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황금바위산의 주인 (4)
크누트의 표정에 의아함을 느낀 라그나가 같은 곳을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경악했다.
“저, 저건……!”
이변을 감지한 나머지 드워프들도 하나둘 같은 곳을 돌아봤다.
보에몽 또한 그랬다.
원인을 파악한 그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저, 저, 저게…… 말이 돼……?”
카스피와 오토마저도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라지 않은 사람은 바토리뿐.
오직 그녀만이 작금의 상황을 일궈 낸 한 명의 전사를 여유 가득한 얼굴로 바라봤다.
바토리의 입술이 매끄럽게 말려 올라갔다.
“너무 빨리 끝낸 것이 아니더냐. 야만전사야.”
짐승처럼 뜨거운 숨결을 내뱉는 전사.
“후우우…….”
그의 어깨 위로 불꽃같은 증기가 피어났다.
핏물 낭자한 도끼를 들고 선 그의 발밑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난도질 된 오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호, 혼자서…….”
“세 마리를…… 쓰러뜨렸다고……?”
드워프들이 전장에 난입했을 때 오크는 모두 일곱 마리였다.
그중 한 마리를 크누트가 맡았고,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세 마리에게 나머지 드워프들이 합심해 돌격했다.
그제서야 그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맡은 오크는 모두 네 마리.
세 마리가 비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세 마리의 오크를.
“저 인간 전사 혼자서 쓰러뜨렸다는 건가!”
“그, 그것도 크누트가 한 마리를 쓰러뜨린 그 짧은 동안에……!”
“말도 안 돼!”
후드득, 용아귀에 묻어 있던 핏물이 지면에 흩뿌려졌다.
그것의 주인이 내뱉었다.
“뭐가 말이 안 돼.”
파앙! 쏜살처럼 돌진한 아틸라의 도끼가 오크 한 마리의 어깨에 박혔다.
걸쭉한 핏물이 터져 나와 그의 얼굴을 적셨다.
“되지.”
비명을 지르는 오크를 무시하며 아틸라는 재차 용아귀를 휘둘렀다.
상대는 광기를 발산 중인 오크였지만 방어할 틈조차 없었다.
콰앙! 쾅! 두 번의 도끼질이 이어지자 팔 한 쪽이 바닥에 떨어졌다.
남은 팔로 무기를 휘두르려는 놈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역시 레벨업이 좋긴 좋아.”
우두둑! 오크의 손목이 부서졌다.
“체력도 회복됐고.”
조금 전 아틸라는 레벨업을 했다.
그러나 레벨업하기 전에도 홀로 오크 두 마리를 쓰러뜨리고, 추가로 카스피의 오크마저 제거한 아틸라.
지금의 그가 오크 한 마리를 상대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키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비명이 산공기를 울렸다.
그럴 만도 했다.
오크의 부서진 손목을 아틸라가 완력으로 뽑아낸 것이다.
“키헥! 키익! 키이이에엑……!”
분리된 오크의 손과 도끼가 바닥에 떨궈졌다.
날이 손상된 용아귀도 주인의 손에서 떨어졌다.
아틸라는 맨손이 되었다.
그의 잇새로 맹수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퍼억!
공성추처럼 강인한 발길질이 오크의 가슴을 타격했다.
녀석의 등이 지면을 쓸며 밀려났다.
그 위에 아틸라가 올라탔다.
단단하게 움켜쥔 주먹이 오크의 얼굴에 꽂혔다.
오크의 얼굴뼈가 무너졌다.
하지만 즉사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래서 아틸라는 다시, 또다시 녀석의 두개골에 주먹을 꽂았다.
쾅! 콰앙! 콰아아앙!
오크의 사지가 부르르 떨렸다.
잠시 후엔 그 움직임마저 사라졌다.
아틸라는 멈추지 않았다.
수차례 더 놈을 가격해 박살을 내 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크누트를 비롯한 드워프들은 숨조차 쉬지 못했다.
“취익! 취이이익……!”
살아남은 두 오크가 공포에 질려 도주했다.
하지만 아틸라의 돌진에 붙잡혔다.
아틸라는 두 마리 오크를 굳이 따로 상대하지 않았다.
한 마리의 덜미를 붙잡아 자리에 고정시키고, 나머지 하나에겐 도발의 외침을 시전했다.
[ 일정 시간 동안 대상이 오직 시전자만을 공격합니다. ]
무휼을 꺼내들었다.
칼자루를 쥔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 휩쓸기 ]
퍼거거걱! 한 번의 칼질이 두 마리 오크를 동시에 타격했다.
놈들이 도끼를 휘둘러 반격했지만 때늦은 발악이었다.
무휼이 오크들의 도끼를 쳐내고, 살갗과 근육을 찢고, 뼈를 부쉈다.
그러면서 아틸라는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휩쓸기 스킬을 시전해 광역기를 날렸다.
[ 성검, 무휼의 공격이 적중했습니다. ]
[ 축성의 인장이 발동합니다. ]
[ 축성의 인장이 발동합니다. ]
[ 축성의 인장이 발동…… ]
휩쓸기 스킬의 또 하나의 장점은 무휼의 성력을 빠르게 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축성의 인장 발동 효과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파지짓! 무휼의 검신에서 성스러운 빛이 뿜어졌다.
그러나 아틸라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
어느새 숨통이 끊긴 두 오크가 동시에 지면으로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투가 끝났다.
아틸라는 홀로 여섯 마리의 오크를 도륙했다.
* * *
피 칠갑을 한 채 자리에 선 아틸라.
그를 보며 드워프들이 웅성댔다.
“저 인간 전사가 바로…….”
“라그나가 이야기했던 새로운 무적자, 아틸라인가.”
라그나와 보에몽이 아틸라에게 달려왔다.
두 드워프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아틸라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성벽을 지키는 전사가 오크를 발견했네. 그 즉시 수뇌부에 보고가 들어왔고, 이렇게 크누트와 함께 직접 찾아 나서게 된 거지.”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에 대해 드워프들은 잘 알고 있다.
‘황금바위산의 동쪽 끝은 수해와 맞닿아 있으니까.’
당연히 크누트와 라그나가 직접 나서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보에몽은?”
아틸라의 물음에 라그나가 허허 웃었다.
“보에몽의 고집이라면 자네 역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찌나 함께 나가겠다 조르던지. 아비인 크누트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네.”
“크흠! 흠!”
라그나의 말을 자르듯 크누트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아틸라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었다.
“보에몽을 챙겨 주었다는 말은 라그나를 통해 들었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군.”
아틸라는 크누트의 손을 맞잡았다.
두껍고 단단한 전사의 손.
‘이 손으로 오크 한 마리가 박살이 났다, 이거군.’
그사이 라그나와 보에몽은 바토리와 인사를 했다.
바토리의 소개를 받아 오토, 카스피와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주위의 드워프들을 둘러보며 아틸라가 말했다.
“전의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군.”
드워프 용병단에 함께 속해 있었던 골든핑거, 노틀링, 락포트, 데인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답은 아틸라에게 돌아온 라그나가 했다.
“녀석들은 성벽 안에 대기 중이네. 우리가 없는 사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아틸라는 라그나의 말에서 무언갈 감지했다.
“오크의 출현 말고,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건가.”
“그렇네.”
이번에 대답한 이는 크누트였다.
그는 조금 전과 달리 분노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황금바위 형제들 사이에서.”
거칠게 씹어뱉었다.
“악귀가 출현했다.”
* * *
황금바위 드워프족의 마을.
그것은 황금바위산 중턱의 널찍한 고원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마을이라기보단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대도시에 가까웠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하군.’
아틸라는 감탄했다.
석양이 내리는 하늘 위의 바위산.
불그스름한 색으로 몸을 바꾸는 그것 아래 여전히 금빛으로 빛나는 장대한 성벽.
‘어떻게 이렇게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똑같을 수가 있지.’
서리나무숲을 찾았을 때와 동일한 감각.
눈앞에 드러난 광경은 패영전 원작자인 그의 심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황금바위를 깎아 만든 성벽이네.”
크누트의 말대로다.
저 성벽은 오직 황금바위산에만 존재하는 ‘황금바위’를 드워프 강철로 가공해 세운 방벽으로.
인간이 만든 성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견고함을 자랑한다.
그것을 증거하듯.
“막아라! 절대 넘어오지 못하게 해!”
“크누트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거다!”
“빌어먹을 오크 녀석들!”
“호우호우!”
황금바위 성벽은 오크의 무리를 맞아 흔들림 없는 방어력을 뽐내는 중이었다.
‘물론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제아무리 황금바위 성벽이 단단하다 해도, 트롤에 버금가는 공격력을 지닌 오크의 맹공을 언제까지 버텨 낼 수는 없다.
“아, 아틸라 님! 언제 오크 놈들이 여기까지 온 거요!”
역시나 오토가 가장 먼저 호들갑을 떨었고.
“아, 아버지!”
마을이 공격받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보에몽도 당황해 외쳤다.
놀란 건 크누트 역시 마찬가지.
벽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누트가 돌아왔다!”
“좋아! 이제 막을 수 있겠어!”
“뭐 하는 거야 크누트! 어서 오크 놈들을 묵사발로 만들어 버리라고! 누음앗핫핫핫하!”
드워프족이 왕을 섬기는 방식은 인간과 다르다.
그들은 허물 없이 왕의 이름을 부른다.
허례허식 따윈 없다.
그들은 뜨거운 심장으로 군주를 섬기고, 근육과 땀을 불태워 그것을 증명한다.
“잘 버텨주었군.”
크누트가 이를 드러내며 주먹을 쥐었다.
그의 주먹이 바위처럼 굳어지며 커다래졌다.
아틸라도 전투 준비를 마쳤다.
“시작해 볼까.”
두 전사가 몸을 날렸다.
나머지 전사들도 뒤를 따랐다.
“가자!”
“이번에야말로 황금바위 드워프의 실력을 보여 주는 거다!”
“호우호우!”
크누트의 천둥벼락과 아틸라의 돌진이 시전된 건 동시였지만 목표에 먼저 도달한 건 아틸라였다.
풍차처럼 휘둘린 칼질에 오크의 다리 한 쪽이 날아갔다.
“키에에엑!”
다리를 잃은 오크가 비명을 질렀다.
이어 크누트의 천둥벼락이 다른 오크의 후두부를 강타했고, 그사이 아틸라는 목표물의 나머지 다리를 절단했다.
양 다리를 잃고 넘어간 오크의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
퍼억! 퍽! 퍼어억!
그 모습을 본 오크 세 마리가 아틸라에게 달려들었다.
그중 하나에게 용아귀가 날아갔다.
퍼걱! 오크의 가슴팍에 도끼날이 틀어박혔다.
녀석은 분수처럼 피를 흩뿌렸지만 숨통이 끊어지진 않았다.
아틸라는 웃었다.
“역시 날이 무뎌진 도끼론 무리인가.”
놈을 향해 돌진을 시전했다.
관성이 더해진 아틸라의 몸이 오크와 충돌했다.
콰지직! 놈의 가슴에 박혀 있던 용아귀가 등 뒤를 뚫고 나왔다.
“끄어어억……!”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뱉으며 오크의 몸이 허물어졌다.
아틸라는 용아귀를 회수하지 않고 나머지 오크에게 손을 뻗었다.
퍼억! 퍽!
쇳덩이 같은 주먹이 전광석화처럼 목표를 가격했다.
놈의 가슴에 주먹 모양의 패인 자국이 움푹움푹 생겨났다.
나머지 한 오크가 등 뒤를 습격했다.
아틸라는 잽싸게 몸을 돌려 놈의 무릎을 걷어찼다.
우두둑! 오크의 무릎이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오크에게 재차 발길질이 가해졌고,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저, 저게 정말 사람인가!”
“아까 본 광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어!”
조금 전에도 드워프들은 아틸라가 여섯 마리 오크를 도륙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었다.
하지만 믿기 힘들었다.
너무도 놀라운 일을 경험한 자가 그것을 쉬이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전사 아틸라.”
“그의 실력은 진짜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 반복되고 있다.
더 이상 저것이 현실이 아니라 부정할 방법도, 이유도 없었다.
그 순간 아틸라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