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24화 (124/425)

124. 키클롭스의 감옥 (4)

벼락처럼 소리쳤다.

- 네 이노오오오옴! 비열한 배신자 스톤핸드야!

쩌렁쩌렁 강당이 울렸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아르게스는 당장이라도 사슬의 주박을 풀고 일어설 것처럼 몸을 흔들었다.

- 자신을 창조한 신을 배신하고 이종족과 손을 잡다니! 당장 이 사슬을 풀지 못할까! 스톤핸드!

아르게스의 눈이 번득였다.

그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번개가 꿈틀댔다.

당장이라도 내리칠 기세였다.

“히이익! 난 이제 죽었다!”

“흐에에에엣!”

오토와 카스피의 요란과 별개로 아틸라, 바토리, 크누트는 무덤덤하게 그것을 바라봤다.

크누트는 아틸라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에 대해 잘 알았다.

도끼를 쥐었다.

머리 위 먹구름을 향해 똑바로 들어 올렸다.

파지지지짓!

내리쳐진 벼락이 뱀처럼 방향을 틀었다.

크누트의 도끼날에 집약됐다.

파짓! 파짓! 파지지짓……!

크누트의 도끼는 황금바위산 최고의 대장장이였던 그롬 스미스의 역작.

도낏자루까지 고순도 드워프 강철로 제작된 특별한 무기였다.

그것이 끌어당긴 전류가 크누트의 몸을 관통했다.

오토가 비명을 질렀다.

“히익! 주, 죽은 거 아니요!”

크누트는 죽지 않았다.

아주 멀쩡했다.

그 모습에 아틸라가 의미심장하게 입가를 올렸다.

‘피뢰침(避雷針).’

요정과 엘프의 연합군과 투쟁했던 드워프들.

그들은 오랜 세월 연합군의 마력과 맞서 싸우며 상당한 마법 저항력을 지니게 됐다.

그중에서도 전격 마법에 강한 내성을 지닌 스톤핸드 가문은 자신의 일족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고.

마침내 ‘피뢰침’이라 불리는 특성을 개화하기에 이르렀다.

“할망구.”

“흐응.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인 것이더냐.”

아틸라가 세운 전략은 이랬다.

사슬의 주박에 묶인 아르게스의 의자 밑을 허물어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

키클롭스 삼형제가 갇힌 각각의 감옥 아래엔 기나긴 굴이 있고, 그 끝엔 마계를 넘어 ‘명계(冥界)’라 불리는 암흑의 세계가 존재한다.

아틸라는 아르게스를 그곳으로 떨어뜨릴 생각이다.

그것엔 강력한 마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적임자는 당연히.

‘바토리밖에 없지.’

물론 그동안 아르게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온몸이 포박된 아르게스가 할 수 있는 저항이란 조금 전처럼 무차별 벼락을 날리는 것뿐이고.

그것은 크누트의 피뢰침과 마법 저항력이 막아 낼 수 있다.

즉, 이 작전은 크누트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실행 불가능한 것이다.

변수는 크누트의 전격 마법 저항력이 100퍼센트가 아닌 90퍼센트라는 것인데.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 바람 저항의 오러 ]

도롱뇽이 지닌 특별한 스킬.

[ 바람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10% 상승합니다. ]

패영전에서 전격 마법은 바람 속성에 속한다.

크누트가 지닌 ‘전격 마법 저항력 90퍼센트’ 더하기 도롱뇽의 ‘바람 저항의 오러 10퍼센트’.

이렇게 100퍼센트가 만들어졌다.

‘이 방법으로 아르게스를 명계로 떨어뜨리고 나면.’

이곳, 키클롭스의 감옥에서 명계로 이어지는 기나긴 통로 사이에.

‘오르피나의 첫 번째 성물이 숨겨져 있다.’

바토리는 아르게스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르게스 정도 되는 반신을 명계까지 추락시키는 마법이다.

게다가 추락 후엔 명계의 괴이들이 기어 올라오지 못하도록 통로를 봉하는 작업까지 병행해야 하기에.

정밀하게 제작된 마법진의 도움 없인 불가능하다.

“정말 5분 동안만 열려 있으면 되겠느냐 야만전사야.”

“그래. 그 이상이면 명계의 녀석들이 냄새를 맡을 거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토리가 재차 말했다.

“아무리 통로일 뿐일지라도 명계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곳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아무리 너라도…….”

“언제 내가 내려간다고 했냐.”

“뭐라?”

“내려가는 건 이 녀석이다.”

아틸라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꼬리를 붙잡힌 도롱뇽이 파닥파닥 몸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캬아악! 내가 왜! 내가 왜 저런 시궁창 냄새나는 구멍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냐! 싫어! 난 싫다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특별한 드래곤이다.

놈은 마계는 물론 명계의 기운으로부터도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오랜만에 정신 교육 한 번 할까?”

“크흐으읏……! 알았어! 한다고! 하면 되잖아!”

역시 도롱뇽은 명계의 악취보다는 정신 교육이 더 두려운 모양이다.

꽤 오랜 시간을 소비해 바토리는 둥지를 틀었다.

그동안 아르게스는 쉴 새 없이 벼락을 퍼부었지만 크누트는 모조리 흡수했다.

물론 털까지 저항력이 미치진 못했는지 그의 빽빽한 머리털과 수염이 흠씬 타 버리긴 했지만.

“시작하겠느니라.”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아르게스가 몸을 떨었다.

철컹철컹, 사슬이 부딪으며 거친 소음을 냈다.

혼신의 기력을 짜냈는지 머리 위 먹구름은 다시없을 정도로 자욱해져 있었다.

콰지직! 콰지지지직!

그러나 그가 뿜어낸 최후의 발악마저 크누트의 피뢰침에 흡수됐다.

아르게스는 어이가 없었다.

어찌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가 자신의 벼락을 완벽하게 무효화할 수 있단 말인가.

- 어떻게 된 것이냐 스톤핸드! 내가 갇힌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천벌이 내릴지어다! 감히 네놈이 신을 능멸하다니!

“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거인족에서 쫓겨난 사고뭉치 삼형제인 주제에.”

마법진이 발동했다.

촘촘하게 드리운 룬문자와 곡선들이 별처럼 빛났다.

마법진의 광채가 흑빛으로 변하고, 중심을 향해 집약됐다.

아르게스의 의자 아래 거대한 검은 원이 생성됐다.

그러는 동안 아르게스는 미친놈처럼 입을 놀렸다.

- 안 돼! 이럴 수는 없다! 긴 봉인의 시간 동안 오직 복수의 날만을 꿈꿔 왔거늘! 조금만 더 일찍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면! 조금만 더 빨리 힘이 회복됐다면! 빌어먹을 메피스토펠레스가 며칠만 더 일찍 내 앞에 나타났……!

쑤우욱! 검은 원의 마력이 아르게스를 잡아당겼다.

아르게스가 사라졌다.

남은 건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통로뿐.

“끄, 끝난 거유?”

아틸라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부릅 힘이 들어가 있었다.

검은 원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아르게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이름을 꺼냈다.

“얼른 가거라 도롱뇽아. 5분 뒤면 통로는 완전히 닫힐 것이다.”

“비, 빌어먹을!”

도롱뇽이 시커먼 구멍 속으로 몸을 날렸다.

구멍은 벌써부터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자 구멍은 성인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다.

오토, 카스피, 펀치, 그리고 크누트까지도 긴장한 얼굴로 구멍 안을 바라봤다.

“이,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요……?”

“힘내 도롱뇽! 넌 할 수 있어!”

끼아옹!

동료들이 도롱뇽을 응원하는 동안 아틸라는 강당을 둘러봤다.

강렬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미심쩍은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착각인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이윽고 도롱뇽이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케헥! 시궁창 냄새! 코가 썩는 것 같다!”

녀석의 입엔 오르피나의 성물이 물려 있었다.

펀치가 냅다 그것을 삼켰고, 카스피가 기뻐하며 소리쳤다.

“나왔어! 도롱뇽이 나왔다고 아틸라!”

그 순간 아틸라는 강당 안의 공기가 급속도로 무거워지는 것을 감각했다.

바토리도 그것을 느꼈다.

“야만전사야.”

“모두 밖으로 나가! 어서!”

출구를 향해 달렸다.

아틸라의 어깨 위로 도롱뇽을 입에 문 펀치가 뛰어올랐다.

영문도 모른 채 나머지 일행이 뒤를 따랐다.

“뭐, 뭐요! 불안하게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무슨 일이야 아틸라!”

건물이 진동했다.

부서진 바위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선두를 달리던 아틸라는 불현듯 등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카스피, 크누트, 오토와 달리 바토리는 한참이나 뒤처져 있었다.

빌어먹을. 아틸라는 뒤돌아 바토리에게 달렸다.

“먼저 나가 있어라! 서둘러!”

아틸라가 돌아 달리는 사이 나머지 셋은 출입문 앞에 도달했다.

문은 굳게 닫힌 채였다.

“히익! 이, 이거 어떻게 나가지!”

“어떻게 나가긴. 열어야지.”

몇 걸음 물러선 크누트의 몸에서 천둥벼락이 시전됐다.

돌덩이 같은 그의 몸이 문과 부닥쳤다.

그러나 단단한 바위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크누트는 문 사이에 도끼를 끼웠다.

그러고는 힘차게 문을 당겨 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겐가! 어서 문을 당기게!”

크누트의 고함에 놀란 오토가 반대편 문을 잡았다.

카스피도 도왔다.

그그극……, 그그그그…….

조금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사람이 빠져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뭐 해……! 더 힘을 줘봐……! 영주 나리……!”

“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요……!

오토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무망중에 뒤를 돌아봤지만 아틸라와 바토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돌조각이 점점 더 거친 기세로 떨어지며 자신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아틸라 님!’

* * *

“바토리!”

바토리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바위를 아틸라가 흑철방패로 쳐냈다.

바토리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

아르게스를 명계로 추방하는 마법진을 준비하며 바토리는 많은 무리를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상태는 이상했다.

‘보호막 하나 두를 힘도 없다고?’

“……날 위해 와 준 것이더냐.”

중얼대는 바토리의 손을 아틸라가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안아들었다.

나머지 손으론 흑철방패를 쥐고 머리 위를 가린 채 출입문을 향해 달렸다.

추락하는 돌조각들이 방패를 때렸다.

아니, 그건 돌조각을 넘어 바위나 마찬가지였다.

쿵! 쿠웅! 쿠우웅!

머리 위가 천둥처럼 울렸다.

아틸라는 이를 악물었다.

방심했다.

몬스터들의 변이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

“……자책하지 말거라. 변수를 깨달았다 한들…… 대비할 방법 또한 없지 않았더냐.”

바토리의 말이 맞다.

녀석의 수작질을 짐작했다 한들, 자신이 취할 행동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지난 일을 되새길 필요는 없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이든.

‘산산이 깨부숴 주마.’

“으아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아틸라는 계단을 올랐다.

돌과 바위의 파편이 몸 곳곳에 부딪혔지만 아틸라는 조금의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플레이트 아머 덕분이었다.

머지않아 문 앞에서 낑낑대는 동료들이 보였다.

“모두 비켜!”

“아, 아틸라 님! 이제서야 오는 우워어어어어!”

대포알처럼 날아오는 아틸라를 보며 오토가 기겁을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아틸라는 문 앞에 바짝 붙어서 있던 오토에게 돌진을 시전했다.

돌진의 관성을 이용해 흑철방패를 뻗었다.

그것이 문 사이에 끼워진 크누트의 도끼와 부닥치며 강제로 문을 열어젖혔다.

“으히익!”

“흐에에에에엣!”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가공할 인력(引力)이 그들을 빨아들였다.

들끓는 시커먼 빛이 온 시야를 장악했다.

몇 차례 바닥을 구른 아틸라가 몸을 일으켰다.

품에 안겨 있던 바토리가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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