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18화 (118/425)

118. 드워프 장인 (1)

땅. 따앙. 따아앙.

쇠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한 열기.

황금바위산의 대장장이 골목.

“이, 이곳이 바로 그 이름도 드높은 황금바위 대장장이들의 골목인가!”

오토가 입을 헤벌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우람한 팔뚝을 휘두르며 무구를 제작 중인 드워프들.

그들 모두는 전신에서 비 오듯 땀을 토해 내고 있었다.

오토는 홀린 듯한 얼굴로 대장장이들과, 그들의 제작품을 바라봤다.

“침 떨어진다 오토.”

“쉬요우우웁!”

“에라이 더러운 새끼.”

“크흑! 하지만 아틸라 님! 대륙 전체를 뒤져도 몇 안 되는 드워프 장인들이 손수 제작 중인 무구요! 그런 걸 눈앞에 두고 한 명의 칼잡이로서 어찌 가만있을 수가 있겠소!”

그건 오토의 말이 맞다.

아인하르트와의 전쟁 때 라그나의 도끼를 직접 사용해 본 아틸라는 드워프 장인이 만든 무기가 얼마나 훌륭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장인의 경지에 오른 대장장이들이 아니다.”

“엥?”

“장인의 대장간은 더 깊숙한 곳에 있지.”

아틸라는 성큼성큼 발을 움직였다.

일행이 놓칠세라 뒤를 따랐다.

그 와중에도 오토는 쉴 새 없이 혀를 내둘렀다.

살쾡이처럼 주위를 탐색하던 카스피가 말했다.

“어? 아틸라 아틸라. 저 드워프는 오크와 싸울 때 봤던 거 같은데?”

“황금바위 드워프는 모두 전사니까.”

아틸라의 말대로였다.

카스피의 눈에 드문드문 낯익은 드워프들이 보였다.

“앗 저기도! 저기도 있다!”

“아니 그걸 알아본단 말이우? 내가 보기엔 그냥 대량생산된 털복숭이들인데.”

카스피를 돌아보며 아틸라가 말했다.

“너도 이참에 괜찮은 단검 한 쌍 마련하는 것이 좋겠군, 카스피.”

“저, 정말? 그래도 돼 아틸라?”

“뭐, 뭐요! 살쾡이 암살자만 우대하기요? 따, 따지고 보면 내가 아틸라 님과 먼저 알고 지냈는데!”

“뭐야 영주 나리. 내가 단검 갖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픈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살쾡이 암살자는 단검 한 쌍! 그리고 나는 검 한 자루랑 플레이트 아머! 뭐 이러면 딱 좋겠다는…….”

“미친놈. 검 한 자루도 될까 말까인데 플레이트 아머까지 노리고 있었냐.”

“꾸, 꿈이라도 꾸는 건 자유 아니요!”

“하긴. 열심히 꿔라.”

일행은 계속 안쪽으로 들어갔다.

몇 명인가의 드워프들이 일손을 멈추고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아틸라 일행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기에 곧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저기다.”

아틸라의 발이 멈췄다.

저만치 으슥한 골목 안에 널찍한 대장간이 보였다.

그 안에서 드워프 한 명이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지 아틸라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잠시 후 드워프의 눈이 이쪽을 향했다.

지저분한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훔쳐 낸 그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아틸라 아닌가! 자네가 황금바위산에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이곳까지 찾아와 줄 줄이야. 누음앗핫핫하하!”

드워프가 화상투성이의 손을 내밀었다.

아틸라가 맞잡았다.

“오랜만이군. 골든핑거.”

그랬다.

그는 카자르 용병단에서 아틸라와 함께 활동했던 전사, 골든핑거였다.

“잘 왔네. 크누트가 무기나 만들고 있으라는 바람에 아쉽게도 오크와의 전투엔 참여하지 못했지. 라그나와 보에몽은 만나봤나?”

“물론. 크누트 스톤핸드도 함께 말이야. 마침 크누트가 며칠 뒤 거한 술자리를 열겠다고 하더군.”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군! 노틀링과 락포트, 데인로 녀석도 자네가 온 걸 알면 크게 기뻐할 걸세. 음핫핫핫핫하!”

껄껄 웃던 골든핑거가 뒤늦게 바토리를 발견하곤 벅벅 뒤통수를 긁었다.

“이거이거 바토리 아가씨도 오셨구려. 저 멧돼지처럼 거대한 야만전사 뒤에 숨어 계시니 내 찾는 것이 늦었소.”

“흐응. 괜찮느니라.”

바토리의 소개로 오토와 카스피도 골든핑거와 인사를 나눴다.

아틸라가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골든핑거. 부탁할 것이 있다.”

“부탁? 뭐든지 말해 보게. 자넨 우리 황금바위 드워프의 귀한 손님이니까.”

아틸라가 오크들과 싸워 황금바위산을 지켜냈다는 것은 골든핑거도 들어 알고 있었다.

“나와 동료들의 장비를 손봐주었으면 한다.”

아틸라의 눈짓에 오토와 카스피가 서둘러 무기와 방어구를 꺼내 놓았다.

아틸라도 용아귀를 탁자 위에 내려 놨다.

용아귀의 날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대체 도끼를 얼마나 험하게 쓴 건가.”

아틸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골든핑거가 그것을 살피는 동안 오토가 귀엣말로 물어왔다.

‘아틸라 님. 저 드워프가 장인의 경지에 다다른 대장장이요? 지, 지금 드워프 장인이 내 무기를 직접 손봐주고 있는 게 맞느냐는 말이오!’

오토의 눈은 진한 감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카스피도 비슷한 눈을 뜨며 아틸라를 바라봤다.

아틸라는 피식 웃었다.

“아닌데.”

“엥?”

“골든핑거는 장인이 아니다. ‘아직’은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틸라?”

“황금바위산엔 두 개의 장인 가문이 존재한다. ‘포저’ 가문, 그리고 ‘스미스’ 가문이 그것이지.”

“그렇다면 저 드워프는.”

“저자의 이름은 골든핑거 포저. 조만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인의 반열에 올라설 자다.”

“흐에에엣!”

“그, 그럼 어차피 장인이나 마찬가지 아니요!”

“그러니까 닥치고 얌전히 보기나 해.”

카스피와 오토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골든핑거가 말했다.

“무기와 방어구들이 하나같이 너무 손상됐군. 새로 장만하는 게 나을 것 같네.”

“용아귀도?”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무튼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참 신기한 도끼로군. 대체 누가 제작한 물건인가.”

“글쎄. 검은늑대 부족에 전해지던 물건이라.”

“저 도끼는 이미 한차례 보수가 이뤄진 거 같네. 그것도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해. 내 생각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의 힘이 아닌가 하네만.”

“바로 맞췄군.”

“역시 그런 거였나. 그렇다면 이건 내가 어쩌지를 못하겠군. 이프리트의 힘이 닿은 물건을 보수하려면 마찬가지로 이프리트의 힘이 필요하니까.”

“그 이프리트를 이곳에 데려올 수 있다면?”

“응?”

그 말에 놀란 건 골든핑거만이 아니었다.

카스피와 오토도 놀란 토끼 눈을 뜨며 아틸라를 쳐다봤다.

바토리만이 생글생글 웃으며 그들을 보고 있었다.

아틸라가 말했다.

“용아귀는 마지막에 해결하기로 하지. 일단은 이 녀석들의 무기와 방어구가 먼저다.”

“알겠네. 그럼 가죽옷 아가씨부터 내 질문에 좀 답해 주겠나.”

“나, 나부터?”

“싫으면 내가 먼저 하겠수!”

“저리 가 영주 나리! 누가 안 하겠대?”

골든핑거는 무기의 종류, 길이, 모양, 무게 등에 대해 상세한 질문을 했다.

카스피는 성심성의껏 답했다.

그러는 동안 몇 차례 골든핑거가 껄껄대며 웃었고, 카스피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다음은 오토의 차례였다.

오토는 제일 먼저 플레이트 아머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평범한 무기나 방어구라면 몰라도, 플레이트 아머는 그것을 착용할 전사에 대해 내가 소상히 알고 있어야 하네.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를 함께 치러 본 적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하지만 자네와 난 오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가.”

“그, 그야 그렇습니다만.”

“설령 내가 자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네. 플레이트 아머엔 상당량의 고순도 드워프 강철이 들어가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순도 높은 드워프 강철은 나조차도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네.”

“…….”

“음핫핫핫하! 그리 비 맞은 산양 같은 얼굴 하지 말게나! 내 자네에게 선물할 강철검 한 자루가 있으니.”

“히에엑! 그, 그게 정말이오!”

“음? 가만.”

무언가 생각난 듯 골든핑거가 대장간 안쪽의 방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엔 흑빛으로 빛나는 검 한 자루와, 같은 빛깔의 커다란 방패가 들려 있었다.

“이 방패는 어떤가. 플레이트 아머는 아니지만 방어력만은 확실할 걸세.”

“으힉! 이, 이런 고급진 방패를! 게다가 검까지!”

오토는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방패를 받아 들었다.

“물론 자네가 이것을 충분히 운용할 수 있을진 모르겠네만.”

그 말과 동시에 쿵! 하고 방패가 바닥에 꽂혔다.

기겁하며 오토가 외쳤다.

“시, 시, 시 시벌! 발가락 잘릴 뻔했다! 대, 대체 뭐 이리 무거운 거요!”

골든핑거가 껄껄 웃었다.

“누음앗핫핫하! 역시 자넨 안 되겠군! 이리 주게!”

“자, 잠깐! 너무 성급하신 거 아니요! 내 다시 한번 들어 보겠수!”

오토는 방패를 두 손으로 잡고, 힘주어 들어 올렸다.

핏기가 쏠린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이, 이거 보슈! 나도 이깟 방패쯤은……!”

“방패가 들기만 하면 끝이냐. 활용을 할 수 있어야지.”

아틸라가 오토의 방패를 빼앗았다.

‘이게 드워프 강철 방패인가.’

아틸라는 자비에를 도와 싸울 때 방패를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방패는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안정감이 느껴졌다.

눈앞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며 아틸라는 이리저리 막는 자세를 취해 보았다.

이어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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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를 파지한 왼손에 더욱 안정감이 차올랐다.

“오토.”

“왜 그러슈.”

“검 들어. 날 공격해 봐라.”

“엥?”

재밌겠다는 얼굴로 골든핑거가 오토에게 검을 건넸다.

오토는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검을 들었다.

“저, 정말 공격하란 말이우? 지금? 여기서?”

“그래. 날 죽일 기세로 한번 해봐.”

“아니 남의 대장간에 와서 갑자기 공격은 너무 예의 없는.”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죽어랏 어린놈아!”

카앙! 검과 방패가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아틸라는 희미하게 입술 끝을 올렸다.

‘새끼. 그사이 더 강해졌군.’

오토는 아틸라와 파티를 맺은 채로 많은 오크들과 싸웠다.

당연히 상당량의 경험치를 획득했고, 레벨업도 했다.

그러나 아틸라는 그런 오토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냈다.

방어 태세를 취한 덕에 방패 숙련도가 향상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단한 방패다.’

방패의 성능은 엄청났다.

크기가 큰 탓에 무게가 상당했지만, 이 정도의 무게는 아틸라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거북이처럼 숨어만 있을 거요!”

“그럴 리가.”

아틸라는 오토의 검을 방패로 밀쳐 냈다.

힘에 밀린 오토가 뒷걸음질 치며 중심을 잃었다.

그런 오토의 얼굴로 방패의 날이 쇄도했다.

“히에에엑!”

오토의 눈앞에서 방패가 멈췄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세를 푼 아틸라는 이리저리 방패를 살펴본 후 골든핑거에게 말했다.

“이건 내가 쓰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군. 저 친구에겐 무리인 것 같으니. 음핫핫핫하!”

“무기들을 손보는 덴 얼마나 걸리지?”

“아까도 말했듯 새로 제작해야 할 것 같네. 물론 자네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말이야.”

“고맙군 골든핑거.”

“사실 아틸라, 자네에게 줄 물건 하나는 이미 만들어 놨다네. 복귀하자마자 작업을 시작했었지.”

“내 걸?”

“잠시 기다리게.”

골든핑거는 다시금 대장간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금속이 부딪히며 철컹대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골든핑거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이 쌓인 금속덩이를 품에 안고 나왔다.

오토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히익! 아틸라 님! 저, 저, 저건……!”

아틸라의 눈도 커졌다.

두 사내의 표정을 확인한 골든핑거가 만족한 얼굴로 그것을 탁자 위에 펼쳤다.

은은한 광택이 감도는 커다란 흑빛의 갑주.

플레이트 아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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