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17화 (117/425)

117. 황금바위산의 주인 (5)

[ 동료, 크누트가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 파티를 맺으시겠습니까? Y/N ]

‘크누트가?’

라그나와 달리 크누트는 낯선 이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것은 타고난 그의 완고함이기도 했고, 무리를 이끄는 수장으로서의 신중함이기도 했다.

‘땅딸보 영감탱이. 잘난 체할 땐 언제고.’

“전사 아틸라를 중심으로 진을 구성하라! 그와 함께 오크들을 섬멸한다!”

크누트의 외침이 쩌렁쩌렁 공기를 울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크누트가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중심은 언제나 크누트, 그 자신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그것도 오늘 처음으로 만난 이종의 전사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

“크누트가……!”

“중심을 양보했다고?”

“그렇다는 것은……!”

드워프들의 눈빛이 변했다.

성벽을 지키고 있던 자들 또한 마찬가지.

솟구치는 상태창이 아틸라의 시야를 덮었다.

[ 동료, 라바타가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 동료, 파이어앤빌이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 동료, 해머링이……. ]

눈앞을 메운 상태창에 아틸라는 웃었다.

그때였다.

[ 경고 ]

[ 파티 시스템의 최대 인원이 초과되었습니다. ]

‘인원 초과?’

[ 더 이상 파티원을 추가할 수 없습니다. ]

‘그렇군. 이 많은 드워프를 모조리 파티에 초대할 순 없는 건가.’

현재 파티창에 속한 인물은 오토, 카스피, 라그나, 보에몽, 크누트, 라바타, 파이어앤빌, 그리고 아틸라.

모두 8명.

‘한 번에 모을 수 있는 파티원은 8인이 한계인 거로군.’

아틸라는 기억을 되짚었다.

오래전 툴루즈 백작령을 해수로 집어삼킬 뻔했던 소환마귀, 크라켄을 상대했던 날.

‘바토리, 샤를, 펀치, 오토, 카스피, 피핀, 제롬. 그때도 나를 포함해 파티원은 모두 8명이었다.’

지구를 향한 여정이 길어질수록 동료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파티에 초대할 인원을 세심히 선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틸라는 생각했다.

[ 더 많은 동료를 초대하기 위해선 ‘공격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

‘공격대 시스템?’

[ 공격대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

‘조건이라.’

조건을 확인할 틈은 없었다.

오크들의 눈과 피부가 붉어지며 급속도로 전투력이 상승하고 있었으니까.

“취릭! 취리리리릭!”

광기에 지배당한 오크들이 전세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틸라에게도 비장의 수는 남아 있었다.

[ 스킬, 전사의 외침이 활성화됩니다. ]

[ 모든 파티원의 근력과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

“오오!”

“갑자기 몸에서 힘이!”

새로이 파티에 합류한 두 드워프의 눈이 동그래졌다.

크누트도 놀란 눈으로 자신의 주먹을 내려봤다.

“가라! 저 어리석은 침략자들에게 황금바위의 힘을 보여 줘라!”

“오오오오오!”

“도끼를 들어라!”

“가자고! 크누트!”

“호우호우!”

오크의 광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전사의 외침을 등에 업은 드워프들은 용감무쌍하게 싸웠다.

특히 크누트는 엄청난 활약을 이어 가며 오크들을 때려 부쉈다.

머지않아 성문이 개방되고, 그 안에서 물밀듯 드워프 전사들이 튀어나왔다.

뜨거운 한숨과, 비명과, 핏물과 살점이 오후의 공기를 메웠다.

해가 완전히 기울어 사라지고, 달이 머리 위에 차오를 때까지 전투는 계속됐다.

이번에도 가장 많은 오크를 도륙한 건 아틸라였다.

그는 홀로 3할에 달하는 오크의 숨통을 끊어 냈다.

* * *

그날 밤, 황금바위성의 회의실.

크누트, 라그나, 그리고 아틸라 일행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크누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수해로 들어가겠다고?”

무심한 얼굴로 아틸라가 답했다.

“그렇소.”

“게다가, 반드시 나와 함께 가야만 한다고?”

“그 또한 그렇소.”

“이유를 묻고 싶군.”

크누트의 눈이 가늘게 빛났다.

그는 눈앞의 전사에게 상당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검은늑대의 아틸라.’

황금바위산의 크누트.

대륙 최강의 전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

그런 그가 눈앞의 사내를 보며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이렇게 강한 전사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크누트는 대륙의 수많은 전사와 겨뤄 봤다.

그중 최강의 인물이라면 역시 엘프족의 자랑이자 ‘무적자’라는 압도적인 이명을 보유했던 사내.

타리엘 페살라스.

‘그러나 난 그보다 강하다.’

크누트는 알고 있었다.

타리엘과의 대전 당시, 자신이 완전한 몸 상태였다면 결코 무승부로 끝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그런데.

눈앞의 이 전사는.

‘도무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군.’

오크는 강했다.

자신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낸다 해도 두 마리 오크를 동시에 상대하는 정도가 한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홀로 세 마리 오크를 상대해 쓰러뜨렸다.

이후 추가로 오크 셋을 찢어 버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여섯 마리에 달하는 오크를 쓰러뜨렸음에도 그의 체력이 완전에 가까운 상태였다는 것.

‘그것이 정녕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비약을 먹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게다가 조금 전 성벽 앞에서의 전투.’

그때의 그는 이전보다 한 단계 더 강해진 듯 보였다.

크누트의 눈빛이 심연처럼 깊어졌다.

아틸라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오직 스톤핸드의 핏줄만이, 그곳에 감춰진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오.”

문.

크누트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선대 왕이자 그의 아버지가 왕위를 물려주며 해 줬던 말.

자신 역시 언젠가 보에몽에게 들려줘야 하는, 황금바위의 왕족에게만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그 은밀한 전설을 이자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내가 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거요. 의심도 들겠지. 그러나 크누트 스톤핸드.”

아틸라의 눈이 칼날처럼 빛났다.

“빠르든 늦든, 당신은 문을 열어야만 할 거요.”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 자신과 크누트가 열지 않아도 문은 결국 열리고 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괴이(怪異)’는 대륙의 거대한 위협이 된다.

‘그것을 막아 내는 게 샤를.’

샤를은 동료들과 함께 괴이를 해치운다.

그때 샤를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이가 바로 크누트 스톤핸드다.

‘스톤핸드의 핏줄은 황금바위 드워프 중에서도 탁월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힘을 활용하기 위해 샤를은 크누트에게 어떤 선물을 제공한다.

그즈음 노르드 왕국을 점령하며 자연스레 그의 손에 떨어진 성물.

‘황금잔.’

그랬다.

먼 옛날 자비에의 조상이 스톤핸드와의 내기에서 승리해 얻어 낸 황금잔.

그것이 아틸라의 품에서 꺼내어져 탁자 위에 놓였다.

“설마……!”

라그나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크누트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크누트. 이건.”

“그래. 황금잔이로군.”

“크누트 스톤핸드.”

아틸라의 눈이 크누트를 똑바로 향했다.

“머지않아 괴이는 깨어날 거요.”

“뭐라고?”

“결국 문은 열리게 될 거란 말이지. 또한 부활에 성공한 녀석은 황금바위산에 다시없을 위협이 될 거요.”

크누트가 라그나를 돌아봤고, 그의 귀에 라그나가 속삭였다.

‘허튼 소릴 할 사내는 아니네.’

크누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사 아틸라. 수해로 들어간다는 건 크나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네.”

“물론 그렇소.”

“오크는 수해 안에서 더욱 강력해지지. 그 외에도 수많은 몬스터들이 있네.”

“감수할 가치는 충분하오. 괴이가 깨어나면 그 몬스터들을 이끌고 가장 먼저 황금바위산을 무너뜨릴 테니까.”

거짓말이다.

원작에서 부활한 괴이가 향했던 곳은 황금바위산이 아니다.

놈은 수해를 타고 남하해 아인하르트의 영역을 침범하고, 샤를과 대적한다.

그러나 원작과 많은 것이 바뀐 지금, 반드시 원작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함께 문 앞에 다다르면 알게 될 것이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수해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다는 건가.”

“그렇소.”

무거운 정적이 주위를 감쌌다.

이윽고 크누트가 입을 떼었다.

“조건이 있네.”

* * *

“아니 아틸라 님. 우리더러 숨어 있는 악귀를 찾아내 달라니. 그게 대체 뭔 말이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니 애당초 숨어 있다는 건 어떻게 확신하는데. 악귀가 그렇게 막 악귀가 아닌 척 숨어 있을 수도 있는 거야?”

“악귀가 인간들 틈에 몰래 숨어 있는 건 리옹에서 충분히 보지 않았나.”

“야만전사야. 넌 이곳에 악귀가 숨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게로구나.”

“그래. 드워프는 인간처럼 사사로운 욕심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건 또 뭔 소리요?”

“악귀와 마귀의 차이에 대해 알고 있냐. 오토.”

“그 무슨 당연한 말씀을. 마귀는 악마의 하위종, 즉 마족(魔族)이고! 악귀는 귀신 아니요!”

“응? 너 그런 것도 알고 있었냐?”

“이래 봬도 뇌 안에 지식이 꽉꽉 차 있소!”

“하지만 하나만 맞고 하난 틀렸군.”

“엥?”

“마귀가 마족인 건 맞다. 하지만 마족인 것과 동시에 귀신이기도 하지.”

“흐에에엣! 설마 그래서 마귀가 마귀인 거야?”

“그건 또 뭔 요상한 소리요? 마귀가 당연히 마귀지.”

“아니, 들어봐봐 영주 나리! 마(魔). 귀(鬼). 마족의 ‘마’와 귀신의 ‘귀’가 함께 들어가 있잖아!”

“히익! 진짜네!”

두 바보의 대화에 아틸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카스피의 추론은 사실이었다.

아틸라는, 아니 원작자 김도현은 카스피가 지닌 귀살의 힘을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하기 위해 마귀가 귀신에 속한다는 설정을 부여했다.

즉, 카스피는 악귀나 혈귀 등 일반적인 귀신을 상대할 때뿐만 아니라.

‘마귀를 상대할 때도 귀살의 힘을 톡톡히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아틸라는 리옹에서 카스피를 조우했을 때 만족했다.

카스피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만들어 낸 악귀를 상대할 때도, 그리고 파우스트를 상대할 때도 꺼내들 수 있는 강력한 카드였으니까.

“악귀는 사악한 갈망을 원료로 태어나는 존재다. 사사로운 욕심으로 가득 찬 인간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여긴 드워프 마을인데?”

“그 말인즉슨, 드워프들에게선 쉽사리 악귀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철혈귀검아.”

“그런데도 이곳, 황금바위산에서 악귀가 발생했다. 외부의 개입이라는 변수 없이는 벌어지기 힘든 일이지.”

아틸라는 확신했다.

분명 조제프, 그리고 리옹에 출몰한 악귀 사건의 연장선이다.

오토가 물었다.

“변수라면 그 메피스토펠레스를 말하는 거유?”

“그래. 메피스토펠레스가 이곳의 드워프들을 현혹했다. 그리고 녀석이라면 고작 두 명의 드워프를 악귀로 만드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을 거야.”

“근데 이렇게 한가하게 대장간 구경이나 가도 되는 거야?”

카스피의 의문대로.

일행은 황금바위 대장간을 향하는 길이었다.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도끼는 고쳐야지.”

그동안의 혹사로 용아귀는 완전히 망가졌다.

그것 말고도 이유는 또 있었지만.

‘제아무리 메피스토펠레스라 해도 물욕이 없는 드워프를 쉽게 악귀로 변모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드워프들에게도.

인간보다 훨씬 강렬한 욕망을 발하는 분야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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