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19화 (119/425)

119. 드워프 장인 (2)

“착용해 보게.”

과연 장인급 대장장이가 제작한 갑주였다.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표면.

마치 제2의 피부인 것처럼 편안하게 몸을 감싸는 감촉.

거기에 더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갑주의 곡면은 웬만한 화살 공격쯤은 모조리 튕겨 낼 것으로 보였다.

‘역시 골든핑거로군.’

아직 정식으로 장인 칭호를 획득하진 못했지만, 이 시기의 골든핑거가 이미 장인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흐응. 제법 기사다운 느낌이 풍기는구나. 야만전사야.”

“차, 착용감이 어떻소! 나도 한 번만 입어 보면 안 되겠소? 제발 부탁이요! 아틸라 님!”

“갑옷이 검은색이라 그런지 조금 날씬해 보이는데? 그건 그렇고 어떻게 저렇게 몸에 딱 맞도록 만들 수가 있는 거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아틸라를 보며 바토리, 오토, 카스피가 차례로 말했다.

그들의 반응을 흡족한 눈으로 바라보던 골든핑거가 물었다.

“어떤가 아틸라.”

“착용감이 상당하군. 가볍고, 크게 움직여도 불편함이 없어.”

아틸라는 전투할 때처럼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봤다.

금속 부딪는 소음마저 음악처럼 들릴 정도로 잘 만들어진 갑주.

골든핑거가 껄껄 웃었다.

“자네의 검은 머리카락에 어울리도록 흑빛으로 만들어 봤네.”

“아주 마음에 들어. 다만 투구는 시야를 가려 조금 불편한데.”

아틸라는 투구를 벗었다.

골든핑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 정도의 전사라면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시야를 확보하는 편이 낫겠지.”

이리저리 목을 돌리던 아틸라는 역시 투구는 착용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잽싸게 오토가 물어왔다.

“투, 투구라도 저 주시면 안 될까요?”

“싫은데.”

“어차피 안 쓰시는 거 아니요!”

“네 커다란 머리통엔 들어가지도 않을 거다.”

“……지도 왕대가리면서.”

“뭐?”

“아아무 말도 안 했수!”

아틸라는 투구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펀치의 몸에 팬티처럼 입혔다.

눈구멍 쪽으로 두 뒷다리를 빼내니 나름 괜찮아 보였다.

“네 거다 펀치. 거대화하기 전에 벗어 두는 거 잊지 말고.”

끼아옹!

“크흑! 하다 하다 이제 곰새끼한테까지 밀리다니!”

헥헥 혀를 내밀며 방방대는 펀치를 오토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틸라가 말했다.

“고맙군. 골든핑거.”

“자네가 황금바위를 위해 해 준 일을 생각한다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네. 아무튼 자네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제작하려면 시일이 걸릴 테니 차분히 기다려 주게. 내 최고의 물건을 선물하지. 기대해도 좋네. 누음앗핫핫핫하!”

“방패와 플레이트 아머는?”

“두고 가게. 자네의 몸에 더욱 잘 맞도록 미세조정을 해 둘 테니.”

아틸라는 그 말을 따랐다.

플레이트 아머를 벗으며 넌지시 물었다.

“저 옆은 스미스 가문의 대장간인가.”

“그렇네. 이번 악귀 사건 이후로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

아틸라는 골든핑거의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새로운 장비를, 그것도 드워프 장인의 제작품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오토와 카스피는 한껏 들뜬 얼굴이었다.

아틸라가 카스피의 팔을 잡아끌었다.

“흐에엣!”

“카스피.”

“응?”

등 뒤로 카스피를 숨기며 아틸라가 속삭였다.

“내 뒤에서 몰래 귀안을 발동해라.”

“갑자기? 왜?”

“귀안을 발동한 뒤 골든핑거를 주시해. 특이사항이 있다면 즉시 말해라.”

영문은 몰랐지만 카스피는 아틸라의 말을 따랐다.

그녀의 안구가 핏물처럼 변했다.

아틸라의 등 뒤에 숨어 한참 동안 골든핑거를 주시했다.

“저기……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 거야?”

“역시 골든핑거는 아니로군.”

“응?”

“저기 아틸라 님.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설명을 해 줘야 우리도 뭔 소린지 알아먹을 것 아니요.”

“골든핑거는 악귀가 아니라고.”

“엥?”

“귀안은 악귀를 알아볼 수 있다.”

오토와 카스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히익!”

“흐에에엣? 그, 그게 정말이야 아틸라?”

“그래.”

황금바위산에 숨은 악귀를 찾아내 달라는 크누트의 조건.

그것을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했다.

일행 중에 카스피가 있기 때문이다.

‘크누트 역시 눈치챈 것 같고.’

“이대로 내 뒤에 숨어서 모든 대장장이들을 관찰해라. 황금바위 드워프 중에 악귀가 남아 있다면 대장장이일 확률이 높아.”

“그건 왜?”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강한 자일수록 악귀로 변화하기 쉽지. 드워프 대장장이들은 뛰어난 장비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만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내가 메피스토펠레스라면 분명 그 점을 노렸을 거야.”

“근데 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시도하지 않고 돌아가는 길에서야 찾으라는 거야?”

“드워프들은 외부인을 좋아하지 않아. 아무리 우리에 대해 들어 알고 있어도 경계의 시선은 있었을 거다. 그런 그들에게 굳이 네 특기를 알려 봐야 좋을 거 없지. 악귀로 변한 자들이 귀살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틸라는 악귀로 변한 드워프들이 귀살자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메피스토펠레스라면 그 정도의 대비는 해 두었겠지.’

그제서야 카스피는 골든핑거의 대장간으로 가는 길에 몇몇 드워프가 이쪽을 돌아봤던 것을 떠올렸다.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살펴라. 오토, 넌 평소처럼 짹짹대면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내, 내가 언제 짹짹댔다는 거요!”

발끈한 것과 달리 오토는 아틸라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카스피도 아틸라의 우람한 등 근육에 바짝 달라붙어 대장장이들을 살폈다.

그런 카스피의 뒷모습을 바토리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흘겨봤다.

* * *

“흠. 대장장이 골목 안엔 없었단 말이지.”

“응. 내가 진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살폈는데, 특이점을 보이는 자는 한 명도 없었어.”

“이쯤 되면 아틸라 님. 그 귀안인가 뭔가에 악귀를 알아보는 힘이 없는 거 아니요?”

“넌 좀 닥치고 있어라.”

“참나,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지! 섭섭하게 또 그러기요? 아니, 그도 그렇잖수! 살쾡이 암살자 본인도 귀안으로 악귀를 판별한 일이 없는데 뭐가 뭔지 어찌 알겠수!”

“어쭈. 이게 요즘 막 기어오르네? 당장 검 들고 밖으로 튀어나와 새끼야.”

“아이고 그게 아니고요 아틸라 님.”

“귀살의 일족이 악귀를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란다 철혈귀검아.”

“무, 물론 나도 알고 있수. 왜냐하면 방금! 아틸라 님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새끼. 아부 떠냐? 뒈지긴 싫어가지고.”

메피스토펠레스가 만들어 낸 인간과 악귀 사이를 넘나드는, 일명 변종 악귀들은 패영전 원작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귀살의 일족은 악귀로 변화하려는 자를 알아볼 수 있다.

그렇다는 건 드워프 사이에 숨어 있는 악귀 역시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는 것.

* * *

며칠이 지난 밤.

성벽 수호 병력을 제외한 많은 드워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누음앗핫핫핫하!”

“마셔라! 마셔!”

“황금바위산의 영원한 친우, 아틸라를 위하여!”

“호우호우!”

드워프들답게 술자리는 왁자지껄했다.

아니 왁자지껄한 정도가 아니었다.

인간이 이 모습을 본다면 열에 아홉은 개판이라 말할 것이다.

드워프들은 바닥과 탁자를 가리지 않고 뛰고, 춤추고, 노래했다.

분위기는 금세 무르익었다.

머지않아 술잔과 고깃덩이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것을 맞고 쓰러지는 자.

그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웃는 자.

웃는 이의 정수리에 맥주를 쏟아붓는 자.

바토리가 속삭였다.

“역시 드워프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정신이 없구나 야만전사야.”

“뭐 그렇지.”

“아직 그들은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구나.”

“올 거다. 크누트가 엄명을 내렸으니까.”

“그건 그렇고.”

바토리의 눈이 아틸라의 옆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까지 붙어 있을 필요가 있는 것이더냐.”

“으응? 호, 혹시라도 들킬까 봐.”

카스피는 아틸라 옆에 바짝 달라붙어 귀안을 시전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 은신해도 되는 것 아니더냐.”

“그, 그렇긴 한데 아틸라가 바로 신호해 달라고 해서.”

“방해 말고 술이나 마셔라 할망구. 행여나 취기에 빠져 마법 쓰지 말고.”

“내가 그리 바보인 줄 아는 게냐. 나도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안단다. 암, 드워프들이 마력을 싫어한다는 것쯤 내 익히 알고 있지. 그래서 지난번 오크들을 상대할 때도…….”

“그래. 그래야지. 저 딱따구리 오토 자식은 벌써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으니 말이야.”

세 사람의 눈이 저만치 탁자 위를 향했다.

풀어진 실타래처럼 헤벌쭉한 얼굴의 오토가 두 명의 드워프와 술잔을 부딪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자네가 아틸라의 동료란 말인가! 음핫핫핫하!”

“음홧홧홧화! 그렇소! 내가 바로 아틸라가 소속된 오동나무 용병단의 단장! 철혈귀검 오토요오오오잇!”

카스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가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귀안을 유지하는 데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고, 피로는 급속도로 쌓여 간다.

‘안 돼. 정신 차려 카스피. 아틸라가 널 신뢰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

부비적, 눈가를 비빈 카스피가 다시금 주위를 훑었다.

그녀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스스슷. 스스스스슷…….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무리의 드워프.

그들 중 몇몇 드워프의 몸에서 요사스러운 기운이 발산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미 드워프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돼 있었다.

‘뭐, 뭐야 저게!’

그런 그들을 향해 다른 드워프들이 인사를 건넸다.

카스피는 귀안을 해제했다.

그러자 악귀처럼 보이던 드워프들은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카스피는 아틸라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조심스레 타깃을 가리켰다.

웃음 섞인 아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녀석들인가.”

따악, 아틸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을 들은 오토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음홧홧홧화! 내 드워프 친구들에게 인간들의 칼춤을 보여 주고 싶소마잉!”

“호우호우!”

드워프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호응했다.

오토가 검을 뽑아들었다.

탁자와 탁자를 넘나들며 기괴한 춤을 추었다.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오토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칠삭둥이

사람들은 날 보며 곧 죽을 거라 말했다네

하지만 난

악착같이 살아남았지

“무슨 노래야 저건.”

“……나도 모르겠구나 야만전사야.”

“나 창피해 아틸라.”

동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오토는 노래를 계속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몸을 이동했다.

타깃이 누구인지는 헷갈릴 것도 없었다.

물표물의 발치에서 펀치가 혀를 헥헥대고 있었으니까.

타깃이 가까워질수록 오토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비, 빌어먹을! 타깃을 사정없이 검으로 후려치라니, 정말 그래도 되는 거요! 아틸라 님!’

오토의 눈은 아까부터 목표만을 향하고 있었다.

상대 역시 오토에게서 무언가 낌새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다시금 귀안을 뜬 카스피는 타깃의 몸에서 뿜어지는 요사스러운 붉은 기운이 오토를 향해 화살촉처럼 모여드는 것을 봤다.

금방이라도 오토를 향해 발사될 기세였다.

“아, 아틸라.”

그때였다.

누구에게 통제라도 받은 것처럼 타깃의 붉은 기운이 흩어지며 이번엔 반대편으로 모였다.

“흐에엣?”

카스피는 조금 당황했고, 아틸라는 웃었다.

그는 굳이 카스피의 입을 통해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심안으로 카스피의 심중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지금이군.’

아틸라는 오토에게 신호했다.

이어 투명화한 도롱뇽에게 전음으로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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