그런 구울을 몇 차례의 칼질이면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고, 그의 뒤엔 슈시아를 포함한 39인의 발키리가 있었다.

직전부터 거대하게 몸을 부풀린 채 양 앞발을 휘두르는 펀치 역시도.

우어어어어!

예티에게 당한 울분을 해소하려는 것처럼 펀치가 포효했다.

펀치의 발톱에 당한 구울은 쉬이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예티를 잡고 레벨업 하며, 펀치는 어떤 패시브 스킬을 개화했다.

[ 야수의 발톱 ]

[ 발톱에 가격 당한 타깃의 회복력이 10% 저하됩니다. ]

그것은 발키리의 마력 화살과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엘프들의 근원인 자연의 마력은 ‘생명의 힘’.

발키리의 마력 화살엔 엘프의 그 어떤 스킬보다도 강력한 자연의 마력이 담겨 있다.

그것은 언데드의 근원인 ‘죽음의 힘’과 상극이며.

그런 이유로 발키리의 마력 화살은 언데드의 질긴 수복력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 놈들의 근원(根源) 그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키이힉……!”

“키에에에에에……!”

구울들이 목표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이곳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를 깨달았다.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듯한 음습한 악의가 아틸라를 향했다.

“키에에에에에!”

놈들이 아틸라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틸라가 웃었다.

흑철검을 갈무리하고 흑철방패만을 손아귀에 쥐었다.

‘됐다.’

어그로는 충분히 끌었다.

지금부터 자신의 역할은.

‘창이 아닌 방패!’

[ 조건 2: 관조자 루이제가 완전한 전투불능이 되는 순간, 발키리들의 전투 기여도가 70%를 넘어서야 합니다. ]

“슈시아!”

아틸라의 의도를 깨달은 슈시아가 직관의 눈을 떴다.

예티를 상대했을 때처럼, 아틸라에게 강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구울들을 선별했다.

“지금부터 모든 발키리는 내가 특정하는 구울만을 겨냥한다!”

슈시아가 그림처럼 활시위를 당겼다.

“활을 들어라! 화살을 매겨라!”

발키리들이 우렁차게 화답하며 화살을 매겼다.

슈시아의 손에서 쏘아진 다섯 개의 화살이 다섯 구울의 이마에 적중했다.

“1진! 쏴라!”

구울들의 몸 위로 발키리들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사이 다른 타깃을 특정한 슈시아의 화살이 그녀의 손을 떠났다.

“2진! 쏴라!”

이렇듯 슈시아는 자신의 화살을 타깃에게 맞추는 직관적인 방법으로 발키리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한 발 한 발의 파괴력보다는, 좀 더 빠르고 지속적으로 화살을 쏘아 낼 수 있도록 마력을 조절했다.

자신은 타깃을 특정만 해 줄 뿐이다.

쓰러뜨리는 건 어린 발키리들의 몫이다.

“3진! 쏴라!”

“4진! 쏴라!”

예티를 상대할 때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발키리들.

그들의 화살이 구울의 몸에 꽂혔고, 죽음의 힘을 분쇄했다.

발키리들은 두렵지 않았다.

그 무시무시한 예티를 상대하고, 또 쓰러뜨린 그들에게 구울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의 앞엔 슈시아와, 아틸라가 있다.

발키리들은 무엇보다 그 둘을 믿었다.

심판의 외침 버프 역시 아직은 미숙함을 지닌 어린 발키리들이 자신감을 가지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

“슈시아!”

“알았다 아틸라!”

간혹 어그로가 튀어 아틸라의 손에서 벗어나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슈시아가 안정적으로 처리했다.

그녀의 손끝에 이전보다 더욱 강렬한 빛을 뿜는 화살이 쥐어졌다.

활시위를 떠난 그것이 구울의 몸을 폭파시켰다.

화력에 집중한 슈시아의 마력 화살은 구울에겐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대, 대단해……!”

“구울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있다!”

“흑기사도 대단하지만 엘프들의 활 솜씨도 장난이 아니잖아!”

“우오오오오!”

아인하르트의 병사들이 소리쳤다.

수많은 엘프 중에서도 슈시아의 실력은 그들에게 압도적인 파괴력과 아름다움이라는 이질적인 감각을 동시에 선사했다.

그들 대부분은 엘프를 처음 보았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비친 슈시아의 그림 같은 외모와 화려한 몸놀림은 어느 오래된 신화 속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인 것이었다.

“아름답다……!”

“마치 엘프의 신, 에르윈을 보는 것 같군……!”

에르윈을 본 적은 없었지만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점차 약해지는 구울의 공세를 막아서며 분전했다.

대부분의 호전적인 구울을 아틸라와 발키리들이 도맡아 처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방심하지 마라!”

“날개 대형을 펼쳐라!”

“분산된 구울을 감싸라!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적재적소로 펼쳐지는 피핀의 지휘가 병사들의 실수를 최소화시켰다.

그렇게 선두의 피핀과, 그의 뒤를 따르는 금사자의 용맹한 기사들, 사기가 치솟은 병사들은 파죽지세로 구울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느긋이 지켜보는 어느 흑마술사의 시선이 있었다.

* * *

“재미있군. 서리나무 발키리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다니.”

천 마리의 구울을 이끌고 아인하르트의 남부 전장을 공격한 파우스트의 사령술사, 루이제.

수많은 구울의 시선을 공유한 그녀의 눈이 슈시아와 38인의 발키리를 떠나 아틸라에게 고정됐다.

“저자가 바로 검은늑대의 아틸라.”

그녀의 기다란 혀가 윗입술을 핥았다.

“역시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군.”

루이제는 이곳에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등장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그녀는 바토리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먼 옛날 바토리가 파우스트를 침공했던 날, 루이제는 죽음의 문턱을 코앞에서 경험했으니까.

‘그때는 정말 죽을 뻔했지.’

자신을 노려보던 바토리와, 그 잔혹한 눈빛 곁을 맴돌던 마멸의 칼날.

그것을 떠올린 루이제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그날의 사건은 여전히 그녀의 오랜 삶 속에서 가장 두려운 기억으로 각인돼 있었다.

루이제는 머리를 흔들어 불유쾌한 기억을 떨쳐 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돌아온 루이제의 시선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구울들을 응시했다.

비웃듯 입가를 올렸다.

“그래. 마음껏 날뛰어 보거라. 구울이야 시간을 들여 다시 만들어 내면 그만이니까.”

아틸라와 발키리의 등장으로 전황은 바뀌었지만 루이제는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구울을 쓰러뜨려 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네놈들이 나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는 한은.’

천 마리에 달하는 구울.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999마리의 구울이다.

천 마리에 속하지 못한 나머지 한 마리의 껍데기 속에 루이제가 숨어 있었으니까.

루이제는 기억했다.

용아병을 쓰러뜨린 아틸라가 스켈레톤의 벽 뒤에 숨어 있던 두 명의 관조자를 찾아 끝장냈던 것을.

‘멍청한 것들. 눈에 띄는 뼈다귀의 벽 뒤에 숨어서야 오히려 찾아 달라고 조르는 격이지.’

숨기고 싶은 게 있다면 더더욱 그것을 숨기려 해선 안 된다.

오히려 눈에 띄는 익숙한 곳이 가장 찾기 어려운 장소가 되는 법.

‘천 마리의 구울. 그 안에서 내가 숨어 있는 단 하나의 구울을 특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루이제는 자신의 전략이 만족스러웠다.

단 한 번의 칼질에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두 관조자를 떠올리며 루이제는 헛웃음을 지었다.

‘심지어 파트너끼리 지근거리에 붙어 있었다고? 그야말로 죽여 달라 애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관조자는 불사자다.

파트너가 살아 있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부활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이점을 버리고 같은 전장으로 출동해? 머저리 같은 놈들.’

물론 동일한 대상에게 일곱 번 죽임 당한 관조자는 구슬이 된다.

그러나 자신 정도 되는 관조자를 무려 일곱 차례나 연달아 죽일 수 있는 상대는 바토리 에르제베트 외엔 없다고, 루이제는 단정했다.

바토리의 파트너 리베르 파테르가 아틸라에게 그렇게 당한 전적이 있지만, 리베르가 방심한 탓이라 생각했다.

물론 루이제의 추측은 사실이었고, 또한 타당했다.

리베르가 그날 상대를 죽이려 했다면 결코 저 야만전사는 리베르의 구슬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아틸라는 그날과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 성장했다.

또한 백 퍼센트 안전한 술수란 존재할 수 없는 법.

‘그래서 언제든 틈새로 도주할 수 있도록 둥지를 틀어 놨지.’

루이제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저 야만전사 아틸라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고, 만에 하나라도 리베르를 포함한 다른 관조자들이 범한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루이제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어찌 됐든 상대는 인간.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저 많은 구울을 모두 쓰러뜨릴 수는 없다.

그전에 체력이 바닥날 테니까.

루이제는 엘프의 종족 특성 ‘치유의 바람’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귀쟁이들의 보잘것없는 치유력 따위, 경계할 가치도 없다.’

오히려 루이제는 발키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을 흡족하게 여겼다.

‘놈들을 쓰러뜨리고, 망자의 저주를 걸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발키리의 마력을 빼앗아 주마.’

여유롭게 전장을 주시하던 루이제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음. 뭐지?’

뜨거운 입김을 뿜어대는 야만전사의 투구.

그 안에서 섬뜩한 두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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