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22화 (122/425)

122. 키클롭스의 감옥 (2)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오토였다.

“뭐요 저거. 리옹에서 잠깐 봤던 마법사 아니요?”

“그런 거 같은데?”

“그런 것 같구나.”

황금바위산의 동쪽 숲길을 걷던 아틸라 일행이 발을 멈췄다.

라일이 말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군. 아틸라.”

“적마탑으로 돌아갔던 게 아니었나.”

짐짓 모르는 체 아틸라가 물었다.

“물론 돌아갔었다. 지금 탑주께서는 혈귀의 머리통을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으시지.”

“그럼 넌.”

“여독을 풀 새도 없이 황금바위산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마법을 경멸하는 드워프의 영역을 조사하라니. 내키지 않지만 탑주의 명이니 어쩔 수 없지.”

라일의 말대로 드워프는 마법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뜸 인간 마법사 하나가 황금바위산을 찾아온다 해서 반길 이는 없다.

‘문전박대, 아니 도끼나 날아오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나 라일은 아틸라 일행에 드워프가 있는 것을 보고는 내심 마음을 놓은 모양이었다.

그의 물음은 직설적이었다.

“황금바위산의 군주, 크누트 스톤핸드인가.”

“그렇네.”

“마탑에서 전해 들은 인상착의와 똑같군. 한눈에 알아봤다.”

“적마탑에서는 자네에게 황금바위산의 무엇을 알아보라 시키던가.”

“악귀가 발생했는지 조사하라 명하시더군.”

크누트의 인상이 굳어졌다.

그는 일족에서 발생한 악귀와 혈귀 사건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고,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짐작이 맞은 모양이군. 그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는 드워프들에게서까지 악귀가 출현하다니. 반드시 중앙 마탑이 손을 써야 할 상황인 거 같은데.”

“알아볼 거 알아봤으면 갈 길 가라. 우린 바쁘니까.”

아틸라가 다시 발을 움직였다.

나머지 일행도 뒤를 따랐다.

자신을 스쳐가는 아틸라와 바토리를 라일이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봤다.

* * *

아틸라가 라일에 대해 의구심을 느낀 건 후마이야 왕국에서의 첫 만남부터였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노르드 왕국에서의 두 번째 만남부터는 목 안의 가시처럼 무언가가 걸렸다.

‘어떻게 나와 바토리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던 거지.’

게다가 식별이 쉽지 않은 먼 거리에서 대뜸 화염구를 날려 왔다.

타깃의 정체를 정확히 특정하지 못했다면 결코 취하기 어려운 행동.

그런 라일을 아틸라는 약간의 꾀를 내어 생포하는 것에 성공했다.

‘헛소리를 들어주는 건 여기까지다. 계속 입을 놀릴 작정이라면 지금부턴 이 도끼와 대화를 해야 할 거야.’

아틸라의 으름장에 일행을 떠난 라일은 며칠 후 마차를 가지고 재등장했다.

그는 도적떼의 습격으로부터 마차를 얻어 냈다고 말했다.

물론 그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을 법한 일이었지만.

우연이 너무 반복되면 의심이 피어나는 법.

거기에 더해 라일은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였다.

‘게다가 점점 더 강해졌지.’

그 말대로, 라일은 만날 때마다 강해졌다.

첫 만남 때는 바토리의 화염구 한 방에 어이없이 무너졌던 그가 두 번째 만남 땐 아틸라를 곤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성장했다.

심지어 리옹에서는 홀로 수많은 악귀를 쓰러뜨린 것으로도 모자라 혈귀로 변한 영주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실력을 숨기고 있던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틸라는 굳이 라일이 그래야만 하는 적절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라일의 뒷조사를 한 사바흐는 이런 말을 전했다.

‘라일 플라마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하는군.’

‘혈귀의 머리통을 가지고 돌아온 녀석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라일은 한차례의 실종 사건에 휘말려 있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아틸라의 의구심을 키웠던 것은.

‘세 차례나 심안이 통하지 않았다.’

상황을 돌이켜 보면 라일이 아틸라에게 크게 집중하지 않을 만한 상황이긴 했다.

어쩌면 아틸라가 라일에게 느끼는 의구심은 그저 우연이 반복된 것에 대한 지나친 해석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것이 우연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면.’

라일은 반드시, 아주 강력하게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다.

사바흐에게 놈의 뒷조사를 시킨 건 잘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슬슬 수해로군.”

크누트의 목소리가 아틸라를 상념으로부터 깨웠다.

눈앞을 바라봤다.

저만치 높다란 나무의 바다가 빽빽하게 펼쳐진 것이 보였다.

“저, 정말 들어갈 거요? 오크들이 얼마큼이나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게다가 수해 안에서 놈들은 더욱 강해진다 하지 않았수!”

오토는 이제 와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무서우면 안 따라와도 된다.”

“아니 뭐 안 가겠다는 게 아니고…….”

“그럼 얌전히 따라와. 수해 안에서 그렇게 딱따구리처럼 떠들다간 예정에 없던 몬스터들마저 달려올 테니.”

“헙.”

오토가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아틸라는 일행의 전투 포지션을 재차 확인했다.

“말했던 대로, 내가 검과 방패를 앞세워 몬스터들을 붙잡는다. 그 사이 크누트와 카스피가 측면을 기습한다.”

일행의 목적은 수해의 몬스터를 섬멸하는 것이 아니다.

수해 안에 존재하는 ‘문’을 찾는 것.

따라서 가급적 몬스터와의 조우를 줄이고, 설령 싸우게 되더라도 소리 없이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겠네.”

“알았어 아틸라.”

크누트와 카스피의 대답을 확인한 아틸라가 오토를 돌아봤다.

“오토. 넌 펀치와 함께 바토리를 수호한다.”

“아, 알겠수.”

끼아옹!

“그리고 할망구.”

“알았느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따라가면 되는 것 아니더냐.”

“잘 알고 있군.”

바토리는 문 안에 들어간 뒤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네 마리까지는 내가 붙잡는다. 그 이상이 추가되면 크누트가 역할을 분담한다.”

크누트가 등 뒤의 방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가 물었다.

“그, 그럼 다이어울프 같은 놈들이 나오면 어쩌려는 거요? 전에 아틸라 님이 다이어울프는 떼거지로 몰려다닌다 하지 않았수.”

“어쩌긴. 개싸움 들어가는 거지.”

“히익!”

“하지만 걱정 마라. 우리가 가는 길엔 일반적인 몬스터가 등장할 가능성이 적으니까.”

“엥? 일반적인 몬스터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우?”

아틸라는 일행을 불러 모았다.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우린 무작정 수해로 진입하지 않아. 먼 옛날 요정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의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이정표를 따라갈 거다.”

그 말에 크누트의 안색이 변했다.

전사 아틸라.

그는 단순히 문의 존재만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자는 대체.’

“요정? 오래전 멸종했다는 전설 속의 종족 말이야?”

카스피의 물음과 달리 요정은 멸종하지 않았지만, 아틸라는 굳이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 지금부터 우린 이정표를 찾는다. 황금바위산과 수해가 맞닿는 범위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 이정표라는 걸 어떻게 찾아야 하는데?”

“수해의 나무 중 껍질 일부가 석화한 개체를 찾으면 된다.”

“응?”

아틸라가 발을 움직였다.

카스피와 오토는 영문도 모른 채 뒤를 따랐다.

바토리는 언제나처럼 여유 있는 얼굴이었고, 크누트는 종종 묘한 시선으로 아틸라를 바라봤다.

“차, 찾았어! 저기!”

카스피가 이정표를 찾아냈다.

과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무껍질이 돌처럼 딱딱하게 경화하고 있었다.

원래의 나무색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에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차이였다.

“잘 찾았군, 카스피.”

아틸라의 칭찬에 카스피가 헤헤 웃었다.

“진입한다.”

수해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깥은 환한 대낮이었건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눅눅한 어둠이 일행을 감쌌다.

“지금부터 또 다른 이정표들을 찾는 거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겠지.”

아틸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일행 역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저쪽이로군.”

이번엔 아틸라가 이정표를 발견했다.

한동안 숨죽이며 걷던 오토와 카스피는 생각과 달리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자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속삭이듯 카스피가 물어왔다.

“저기, 근데 아틸라.”

“왜.”

“그 문이라는 게 뭐야? 거기 가면 뭐가 있는 건데?

카스피는 문 안에 오르피나의 성물 중 하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궁금증은 크누트 스톤핸드와 연관된 것이다.

아틸라는 물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키클롭스 삼형제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나.”

“키클롭스 삼형제?”

“그게 뭐유? 난 처음 들어 보는데.”

“나도.”

고개를 갸웃하는 카스피와 오토를 보며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엘프의 신 에르윈처럼, 드워프들에게도 특별한 신이 있다. 헤파이스토스. 일명 대장장이의 신이지.”

“아아, 헤파이스토스라면 알고 있수. 이래 봬도 내가 머릿속에 지식이 아주 꽉꽉…….”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겐 세 명의 거인(巨人) 제자가 있었다. 브론테스, 스테로페스, 아르게스가 그들이지. 이들을 통칭하는 말이 키클롭스다. 키클롭스 삼형제라고도 부르지.”

“아하.”

몰랐던 지식에 흥미가 동한 카스피가 귀를 쫑긋 세웠다.

“키클롭스의 대장 기술은 스승인 헤파이스토스마저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신들의 귀에까지 닿을 정도로. 자연스레 키클롭스 삼형제는 신들의 무기를 제작하기에 이르렀지.”

키클롭스 삼형제는 훌륭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양질의 철을 확보하기 위해 크리엘도라 대륙에서 가장 훌륭한 철이 생산되는 세 군데의 바위산에 둥지를 틀었다.

“흐에엣! 그, 그럼 혹시 그 세 군데의 바위산 중 하나가 황금바위산인 거야?”

“정답이다. 카스피.”

그 후로 오랫동안 키클롭스 삼형제는 신들의 무기를 제작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바쁜 일과 속에서 종종 무료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그들에겐 소박한 취미 활동이 생겼다.”

“취미?”

키클롭스 삼형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바위를 세공해 자신들과 닮은, 그렇지만 훨씬 자그만 돌인형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반신에 불과한 그들은 자신들의 인형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헤파이스토스가 돌인형을 발견했다.

“헤파이스토스는 키클롭스가 만든 인형들에게 강한 흥미를 느꼈다.”

마침내 헤파이스토스는 주신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키클롭스 삼형제의 뼈와 살을 이용해 돌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에 성공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종족이 바로.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망치와 모루의 종족, 드워프다.”

드워프들의 근원을 밝히는 이 놀라운 이야기에 카스피와 오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브론테스가 만들어 낸 돌인형은 ‘청동바위 드워프’. 스테로페스가 만든 돌인형은 ‘강철바위 드워프’. 마지막으로 아르게스가 만든 드워프는 ‘황금바위 드워프’가 되었다. 즉, 아르게스는 황금바위 드워프의 선조인 셈이지.”

이후 키클롭스 삼형제는 드워프들을 조수 삼아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드워프의 대장 기술은 뛰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헤파이스토스마저 놀랄 정도의 실력을 지닌 키클롭스 삼형제의 후손이었으니까.

그렇게 또다시 오랜 시간이 흘렀고, 키클롭스 삼형제의 심중엔 두 번째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신들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린 더 이상 신의 피조물이 아니다. 우리들은 드워프를 창조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 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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