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키클롭스의 감옥 (3)
키클롭스들은 신에 닿을 수 있는 절대 조건이 생명 창조의 권능이라 여겼다.
그리고 드워프를 창조한 자신들 역시 신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믿었다.
“그들은 간과했던 거다. 자신들이 만든 건 그저 자그만 돌인형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그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드워프라는 신(新)종족을 창조한 건 다름 아닌 주신과, 그의 도움을 얻은 헤파이스토스의 숨결이었다는 것도.”
키클롭스들은 더 이상 신의 종복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러고는 먼저, 크리엘도라 대륙을 온전히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된 거요!”
“키클롭스 삼형제는 드워프들을 무장시켰다. 그들을 이끌고 대륙 곳곳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무장한 드워프들은 강했다.
평생을 대장 기술 연마에 몰두했던 그들은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에 조예가 깊었고, 육체적으로도 최고의 전사가 될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키클롭스 삼형제와 드워프들은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신들이 그것을 두고 볼 리 없었지. 중간계의 균형을 위협하는 키클롭스와 그의 드워프들을 막기 위해 당시의 신들 중 가장 강력한 마력을 지닌 두 존재, 세라핌과 에르윈이 나섰다.”
그들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구름과 숲을 깎아 두 개의 종족을 세공했다.
그러고는 헤파이스토스가 그리했던 것처럼, 주신의 도움을 받아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탄생한 두 종족이 요정과 엘프다.”
요정과 엘프의 연합군은 키클롭스 삼형제가 이끄는 드워프들과 긴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키클롭스와 드워프들을 원래의 시작점, 대륙의 삼대(三大) 바위산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전쟁이 길어지는 동안, 드워프들에게서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무슨 바람?”
“키클롭스 삼형제가 주신과 헤파이스토스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했듯, 드워프들 역시도 자신의 선조인 키클롭스의 지배에서 해방되길 원했던 거지.”
키클롭스들의 의지와 달리 드워프들은 대륙을 정복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전의 순수한 대장장이 시절의 키클롭스들이 그러했듯, 드워프들은 쇠를 달궈 무기를 만들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강인한 육체를 만드는 일에 더욱 주목했다.
“그러던 중 세 개의 드워프 일족에서 위대한 지도자들이 태어났다.”
청동바위의 브론즈풋.
강철바위의 스틸숄더.
황금바위의 스톤핸드.
“이들은 각자의 일족을 규합해 키클롭스에게 반기를 들었다. 종래엔 요정과 엘프들과 힘을 합쳐 키클롭스 삼형제를 각각의 감옥에 처넣는 것에 성공하지.”
그렇게 요정, 엘프, 드워프는 대륙에 거대한 재앙을 몰고 왔던 키클롭스들을 봉인한다.
하지만 전쟁은 너무도 길었다.
연합군과 드워프 간에 생겨난 감정의 골이 결코 메꾸어지지 않을 만큼.
“드워프들의 강인한 육체와 발달된 무기, 그리고 요정과 엘프들의 힘인 마력은 공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의 힘에 많은 동족을 잃은 그들은 이제 와 서로에게 호감을 드러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 이것이 요정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근원적인 이유다.”
아틸라가 말을 맺었다.
일행은 홀린 듯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크누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사 아틸라. 대체 이자는 누구란 말인가.’
아틸라가 한 이야기의 줄기는 스톤핸드의 핏줄을 지닌 크누트 역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대략적인 줄기였을 뿐, 이렇게나 세부적인 것까지 속속들이 알진 못했다.
카스피가 나직이 외쳤다.
“자, 잠깐! 그럼 지금 우리들이 가려는 곳이 바로.”
“그렇단다 카스피. 우린 키클롭스의 감옥을 향해 가고 있는 게야.”
“히이이익! 그, 그럼 아틸라 님! 지금 설마 그 키클롭스인지 뭔지 하는 무지막지한 거인을 때려잡겠다는 거요!”
“아 뭐, 때려잡는 건 아니고.”
아틸라의 눈빛이 변했다.
“쉿. 무기 들어. 몬스터들이 온다.”
그 말에 일행의 눈빛도 변했다.
순식간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키익키익!”
“켁켁!”
숲의 어둠 속해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네 마리였다.
놈들의 기괴한 생김새에 카스피와 오토가 먼저 반응했다.
“저, 저건 또 뭐요 아틸라 님! 처음 보는 몬스터인 거 같은데!”
“징그럽게 생겼어!”
“코볼트다. 오크보다는 약하지만 만만치 않은 놈이지. 작전대로 간다.”
아틸라는 흑철검과 흑철방패를 가볍게 부딪었다.
그러고는 중앙에 있는 코볼트를 향해 돌진했다.
퍼걱! 돌진 디버프에 기절한 코볼트의 복부에 흑철검이 박혔다.
그와 동시에 두 자루 곡괭이가 아틸라를 노리며 쏘아졌다.
아틸라는 흑철방패를 좌우로 휘두르며 막았다.
카앙! 캉!
나머지 코볼트 하나가 바토리에게 달려들려 했다.
아틸라는 도발의 외침으로 녀석을 붙잡았다.
한자리로 모인 코볼트들을 노리며 흑철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휩쓸기 ]
퍼거거걱! 코볼트들의 몸에서 핏물이 흩어졌다.
“지금이다. 크누트. 카스피.”
아틸라의 신호에 크누트와 카스피가 적들의 양측면을 기습했다.
아틸라는 쿨타임마다 도발의 외침과 휩쓸기를, 그리고 일반 공격을 이어 가며 안정적으로 몬스터들의 시선을 끌었다.
‘역시 검이 편하군. 도끼보다.’
오랜 시간 용아귀를 주무기로 사용했지만 아틸라는 흑철검이 더욱 자신에게 맞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동안 아틸라는 자신의 용력을 버틸 만한 양손검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저, 저런 미친! 양손검을 무슨 숟가락 다루듯 사용하는 거요!”
“철혈귀검아. 너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한 손으로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니라.”
“그, 그게 정말이요?”
솔깃한 오토에게 바토리가 답했다.
“물론이니라. 넌 아직 스스로가 지닌 힘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아틸라가 오토에게서 영웅의 면모를 발견한 것처럼, 바토리 역시 오토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카스피, 그리고 크누트까지도 처음 보았을 때보다 강해졌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일은.
‘이상하구나 야만전사야. 한동안 전투에 보탬이 되지 않던 나마저도 이전보다 마력을 운용하기 수월해진 것 같으니 말이다.”
바토리는 아틸라가 지닌 파티 시스템과 레벨업 현상에 대해 이전부터 깊은 탐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네 마리의 몬스터를 붙잡은 아틸라의 등과, 좌우를 습격하는 카스피와 크누트를 바라봤다.
그들의 호흡은 상당했고, 전투를 치르며 점점 더 완벽에 가까워졌다.
머지않아 카스피와 크누트가 맡은 코볼트들이 쓰러졌다.
아틸라의 흑철검도 한 마리의 심장을 꿰뚫었다.
“키르릅……! 크릅……!”
동료 셋이 죽임 당하자 나머지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녀석의 입안에 흑철검이 꽂혔다.
가슴과 복부엔 단검이 박혔고, 마지막으로 척추엔 크누트의 양손도끼가 내리쳐졌다.
시체가 된 네 마리의 코볼트를 내려 보며 크누트가 말했다.
“자네의 말이 맞았군 아틸라. 몬스터들이 변이하고 있네.”
코볼트들과 싸우며 크누트는 깨달았다.
놈들의 몸 곳곳은 석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껍질이 돌처럼 변해 가는 이곳의 나무들처럼.
“키클롭스의 봉인이 옅어지고 있다는 확실한 징후지. 감옥에 가까워질수록 변이는 더욱 심해질 거요.”
그렇게 말하는 아틸라의 눈은 코볼트들의 시체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는 조금 놀란 상태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몬스터들의 변이가 심각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원작에서는 이 정도로 변이가 진행되지 않았을 텐데.’
이후 일행은 몇 차례 더 몬스터를 조우했다.
다행히 너무 많은 수의 몬스터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단 한 번 여섯 마리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지만 크누트가 재빠르게 방패를 들어 두 마리를 맡았고, 카스피가 현란한 칼 솜씨를 발휘해 차례로 놈들의 숨통을 끊었다.
갑옷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털어 내며 크누트가 말했다.
“라그나가 무척이나 함께하고 싶어 했네. 아틸라, 자네에게 빚이 있다며 말이야.”
크누트는 라그나를 데려오지 않았다.
라그나는 황금바위 드워프족에서 크누트 다음가는 전사.
크누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라그나는 그의 뒤를 이어 일족을 이끌어야 한다.
“여기로군.”
아틸라의 발이 멈췄다.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수해의 깊은 그늘 속에 몸을 숨긴 채 우뚝 솟아오른 바위 건물.
이끼 낀 건물의 상단으로 커다란 외눈 문양이 보였다.
“네 말대로 감옥의 창살은 이미 열리고 있었구나 야만전사야.”
바토리는 미세하게 벌어진 출입문의 틈새로 거대한 힘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감각했다.
저 정도의 힘이라면 수해의 나무를 포함해 외곽부의 일부 몬스터가 변이된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크누트도 아틸라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했다.
자신이 오늘 문을 열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이곳에 갇힌 괴이가 스스로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을 배신하고 이곳에 가둔 황금바위 드워프들에게 분노의 철퇴를 내리쳤겠지.
‘큰 도움을 받았군. 검은늑대의 아틸라.’
출입문 앞엔 테두리가 요정의 언어로 음각된 제단이 놓여 있었다.
“아르게스의 제단이다.”
아르게스.
키클롭스 삼형제 중 막내로, 벼락의 힘을 사용하는 외눈 거인.
녀석의 주특기인 벼락의 힘은 지상에 발붙이고 사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무시무시한 재앙이 된다.
‘스톤핸드의 핏줄만은 제외하고 말이지.’
황금바위 드워프족은 벼락에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다.
이유는 황금바위 드워프가 아르게스의 피와 살이 섞인 종족이기 때문.
‘그중에서도 헤파이스토스의 축복을 진하게 받은 스톤핸드 가문은 90퍼센트에 달하는 저항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원작의 샤를이 아르게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크누트에게 협력을 구한 까닭이자.
아틸라가 크누트를 이곳으로 데려온 두 가지 이유 중 하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문을 여시오. 크누트.”
스톤핸드의 핏줄, 그것이 아르게스의 감옥 출입문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시작하겠네.”
크누트가 품에서 황금잔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손도끼를 뽑아 자신의 손바닥을 벤 뒤 핏물을 잔에 담았다.
그것이 제단 위에 올라갔다.
잠시 후 공기가 진동했다.
잔을 넘친 핏물이 제단을 적시고, 테두리에 음각된 요정의 문자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극…….
바위 긁히는 소음을 울리며 문이 열렸다.
이어 입구 안쪽에서 횃불이 켜지며 좌우를 밝혔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자 돌문은 저절로 닫혔다.
바토리가 무언가 주문을 외워 미세하게 벌어진 출입문의 틈을 지웠다.
아틸라를 선두로 일행은 계단을 내려갔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잠시 후 거대한 강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이…….”
“히익! 저, 저게 그 아르게스라는 거인이요?”
“흐에에엣! 정말 엄청나게 크잖아!”
크기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의자에 앉아 사슬에 휘감긴 아르게스의 모습은 드워프, 그중에서도 크누트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아르게스가 번쩍 외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