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31화 (131/425)

131. 전장의 발키리 (1)

퍼퍼퍼퍼펑!

가장 앞서 날아온 다섯 개의 화살이 다섯 구울의 머리를 관통했다.

구울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수많은 빛의 화살이 차례로 구울의 머리를 꿰뚫었다.

“키에!”

“키에에에엑!”

관통된 구울의 상처에서 새하얀 불길이 일었다.

그리 광범위한 현상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구울이 상처를 수복하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대, 대장군!”

기사들이 그것을 알아봤다.

피핀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쓰러졌던 구울들이 비척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제2, 제3의 화살비가 날아와 놈들을 지면에 처박았다.

화르르. 화륵.

범위는 다를지언정 화살에 당한 구울의 상처에서는 여지없이 흰 불길이 솟았다.

피핀은 놀랐다.

구울은 수복력이 뛰어나다.

완전히 절단되지 않은 자잘한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시킨다.

그런데 저 화살은 다르다.

이제 보니 물리적인 형태를 지닌 화살이 아닌, 마력으로 만들어진 화살이다.

그렇다면.

‘제롬의 마법인가?’

아니다.

그가 알기로 제롬에겐 저런 종류의 마법이 없다.

게다가 제롬은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마법을 난사해 수많은 구울을 불태웠다.

그것이야말로 아군이 저 무시무시한 구울 군단을 상대로 아직까지 팽팽한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이유였고, 그 여파로 제롬의 마력은 바닥났다.

퍼퍼펑! 퍼퍼퍼퍼펑!

화살은 끝도 없이 날아왔다.

멈추지 않는 빛의 파도였다.

병사들이 소리쳤다.

“저건 보통의 화살이 아니야! 마법이다!”

“그, 그렇다면……!”

“궁정 마법사다. 분명 궁정 마법사께서 마력을 회복하신 거야!”

“우와아아아아!”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목청껏 소리치며 전의를 불태웠다.

금사자의 노련한 기사들은 저것이 제롬의 마법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치솟은 병사들의 사기.

그것을 일부러 꺾어 부러뜨릴 만큼 멍청한 기사는 금사자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이 기회다! 달려라! 우리는 용맹한 금사자의 기사들이다!”

“오오오오오!”

“기사들의 틈새는 병사들이 메꾼다! 달려라! 쳐라! 저 사악한 구울의 군대를 물리쳐라!”

“우아아아아!”

피핀의 독려에 기사와 병사들이 화답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피핀은 선두에 나서 수많은 구울의 몸을 난도질했다.

피핀의 검세는 대단했다.

그동안 샤를의 무력에 묻힌 감이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아인하르트 왕국에서 샤를 다음가는 전사였다.

“대장군께서 길을 뚫었다!”

“돌겨어억!”

피핀의 가공할 무력에 기사와 병사들은 다시 한번 사기가 상승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돌격했다.

구울은 식인을 한다.

지금 놈들을 막지 못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의 가족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더러운 구울 새끼들!”

“죽어라아아!”

“죽엇! 죽어어엇!”

광기에 찬 얼굴로 병사들이 무기를 뻗었다.

시커먼 피와 살점을 전신에 뒤집어쓴 그들은 구울 못지않은 섬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옥을 방불케하는 전장 속에서 검을 휘두르며 피핀은 주시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의 화살.

그것은 구울과 인간이 뒤섞인 작금의 혼돈 속에서도 오직 구울의 몸만을 명중시키고 있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한 사격술이다. 이런 신기를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니!’

* * *

“조준!”

슈시아의 목소리에 맞춰 발키리들의 활이 하늘을 겨누었다.

“발사!”

수많은 빛의 화살이 쏘아졌다.

선두를 달리는 건 물론 슈시아, 그녀 자신이 쏘아 낸 것.

가장 빠르고 강력한 힘을 지닌 다섯 개의 화살이 날카로운 변화구처럼 목표를 쫓았고, 이어 다섯 마리 구울이 바닥에 처박혔다.

다음은 나머지 발키리들의 차례였다.

두 마리 예티를 쓰러뜨리며 몇 단계씩 실력이 상승한 발키리들은 단 한 명의 실수도 없이 구울의 몸에 화살을 꽂았다.

직관의 빛을 머금은 슈시아의 눈이 저 멀리 전장 속을 훑었다.

발키리들을 이끌고 고지대에 자리 잡은 그녀는 구울을 이끄는 파우스트의 사령술사를 찾고 있었다.

아틸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주 꽁꽁 숨은 모양이군. 네가 찾아내지 못할 정도라면.”

“조금만 기다려라 아틸라. 금세 찾아낼 테니까.”

슈시아는 파우스트의 사령술사, 즉 루이제만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직관은 전장에서 발키리의 힘이 가장 필요한 지역을 탐색했고, 그곳에 화살 공격을 집중했다.

“쏴라!”

그러던 중 슈시아는 목표물을 찾아냈다.

“아틸라.”

“알고 있다.”

슈시아에게 미리 심안을 시전해 두었던 아틸라도 목표물인 루이제를 발견했다.

또한 루이제가 구울에게 무언가 사악한 주문을 덧씌우려 하고 있다는 것 역시도.

아틸라는 흑철방패를 꺼내들었다.

“움직인다.”

“지금 바로?”

“그래. 마침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 말이야.”

“어느 방향으로 진입할 생각인가. 나와 발키리들이 길을 열겠다.”

슈시아의 물음에 아틸라는 답하지 않았다.

슈시아는 고개 돌려 아틸라를 바라봤다.

“아틸…….”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 * *

사기가 치솟은 병사들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비 덕에 아인하르트는 조금씩 구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제롬의 마법으로 우세를 점했던 극 초반의 전세를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사령술사, 루이제는 보통의 흑마술사가 아니었다.

그녀의 입술이 어둠 속에서 주문을 읊었다.

잠시 후 모든 구울들이 고개를 추켜들며 비명을 질렀다.

“키에에에에에에에!”

비명은 소름 끼치도록 날카롭고, 길었다.

기사와 병사들은 당황했다.

피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뭔가가, 벌어지려 하고 있다.’

구울들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썩은 살점이 벌어지고, 찢기고, 그 사이로 시뻘건 근육이 튀어나왔다.

톱날 같은 이빨과 발톱이 더욱 단단해졌다.

“저, 저게 무슨……!”

“어떻게 된 거야! 구울 놈들이 왜 갑자기……!”

퍼거걱!

휘둘린 발톱 하나가 병사의 허리를 동강 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더욱 크고 잔혹해진 구울들이 해일처럼 병사들을 습격했다.

전장을 압도하는 듯했던 아인하르트의 군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밀리지 마라! 방패를 들어라!”

“창병대!”

“찔러! 찌르라고!”

병사들의 진이 무너진 둑처럼 와해됐다.

금사자의 기사들은 분발했다.

그들은 강화된 구울을 상대로도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극도로 단련된 기사에게만 해당될 뿐, 일반 병사들에겐 어림없는 일이었다.

선두에서 가장 많은 구울을 조각낸 피핀은 자신의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예리한 감각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순간 단지 하늘을 올려 보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피핀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희게 날아드는 화살의 군체 속에서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낸 어느 흑빛 갑주의 전사를.

‘저, 저건?’

그는 당황했다.

전사는 그야말로 유령처럼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쏟아지는 화살비를 풍경 삼아 놀라운 속도로 수직낙하했다.

저 전사가 제3기사단장 앙드레가 말했던 흑기사라는 걸 직감한 것과, 낙하한 흑기사의 몸이 구울의 지면을 강타한 건 동시였다.

쿠아아아아앙!

피핀은 흑기사와 부닥친 지면이 움푹 패어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것을 중심으로 파문이 일었다.

구울과 병사들의 몸을 떠받치던 단단한 지면이 수면처럼 일렁거렸다.

‘이, 이건 무슨……!’

퍼거거걱! 구울의 조각난 몸뚱이들이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

그 위로 화살비가 쏟아졌다.

화살에 맞은 구울의 몸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것들이 다시금 분해되며 허공으로 솟았다.

“흐, 흑기사!”

“흑기사가 왔다!”

“용아병을 쓰러뜨렸던 흑기사가 돌아왔다!”

“우와아아아아!”

병사와 기사들이 흑기사를 알아봤다.

그들은 지난 전장에서 흑기사 덕에 목숨을 부지한 이들.

“흑기사가 왔으니 구울들도 이제 끝이다!”

“가자! 검을 휘둘러라! 흑기사를 돕는 거다!”

병사들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무너지던 사기가 다시금 회복됐다.

흑기사의 검과 방패는 벌써 수많은 구울의 몸을 짓이기고, 부수고, 절단하고 있었다.

한편 연기처럼 사라졌던 아틸라가 전장 한복판으로 낙하하는 광경을 포착한 슈시아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발! 아틸라!”

슈시아의 그런 언행을 처음으로 목도한 어린 발키리들은 놀랄 틈도 없었다.

“모두 달려! 아틸라를 쫓는다!”

슈시아는 달렸다.

‘그렇게 혼자 가면 어쩌자는 건가! 아틸라!’

그녀의 뒤를 38인의 발키리와, 입에 도롱뇽을 문 펀치가 쫓았다.

“달려달려 곰탱이! 캬캬캬캬!”

엘프들의 발은 날렵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고지대를 벗어나 구울 군단의 측면을 기습했다.

쇄도하는 발키리들의 머리가 된 슈시아가 활을 들어 마력 화살을 매겼다.

나머지 발키리들도 화살을 매겼다.

“쏴라!”

정면으로 쏘아진 빛의 화살이 구울들의 몸을 관통했다.

구울의 진형이 무너지며 새하얀 빛의 길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아틸라를 향해 똑바로 직진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아틸라 특유의 전투 함성이 들려왔다.

발키리들은 구울을 향한 자신들의 화력이 다시금 강해지는 것을 감각했다.

[ 심판의 외침 ]

[ 언데드를 상대로 공격력과 회복력이 20% 증가합니다. ]

그것으로 발키리들은 아틸라와 지근거리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아틸라를 찾아냈다.

구울의 썩은 피와 살점으로 뒤덮여 검과 방패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아틸라!”

슈시아의 외침에 아틸라가 히죽 웃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슈시아.”

“갑자기 그렇게 자리를 이탈하면……! 아니, 대체 어떻게 순식간에 이곳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건가!”

“문득 내게 특별한 기술이 생겼다는 게 떠올랐거든.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고, 이렇게 성공했군.”

아인하르트 왕국 일부와 아틸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 들어와 있다.

다른 세계선에서 이동한 도롱뇽과 펀치에겐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틸라는 환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빠른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환술에 속해 있는 동안만 활용할 수 있는 한시적인 기술이고, 무분별하게 남용할 수도 없는 기술이지만.

“특별한 기술이라니. 넌 대체…….”

갑작스레 난입한 엘프들의 존재에 기사와 병사들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들은 빛의 화살을 쏘아 낸 이가 제롬이 아닌, 엘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엘프들을 이끄는 자가 눈앞의 흑기사라는 것 역시도.

그리고 피핀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틸라! 아틸라인 건가!”

구울을 베며 달려오는 피핀을 향해 아틸라가 웃었다.

“어이. 피핀.”

“대체 네가 어떻게……!”

“쓸데없는 인사는 됐고. 샤를은 어디에 있나.”

“샤를은 북쪽의 전장으로 떠났다.”

“북쪽?”

“그곳에 엄청난 괴물이 나타났다.”

엄청난 괴물이라.

“그렇군. 자세한 이야기는 놈들을 처리하고 듣도록 하지.”

아틸라는 검과 방패를 부딪치며 구울들을 노려봤다.

피에 젖은 투구 사이로 맹수의 입김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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