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황금바위산의 주인 (3)
아틸라는 오크를 상대로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귀살 시나리오의 첫 번째 임무를 완수하고 받았던 보상.
[ 휩쓸기 ]
[ 무기를 크게 휘둘러 최대 4인의 적을 한꺼번에 가격합니다. ]
‘생각 같아선 네 마리 모두 상대하고 싶지만.’
그것엔 큰 위험이 따른다.
또한 오토와 카스피를 빠르게 성장시키려면 그들도 전투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카스피. 너도 한 마리 맡아.”
“알았어 아틸라!”
동료들을 파티로 불러들인 아틸라가 용아귀를 뽑았다.
악귀와 혈귀들을 상대하며 용아귀는 군데군데 날이 손상되어 있었다.
‘이제 숫돌도 없고.’
지난 혈귀와의 싸움에서 사용한 숫돌이 마지막이었다.
아틸라는 개의치 않았다.
가장 덩치가 커다란 오크를 향해 돌진했다.
콰앙! 오크의 도끼와 용아귀가 부닥치며 불꽃이 튀었다.
“그, 그 순간이동 기술! 나도 좀 알려 주쇼!”
“넌 가르쳐 줘도 못해.”
“뭐요!”
곁눈으로 보니 오토는 가장 덩치가 작은 놈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다른 놈들과 별 차이도 없었지만.
‘새끼. 약삭빠르기는.’
오크들도 오토가 아틸라보다 약하다는 걸 감지했다.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오크가 오토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에엑! 나한테 온다! 어, 어떻게 좀 해보쇼! 아틸라 님!”
아틸라도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 도발의 외침 ]
[ 일정 시간 동안 대상이 오직 시전자만을 공격합니다. ]
“어어! 어라라라!”
오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오크가 빙글 몸을 돌려 아틸라에게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어, 어떻게 한 거요!”
“넌 몰라도 돼.”
“시부럴, 그 기술도 좀 알려 주쇼!”
“왜. 혼자 여러 마리 상대해 보게?”
오토가 화들짝 놀라 정정했다.
“취, 취소! 취소요! 그 기술은 죽어도 안 배울 거요!”
“어차피 가르쳐 줘도 못한다니까.”
아틸라는 용아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자신이 맡은 두 마리 오크를 향해 시전했다.
[ 휩쓸기 ]
퍼거걱! 아틸라의 몸이 반 바퀴 회전하며 크게 용아귀를 휘둘렀다.
아틸라는 놀랐다.
이런 방식의 공격을 시도한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것이 달랐다.
‘속도와 힘이 줄지 않아?’
휘두른 무기가 상대의 몸에 닿으면 마찰력이 발생한다.
또한 마찰력은 무기의 속도와 위력을 저하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크 두 마리의 몸을 베는 동안 속도와 위력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아틸라의 입가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이건 엄청난 기술이다.’
그런데 오토가 산통을 깼다.
“히에엑! 나 죽소! 나 좀 도와주쇼 아틸라 님! 흐악! 살려 줘! 바토리 아가씨이이이!”
‘빌어먹을 딱따구리 새끼. 어떻게 몇 초를 못 버티냐!’
그러나 인간이 오크를 상대로 몇 초라도 버틴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오토 정도의 전사가 아니었다면 무기를 맞대는 것과 동시에 목이 날아갔으리라.
아틸라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조금 더 오토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 아틸라!”
카스피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언갈 느낀 아틸라의 눈이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 보았다.
취익! 취이익!
수풀의 틈새로 또 다른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추가로 등장한 개체는 세 마리.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바토리가 개입해야 한다.
“바토리!”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구나. 내 이름을 다 불러 주고.”
그런데 이상했다.
아틸라의 부름에도 바토리는 마법을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하는 거야 할망구!”
“조급해하지 말거라 야만전사야.”
바토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바위처럼 단단한 무언가가 날아와 오크 한 마리와 부닥쳤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콰앙! 콰아앙!
수풀 속에서, 암벽 위에서, 그와 비슷한 것들이 벼락처럼 튀어나와 오크들을 후려쳤다.
낯익은 외침이 들렸다.
“아틸라!”
“다친 곳은 없는가! 아틸라!”
목소리의 주인은 보에몽과 라그나였다.
두 드워프가 아틸라를 향해 씩 웃었다.
아틸라도 입가를 올렸다.
그러는 사이 오토가 맡았던 오크가 괴성을 지르며 오토의 검을 후려쳤다.
“으히익!”
강렬한 충격을 받은 검과 함께 오토의 몸이 나동그라졌다.
오크는 그대로 발을 들어 오토의 얼굴을 짓밟으려 했다.
“히엑! 사, 살려줘!”
그때였다.
지금까지와 다른 거대한 천둥벼락이 오크의 등 뒤로 내리쳐졌다.
콰아아앙!
가공할 충격에 땅과 공기가 흔들렸다.
아틸라의 눈이 그곳을 향했다.
“드디어 등장하셨군.”
상대를 확인한 아틸라의 입이 기다랗게 찢어졌다.
“크누트 스톤핸드.”
* * *
크누트 스톤핸드.
아틸라를 만나기 전의 타리엘 페살라스가 승리를 따내지 못한 유일의 전사이자.
황금바위산의 주인!
‘역시 격이 다르군.’
크누트가 발현한 천둥벼락의 위력을 보며 아틸라는 혀를 내둘렀다.
저 무시무시한 공격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샤를은 물론이거니와 자신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역시 오크로군.’
크누트에게 강타당한 오크.
녀석은 수 미터를 날아가 바위를 깨부순 뒤 지면을 뒹굴었지만.
“크르르…….”
어느새 짐승처럼 으르렁대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누트의 성긴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천둥벼락을 맞고 일어서?”
입가를 덮은 수염의 틈새로 어금니가 드러났다.
다시 한번 녀석을 향해 천둥벼락을 시전했다.
“반으로 쪼개 주마!”
이번엔 오크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두 자루 날붙이가 부닥치며 우렁찬 소음을 발했다.
오크의 상체와 무릎이 짓눌리듯 굽어졌다.
그 정도로 크누트의 괴력은 엄청났다.
“저, 저거 사람 맞소!”
오토가 놀라 외쳤다.
자신은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석상처럼 꿈쩍 않던 오크였던 것이다.
“흐랴아압!”
거친 기합을 발하며 크누트가 도끼를 휘둘렀다.
오크가 그것을 막았다.
그러나 크누트는 괴력뿐 아니라 기술까지 겸비한 전사.
도끼질이 더욱 빨라지며 오크를 타격했다.
오크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피가 솟았다.
그렇게 승부는 크누트 쪽으로 기우는 듯 보였다.
변화가 일어난 건 그때였다.
취리리리릭!
오크의 입에서 쇳소리가 발산됐다.
놈의 눈동자와 피부가 새빨갛게 변했다.
이변을 감지한 크누트는 움직임을 가속했지만 오크의 도끼질도 빨라졌다.
더욱 강해졌다.
‘그래. 시작이로군.’
크누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의 오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개체가 나타난 것 같은 감각.
크누트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광기(狂氣)!’
콰아앙! 오크의 도끼가 크누트의 도끼를 짓눌렀다.
광기를 발산한 오크의 무력은 대단했다.
직전까지의 고전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크누트를 압박했다.
“크누트!”
라그나가 소리쳤다.
그를 포함한 다른 드워프들은 조를 이뤄 오크를 상대 중이었다.
일대일의 대결을 벌인 건 오직 크누트뿐.
이유는 뻔했다.
“요란 떨지 마라. 라그나.”
그는 승리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제부터 시작이다.”
크누트의 도끼가 더욱 묵직한 힘을 머금었다.
두 자루 도끼가 서로를 물어뜯는 소음이 산과 공기를 울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오크를 상대로 크누트는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트롤과 비견될 정도의 무력을 지닌 오크.
아니, 광기를 발산한 오크의 공격력은 트롤을 상회한다.
카아아앙!
오크의 도끼와 부닥친 크누트의 도끼가 핑그르르 허공을 날아 지면에 꽂혔다.
크누트는 무기를 잃었다.
그러나 자신의 왕이 무장해제된 모습에 위기를 느끼는 드워프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기대감으로 가득해졌다.
“오오!”
“드디어 시작인가!”
크누트가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주먹이 돌처럼 단단해지며 덩치를 키웠다.
보에몽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나, 나왔다! 아버지의 바위주먹!”
보에몽과 크누트의 이름 ‘스톤핸드’.
그 이름에 걸맞은 특별한 기술이 크누트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어이. 오크.”
빠드드듯! 조금 전보다 두 배는 커다래진 주먹을 움켜쥐며 크누트가 말했다.
“이번엔 좀 아플 거다.”
회빛으로 변한 주먹이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크누트의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지면을 박차 오른 그의 몸이 순식간에 상대의 어깨에 근접했다.
“크르릅?”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오크는 도끼로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크누트가 빨랐다.
쇳덩이 같은 주먹이 오크의 어깨를 강타했다.
콰아앙!
“조, 좋았어!”
보에몽의 탄성에 크누트는 입가를 올렸다.
다름 아닌 오크를 상대로 펼치는 바위주먹.
아들에겐 좋은 수업이 될 것이다.
“키헤에엑!”
어울리지 않는 얄팍한 비명을 지르며 오크의 몸이 기울어졌다.
그러나 중심을 잃고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크누트도 예상하던 바였다.
“이 정도로 쓰러지면 재미없지. 안 그런가? 오크.”
착지한 크누트가 질풍처럼 몸을 날렸다.
엉거주춤 자세를 가눈 오크가 도끼를 휘둘렀지만 크누트는 피하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바위주먹이 도끼의 옆면을 타격했다.
그것을 쥔 오크의 팔이 옆으로 밀렸고, 상대의 품 안으로 파고든 크누트가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오크의 입에서 위액이 터져 나왔다.
지저분한 토사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지만 크누트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세를 낮춘 채 주먹을 휘둘렀다.
오크의 몸이 중심을 잃기 시작했다.
주먹이 꽂힐 때마다 근육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파열음이 울렸다.
“크르릅……! 크릅……!”
오크는 몇 번인가 팔을 휘둘러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크누트는 더욱 안으로 파고들어 주먹을 연타했다.
팡! 파앙! 콰아앙! 빠드드드듯!
드워프의 수 배에 달하는 덩치.
추가로 광기 스킬까지 사용한 오크였지만.
소용없었다.
속수무책으로 크누트에게 얻어맞을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보에몽이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오직 크누트의 모습만이 그의 시야를 장악했다.
“여, 역시 아버지야……! 누가 뭐래도 대륙 최강의 전사는 황금바위산의 크누트 스톤핸드다!”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한 것일까.
크누트의 주먹이 한층 거센 기운을 흩뿌렸다.
그리고 그건 광기에 찬 오크 한 마리를 피떡으로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쿠웅, 걸레처럼 부서진 오크의 몸이 지면에 널브러졌다.
“역시 스톤핸드!”
“바위주먹의 크누트!”
“호우호우!”
황금바위 드워프족은 이전에도 오크와 교전을 치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듯 일대일로 결투를 벌인 건 처음이었다.
드워프들이 주먹을 들고 환호했다.
일곱 마리 오크 중 하나가 쓰러졌다.
게다가 크누트는 아직 멀쩡한 상태.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나머지 여섯 오크도 순조롭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크누트!”
“황금바위의 크누트!”
“맨손으로 오크를 쓰러뜨린 오크 살해자!”
“호우호우!”
동료들의 외침에 크누트가 바위주먹을 들어 화답했다.
나머지 오크에게 달려들 준비를 하며, 그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이내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 이게 무슨……!”
크누트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졌다.
그 정도로 놀랄 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