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20화 (120/425)

120. 드워프 장인 (3)

스미스 가문의 수석 대장장이 그롬은 덩실덩실 칼춤을 추며 다가오는 인간 전사를 유심히 바라봤다.

‘전사 아틸라와 함께 온 인간. 분명 철혈귀검 오토라 했던가.’

그의 본능이 무언갈 감지했다.

‘눈동자에 살기가 담겨 있다. 내 정체를 눈치챈 것인가.’

그롬은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모든 황금바위 드워프는 스미스 가문으로 통합될 것이다.

바야흐로 대장장이들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배가 고프군.’

이 원대한 야망을 머릿속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표면화시킬 무렵부터, 그는 강렬한 식욕을 느꼈다.

얼마 전 꾸었던 꿈 때문일까.

꿈속에서 나타난 그림자가 귓가에 속삭였던 말이 재차 머릿속을 울린다.

그롬 스미스. 넌 새로운 황금바위를 만들 수 있다. 네 갈망을 현실로 바꾸어라. 앞을 가로막는 자는 모두.

‘잘근잘근 씹어삼켜라.’

그의 몸을 둘러싼 귀기(鬼氣)가 꿈틀댔다.

첨예하게 곤두선 그것이 다가오는 오토를 향해 화살촉처럼 집약됐다.

그러고는 멈췄다.

‘아니.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자신은 오랜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저 하찮은 인간을 처리하고 당장의 식욕을 해소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스스슷…….

귀기가 이완되고, 흩어졌다.

자석에 끌린 쇳사루처럼 반대편으로 이동해, 한쪽 종아리 즈음에서 단단하게 뭉쳤다.

‘지금은 참는다. 일단은 뜻을 함께할 형제들을 확보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형제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반항하는 자들은 한데 모아.’

주르르륵, 입안에 침이 고였다.

‘식욕을 채운다.’

중심을 잃고 흐느적대던 오토가 그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검을 뻗었다.

그러나 그롬은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었다.

손도끼를 들어 오토의 검을 안정적으로 막아 냈다.

“많이 취했군. 철혈귀검 오토 경.”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눈빛은 매서웠다.

“아, 그게, 갑자기 미끄러져서…….”

“그와아아악!”

그 순간 그롬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롬의 손이 자신의 종아리를 짚었다.

엄지손가락 크기로 살점과 근육이 뜯긴 것이 보였다.

마치 자그만 도마뱀이 있는 힘껏 베어 문 듯한 자국.

이어 비슷한 위치에 동일한 자국이 추가로 생겨났다.

그롬의 눈동자가 새빨개졌다.

위협을 감지한 귀기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그와아아아아아악!”

그롬의 입이 동굴처럼 벌어졌다.

길게 늘어난 턱이 자신의 손도끼를 삼켰다.

그러자 종아리에서 비죽비죽 칼날이 돋아났다.

“뭐, 뭐야!”

“그롬이 악귀였어?”

“악귀다! 악귀가 나타났다!”

직전까지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던 드워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롬의 몸이 점점 비대해졌다.

들고 왔던 커다란 자루를 양손에 쥔 그가 마구잡이로 날붙이를 삼켜 댔다.

“그륵……. 그르륵……. 그르르르륵…….”

함께 온 스미스 가문의 대장장이들도 악귀로 변했다.

벌컥 문이 열리며 경비병이 외쳤다.

“크누트! 성벽에 악귀들이 크허억……!”

그롬의 손을 뚫고 뻗친 날붙이가 경비병의 이마를 뚫었다.

팔을 끌어당긴 그롬이 죽은 경비병을 으적으적 씹었다.

“맛있군. 아주 맛있어.”

분노한 드워프들이 그롬에게 달려들었다.

선두엔 크누트가 있었다.

투명화를 해제한 도롱뇽이 입안의 살점을 퉤! 뱉어 냈다.

“드럽게도 맛없네. 야. 곰탱…….”

꿀꺽 도롱뇽을 삼킨 펀치가 아틸라에게 달려왔다.

펀치의 이마를 쓰다듬은 아틸라는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무기를 꺼냈다.

[ 장인의 흑철검 ]

[ 장인의 흑철방패 ]

용아귀는 결국 수리하지 못했다.

불의 신전을 벗어난 이프리트는 용아귀를 수리할 힘이 없었고, 때마침 이프리트의 반지마저 사용 기한이 끝나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이제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좋아하던 이프리트는 불의 신전으로 복귀할 때까지 도롱뇽에게 따귀를 맞았다.

‘그동안 잘 버텨 주었다. 용아귀.’

그 대신 아틸라는 오토에게 주어질 예정이었던 흑철검을 가로챘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아틸라를 쳐다보던 오토의 똥개 같은 면상을 떠올리며 아틸라는 쾅! 검과 방패를 맞부딪쳤다.

[ 돌진(突進) ]

내뻗은 장인의 흑철검이 그롬의 날붙이와 부닥쳤다.

오토의 손에 맞게 제작된 물건이었지만, 아틸라는 검의 그립감에 만족했다.

최근 무휼을 많이 사용하며, 아틸라는 도끼보다 검이 자신에게 더욱 적합한 무기라는 생각을 했었다.

“병력을 반으로 나눈다! 절반은 성벽의 전투를 도우라!”

“호우호우!”

크누트의 명에 절반의 드워프가 밖으로 달려갔다.

크누트는 생각했다.

‘전사 아틸라. 자넨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건가.’

아틸라는 크누트에게 미리 언질을 했었다.

술자리가 시작되는 밤, 라그나를 포함한 뛰어난 실력의 전사들을 성벽 수호 병력으로 배치하라고.

또한 술자리에서 악귀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즉시 일부 병력을 성벽으로 지원 보내라고.

아틸라에게 머물렀던 크누트의 시선이 그롬을 향했다.

‘그롬.’

자신의 오른팔 격인 라그나와 달리, 정치적인 면에서 수없이 부딪쳤던 사내.

그러나 그롬은 라그나 못지않은 뛰어난 전사였고, 황금바위 역사상 최고의 대장장이였으며, 그 누구보다도 일족을 사랑하는 자였다.

‘어쩌다 황금바위의 긍지를 잃고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게 된 것인가. 자네는.’

그롬은 크누트에게 보다 많은 전사들이 대장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또한 대장장이는 전사의 임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크누트의 생각은 달랐다.

수해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황금바위산이 생존하려면 전사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크누트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충분히 그롬을 이해시켰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롬의 야망이 더욱 커다랬던 것일까.

그롬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크누트는 자책했다.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나의 이름은 크누트 스톤핸드.’

황금바위산의 왕이다.

왕은 일족의 안전과 번영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야만 한다.

웅혼한 기세를 담아 외쳤다.

“도끼를 들어라! 저들을 더 이상 우리의 형제로 간주하지 마라!”

“호우호우!”

드워프는 악귀로 변하기 힘든 종족이다.

그러나 일단 변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괴물이 된다.

악귀들을 상대로 드워프들은 열심히 싸웠다.

그러던 중 이변이 발생했다.

악귀들의 피부가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혈귀였던 건가.’

드워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전사.

하지만 혈귀를 상대로는 리스크가 크다.

‘혈귀는 자신의 피로 악귀를 만들 수 있으니까.’

혈귀의 피를 체내에 주입당한 자는 높은 확률로 악귀로 변한다.

다행인 점은 음식이나 술에 피를 섞어 두는 방식은 효과가 없다는 것.

“구와아악! 구와아아악!”

혈귀들이 사방으로 핏물을 흩뿌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놈들이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리옹에서 악귀 혼합물이 탄생했을 때와 동일한 광경.

[ 귀살 시나리오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

‘오.’

[ 두 번째 임무 ]

[ 황금바위산에 출몰한 혈귀의 군체를 쓰러뜨리십시오. ]

[ 임무 완료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임무를 확인하던 아틸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틸라는 크누트를 포함한 모든 전사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남은 전사들을 이끌고 성벽의 전투를 돕는 편이 좋겠군. 크누트.”

“뭐라고?”

“혈귀의 피는 더욱 많은 드워프를 악귀로 만들 수 있소. 다수의 인원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지.”

“하지만 전사 아틸라.”

“이곳은 내게 맡기시오. 당신은 황금바위산의 왕. 한낱 외부인보다 자신의 일족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 아니오.”

그 말에 크누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후 크누트는 병력을 이끌고 사라졌다.

아틸라는 오토와 카스피에게도 크누트를 도우라 말했다.

“싫어! 난 아틸라와 함께 싸울 거야!”

“나, 나도 싫수!”

“이곳은 나와 바토리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성벽은 미지의 영역이지. 얼마나 많은 악귀가 등장했는지, 혹은 오크들이 추가로 등장했는지 알 수 없어. 너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치만…….”

“드워프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건 좋지 않다. 최악의 경우 크누트가 전사할지도 모르지. 그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오르피나의 성물을 얻으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오토와 카스피는 동시에 바토리를 돌아봤다.

때마침 바토리가 측은한 표정을 지었고, 그것에 넘어간 둘은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고 영주 나리!”

“호우호우!”

오토와 카스피가 사라지자 바토리가 다가와 말했다.

“얼른 처리하고 우리도 시원한 밤공기나 마시러 가자꾸나 야만전사야.”

“표정 연기 잘 하던데. 할망구.”

“흐응. 보고 있었던 게냐.”

아틸라의 옆얼굴을 보며 바토리가 미소했다.

“한데 왜 오토와 카스피마저 내보낸 것이더냐.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을 터인데.”

“둘이서만 싸우고 싶었으니까.”

“뭐, 뭐라?”

바토리의 두 뺨에 홍조가 어렸다.

“야, 야만전사야. 그, 그 말인즉슨 네가 나를…….”

그러나 아틸라는 바토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 떠오른 임무 메시지를 재차 확인하는 중이었다.

[ 이번 임무엔 추가 보상이 존재합니다. ]

[ 2인 파티로 적을 쓰러뜨릴 경우에 한해, 공격대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됩니다. ]

[ 추가 보상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기본 임무 완료 보상은 획득할 수 있습니다. ]

“……만전사야. 나 역시도 이렇게 갑작스레 마음을 전하고 나니 심히 무색하…….”

“뭐라 혼자 주절대고 있냐 할망구.”

“응?”

“혼잣말 그만하고 보호막이나 둘러라.”

“호, 혹시 내가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뭐라 했는데.”

바토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잠시 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틸라의 몸에 보호막을 시전했다.

[ 피의 보호막이 활성화됩니다. ]

추가 보상을 획득할 생각에 아틸라는 히죽 웃었다.

* * *

“빌어먹을. 아틸라 님 손에 들린 흑철검 봤소? 크흑! 그거 원래 내 거였는데!”

“골든핑거한테 하나 더 만들어 달라 하면 되잖아.”

“그 뭐시냐 고순도 드워프 강철 다 썼다는 말도 못 들었소! 꿈에 그리던 드워프 장인의 검을 드디어 하나 가져 보나 했더니 못돼 처먹은 어린놈의 새끼가 크흑……!”

“와. 골든핑거가 만들어준 내 단검 좋다. 한 번 만져 볼래?”

“됐소오오!”

오토와 카스피는 성벽을 향해 달렸다.

성문은 활짝 열린 채였다.

“악귀 드워프가 성문을 열어 버린 것 같소! 저러다 오크 놈들이라도 들어오면 어쩌려고!”

다행히도 오크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스미스 가문의 드워프 하나가 혈귀로 변해 악귀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롬의 명령으로 양동 작전을 벌이는 중이었던 것이다.

“가자 영주 나리!”

“호우호우!”

“그거 언제까지 할 거야?”

그러나 오토와 카스피가 도달하기도 전에 전투는 끝났다.

모든 드워프들을 뒤로 물린 크누트가 천둥벼락으로 접근해 바위주먹을 휘둘러 혈귀를 때려 부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악귀로 변한 소수의 드워프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바위주먹을 추켜들며 크누트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우리가 승리했다!”

“황금바위산의 주인 크누트 스톤핸드!”

“호우호우!”

승리의 진한 함성과 달리, 죽은 형제들을 바라보는 크누트의 얼굴은 침통했다.

잠시 후 아틸라와 바토리가 그롬의 시체를 끌고 등장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파우스트가 아인하르트 왕국을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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